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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발간한 '광주의 분노' 소개 |
글쓴이 :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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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85년에 발간한 단행본 <광주의 분노> (증38) <광주의 분노>가 내린 5.18에 대한 정의: ‘광주봉기는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이었고, <광주민주국>을 세우는 데까지 성공했으며, 광주의 영웅들이 세운 위훈을 교훈으로 기려야 한다.’ “영웅적 광주인민들의 봉기는 바로 자주성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한 고리였다.”(증38, 3쪽 하3-4) “민주정권의 싹 <광주민주국>을 일떠세울 수 있게 하였다.”(증38, 4쪽 11-12줄) “비록 그들의 육신은 죽었어도 그들이 이룩한 영웅적인 위훈만은 민족사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되어 영원히 빛날 것이다.”(증38, 4쪽 17-19줄) 5.18은 반미자주통일을 위한 봉기였으며, 해방구(‘광주민주국’)까지 설치했을 만큼 성공적인 봉기였다는 뜻일 것입니다. <광주의 분노>에 실려 있는 계엄군에 대한 모략들:“세 녀학생을 알몸으로 만들어 놓은 놈들은 한참 히히닥거리더니 군화발로 녀학생들을 걷어차며 <빨리 꺼져 이념들아, 지금이 어느 때라고 지랄이야> . . 녀학생들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알몸이 된 것이 부그러워 앞가슴을 그려안고 길바닥에 주저앉었다. 그러나 우악스럽게 생긴 한놈이 <이 쌍년들이 살기가 싫은가봐>하고 지껄이며 녀학생들의 잔등에 차례차례로 총검을 내려 박았다. . .총검으로 엑스자를 북북 그어놓은 다음 쓰레기차에 싣고 사라졌다. . . 금남로2가에서는 체포한 청년의 손을 묶어 자동차 공무니에 달아매고 . . 시체들은 분간 못하게 각을 떼내거나 얼굴에 뼁키칠을 해놓았다.”(증38, 20쪽) 증38의 21쪽에서 31쪽까지에는 “격노한 80만”(주: 당시 광주시민이 80만)광주사태의 날짜별로 상황이 요약돼 있었으며 대체로 정확히 묘사돼 있습니다. 이 책은 1982년도에 발간된 증31(단행본)의 상황묘사와 흡사하며 1985년에 내놓은 황석영의 책 ‘광주5월 민중항쟁의 기록’내용과도 흡사합니다. 증38의 32-51에는 “<광주민주국>의 출현”부분에서는 우리 경찰, 군, 국정원, 검찰의 보고서보다 더 상세하여 과연 북한이 그 시기(1982,1985)에 이렇게 자세한 정보들을 어떻게 알았는가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안기부가 1985년에 작성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보고서 96-97쪽에는 사망한 33명의 학생들의 인적사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광주의 분노'가 눈물 나는 사례로 거명한 학생 이름 9명을 안기부자료와 대조해 보니 이름도, 나이도, 학교명도 모두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박상권(증38, 70쪽 3줄)은 동자료 71쪽 3줄에 광주숭의중학교 2학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안기부 자료 증8의 96쪽 14번에 박상권 나이 14 숭의중 2년 산수동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김완봉은 증38, 74쪽 중간에 광주무등중학교 3학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안기부 자료 증8의 96쪽 5번에 김완봉은 무등중 3학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증38의 76쪽 상반부에는 7명의 학생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최연(광주학운초등학교 1학년 7살)은 증8 97쪽의 32번 학생과 일치하고, 증38의 76쪽 상반부에 있는 전재수(호덕초등학교 4학년)는 증8의 97쪽 30번과 일치하고, 박광법(전남중악교 1학년)은 증8의 96쪽 16번과 일치하고, 증38 76쪽에 있는 김명숙(서광여중 3학년)은 증8의 96쪽 3번과 일치하고, 증38 76쪽의 박성용은 증8의 96쪽 13번과 일치하고, 증38의 76쪽 안동필은 증8의 96쪽 19번 안종필과 일치합니다. 북한자료 증38은 이들 학생들이 죽는 과정을 허위로 극화하여 계엄군을 모략하는 데 사용했지만 거리이름, 사람이름, 파출소 이름은 매우 정확하고 자세합니다. 북한이 어떻게 우리 정보기관들이나 군의 상황일지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그 시기에 가지고 있는지는 통상의 환경에서는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광주의 분노'(증38)의 36쪽에는 시민군이 탈취한 무기고의 이름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안기부 자료 및 검찰보고서와 비교를 해보니 복한자료가 훨씬 더 자세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기부 자료(증8 57쪽) 및 검찰자료(증9 101쪽)에는 '화순군'의 '동면지소' 등 4개지서의 무기고를 털었다고 되어 있는데, 북한자료에는 '전투경찰중대무기고' '동면지서' '통주지서' 향토예비군무기고'로 특정하고 있습니다. 라주군의 5개 경찰서에 대한 기록도 북한자료 증 38(36쪽 상단 3개줄)이 훨씬 더 정확한 것입니다. 무기고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상황들도 자세히 기록돼 있고, 시가지의 방향까지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괴뢰군 제179지원단의 무기고를 습격할 때의 일이었다. 폭동군중이 무기고를 향해 밀려들자 보초놈들은. .”(증38, 36쪽 하5-7줄) “상무동 부근에서였다. 중앙여자공등학교 학생이 공정대의 총검에 찔리워 . . ”(증38, 22쪽 6-7줄) “무등운동장 부근에 있는 버스 정류소에서도 격노한 주민들이 공정대를 향하여 사생결단으로 달려들었다 . .”(증38, 23쪽 10-11줄) “북쪽의 신전동으로부터 남쪽의 학동에 이르기까지, 동쪽의 우산동으로부터 서쪽의 상무동까지 시민들은 큰 길가와 골목들에서 놈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렸다. . ”(증38, 23쪽 하2-4줄) “5월 19일 시내 중심부인 금남로1가에서부터 류동까지의 거리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이곳에서는 공정대 31련대놈들과 폭동군중이 맞붙어 . .”(증38, 24쪽 6-8줄) “금남로에서 있은 일이다. 수천명의 군중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달려드는 한 개 중대 가량의 공정대놈들을 . .”(증38, 24쪽, 13-15줄) “싸움은 <계엄군통신지휘소>가 있는 <카톨릭센터>에서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공정대의 만행에 격노한 시민들은 카톨릭센터 차고에서 끌어온 4대의 승용차에 불을 달아 놈들의 저지선 안으로 몰아넣었다.” (증38, 25쪽 15-19줄) 카톨릭센터에 계엄군 통신지휘소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북한이 알고 있는 것인지, 북한의 개입이 없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됩니다. “동아일보 광주지국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옳은 보도를 하지 않은 문화방송국과 방송공사를 불태워버렸고 기독교방송국도 점거하였다. . . 이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증38, 26쪽 하3-9줄) 평양에 앉아서 비가내리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금남로 남쪽에 자리 잡은 관광호텔 앞에서였다. 100여명의 공정대 놈들이 . .”(증38, 37/쪽 하1-2줄) 관광호텔이 금남로 남쪽에 있다는 것, 거기에 100여명의 공정대원이 있었다는 세세한 사정을 어찌 평양에 앉아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카톨릭센터 앞에서는 200여대의 택시와 20여대의 버스, 3대의 화물자동차가 폭동군중에게 돌을 날라주었다. 그런가 하면 15대의 버스와 50대의 각종 자동차들이 야밤에 일시에 조명등을 켜서 놈들의 앞을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봉기 군중을 진전시켰다.”(증38, 28쪽 하3줄-29쪽 3줄) 이런 자료는 계엄사 일지와 비슷하지만 계엄사 일지도 이렇게까지는 자세하지 않습니다. “이날(주:5.19) 폭동군중은 도청차고와 괴뢰세무서, 8개의 괴뢰경찰파출소, 3개의 신문사와 방송국, 우체국, 은행 등을 불태워버렸고, 놈들의 자동차 50여대를 파괴 소각하여 버렸다.”(증38, 29쪽 8-11줄) “이 싸움의 선두에는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광주교육대학, 조선대학교병설공업전문대학, 동신대학, 서강대학, 성인대학, 송원대학, 전남대학교간호전문대학 등의 10여개 대학 학생들이 섰다.”(증38. 29쪽 19-22줄)
위와 같이 북한에서 발간된 단행본 <광주의 분노>는 비록 100여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지만 광주의 상항들에 대해, 우리 계엄군 자료나 안기부 자료(증8) 및 검찰자료(증9)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돼 있으며, 계엄군을 모략한 것 말고는 대체로 우리 측 상황자료들과 대동소이합니다. 우리 측 자료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비로소 공개되었는데 북한이 어떻게 10년이나 앞선 1985년에 ‘한국이 비밀로 보관했던 자료’보다 더 자세하게 마치 눈으로 본 듯이 묘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깊습니다. 북한 측이 광주 현지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수집 정리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놀라운 자료는 아래에 정리할 단행본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입니다. 2010.3.3. 지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