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편지라는 여행 칼럼을 쓰시는 백암님이 오셨다.
늘 나를 동기간 보다 더 살뜰이 보살펴 주시는 분이고 없는 오빠가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남편에게도 손아래 동서를 대하듯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을 해서 정말 친오빠가 있는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6년전부터 계절별로 영월을 내려 오셨다가 얼굴 보고 편하게 하루 지내고
올라 가시는데 이제 어지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다 가 보아서 이번에는 오시면
어디로 모시고 가나 고민을 좀 했다.
아무튼지 금강산은 식후경이니 맛있는 점심 지을 궁리를 먼저한다.
텃밭에 냉이며 꽃다지, 달래등이 올라와서 찬거리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언제 먹어도 좋다는 된장찌게를 빡작히 지지고
너무 나물만 많아서 어제 엄마에게서 얻어 온 달걀을 풀어서 밥 위에 쪘다.
지금은 그 가치가 떨어졌지만 옛날에는 최고의 손님접대에 쓰였던 반찬이다
백암님은 두 분의 손님과 같이 오시고 마침 가까이에 계시는 밀골님 내외분이 바람꽃 사진을 찍으러 와 계셔서
함께 점심을 나누었다.
아직도 멋지고 좋은데도 많지만 백암님이 오지마을을 좋아하시고
나도 늘 다니는 가재골 골짜기를 걸어 보고 싶어서 차를 길에 새워놓고
가재골 걷기를 오늘의 손님접대용 여행코스로 잡았다.
3일전에도 이랬던 가재골 꼬부랑 골짜기길은 이제 눈은 보이질 않았다.
가재골을 왼쪽으로 두고 굽이쳐 흘러가는 남한강의 강물이 녹색 봄빛을 품었다.
하얀색 깃털을 자랑하는 비오리 숫컷과 색이 잘 보이지 않는 갈색 암컷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총각 비오리 한 마리는 그런 한쌍을 부러운듯 시기하고 있었다.
마치 설악산의 어느 계곡을 방불케 한다고 백암님은 가재골 초입부터 감탄이 쏟아졌다.
등산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마을을 걷는 여행......
요즘 내가 새로 즐기는 여행의 한 종류이다.
차를 타고 휙 하고 지나 다니는 그저 평범한 길 어딘가에서 평범하지 않은 귀한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여행방법이다.
가재골을 접어 들어 왼쪽으로는 대야산성이 정상에 있는데 언제 심어 두었는지 모르겠는
현사시나무 군락지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은빛나뭇가지를 흔들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제 잎이 나고 현사시나무 잎이 바람에 팔랑이는 날 그들이 사는 가까이도 올라가 보아야지
나무피가 다이아몬드 모양이라 사진을 찍어 두기로 한다.
오랜세월 이곳에서 자리 하고 있었을 이름 붙여지지 않은 커다란 바위의 옷도 참 멋지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옷을 입고 있었을까~
깊은 계곡에는 맑은물이 소를 지나며 흐르로 있다.
그 옛날 옛날에는 선녀와 나뭇군의 전설이 여기에서 이루어 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흔한 돌과 물과 나무들이 있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조금 올라가니 풍부하고 깨끗한 물 수량과 함께 물칭게나물이 봄계곡을 이루고 있다.
지나며 보면 겨울에도 이렇게 초록이파리를 자랑하고 있다.
따뜻한 샘이 나오는 곳에 잘 자라는 이 나물은 물냉이와 사촌간인지 물냉이가 있는 곳에 함께있다.
아마도 성장조건이 같은 것 같다.
또한 물의 정화작용에도 한 몫 한다고 하니 가재골 물이 깨끗한 것이 이 친구덕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추측했던데로 좀 올라가니 물이 철철 흐르는 샘이 하나 나왔다.
보통 많은 수량이 아니어서 계곡에 그렇게 많은 수량을 유지하고 있었나 보다.
차를 타고 지나 다닐적에는 그것이 궁금했었다.
맑은 샘의 물을 한 그릇씩 떠 마셔본다.
시원하다~
그 샘이 있는 곳을 지나가니 개울의 수량은 많이 줄었다.
덕분에 개구리들이 여기저기 알을 많이 키우고 있었다.
햇볕이 비취니 꼬물거리는 모양들이 보인다.
머지않아 개울에는 올챙이 들이 넘쳐 나겠지.
역시 봄볕을 한껏 쬐고 있는 바위취들도 사는길을 지나간다.
6월이 되면 연미복 같은 흰색꽃을 피우는 모습도 만날 수가 있겠지~
가재골에는 아홉집이 산다고 하는데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울물이 다른 곳 보다 깨끗하고 맑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니 삼거리길에 괴불주머니가 한들거리며 길을 가르쳐준다.
이 친구도 머지 않아 노란주머니를 달고 하늘거릴 준비를 한다.
처음 괴불주머니를 알기전에 이 친구에게서 무슨 색의 꽃이 나올까 친구와 내기를 한적이 있었다.
나는 보라색꽃을 피울 것이라하고 친구는 하얀색꽃을 피울거라고 하면서
기다렸더니 엉뚱하게도 노란주머니 모양의 꽃을 피웠었다.
솔이끼가 있는 계곡으로 들어선다.
어떤 새가 껍질만 까 먹고 씨앗만 떨어뜨려 두었네~
이 친구는 올해 어느곳에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꿈을 물어 보았다.
<물론이지 난 지금 커다란 나무가 되는 꿈을 꾸고 있어~>
민박을 하는 한샘이네 집을 지나고 흑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을 지나간다.
사랑방 벽에 석유지름병이 걸려 있다.
꼭 어릴적 살던 우리집에 온 것 같다. 석유지름병을 보니 마치 시간이 멈춰 서 있는 것 같다.
석유지름병을 아는 이가 지금시대에 몇이나 될까.
우리집은 내가 결혼을 하고도 2년인가 지나서 전기불이 들어왔다.
호롱불을 켜서 기름을 사 와야했다.
유리로 된 한되짜리 석유지름병을 가지고 석유집에 가 한병 받아 가지고 십리길을 걸어 오노라면
늘 손이 시려웠던 하기 싫었던 일들~
그래서 나는 그 병의 이름도 사투리로 그냥 기억속에 가두어 둔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일찌감치 귀농한 솔이네 집이 보인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처음 집을 지을 때부터 보아와서 어쩐지 낯도 익고
마루에 걸터 앉아 쉬어 가고 싶은 집이기도 하다.
솔이네 개 <글쎄>가 낯선 사람들을 보고 야단이 아니다.
자주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니 짖을 일도 많지 않아서 이 김에 실컷 짖어 보려고 작정을 하였나 보다.
이 개의 이름이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솔이에게 물어 보니
처음 이 개가 강아지로 이 집에 왔을적에 솔이 동생 다운이가
<엄마 강아지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하고 물어 보니 엄마가
<글쎄.....>
하고 대답했는데 다운이가 글쎄로 이름을 지어 버렸다고.....
솔이네 집 앞 나무에 걸려 있는 녹슨 망우리가 정겨워서 카메라를 들여 대 보았다.
망우리 속에도 내 어릴적 꿈 같은 추억들이 들어있다.
모두들 좀 힘들어 해서 꼭대기까지 가려던 산책길을 은진교회 앞에서
턴 하기로 했다.
오랫만에 걸어서 모두들 좀 힘이 드는 것 같다.
목사님께서 계시면 차를 한잔 얻어 마시려 했더니 흰색차가 보이지 않아서
많이 섭섭했다.
교회에 들렸다가 돌아서 가려는데 사모님이 나오셨다.
목사님만 일을 보러 읍내에 나가시고 사모님은 집에 계셧나 보다.
고즈넉한 산골교회에서 얻어 마시는 차 한잔의 맛을 두고 못 잊겠다고 함께 오신
유선생님이 내려 오면서 흐믓해하며 이야기를 하셧다.
더군다나 이 깊은 산골에서 만난 조그만 교회는 뜻 밖의 만남이라 더 반가우셨나 보다.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교회
5년전엔가 이곳에 처음 왔을적에 한샘이 할아버지의 앨범에 있는 것을
찍어 두었던 교회아이들 사진이 마침 내 컴 안에 있어 함께 올려 본다.
이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떤 모양의 삶을 살고 있을까~
햇볕 맑은날 예배 드리고 있는 신발들이다.
저기 앞에 내신발 아들신발 그리고 남편의 신발이 있다.
우리세식구는 얼마전부터 이 신발장에 우리의 신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
차 한잔과 쌀강정을 얻어 먹고 내려 가는 길
솔이네 사랑방에 저녁 산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한다.
늘 첩첩의 먼산들을 바라 보며 사는 가재골 사람들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을 가졌을 것 같다.
동네 개들이 모두들 오랫만에 실컷 목청 높여 짖어 본다.
산그림자는 빠른 속도로 동쪽산을 기어 올라간다.
무언가 말은 안했으나 어릴적 추억을 한웅큼씩 얻어 가는 것 같다.
백암님은 이 별것 아닌 여행길이 너무 좋았노라고 감사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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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굽이진 길을 내려간다.
우리가 차를 세워 두었던 남한강가가 나타난다.
멀리 태화산 골골의 능선위로 저녁햇살이 너무도 고와서 내 가슴은 벅차고
하마터면 바쁜 일상에서 놓쳐 버릴 뻔한 봄 친구들의 모습을 마음껏 만나서 행복했다
가재골의 꿈 꾸는 버들강아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맙다 가재골 거기 그렇게 있어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