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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민초들이 지켜냈다.
1)독도 약사
독도와울릉도는 신라시대부터 우산과 무릉 또는 우산과 울릉으로 기록 되어있어, 독도는"우산"으로 불러 졌으며 조선때인 1476년에는 삼봉도라고 성종실록에 기록 되어 있고 1794년에는 가지도라 불렀으나 1900년대 부터는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독도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영토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2)일본도 독도가 한국땅임을 알고 있다.
일본도 1869년 메이지 정부가 조선과 국교를 정상화 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부속”라고 확인한 문건이 있고 1877년에는 시네마현 질의에 일본 내무대신 태정관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땅”이라는 공문서가 공문서록에 보존 되어 있다.
3)일본의 간계
일본은 1910년 한일 ( 지도 는 인터넷에서 따온것임) =>
합방에 앞서 을사보호조약 채결후인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으로 시네마현(島根縣)에 편입 시킨다. 그들은 자기들의 과거 기록과 지도에도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독도를 주인이 없는 섬을, 자기들이 먼저 차지했다고 하며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가 오늘날 우리가 실효적인 지배를 하며 확고한 우리 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아닌 민초들에 의해 지켜졌다.
4)독도와 같은 신카쿠열도
독도와 비슷한 중국의 댜오위다오열도(釣魚台列嶼)는 중국의 섬이었으나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1895년 오키나와현에 정식으로 편입시켜 일본 명으로 센카구열도(尖閣列島)라 부르며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일본이 패한 이차대전후 오키나와를 미군이 사용하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하면서 센카쿠제도도 일본 령으로 되돌아가서 일본이 실질적 지배를 하게 되었다. 세카쿠열도 (댜오위아오열도)는 독도와는 정반대로 현재 일본이 실효적 점유를 행하고 있다.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지만 중국은 청일전쟁 전 자기들의 영토였는데 일본이 강제로 자국에 편입시켰으므로 돌려 줄 것을 요구하며 영토 분쟁을 하고 있다.
센카쿠열도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약 300km, 타이완에서 약 200km 떨어진 동중국해 남쪽에 있는 무인도로, 5개의 작은 섬과 3개의 산호초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5)독도를 지켜 낸 민초들
독도는 해방후 6.25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이 실효적인 지배를 꿈꾸며 죽도라는 푯말을 꼿고 일본 어업선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 미역 채취 해녀들의 신고로 울릉도에 살던 홍순칠이 사재를 털어 독도 수비의용군을 만들어 독도를 지켜냈다.
홍순칠의 조부 홍재현은 조선시대 호조참판으로 울릉도에 유배와 독도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을 물리 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실히 밝히고 왔다. 그 후 계속되는 일본의 침입을 그의 아들 홍종욱이 막아내었고 6.25전쟁으로 국가가 혼란한 틈을 타 일본이 실질 점유를 꾀할 때 홍순칠은 동료 7명을 모아 독도 의용수비대를 만들고 보잘 것 없는 무기를 구하여 1953년 4월 27일 독도에 도착하여 일본의 죽도라는 푯말을 뽑아내고 독도수비에 들어갔다.
장비는 0.5t의 보트한척과 박혁포, 직사포, 경기관총 각1정, M1소총20정과 실탄 2만4000발을 미군과 정부에서 구입하여 2개 전투 분대로 편성하여 보급대, 수송대, 후방지원대로 편성하였다.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맹장을 떼어내었고, 독도에서 적은 량의 샘물을 찾아내어 식수를 해결 할 수 있었다.
1953년 7월 23일 일본 쾌속선이 접근하자 기관총 사격을 가하여 격퇴하였다. 일본이 우리 정부에 항의 하였으나 정부는 전쟁 중이라 홍순칠이 개인 재산을 투입하여 만든 독도수비대의 실상도 모르고 있었다. 1953년 8월5일에는 바위에 韓國領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후에서 일본의 200t급 배들이 독독 근해를 왔으나 유효사거리 밖에서 정찰하고 갔다.
1956년 11월4일 새벽5시경 일본함정 3척이 독도200m앞까지 도착했을 때 매복하고 있던 대원들은 박혁포로 기관실향하여 집중 포격하여 세발 중 2발이 명중하여 갑판에서는 일본경비병력 5명이 쓰러지고 함정은 급히 퇴각했다.
2개분대로 편성된 독도 수비대는 한 달씩 교대 근무하면서 10차례 일본을 순시선을 물리 쳤다. 이렇게 되자 일본의 거센 외교적 항의에 못이긴 정부는 국회차원에 독도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서울시장 김상돈과 국회의원 3명을 파견하였으나 의용수대는 조사단 독도 상륙을
불허하고 돌려보냈다.
이렇게 3년 8개월간을 정부의 도움 없이 결사적으로 독도를 지켜낸 독도의용 수비대는 1956년 12월 25일 국립경찰에게 인수인계하여 오늘날 독도를 우리나라가 실효 지배 하는 우리의 영토가 되었고 울릉도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독도 유람선이 출발하여 누구나 우리땅 독도를 마음대로 갈수 있게 되었다.
독도거주 민간인 집
독도 유람선을 타고온 관광객과 독도수비 경찰
대한민국 동쪽 땅끝 표시석과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