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珍島(仙遊峰=外山) 312,5m. : 統營市 閑山面
비진도, 그리고 東波浪의 詛呪
2013. 10. 10. (산꾼들의 이야기)
코스 : 統營∼比珍島 內項∼比珍分校∼숲길散策路∼바다펜션∼砂洲∼外島 공원지킴터(左)∼1展望臺(望夫石)∼흔들바위∼2展望臺(美人도)∼仙遊峰∼노루여展望臺∼설핑이치(갈치바위)∼水浦마을.比珍庵∼공원지킴터∼砂洲∼外項마을∼팔손이나무自生地∼內項마을∼比珍分校∼內項船着場∼統營∼東波浪마을
지난 5/23 황매산에 갔다 온 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5개월 만에야 외지산행에 동참하게 된다.
필리핀 작명으로 ‘경험’을 뜻하는 불청객 ‘다나스’는, 거센 폭풍우와 파도를 몰고 와 지축을 흔들어 비진도 좌표를 비틀어 놓지는 않았을까, 브라자 이음매을 잘라 금실 좋은 비진도 내외간을 이간시키지는 않았을까, 슬핑이치의 갈치바위에는 몇 두름이나 되는 갈치를 걸어 놓았을까. 하도 궁금한 것이 많아 안 가볼 수 없는 비진도.
*‘명품’ 타고가다 가덕도 휴게소에서 잠시 머물고 6003
*통영항 선착장 도착 6011
*여객선은 세월의 물살을 가르며 비진도로 6014 6023
*40분 후 내항(內項)선착장 도착, 정면의 ‘비진 내항’ 건물 좌측으로 오를 것이다.
내항은 ‘안쪽 항구’를 뜻하는 內港이 아니라 ‘안쪽에 있는 길목’을 뜻한다. 외항도 같은 뜻. 6026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돌아올 때에는 우측에서 내려온다. 6028
*등로 쪽 비진분교 교문이 잠겨 있어 그대로 통과, 대동산 오름길은 보이지 않고. 좌측 벼랑이 보인다. 저기가 ‘비둘기강정’?6035 6036 .
‘강정’이라 이름 붙은 곳이 더러 있다. 해안 단애(斷崖=절벽)에 붙어 다른 바위와 연결되는 자리 즉 갈라진 틈을 말하는 이 지방 사투리다.
*조금 지나니 해안 벼랑 쪽으로의 갈림길흔적이 있었고 더 나아가니 밭이 나오고 두 섬을 잇는 사주(砂洲)와 바깥 섬이 보인다. 6040
*외항(外項)마을이 내려다보인다. 6042
*외항마을 빗돌에서 증명사진 남기고 6047
*사주(砂洲)를 걸으며 다대포와 몰운대 들머리의 옛 모습을 회상한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 한쪽은 모래밭 한쪽은 돌밭.
여기 모래톱(사주)을 자연 그대로 놔두었으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좌측=동쪽은 몽돌, 우측=서쪽은 모래) 6048
(일출 사진) 빌려온 그림 -비진도 일출-0000
(일몰 사진) 빌려온 그림 -비진도 일몰-0000
*사주에서 해초 손질하는 주민 모습 6050
*외항선착장 갈림길 지나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좌측으로 조금 가면 나오는 갈림길.
좌측으로 간다. 내려오는 길은 우측. 6055
*비진도 산호길(3구간) 아치문부터 본격적인 산길. 6057
*밭 울타리가 너무 고급스럽다. 등산객 때문? 6059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강인한 기질을 연상케 하는 대나무밭을 지나. 6060
*약초이면서 독초 천남성(天南星). 조선시대 사약의 주재료라 한다. 6062 6063
--약초이면서 독초로서 우리들의 정원이나 화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로, 협죽도(협竹桃)는 청산가리 6천배의 위력을 가져 독초 1순위이고 2순위가 아이비, 3순위가 디펜바키아라 한다.--
(협죽도) 0000
(아이비) 0000
(디펜바키아) 0000
-강변이나 해변에서 오르는 산은 ‘베이스 0’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고도가 낮더라도 대부분 가풀막지다. 여기도 마찬가지-.
*산호길 아치에서 25분 걸려 제1전망대(망부석) 도착. 전망대 앞에 시비(詩碑)가 있다.
(망부석) 6067
(산다는 것) 6068
‘----눈물 같은 서러움에 지쳐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부셔지지 않는 돌이 된 여인--’을 읊은 이 광섭의 망부석(望夫石) 시비(詩碑) 옆에,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렀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지는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라는 박 경리(朴 景利)의 글 ‘산다는 것’이 있다.
박 경리는, 본부인을 버리고 연상의 여인(=박 경리의 어머니)과 결혼하여 자기를 낳은 후 군데군데 연인을 두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 있는 망부석이 된 어머니의 피 맺힌 한을, 그리고 자기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이 ‘망부석’을 통해 승화시키고 싶지 않았을까.
*망부석전망대에서 망부석은 찾지 못했다. 6072
(빌려온 망부석) 0000
*전망대에서 안 섬을 본다. 대동산 언저리는 식생 밀도가 낮다. 전에 불이 났을지도 모른다. 조림하느라 입산을 통제하고 있는 모양. 6073
*가다보면 어딘가 망부석바위가 보이겠지 하며 올라갔으나 결국 보지 못했다. 제2전망대(미인도) 도착. 망부석을 미인이라고도 부르는지 모르지만 여기서도 망부석바위는 못 찾았다.
선인들이 비진도를 미인도라고도 불렀다는 고증(考證)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난 이렇게 추론한다. 우리나라를 노략질하던 왜구들이 여기 와서 ‘비진도’라는 말을 듣고, ‘비진’은 왜말로 미인(美人=びじん)이니 미인도(美人島)라 쓰고 비진도(びじんと)라 읽었을 것이고 우리는 또 그 美人島(비진도)를 미인도라 했을 거라고. 6078
*흔들바위 지나 6080
*나무계단으로 내려와 안부에 서다. 6084
*신선이 노닐던 이곳 선유봉에 나도 동참한다. 6087
*후미로 올라온 우리 몇 사람은 전망대 위층에 올라 식사하고 사방을 조망한다. 6094 6095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좀 부드럽다. 군데군데 ‘다나스’가 핥기고 간 자국이 있다. 6102
*폐부를 잘라내어도 굳건한 해송 6103
*노루여 전망대 도착. ‘노루여’라고 짐작되는 곳이 안 보인다. ‘노루여’가 보이는 전망대가 아니라 ‘노루여’ 가까이 있는 전망대라고 좋게 해석하자. 6105 6108
--‘여’는 사전적 의미로는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이쪽 지방에 ‘여’자가 붙은 이름이 많이 있는데 모두 물 위에 솟아 있다. 그러나 풍랑 또는 만조로 물속에 잠길 때도 있을 것이며 또 기후온화화가 가속화되어 빙하가 녹아내리면 수위가 높아져 결국 물에 잠길 거라 우리 선조들은 그걸 예견하고. 미리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다.
‘여’를 한자로 -돌 이름 여(礜)-자를 쓰기도 한다.
참고로 -바윗돌로 된 작은 섬-을 뜻하는 ‘염’이라는 순수 우리말이 있으나 ‘염’자가 붙은 이름은 여러 군데 수소문해 봐도 찾을 수가 없다. 큰 바위는 ‘섬’으로, 작은 바위는 ‘여’로 변신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중론인 거 같다.--
*내려오다 새 한 마리를 잡아넣었는데 무슨 샌지 모르겠다. 6126
*설핑이치 앞에서 본 노루여 쪽 해안. 해식(海蝕) 파식(波蝕)등으로 아름다운 곡선으로 다듬어진 바위벽. 6133
*설핑이치 또는 갈치바위라는 여기는 출입금지. ‘다나스’가 갖다놓은 갈치 가져갈까봐서-- 6137
*‘산 우뚝한 치(峙)자를 쓴 정령치(鄭嶺峙) 팔량치(八良峙) 오도치(悟道峙=오도령)등은 모두 영(嶺) 현(峴)등과 같이 고개 또는 재를 의미하는데--- 6140
*수포(水浦)마을이라 짐작되는 곳에 들어서니 이런 시설물이 있다. 용도가 무엇일까. 6146
*몇 채 안 되는 건물들은 비진암과 연관된 것 같다. 6147
*이런 이정표도 있고. 6149
*이 관들은 무슨 용도로 쓰일까. 지하수? 상수도? 하수도?
*식수가 있어 수포(水浦)마을이 형성되었으나 지금은 형해(形骸)만 남아 있다.
섬은 대체로 식수가 귀하다. 비진도는 더 한 모양이었다. 안섬의 내항마을과 바깥섬의 여기 수포마을 정도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주인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한다. 근래(2006년부터)에 해저관로를 이용한 광역상수도망이 구축되어 남강댐 물을 공급 받고 있다한다. 6150
*집들은 잠겨 있고 밭들은 묵어 있고 사람은 안 보인다. 찌그러진 지붕 위에는 수많은 세월이 쌓여 있다. 신도 없는 사찰의 운명은? 6152 6154
*‘산꾼들의 이야기’ 리본 따라 탐방로 길 돌아 나오니 시야가 트이고 안섬이 보인다. 6155 6158
*요런 거 보고 6159
*저기에도 무슨 이름이 있을 텐데----거미끝치? 6162
*비진도 산호길 3구간 아치로 나온다. 6165
--여기까지 오면서 ‘후박나무 자생지’와 ‘동백나무 군락지’는 뚜렷하게 여기다라고 확인 되는 곳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국립공원 사무실 들렸다가 사주 건너 안섬 도착. 외항마을 앞 바다에 떠 있는 춘복도와 범여를 보며 포장도로 순환길로 올라선다. 6177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된 ‘팔손이나무’자생지 북방한계선이 여기 비진도라 하는데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빌려 온 비진도 팔손이나무) 0000
*내항에 돌아오니 배 시간이 남았다. 우측(서쪽)으로 들어가면 문이 열려 있다는 석천님 말을 듣고 비진분교로 간다. ‘초교 다닐 아이가 한 명도 없어 작년에 폐교 됐다’라는 주민의 말. 서글픈 현상이다. 한 바퀴 둘러본다. 6187 6191
(엄마야! 저거 뭐꼬? 난 저거 없는데-----) 6199
(반공소년 이 승복) 6200
*외항 출발의 여객선을 내항에서 받아 타고 5시 50분경 통영 도착. 6206
*동쪽 벼랑을 뜻하는 ‘동피랑 마을’ 그림구경이 날 천길 나락으로 쳐 박는다. 6207 6203 6212
*동피랑에서 내려올 때 왜 길이 틀렸는지 지도를 찾아 점검한다.
차는 출입국관리사무소 통영출장소 근처에 주차하고 우리들은 도로 건너가서 동피랑으로 갔다. 나는 한 바퀴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건 아니였다. 중앙동 주민센터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들어갈 때의 길과 너무나 흡사했다. 중앙동 주민센터 쪽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며 좀 멀다 생각은 했는데---되돌아가 다시 짚어봐야 될 걸 이 어리석은 자 그대로 내려갔다. 바로 왔으면 시간은 충분했는데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시간에 내가 걸은 궤도는 ‘통영 역사관’이라 쓰인 큰 길에서 ‘중앙동 우체국’→‘우리은행’ →‘명정동 자치센터’→‘농협’ 여기서 길을 물어 ‘해양경찰서 통영파출소’→서호시장 앞→통영항 화물선부두→통영 해수랜드→문화마당→워점이다. 6216 6215
***여러 산우님께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서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인입니다. 청송교도소행? 아니면 자폭?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온갖 상념 속에 밀려드는 허무를 억눌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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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손이나무에 얽힌 슬픈 이야기.옛날 인도에 ‘바스바’라는 공주가 있었는데, 공주의 열일곱 생일날 어머니가 예쁜 쌍가락지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공주의 한 시녀가 공주방을 청소하다가 반지에 호기심이 생겨 양손의 엄지손가락에 각각 한 개씩 껴 보았다. 그러나 한번 끼워진 반지가 빠지지 않자 겁이 난 시녀는 그 반지 위에 다른 것을 끼워 감추었다.반지를 잃고 슬퍼하는 공주를 위해 왕이 궁궐의 모든 사람을 조사하자, 시녀는 왕 앞에서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 개의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때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그 시녀는 팔손이나무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빌려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