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을 앞 둔 2월 8일 목요일 저녁 면회시간에 중환자실에서 조건부 대세를 드렸던 친구s 의 어머니 k 여사님.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 는 의사의 말에 놀라 어머니의 영혼 구원보다는 장례치를 난감함에 당황해 하였던 내 친구s.
왜냐면? 의사말대로 그 날 운명하셨더라면 3일 장으로 치를 경우 바로 설날 아침에 장례식을 치러야하기 때문이었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배려이신가? 아니면 대세의 은총일런가?
친구 어머니 k 여사님은 가족들 설날연휴 잘 보내도록 가시면서도 어미의 희생을 드러내 보여주신 것인지. 당신의 생을
연장해 이어오시다가 매서운 추위도 누그러져 포근해지고 햇빛도 따스한 날, 연휴가 다 지나고 난 13일 임종하셨다.
사랑의 하느님 이끄심에 따랐던 나, 그 당시 내가 무슨 배짱이었던가? 성령께서 담아주신 결단의 용기라 생각한다.
언제 어머니의 목숨을 거두어 가실지 모를 촌각을 다투는 싯점 이었기에 가족들 설득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나는 대모로 내 친구인 창고지기 막달레나와 증인으로 장남인 내 친구s 를 대동하고 들어가 무조건 대세를 감행했다.
그 당시 전통적 유교 집안인 집안 어른들과 종교가 다른 자녀들 몇몇도 속으론 나를 달갑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조건부 대세를 드려 삶의 끝자락에서 천주교신자 로 만들어 놓았으니, 내게는 신앙적 의무와 책임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운명 후부터 장례를 마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오늘 그 좋은 과정을 거쳐 열매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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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s 의 집안에는 자손도 많다. 5 남매이다 보니 아들 며느리, 딸 사위. 거기다 장성한 손자 손녀까지.
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가족 모두의 고유종교를 통합 해 제를 치를 수 있도록 빈소 상차림을 했다.
문상객 조문시 분향배례 할 때 곁에서 나는 마치 상조회사에서 파견 된 직원처럼 그들의 방식에 따라서
조문객을 안내하여 예를 행하도록 주선하였고, 가족들 아침 저녁 어머니께 공양 바칠 때는 제주가 되어
순서대로 장남부부 부터 시작하여,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옆에서 무릎꿇고 정종을 부어주고, 받아서
제례상 위에 올려놓은 후 절하도록 인도했었다. 이런 일은 오늘 새벽 출관까지도 나는 유가족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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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가족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밤에 연도할 때 함께 해 준 사람은 친구s 의 아들 뿐 이었다.
이 집안에는 천주교신자가 드물었다. 허긴 유일한 교우인 친구s 부부도 쉬는교우 였으니~~~
유가족 중에서는 연도가 길어서 문상객에게 방해가 된다며 나에게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이도 있었다.
사실 어머니를 생각하고, 연도의 깊은 의미를 이해한다면 도리어 감사해 하였을텐데. 모르니 당연하다.
이런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안과 밖에 줄지어 늘어 세워진 조화가 아니라, 당당히 빈소 안에
자리잡고 세워진 성당의 연령회 깃발 이었다. 때마침 응원군이 왔다. 본당에서 수녀님 두 분과
자매님 몇 분이 연도를 바치러 오신 것이다. 가실 때 나는 친구에게 연미사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어머니가 대세자이기에 본당에서 장례미사나, 사도예절을 행 할 수는 없다했지만, 기도는 부탁해라.
그리하여 장례미사 예물 봉투와 삼우미사 예물을 준비하여 가시는 수녀님께 전해드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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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부모님이나 내 친구s 도 세상에서는 성실하고 바르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분 들이다.
그런 착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오신 가족들인지라 빈소에는 항상 문상객이 성시를 이루었다.
발인 전 날 밤은 워낙 조문객이 넘쳐 옆의 비어있는 빈소까지도 차지해서 사용할 만큼 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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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장을 치르는 동안 교우들의 연도는 불과 몇 번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반향은 매우 컸으리라 믿는다.
본당에서 찾아와 연도를 바치고 있는 교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뒷짐지고 등을 보이시는 분] 아버님.
고인의 남편 으로서 당신 귓가에 들리는 구성진 연도가락을 듣고 계시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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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부터 빈소에서 친절을 쏟아 부어 준 나의 작은 희생의 위력? 인가! 다음 날 입관예절은 우리의
천주교의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가족 한 명도 내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무언의 동조 를 의미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가족들을 감동시킨
본당 연령회원들에게 이 시간을 통하여 상주의 친구 로서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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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인 충남 서산에 도착 어머니k 여사는 리무진 운구차량에서 내려 꽃상여로 갈아 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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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들이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앞장 서 걷고, 구성진 운구 가락에 맞춰 상여는 뒤를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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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안장 될 장소로 이동중인 상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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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린 탓에 눈 내린 땅이 녹아 질퍽거리는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상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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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과 함께 거처 할 숙소[선산에 있는 가족 묘원]에 도착한 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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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마침 불어 온 밑 바람에 꽃 상여의 휘장이 펄럭이며 둥글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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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를 동행한 덕에 나는 꽃 상여와 상여꾼의 어~어허, 발 맞춤가락을 듣고 우리의 풍속이 참 아름답다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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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에 와서 저는 본당에서 오신 연령회원들에게 아름다운 부탁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현지 집안 어른들이 고유방식 으로 장례예절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그냥 맡깁시다."
그 분들께 주도권을 맡겨드리고 우린 나름대로 한 켠에 모여서서 연도와 성가 를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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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8시 장례식장에서 발인하여 서산 장지에 안장하고 서울에 당도한 시간은 오후 6시
본당에서 오늘은 연령회원이 네 분만이 오셨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입관예절이 있어 두 군데로
나뉘어졌단다. 45인승 버스에 연도할 수 있는 인원은 나를 포함해 여섯명 뿐이었지만 우리는
파견받은 자로서 주눅들지 않고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내려갈 때는 시편으로 된 운구예절을 바쳤다.
장례일정을 순조로이 마치고 올라오는 버스안에서는 연도를 바쳤다. 이 모든 것을 음미할 때, 이는
피곤에 지쳐 눈붙이고 있을 유가족과 친지들에게는 굳은 땅에 뿌려지는 복음의 씨앗 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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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례의 일정을 마치고 하산해서 먹는 늦은 점심은 참으로 꿀 맛이었습니다.
형제 많은 집안에 천주교신자가 거의 없다는 얘기는 내게 있어 수확 할 밭이 넓다는 의미가 된다.
서울에 도착 헤어지기 전에 아버님께 나는 다짐을 받았다. "어머니가 마리아로 대세 를 받고
돌아가셨으니 아버님은 세례를 받게되시면 요셉 으로 세례명을 하시면 됩니다"하고 앞질러 나는
작명?을 해 드렸다. 아버지는 끄떡이시며 미소로 화답하셨으니 이제 집안의 질서가 잡히리라.
나의 제의로 친구s 는 본당에 50일 연미사를 신청할 것이라 했다. 6시 새벽미사에 나가도록 권유하였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연령회원에게 부탁해 고해성사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을 부탁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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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가까이에 있는 고인의 큰댁에서 식사를 마친 후 상경길에 올라 우리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느님은 나같이 부족하고 가난하며, 힘없는 약점투성이를 들어 쓰시어 사람낚는 어부로 삼으셨다.
바오로사도 말씀처럼 내 연약함 안에서만이 그분의 강함이 나를 통하여 드러나게 하려함 때문 일것이다.
이번 일도 그렇다. 나에게 은인같은 친구이기에 가진 것 없는 나는 친구 모친상 내 몸으로 부조 한다 다짐했다.
그러니 더 시간내어 주게되고 더 정성껏 매사를 신경써 주다보니 아마 유가족들 모두의 마음을 사게 되었나보다.
이런 나를 지원하듯 친구 막달레나는 '소금창고'이름으로 조위금 을 마련해 가져오기도 하였으니,
친구 아버님께 위로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나를 친구s 가 붙잡는다. 그는 한사코 뿌리치는 나의
제지에도 아랑곳 없이 내 주머니에 차비하라고 봉투를 넣어준다, 곁에서 아버님도 한 말씀하신다.
"피곤할텐데 어여 택시타고가." 알거지가 택시 탈 일 없지, 시내버스 안에서 꺼내보니 십만원이 들어있다.
신금호역에 도착 우선 밀린 핸드폰요금 내고 막달레나에게 전화했더니 그도 지금 서울의료원 호스피스봉사
회의 끝나고 오는 중이라기에 저녁먹고 들어가자 제의해 우린 만났다. 중국집에서 난 짬뽕 그는 짜장.
오늘 저녁값은 오랜만에 내가 지불했다. 그리고 나머지로는 우리 대신 창고를 지켜주는 봉사자에게
줄 빵을 파리바께트에서 사들고 창고로 들어갔다. 단골손님 안나씨는 옥수수를 사와서 우릴 기다리고.
하늘나라는 맨날 잔치다. 이리하여 소금창고는 오늘도 기쁨이 나누어지는 영혼의 잔치 한마당이 되었다.
잠 자리에 들기 전 오늘을 되돌아보니 매 순간이 기적이었고, 나날이 천국의 삶 이란 생각이 든다.
나를 보라. 오늘 아침 버스타고 서산 여행했는데 가고 오는 길 차 안에서 노래하고(운구예절, 연도)
공짜로 점심도 맛있게 먹고, 돌아올 땐 빈 주머니에 배춧잎도 열 장이나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뿐인가?
얼은 괴기도 녹여놨고(냉담회두), 예비고기 도 잡혔으니 하느님의 어부노릇도 성공한 셈 아닌가!
주님 k 마리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첫댓글 참으로 놀라우시고 오묘하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불러가신 이주희후안디에고 친구의 어머니영혼을 맡기오니 이끌어주소서
남은 가족들이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수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버지,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딸 디에고와막달레나를 통하여 무한 찬미와영광 받으소서!!
아버지께서는 오늘 창고지기 두사람을 각자 파견하시어 저는 병원에서 호스피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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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어나시오.지하철 끊이기전에 움직이시오.수고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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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친구는 충남서산 장지로..
소금창고는 동네분 이웃이 온전히 지킴이와 장사를 하셨습니다.
모두 저녁7시쯤 모여 서로의 감사함을 나누며 헤어져 저는 집에서 휴식과 함께 편히 컴에 앉아있지만
친구디에고는 창고에서 아직도 하회장님께 보고일지 쓰니라 퇴근전 이네요.
내일을 위해 친구여
디에고님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 당신의품으로간 k마리아를 당신의뜻대로 이끌어주소서
디에고님의 사랑과 희생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매일 매일이 사랑이고 기적이라
오늘은 어떤 하늘나라 잔치가 벌어졌나싶어 들어오게 되네요. 제 마음까지 부자가 되고 기쁩니다.
아버지, 당신 종 후안디에고와 막달레나를 통하여 찬미영광 받으시고 돌아가신 마리아 자매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