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끓는 섞어 찌개- 뉴욕 플러싱
뉴욕타임즈 웹사이트에 오른 힌두교도 사진
뉴욕 퀸즈의 플러싱 시내는 아시아 지역민들의 거대하고 번화한 중심지이다. 메인 스트릿과 유니온 스트릿을 따라 걷노라면 중국어, 한국어, 베트남어를 주고받는 사람들과 그 언어로 된 간판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길가에서 뻬이찡 오리 요리를 사 먹을 수 도 있고, 타피오카가 든 중국식 버블티를 마시며 휴대폰의 문자 보내고 받기에 바쁜 청소년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인도인, 파키스탄인과 아프간 사람들도 이 곳 플러싱에 그 보금자리를 마렸했다. 멕시코 사람들과 중미에서 온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예전에 러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아이리시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밟았던 이민사를 이제 이들이 이어가는 것이다.
미국을 섞어 찌개라고 비유한다면 플러싱이야 말로 제대로 끓고 있는 섞어 찌개라 할 수 있다. 플러싱의 문화의 다양성은 음식으로 대표될 수 도 있겠지만 그 중요한 한 측면이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플러싱에는 한 블록 건너 개신교회, 카톨릭 교회, 시냐고그 (유태인들의 성전), 힌두교 사찰, 회교도들의 모스크, 멋진 불교 사찰등의 모습들이 계속 이어진다.
플러싱이 종교적 신념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은 350여년전 그러니까 플러싱이 처음 생겨났을 때 부터였다. 메인 스트릿과 바우니 스트릿이 만나는 곳 쯤에 바우니 하우스 역사회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다. 이곳이 바로 플러싱에서 종교의 자유의 씨앗이 뿌려져 자라기 시작 한 곳이다. 1600년대 이곳에는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이민들이 작은 정착사회를 마련하고 이곳을 뉴 네덜란드라 불렀다. 플러싱이라는 이름도 네덜란드의 마을 이름인 블리싱겐이 영어식으로 변형된 발음일 것이라 추정된다.
1661년경 존 바우니라는 농부가 이곳에 살러 왔다. 그는 퀘이커교의 신앙을 박해하는 식민 지역사회의 권위에 반기를 든 사람이었다. 퀘이커교는 영국정부의 박해를 피해 1650년경 이곳 미국 플러싱 땅으로 건너왔다. 당시 뉴 네덜란드의 지도자인 스타이브슨트는 이들을 위험한 집단으로 보고 지역사회내의 누구도 퀘이커교도들과 어울리지 말도록 금했다.
그러나 1657년 12월 27일 약 30명의 픝러싱 시민들이 (이들은 퀘이커 교도는 아니었다.) “퀘이커든, 유태인이든, 터키인이든, 이집트인이든, 장로교파든, 독립교단이든, 침례교든, 그 누구든간에, 타 종교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박해하는 행위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는 지금도 역사에 빛나는 플러싱 진정서에 서명했다. 바우니씨의 아내의 사촌도 서명인 중의 하나였다. 또 한 서명인 중의 하나인 스톡스톤의 후손이 그 때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스타이브슨트는 이들에게 벌금과 징역까지 구형했다. 퀘이커들에게 자신의 집을 모임장소로 제공했던 바우니씨는 1662년 체포되어 뉴 네덜란드에서 추방되었다. 바우니씨는 고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여, 그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1664년, 플러싱 37 애비뉴 근처의 바로 그 자신의 집에 돌아와 그와 그의 후손들은 그곳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 1947년에 그 집은 박물관으로 개관되어 바우니 하우스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퀘이커교도들은 1694년까지 바우니씨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다가 노던 블러바드 선상에 (유니언 스트릿과 만나는 사거리 근처에 위치한) 있는 건물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300년 이상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그들의 모임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 모임의 장소 뒤편에 작은 공동묘지가 있다. 이 중 한 이름없는 묘소가 먼 옛날 퀘이커 친구들을 지켜준 존 바우니씨가 잠 든 곳이라고 한다.
오늘날 플러싱의 다양한 종교의 모임새는 33 애비뉴가 유니언 스트릿과 파슨 스트릿을 만나는 몇 블록안에서도 고스란이 보인다. 비나이 아브라함 시나고그, 다음은 한국 성 바오로 정하상 로마 카톨릭 성당, 거기서 바로 눈을 돌리면 에버그린 장로 교회, 그 바로 옆에는 1999년 아프간 터키계 회교 재단이 세운 푸른 공탑을 이고 있는 하즈랏 이 아부바크 사디크 회교 성전이 보인다. 또 거기서 두 블락 정도 베이사이드 애비뉴로 가면 탑 모양의 지붕을 뽐내는 한국식 불교 사찰이 한창 건축 중이다. 한국의 비구니 스님인 대행스님께서 1970년대에 세우신 한마음선원에서 짓고 있는 전통 한국 불교 사찰 바로 옆에 크리스챤 사이언스 독서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은 이 곳이 바로 종교의 자유의 고향, 플러싱이기 때문이다. ▶ 이상은 2008년 5월 2일자 뉴욕 타임즈에 난 기사를 본지 편집부에서 발췌/요약 번역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