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22회 〈국제PEN 광주문학상〉 및
제12회 〈국제PEN 광주올해의작품상〉 심사평
국제PEN광주광역시위원회는 2025년 12월 27일 전일빌딩 245 9층 다목적 강당에서 광주PEN 23호 출판기념회 및 제22회 국제PEN광주문학상 시상식과 총회를 진행했다.
광주PEN 문학상에는 김철수, 김효비야 시인, 올해의 작품상에는 수필가 김현임, 공로상에는 서승현 시인이 수상했다.
아래는 노창수 심사위원장의 심사평 전문이다.
2025년이 저무는 12월 15일, 문학단체마다 제 갈무리를 서두는 계절이다. 작가들은 각 보장(寶藏)의 작품을 내놓아 한 해를 정리하려 한다.
추위는 조금 견딜만했다. ‘국제펜광주문학상’과 ‘올해의작품상’으로 운위될 작가는 과연 누굴까. 설레는 마음을 밖에 두고 ‘시와사람사’의 문을 밀었다. 우선 데스크에 올라온 ‘국제펜광주문학상’ 후보자 추천 자료들을 살폈다. 대부분 평소부터 작품력을 키운 저력 있는 작가들이었다. 이분들이 보내온 작품집을 읽다가 문득 재미와 기미(機微)가 내 낡은 눈매에 함께 실려짐에 감사했다. 부드럽게도 〈국제PEN광주문학상〉 심사의 시동은 갓 윤활유를 먹은 실린더 안처럼 순탄했다. 본격적으로 개별 작품집을 목차에 따라 통독했다.
작품집을 읽으며, 습작기에 경도한바 한 이론을 상기했다. ‘독자에게 잘 읽히려면 작품이 극적 구조(dramatical construction)’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옛날 30센티 대나무자를 대고 긋던 무딘 연필의 조용한 밑줄이거나 파도형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밑줄이었다. 그 빛바랜 기억, 그러니까 브룩스와 워렌(Brooks & Warren)의 단언이었다. 문청 때부터 표방하던 아포리즘이었고, 나태함에 젖자 그걸 결구해버리듯 스스로가 환기해 마지 않던 문장이기도 했다. 작품은 곧 ‘작은 희곡(littledrama)’, 그러니까 ‘유기체’(有機體, organic construction)의 기승전결에 담아내는 시가 ‘극’임을 재확인해 본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정의는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그건 작품을 읽게 만들고자 힘껏 추동하는 한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두 분의 작품을 읽으며, 시란 재미와 깊이로 제백사하고 이렇듯 감동의 박동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함을 새삼 천명해 보았다.
김철수 시인의 시집 『사람 사는 이야기』에는 대체로 안온한 감정 스토리가 흐르고 있다. 지독한 전염병의 이간질로 벌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시적 모티프로 옮겨온 바 능숙했다. 화자가 사람을 정겹게 이끄는 힘, 이게 시 행간의 간극마다 촘촘히 엮어져 있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가 소원해졌으나 오히려 그 사이 따뜻한 사람의 정분이 흘러들어 다시금 끈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시인의 휴머니티가 오롯했다. 시의 진정성, 그리고 주제를 열어가는 진솔함은 더 돋보였다.
다음으로 김효비야 작품을 읽었다. 『상상을 잉태하는 여자』, 『빨강을 잉태하는 여자』 등 제목에서 보듯, 그가 상징적 카테고리 안에 채색하여 꿈틀거리게 하는 건 붉은 잉태의 이미지이다. 이를 원시의 성정(性情)에 빗댄 징표로 서정화해 보인다. 화자는 가멸찬 발화를 던지거나 과거에 투사도 한다. 사랑, 피, 생명, 열정, 창조로 카테고리화한 불멸의 자질들, 그게 순간적인 열반에 들듯 독자에게 밀어닥치게 하는 호소력도 있다. 그 아우라는 활달하면서도 심오하고 집요하다. 가쁜 호흡으로 질주하는 원초적 생의 귀환을 모자이크화로 점점 조사(照射)하며 마침내 이를 축조함으로써 완미법을 꾀한다.
올해의 작품상 후보는 연간집 가운데서 고르는 전례에 따라 선정했다. 우선 실린 편편을 읽고서 시 3명, 수필 2명으로 압축했다. 이 가운데 아름답게 비워내는 삶의 한 발견에 눈길을 당긴 작품을 정독하게 됐다. 김현임의 수필 「겨우살이」였다. 명사(名士)들의 옛집을 찾는 문학기행 때 눈여겨 보던 게 따로 있었다는 걸 제재적으로 도입했다. 해서, 문인 명사가 남긴 빛바랜 원고나 만년필, 서책들, 그런 것 말고, 흥미를 갖고 정작 들여다보는 대상이 있는데, 그게 명사 생가의 부엌임을 말한다. 이후 화자는 자기 집에도 구들방을 들이게 된다. 아궁이에 통나무가 활활 타는 양을 보고 불멍에 빠지게 되고, 더불어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세상사 다 쓸데없더라는 가락도 흥얼거린다. 그래, 고즈넉하게 타는 불 앞에서의 고백과 방백에는 겸손이 깃들게 된다고 말한다. 새삼 생을 돌이켜보건대, 한때 바람을 잡으러 안간힘을 쓰거나, 허상의 그림자를 안으려 허둥대던 부끄러움도 있었다. 하지만 하잘 것 없는 세간살이를 태우는 불 앞에선 그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이렇듯 아궁이 앞에 화자는 텅 빈 충만함에 끌린다. 평생에 걸쳐 이룩한 원고의 적층, 수십 자루의 필기구, 억눌린 책뭉치와 씨름하던 저명한 문학가들도 이 불 앞에서 무위할 것이었다. 집안에 뒹구는 낡은 농기구 같은 책들을 아름째 꺼내어와 태우는 그의 겨우살이가 깊어 간다. 화마가 우는 적요의 틈에 화자의 통점과 통달이 끼쳐 든다. 거기 한유(閑遊)의 무상(無常)이 얹힌바 온기는 더 진진해진다. 비탈의 혹독한 절간에 한 스님이 부처를 태워 사람을 구하던 설화처럼 그 궁휼은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그건 가장 본질로 향하는 무위(無爲)의 삶이기도 하리라. 작가의 이 도가적인 호흡법은 독자에게 남루한 겨울을 비움의 여운으로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쌓아온 서책을 태우는 아궁이 속에 비로소 사람이 보일 것이다. 아니 제 텅빈 제 마음의 실상이 걸어 나온다.
기쁜 마음으로 김철수, 김효비아, 김현임 세 김씨 작가에게 ‘2025 국제PEN광주문학’ 축제단에 이름을 새겨 전한다. 진취적 시심과 철학적 생태를 일깨워 가는 당신들의 길에 그 질긴 문학의 정신에 값하는 바가 부디 퇴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2025년 12월 15일
〈심사위원 : 오덕렬, 노창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