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탈출기
조용휘
마흔 두해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친 후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요리를 배웠던 일이다. 남성 은퇴자를 위한 구청 시니어센터의‘쿠킹 마이 라이프’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요즘은 문화센터나 주민자치센터 등 여러 곳에서‘남성 요리교실’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불과 4년 전만 해도 남성 요리교실은 내가 참여한 구청과 두 서너 곳에서만 운영하였다. 그래서일까? 매스컴에서는 남성 요리교실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신문과 방송에서는‘요리하는 남자들... 그들은 왜 앞치마를 둘렀나?’란 제목으로 요리교실에서 실습하는 장면과 기사가 커다랗게 실렸다. 요리실습 중에 내가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TV 저녁뉴스에 실명으로 소개되는 바람에 신문과 방송에서 나를 보았다며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실제로 모 TV 방송국 작가로부터 방송 출연 섭외를 받기도 했다. 방송내용은 은퇴 후‘살림하는 남자’라며 꼭 출연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창피한 생각에 응하진 않았다.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탔다고나 할까.
요즘 유행어 중에는‘영식 님, 일식 씨, 이식 군, 삼식이 놈에, 심지어 하루에 세끼를 먹고도 간식까지 챙기는 종 간나 ××’등의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남편이 집에서 하루에 몇 끼를 먹느냐에 따른 아내들의 표현이란다. 내가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삼식이를 면하겠다는 생각도 한 몫 하였다.
요리교실 수업 첫날, 녹색치마를 두르고 머리엔 앞뒤가 길고, 위가 뾰족한 하얀 모자를 착용했다. 마치 내가 유명한 쉐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요리교실에 참여한 수강생은 베이버 부머 세대인 아직은 까만 머리의 50대 후반부터 머리가 허연 70대 중반의 남자들이었다. 수강생들은 조리사관 전문학교 교수의 이론과 조리방법 시범을 보고 들었다. 의문사항은 즉시 질문을 하고, 교수의 답변을 레시피에 메모하면서 수업에 열중했다. 이런 모습은 학구열에 불탔던 학창시절 같았다. 요리교실의 교육과정은 가정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을 조리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었다. 재료의 특성과 구입방법, 기본적인 조리기구 사용법, 채소다듬기, 고기류 썰기, 양념 만들기, 불조절하기, 조리된 음식을 보기 좋게 그릇에 담는 법과 식사 후의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 분리방법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 직접 조리를 해보니, 어느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고,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게 없었다. 간단한 음식 한 접시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동이 소요됨을 알았다.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때마다 어머니와 집사람이 정성들여 차려주는 음식을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타박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유년시절, 외할머니 병문안 차 어머니가 며칠 동안 외가에 갔을 때, 평생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툰 솜씨로 밥을 짓던 일이 떠오른다. 씻은 쌀을 가마솥에 안치고 쌀뜨물을 부어 솔가지 불로 밥을 짓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밥만 했다하면 맨 위쪽의 밥은 선 밥, 중간은 죽 밥, 맨 아래쪽은 시커멓게 탄 누룽지 밥으로 삼층밥이었다. 쌀뜨물 대중을 잘못한 것인지 불 세기조절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잠시 자취를 했을 때도 삼층밥을 자주 짓게 되어 부전자전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평생 라면밖에 끓일 줄 몰랐던 내가 요리교실 첫 시간에 만든‘버섯 들깨 탕’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아내와 딸에게 보냈다.‘와아! 맛있겠다. 우리 아빠 최고!’라고 딸이 카카오 톡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척이나 흐뭇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내친김에 주말엔 오년 전 시집 간 딸을 집으로 불러, 요리교실에서 배운‘버섯 들깨 탕’을 만들었다. 부엌 싱크대에 각종 음식재료와 양념이 담긴 그릇을 늘어놓고 서툰 칼질로 채소와 버섯을 손질하면서 한 시간이나 걸려 배운 솜씨를 발휘하였다. 그것도 요리교실에서 배운 레시피를 선반위에 매달아 놓고. 아내도 딸도 내가 만든‘버섯 들깨탕’이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쨌거나 6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실시하는 요리교실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요리교실이 끝나면 다음 요리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으로 보아 요리가 나의 적성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요리교실 수업 중 잊지 못할 일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수강생들과 샌드위치를 만들어 간단한 선물과 함께 동네의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 전달했던 일이었다. 거동도 불편한 어르신들이 두 손을 모아 감사함을 표할 땐 너무 약소하여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요리교실에서 배우고 익힌 솜씨로 만든 샌드위치 몇 조각이지만 독거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요리를 배우기 전에는 아내가 집을 비울 땐 언제나 밑반찬과 몇 끼 분의 국을 끓여 놓았다. 지난 해 11월에도 5박 6일 동안 아내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밑반찬 이외에 나를 위한 준비는 별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리를 배운 후부터는 며칠 동안 아내가 집을 비워도 걱정이 없다. 오히려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 해방감을 느낀다.‘계란 탁, 파 송송’으로 명명한 나만의 특별요리(?)인 계란탕을 마음껏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좋다. 다만 혼자 먹는 밥이라 왠지 처량한 느낌은 들지만.
요즘은 요리하기가 귀찮고 꾀가 나서 요리교실에서 배운 것을 실습하지 않는다고 아내의 질책을 종종 듣는다. 이번 주말엔 지난해 새 살림을 차린 아들 부부, 딸 내외와 손주가 온다니, 요리교실에서 배운‘닭볶음’메뉴로 요리 실력을 발휘해 볼 생각이다. 내가 만든‘닭볶음’을 맛있게 먹고 좋아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 정도면 삼식이는 면한 것일까? (2017. 제1회 KT&G 노년 문학상 수상작)
첫댓글 삼식이는 내 어절 수 없는 숙명
그래 하루 한끼만 밥을 해 먹고 나머지는 과일과 방으로 대웁니다
정말 하루 세 끼 밥 해먹기는 너무 힘들어요
홍선생님, 이국땅에서 식사준비에 얼마나 힘드실까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힘드시더라도 세끼 꼬박꼬박 챙겨 드셔야 합니다. 아내가 외손주 봐준다고 오랜 부재로 대충 식사했더니 영양부족과 과로로 지난 5,6월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해 고생을 했답니다.
좋아요! 멋진 요리가입니다. 다음번 7월 모임이 이쪽이잖아요? 저희에게도 실력한 번 보여주실 수도 있을까요?
메뉴는 한 두 가지로 정하시고, 야채와 고추 된장국기본 반찬은 있으니까요. 헤헤
~
문학상 수상한다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좋은일히고 우리 문학회의 영광입니다. 7월 모임 때 꽃다발 드릴게요.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회장님, 감사합니다. 귀찮아서 요리를 안했더니 다 잊어 버렸네요. 집사람에게 "요리 배우면 뭐하냐고" 타박도 많이 받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