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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德光人
당에서는 국자학과 산학( 및 기타의 기술분야)은 자격상의 구별이 있으나, 신라·일본에서는 그 차이가 보이지 않음. | |||||
신라의 구분은 중국·일본의 제도로 미루어본 가설적인 것임. 삼국사기에는 네 과목이 구분 없이 나열되어 있음. | |||||
① 격자형(格子型) 분할과 그 단위, ② 단위의 정수·분수 전개(지면 분할과 탑과의 관계에서 20:10:5:3:1), ③ 분수와 등분할, ④ 정사각형과 정삼각형.
① 격자형 분할과 그 단위, ② 단위의 분수비례(지면 분할과 석탑과의 관계), ③ 분수와 등분할, ④ 정사각형과 정삼각형.
① 기본단위와 정수·분수, ② 등차급수적인 점차감소, ③ 정사각형과 대각선, ④ 정삼각형과 그 수선의 길이.
① 격자형 분할과 그 단위, ② 단위의 분수비례(지면 분할과 석탑과의 관계), ③ 분수와 등분할, ④ 정삼각형과 그 높이, ④ 정사각형과 대각선의 등분, ⑥ 원.
① 기본단위와 정수·분수, ② 등비급수적인 점차감소(1:2:4:8), ③ 정사각형과 대각선의 전개, ④ 정삼각형과 그 수선의 길이, ⑤ 정팔각형.
①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 ② 정삼각형과 수선의 길이, ③ 정팔각형과 내접원, ④ 비례중항({{#102}}:2:{{#101}}).
그러나 세종대에 완성을 본 이 십학의 교육제도는 다음 대인 세조의 집권이 시작되면서부터 벌써 무너지는 징조를 보였다.
최한기의 ≪습산진벌 習算津筏≫ 역시 ≪수리정온≫을 다분히 참조하면서도 내용은 홍대용의 ≪주학수용≫에 비하여 극히 고색이 짙고, 수학수준도 낮다.
≪정선수학 精選數學≫(1900)은 일본에서 엮어진 유럽계의 ≪신수학≫을 재편집한 것이며, 계산의 사칙부터 기하·삼각법·측량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산술신서 算術新書≫(1900)는 세로쓰기로 된 ≪산술신서≫에 비하면, 수식을 포함하여 모두 가로쓰기 형태로 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만큼 유럽형태에 접근하고 있다.
첫째, 겉으로는 유럽계의 수학을 수용하면서도 내용면에서는 여전히 종래의 수학관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정리의 증명 따위는 외면한 채 결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이상 조선 말기까지의 우리 나라 수학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성을 찾아볼 수 있다.
① 수요면에서의 성격으로 보아 우리나라 수학은 관영과학이었으며, 민간수학은 거의 싹트지 않았다.
② 수학자의 교양적 배경에 관해서는 다분히 유교적 사상의 지배를 받았으며, 수학을 경전시(經典視)하는 경향이 있었다.
③ 관영과학의 성격상, 전통적인 형이상적 수리사상(數理思想)이 공존하였다.
④ 수학이 중인 산학자들의 집단에 의해 거의 독점되었으며, 따라서 학문상의 자극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⑤ 수학의 사회적 효용이 유럽적 의미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라기보다 행정조직 속의 하부관료가 맡는 기술[雜學]이었다는 사실은 진지한 수학연구에의 의욕을 둔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