2000년 1월, 마까따에바-무까노바에 한국인 의료진과 선진적 의료시설을 갖춘 한국-카자흐스탄친선병원(이하 한카병원)이 개원한다. 정부출연기관인 국제협력단(KOICA)에서 프로젝트 사업으로 건설해서 카자흐스탄에 무상으로 공여한 한카병원에는 내과, 외과, 한방과, 치과가 개설되었고 임상병리실과 방사선실까지 갖춰졌다. 의료진의 수준은 물론이고 비디오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기기 등 각종 시설과 장비 등에서 당시로선 카자흐스탄 내 그 어떤 병원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우수한 현대적 병원이었다.
한카병원의 개원은 한국인의 카자흐스탄 진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마디로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한국인들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카자흐스탄의 의료 환경에다 언어적 장벽까지 더해져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각종 질병과 불의의 사고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인 의료진으로부터 건강검진까지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랍고도 대단한 변화였겠는가.
우리 한국인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에게도 한카병원은 더없이 고맙고 경이로운 선물이었다. 이곳 카자흐스탄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는 데에는 무료로 선진적인 의술을 현지인들에게 제공해온 한카병원을 무엇보다 먼저 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카병원이 개원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고 초대 병원장을 맡아 시스템을 정비하신 분이 민병훈 박사다. 당시 우리 교민 중 민 박사에게 크고 작은 신세를 지지 않았던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휴일에 딸애가 갑자기 열이 올라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곧바로 왕진가방을 들고 달려온 민 박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민병훈 박사와의 인터뷰는 어렵게 성사되었다. 밖에 드러내길 꺼려하는 성품 탓이겠지만 인터뷰를 거듭 사양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한국인 진출 30년 얘기에 한카병원이 빠질 수 없다며 강권한 끝에 결국 민 박사가 응해주었다. 인터뷰는 카톡과 이메일을 통해 진행되었다.
- 민 박사님이 알마티에서 활동하셨던 시기에 사셨던 교민 분들 중 남아 있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구라 말씀드리면 대부분 기억하실 텐데, 그분들 모두 민 박사님의 근황을 궁금해 하십니다. 한카병원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도 그때 가깝게 지냈던 교민들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한카병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현지 의료진, 통역을 맡았던 고려인분들 모두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다른 병원에 비해 격무에 시달린 편이었음에도 다들 남다른 자긍심을 갖고 업무에 임해주셨습니다.
카자흐스탄 가기 전에 개업했던 병원은 이미 정리했었고, 귀국 후에는 거제 백병원, 철원 길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2014년까지 근무했습니다. 그 후로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코이카 사업의 일환인 한카병원이 개설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카병원 개설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당시 느끼셨던 카자흐스탄 의료 현실, 카자흐스탄 정부의 반응 등 관련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국제협력단 사업으로 한카병원 개설을 예정하고 1995년 7월에 파견되었으나 4년 동안은 알마티 중앙병원에서 진료실 한 칸 배정받아 외래진료만 하고 지냈습니다.
한카병원 개설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적극성 부족과 코이카의 한정된 예산관계로 제 5병원의 일부만 제공받아 내부공사만 하고 2000년 1월에야 개원하였습니다. 병원장비와 약품, 기구들을 한국에서 공급했습니다. 내과, 외과, 치과 의사와 한의사, 임상병리사가 한국에서 파견되어 근무하였고 방사선사와 간호사 등 기타 인원은 현지인을 고용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 의사도 3명 고용하여 부원장, 외과수련의, 한방과 수련의로 근무했습니다. 구급차도 한국에서 공급했고 현지인들 급여와 운영비는 코이카에서 담당했습니다.
진료비는 현지인에겐 무료였습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에게는 의료보험 본인부담금 정도만 받아 운영비에 보탰습니다. 사실 카자흐스탄에는 병원도 많고 의사도 충분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료시설은 노후하고, 의사들에 대한 전문적 수련교육이 부실하여 진료능력이 아주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약품 및 의료용품 부족으로 말만 무료진료일 뿐, 비공식적으로 많은 돈을 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 한카병원이 들어서자 현지 사회의 반응이 대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로 고려인들인 환자들이 병원 대기실에 줄지어 기다렸고, 특히 현지 교민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카병원을 운영하며 느끼셨던 소회와 특별히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카병원에서는 진료는 물론 치료약까지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당시 경제사정이 어렵던 카자흐스탄 현지인에게는 큰 혜택인 셈이었습니다. 한국 교민들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안심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는 카자흐스탄 북부지방에서 온 할아버지 한 분입니다. 3도 화상으로 두피가 10×15 cm 가량이 없어져 두개골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현지병원에서 치료할 방법이 없고 곧 사망할 것이니 맛있는 것 많이 먹으라고만 하였답니다. 그러다 한카병원 얘기를 듣고 비행기를 타고 우리 병원에 왔던 것입니다.
다행히 오래전에 증세가 비슷한 전기화상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드릴로 두개골에 수십 개 구멍을 뚫어 육아조직이 돋아나오게 하고, 허벅지에서 피부를 채취하여 피부이식으로 두피를 만들어 완치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끄질오르다, 우슈토베, 까라간다, 따라스, 비슈켁 등으로 순회 진료 다녀온 것, 알마티 교외 산골마을로 매주 화요일 오후에 출장 진료 한 것 등이 보람 있었다고 기억되는 일입니다.
처음 카자흐스탄 갈 때는 2년만 있을 계획이었는데 6년이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있다가는 정이 너무 들어 아예 눌러앉을 것 같아 정을 떼고 귀국하였습니다. 제 후임으로 올 의사를 구하지 못해 비워두고 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고, 10년 후에 다시 그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장비와 기구들이 다 없어지고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 당시 많은 교민들이 궁금해 했던 사항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병원을 운영하셨던 박사님이 코이카에 자원해 알마티로 오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특별히 사명감이나 봉사정신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의사협회 신문에 코이카에서 카자흐스탄 파견의사 초빙광고가 났는데 아무도 지원자가 없어 몇 달간 같은 광고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단조로운 병원생활에 의욕이 없던 나는 전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지원하여 가게된 것입니다.”
- 알마티에서 사시는 동안 소탈한 모습으로 이곳 교민들과 많은 교분을 나누며 지내셨습니다. 알마티에 사시는 동안 어떤 점이 좋으셨는지, 아니면 어떤 점이 불편하셨는지, 그리고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삶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과만 만나고 넓은 교제가 없이 살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온 후로는 국적, 나이, 직업,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가깝게 소통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만년설의 천산으로 둘러싸인 알마티의 풍광도 아주 좋았고,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정신적인 여유가 느껴져 좋았습니다. 물론 많던 적던 생활비를 지원받는 저와 달리 낯선 나라에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교민 분들은 마냥 녹녹하지만은 않았겠죠. 그럼에도 그분들에게서 이곳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한테선 찾아보기 어려운 여유가 느껴졌던 건 사실입니다.
주말엔 일리 강이나 알마티 근교 저수지 등으로 낚시를 자주 다녔습니다. 언젠가 가물치와 붕어를 여러 마리 잡아 박영식 씨 집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에 넣어줬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 마당에서 여러 집 가족들과 고기를 구어 먹고 아이들과 섞여 묵찌빠 놀이를 하며 즐겼었지요. 그때도 이미 머리가 허연 나이였는데 그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새삼 놀라워지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아드님이 현재 알마티에 거주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다시 한 번 이곳 알마티로 오셔서 살아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마음이야 그렇지요. 그런데 수년 전에 담도암으로 큰 수술을 받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해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가끔이라도 추억을 찾아 방문해볼 생각입니다.”
민병훈 박사가 보내온 이메일 원고를 정리하다 세월이 너무도 멀리, 너무도 빨리 흘러가버렸구나 하는 새삼스런 감상에 젖는다. 내 집 마당 사과나무 그늘에서 민 박사와 생전 처음 묵찌빠 놀이를 하며 깔깔대던 어린 두 딸이 이제 모두 제 짝을 찾아 내 곁에서 떠났고, 큰애에게선 아이가 태어나 벌써 네 살이 되었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이나 남겨두자는 뜻으로 시작했던 릴레이 인터뷰가 거듭 될수록 특별한 느낌을 준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 속 깊은 곳에서 건져지는 반짝이는 그 무엇들, 때론 슬픔을 때론 벅찬 감격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이 내 허무하기만 한 세월에 한 땀 한 땀 아름다운 수를 놓는다.
박 영 식 (한인신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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