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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선의 과거(科擧)와 입신(立身)
조선시대에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제도로
과거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대표적인 과거시험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루는 식년시이다.
․ 뽑는 숫자가 정해져 있다.
문과는 33명, 무과 28명, 잡과 46명
(역과 19명, 의과 9명, 음양과 9명, 을과 9명)이다.
․ 문과는 대과와 소과로 나눈다.
소과에 합격해야 대과를 볼 자격이 생기고,
대과에 합격해야 관리가 될 자격이 있다.
문과 소과 합격자는 생원 진사라 불렀다.
무과(武科)도 문과처럼 대, 소과로 나뉘었다.
무과 소과 합격자를 선달이라 불렀다.
소과 합격자 → 흰 종이에 이름과 성적을 쓴 합격증서 로→ 백패
대과 합격자 → 붉은 종이에 이름과 성적을 쓴 합격증서로
홍패라 하였다.
․ 과거시험에 합격해야 관리가 되고 성적순서에 따라
관직을 받았다.
문과 1등급의 장원 급제자는 6품 관직을 주었다.
나머지는 성적순서에 따라 9품의 벼슬을 주었다.
․ 관직의 품계는 1품(品)에서 9품까지 9단계로 나누어졌다.
각 품(品)은 다시 정(正)과 종(從)으로 나누었다.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
․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품계를 무시하며
승진 할 수 없었다.
왕이라 하여도 마음에 드는 자를 품계를 뛰어 넘어
승진시킬 수 없어 빨리 승진시키는 방법을 썼다.
왜적의 침입이 잦자 전라좌수영의 방어가 너무 허술하여
선조는 정읍 현감(종5품)으로 있던 이순신을
진도 군수로 발령 내었다.
다시 가리포 첨절제사에서
전라좌수사로 발령 내었다.
부임도 하기 전에 3번이나 승진 시켰다.
대간(사헌부사간원)에서 승진을 빨리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들고 일어났다.
이순신의 사람됨을 익히 들어온 선조는
대간들의 청을 묵살하였다.
그 후 충무공은 왜란 때 구국의 명장이 되었다.
․ 문음(門蔭)과 천거(薦擧)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관리가 되는 길이다.
문음 또는 음사라 하여
고려에서는 종5품 이상 자녀에 해당.
조선은 3품 이상의 관리의 자녀, 이외에
공신과 명신, 유현과 전망자와 청백리 자손에 해당되었다.
음사라해서 더 높은 벼슬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 급제자와 같은 직급을 주었다.
음사자의 승진 절차가 까다로워 음사를 포기하고
과거시험에 도전하는 자가 많았다.
․ 천거는 사림(士林)에서 학문과 덕을 갖춘
숨은 인재를 지방관리가 추천하여 관직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전국에서 한두 명을 뽑아 말직인
9품 참봉 직급의 벼슬을 부여하였다.
․
교지: 4품 이상의 사령장
첩지: 5품 이상의 사령장 제수:
임금이 직접 임명
․ 추증(追贈): 명예직으로 사망 후에 주는 벼슬제도
2품의 관직을 거친 자는 조상 3대를 추증 하였다.
▷과거의 종류
․ 문과(文科): 문관을 뽑던 시험, 대과(大科), 현 사법고시와 같음
․ 사마(司馬): 조선조에 새로 소과에 합격한 진사 생원의 이름
별칭: 사마감시(국자감시)
․ 무과(武科): 고려조부터 무관을 뽑던 과거, 보통 3년에 한번
․ 정시(庭試): 나라에 경사가 있을시 대궐 안마당에서 보던 과거
3대 태조 원년(1401) 처음 실시. 임금의 즉위를 축하하는 의미로 하였으나
선조 때부터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
․ 별시(別時): 세종 원년에 처음 실시. 나라에 경사가 있을 시 특별히 보던 과거
․ 식년(式年): 정유(丁酉), 병오(丙午), 계유(癸酉)년 등에 보던 과거,
삼년마다 돌아옴․ 정시, 중시 등이 있음.
▷과거의 특권
․ 중앙에서 시행하였으며 생진과 합격하면 생원 진사로 우대
․ 각도 감영에서 시행하였으며 향시의 합격자를 초시라 호칭하였음.
․ 살인죄 외에는 체포 구금되지 않음.
․ 급제한 사람이 살고 있는 부락 앞에는
소도 나무를 세워 급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림.
일반인은 경의를 표하고 말을 타고 가던 사람도 말에서 내렸다.
과거에 급제하면 치외 법권적인 특권 계급에 속함.
․ 과거에 급제하면 조상의 도움이라 하여
조상의 분묘를 찾아 봉고제를 올리고 이를 소분이라 함.
집안이 어려워 돈이 없으면 친척이 주선하여 봉고제를 지낸다.
▷부조묘고(不兆廟考):불천위라고도 한다. 13분
․ 덕망이 높고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영원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허가한 신위(神位)
․ 일반인은 고조까지 4대 봉사가 끝나면 조묘제를 지낸다.
․ 세월이 흘러 변태적으로 운영되었다.
․ 도에서 인정하면 도천, 서원에서 인정하면 원천,
문중에서 결정하면 문천 또는 사조라 한다.
도천이든 원천이든 문천이든 이는 각 가문의 영광이며 권위다.
세수와 휘 | 왕조 | 시호 또는 군호 | 그때의 벼슬 | 세일사 | 유사P |
21세 김백겸(伯謙) 21세 김극성(克成) 22세 김국광(國光) 22세 김겸광(謙光) | 세조 중종 성종 성종 | 광원군(光原君)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공안공(恭安公) | 부총관 우의정 좌의정 좌참찬 | 1월 25일 4월 4일 11월 10일 7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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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와 휘 | 왕조 | 시호 또는 군호 | 그때의 벼슬 | 세일사 | 유사P |
25세 김인경(仁慶) 27세 김장생(長生) 28세 김 집(集) 29세 김익겸(益謙) 30세 김만기(萬基) 30세 김만중(萬重) 31세 김진상(鎭商) 32세 김춘택(春澤) 32세 김운택(雲澤) | 중종 선조 인조 인조 현종 숙종 숙종 숙종 숙종 | 광천위(光川尉) 문원공(文元公) 문경공(文敬公)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문효공(文孝公)
충문공(忠文公) 충정공(忠貞公) | 부 마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양관대제학 양관대제학 좌참찬 대호군 형조참판 | 12월 3일 8월 2일 5월 12일 1월 21일 3월 14일 4월 29일 6월 22일 4월 22일 12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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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諡考): 시호를 말한다. 59명
․ 왕실의 종친, 문‧무관 중에 정2품 이상 실직에 있던 사람에게 주었다.
․ 범위가 확대되어 재학. 유신․절신 등 정이품이 아니라도 시호를 주었다.
․ 임금의 특별한 교시가 있을 때 자손의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않고
홍문관과 봉상시에서 결의하여 퇴계선생에게「문순」이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
시호의 절차 :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 이의 행장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에 제출,
심의를 받아 봉상시(제사와 회의와 시호를 관장)를 거쳐 홍문관에서 정함.
․ 근거법 : 중국의「주공시법(朱公諡法)」「춘추시법(春秋諡法)」을 적용
․
시호를 받는 것은 명예로운 표창으로 여겨 족보와 묘갈문에 기입.
․ 문(文) 충(忠) 정(貞)등 120여자를 사용하고 시호아래 공(公)자를 붙인다.
․ 정이품이 아니면서도 시호를 받은 석학
김굉필(문경공) 정여창(문헌공) 서경덕(문강공) 조광조(문정공) 김장생(문원공
세수 | 휘 | 왕 조 | 시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5세 7세 8세 8세 14세 14세 15세 15세 15세 16세 16세 16세 19세 20세 21세 21세 21세 22세 22세 23세 23세 23세 24세 24세 26세 27세 27세 28세 28세 29세 29세 29세 30세 30세 31세 | 김 책( 策) 김양감(良鑑) 김약온(若溫) 김의원(義元) 김 연 (璉) 김주정(周鼎) 김사원(士元) 김태현(台鉉) 김 심 (深) 김광철(光轍) 김 진(稹) 김광재(光載) 김약시(若時) 김 청(廳) 김예몽(禮蒙) 김백겸(伯謙) 김극성(克成) 김겸광(謙光) 김 면(沔) 김여석(礪石) 김극픽(克煏) 김부필(富弼) 김 구(絿) 김 영(坽) 김만수(萬壽) 김장생(長生) 김우형(宇亨) 김득남(得男) 김 집(集) 김익희(益熙) 김익겸(益謙) 김익훈(益勳) 김만기(萬基) 김만중(萬重) 김덕령(德齡) | 고려 광종 고려 선종 고려 인종 고려 인종 고려 충렬왕 고려 충렬왕 고려 충숙왕 고려 충숙왕 고려 충선왕 고려 충정왕 고려 충혜왕 고려 충정왕 고려 우왕 조선 세종 조선 세조 조선 성종 조선 중종 조선 성종 조선 세조 조선 세조 조선 중종 조선 명종 조선 중종 조선 광해군 조선 선조 조선 선조 조선 효종 조선 인조 조선 효종 조선 효종 조선 인조 조선 숙종 조선 현종 조선 숙종 조선 선조 | 문정공(文貞公) 문안공(文安公) 사정공(思靖公) 충정공(忠貞公) 양간공(良簡公) 문숙공(文肅公) 정경공(貞景公) 문정공(文正公) 충숙공(忠肅公) 문민공(文敏公) 장영공(章榮公) 문간공(文簡公) 충정공(忠定公) 희정공(僖靖公) 문경공(文敬公) 양호공(襄胡公) 충정공(忠貞公) 공안공(恭安公) 장도공(莊悼公) 충목공(忠穆公) 평정공(平靖公) 문순공(文純公) 문의공(文懿公) 문정공(文貞公) 장양공(莊襄公) 문원공(文元公) 정혜공(貞惠公) 충의공(忠毅公) 문경공(文敬公) 문정공(文貞公) 충정공(忠正公) 충헌공(忠獻公) 문충공(文忠公) 문효공(文孝公) 충장공(忠壯公) | 좌복야, 평장사 수태보, 문하시중 수사공, 문하시중 삼사사, 호부상서 첨의시랑, 찬성사 지도첨의부사 첨의시랑, 찬성사 문하시중, 대제학 도첨의, 중찬 판밀직부사 정당문학, 대제학 전리판서, 대제학 직제학 지중추부사 예조판서 평안병사 우의정 좌참찬 경원부사, 병사 형조판서 좌찬성 유학자 부제학 승정원주서 부사 유종 공조판서 군수 유종 이조판서 순절 형조참판 영돈녕 예조판서 의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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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 세수와 휘 | 왕 조 | 시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31세 31세 32세 32세 32세 32세 32세 33세 33세 33세 34세 34세 34세 34세 35세 35세 36세 36세 36세 37세 37세 | 김진구(鎭龜) 김진규(鎭圭) 김춘택(春澤) 김보택(普澤) 김운택(雲澤) 김원택(元澤) 김양택(陽澤) 김상복(相福) 김상악(相岳) 김상휴(相休) 김 희(憙) 김기성(箕性) 김기은(箕殷) 김기석(箕錫) 김재창(在昌) 김재현(在顯) 김상현(尙鉉) 김낙현(洛鉉) 김보현(輔鉉) 김영수(永壽) 김영목(永穆) | 조선 숙종 조선 숙종 조선 숙종 조선 숙종 조선 숙종 조선 영조 조선 영조 조선 영조 조선 정조 조선 순조 조선 영조 조선 정조 조선 정조 조선 고종 조선 순조 조선 철종 조선 고종 조선 고종 조선 고종 조선 고종 조선 고종 | 경헌공(景獻公) 문청공(文淸公) 충문공(忠文公) 익헌공(翼獻公) 충정공(忠貞公) 효정공(孝靖公) 문간공(文簡公) 문헌공(文憲公) 문간공(文簡公) 문간공(文簡公) 효간공(文簡公) 효헌공(孝憲公) 청헌공(淸獻公) 정무공(貞武公) 정간공(貞簡公) 효문공(孝文公) 문헌공(文獻公) 문경공(文敬公) 문충공(文忠公) 문헌공(文獻公) 문헌공(文憲公) | 호조판서 예조판서 대호군 전라감사 호조참판 한성판윤 영의정 영의정 동지중추 이조판서 우의정 호조참판 이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이조판서 이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이조판서 이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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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방고(科榜考): 문과 급제자. 265명, 무과급제 276명.
․ 광산김씨는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265명(장원급제자:12명), 무과 276명,
생원 350명, 진사 402명을
배출함으로 명문대가를 이루었다.
문과급제자: 전주 이씨(873) 안동 권씨(359) 남양 홍씨(329)
파평 윤씨(323) 안동 김씨(315) 청주 한씨(287)
광산 김씨(265) 밀양 박씨(261) 연안 이씨(250)
▷종묘배향제위: 왕의 위패와 함께 모심. 3명
․ 조선조 공이 많은 신하의 위패를 왕의 위패와 함께 묘정에 배향
․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와
왕의 집권 시 국가에 공이 많은 91명의 신하 위패를 왕의 묘전에 모심.
신독재 김 집은 종묘 배향과 문묘에 배향이 되었다.
조선조 양묘에 배향자는 6명뿐이며 최고의 명예로 국반이라 칭한다.
국반(나라가 인정한 조선 제일의 명문가 )
세수와 휘 | 호 | 시 호 | 배향된 곳 | 유사 P |
28세 김 집(集)
30세 김만기(萬基)
30세 김만중(萬重) | 신독재(愼獨齋)
서 석(瑞石)
서 포(西浦) | 문경공(文敬公)
문충공(文忠公)
문효공(文孝公) | 효종실(孝宗室)
현종실(顯宗室)
숙종실(肅宗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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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배향자(文廟配享者): 2명
․ 신라 고려, 조선 왕조의 뛰어난 학자를 선발하여
동국 18명현이라 칭하며 성균관 사당(문묘)에 모심.
․ 18명의 명현 중 두 분을 배출한 집안은
광산김씨, 은진 송씨(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이다.
광산 김씨는 부자분으로 유일 한 가문이다.
은진 송씨 두 분은 광산 김씨 부자분의 학통의 영향을 받은 제자이다.
․ 숙종 때 문묘배향(사계 장생) 고종 때 문묘배향(신독재 집)
․ 왕실사당은 종묘, 성균관 사당은 문묘라 한다.
․ 서원과 향교에서는 사당이라 부른다.
․
성균관 문묘 배향자수: 133位, 5성(聖: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10철(十哲: 공자의 수제자), 송의 6현(六賢), 중국 7대 재현 94위,
우리나라 동국 18명현.
․ 주(州)‧부(府)‧군(郡) 향교: 39位(5성. 10철. 송조6명현. 동국18명현)
현(縣)의 향교: 27位(5성. 송조4명현. 동국18명현)
▷인경왕후(숙종의 비):
서포 문효공(만중)의 형님이요, 양관 대제학을 지낸
문충공(만기)의 따님으로 일찍 병사하셨으므로 왕손을 낳지 못했다.
․ 15세: 충숙공 심의 따님이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의 왕후가 된 기록이 있다.
․ 21세: 광산군 한노의 따님이 태종의 세자였던 양녕대군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자리를 양위함으로 애석하게도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왕비를 제일 많이 배출한 가문:
청주 한씨 5명, 파평 윤씨 4명, 영흥 민씨 4명, 안동 김씨 3명, 청송 심씨 3명
▷상신록(相臣錄):
정일품으로 의정부 최고 관직 (삼공: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 좌의정은 이조, 호조, 병조를, 우의정은 예조, 공조, 형조를 관장하였다.
․ 우의정의 자리가 비었다면 왕은 영의정과 좌의정을 불러 후보자 물색을 명한다.
두 정승은 통상 3명을 추천하여 왕에게 올린다.
․
후보자 선발 기준
1. 정1품 이상이어야 하고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1품이 아니면 후보자격이 없다.
2. 이조와 병조판서를 거친 사람이어야 한다.
이조와 병조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관청으로
양조의 일을 모르고 업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학문에 능통하고 평소에 왕의 호감을 얻고
일처리에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4. 동료와 상하 모든 사람에게 평판이 좋고 신의가 있는 사람으로서
후보자가 결정되면 왕은 마음에 드는 후보자 옆에 점을 찍는다.
이를 낙점이라 한다.
후보자 3사람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왕은 재추천을 명한다.
왕은 몇 번이고 재추천을 명할 수 있다.
․ 국가 최고의 결의권자로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을 총괄 한다.
세수와 휘 | 왕 조 |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22세 김국광(國光)
21세 김극성(克成)
32세 김양택(陽澤)
33세 김상복(相福)
34세 김 희(憙) | 조선 성종
조선 중종
조선 영조
조선 영복
조선 정조 | 서석(瑞石)
청라(靑蘿)
건암(健菴)
직하(稷下)
근와(芹窩) |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영의정
우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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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을 배출한 가문은 102본이고 6명 이상을 배출한 가문은 24본이다.
3대 영상을 배출한 가문:
달성 서씨, 청송 심씨, 청풍 김씨는 3대 영상 부자영상을 배출했다.
만기․만중의 외가의 외증조, 외고조부가 2대 영상이다.
▷문형록(文衡錄)
:대제학을 문형이라 한다. 학문에 대한 모든 일을 관장한다.
․ 문형은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에 성균관 대사성이나 지사를 겸직.
삼관의 최고 책임자로「관‧학계」를 공식으로 대표한다.
․
정이품의 관직이지만 학문과 도덕이 뛰어나고
가문에 하자가 없는 석학‧석유만이 오를 수 있는 지위.
․ 학자와 인격자로 최고의 관직이며 삼공육경보다 윗길의 명예로 쳐주었으며
본인은 물론 가문과 일족의 영광으로 알았다.
․ 후보선정은 전임 대제학이 천거하여 삼정승, 좌‧우참찬, 좌‧우찬성, 육조판서,
한성판윤 등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하나 전임자가 추천한대로 거의 결정 됨.
․ 본인 사임 시까지 종신직이다.
세수와 휘 | 왕 조 |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29세 김익희(益熙) | 조선 효종 | 창주(滄洲) | 이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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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김만기(萬基) | 조선 현종 | 서석(瑞石) | 영돈녕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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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김만중(萬重) | 조선 숙종 | 서포(西浦) | 예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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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김진규(鎭圭) | 조선 숙종 | 죽천(竹泉) | 예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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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 김양택(陽澤) | 조선 영조 | 건암(健菴) | 영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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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김상현(尙鉉) | 조선 고종 | 경대(經臺) | 이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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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김영수(永壽) | 조선 고종 | 하정(荷亭) | 이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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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김은 3대 대제학과 형제 대제학과 부자 대제학을
배출한 유일한 가문이다.
대제학은 철저히 검증된 대과 급제자에 한해서 정치적 경륜울 갖추고,
학문은 당대 최고의 성리학으로 공인된 인물만이 임명한다.
문형 또는 대제학이라 부르는 양관 대제학(홍문관 예문관)을 7명을 배출했으나
1478년 홍문관 설치이전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김한노를 포함하면 8명이다.
아계 김일경도 대제학을 지냈으나 이를 포함하면 9명이나,
확실치 않음으로 제외한다. (300대 본관성씨. 광산김씨 -namu.wiki에서)
연안이씨는 7명으로 3대 부자 대제학, 형제 대제학이있다.
전주이씨는 7명이다.
대제학은 61가문에 합이 133명을 배출,
평균 2명꼴로 2명 이상 배출한 가문은 29본이다.
▷공신록(功臣錄):
왕도의 창업, 신왕 즉위, 전란평정등 왕실과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
․ 조선조에 28종의 공신이 있었다.
․ 왕과 회맹(會盟)함으로서 국가 최고의 특권을 누려
관작과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고
자손은 과거를 보지 않고도 벼슬(음직)에 올랐다.
․
이조 중기의 공신의 남발로 폐단이 많았다.
국광(세조13년 이시애 난 이등공신, 성종 즉위 일등공신)
겸광(성종 즉위 3등 공신) 극성(중종반정 사등공신)
세준(중종 정난 삼등공신) 광준(명종 즉위 이등공신)
만기(경신 대척출 일등공신)
▷절신록(節臣錄):
고려 말과 조선 개국 사이에 불사이군 정신으로 새 왕조를 거부하고 절개와 지조를 지킨 분
19세 | 약시(若時) | 음촌 | 직제학 | 충림공 | 두문동72현 |
19세 | 약항(若恒) | 척약제 | 집의 | 문온공 | 중국 운남 귀양 |
19세 | 승길(承吉) |
| 현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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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 자진(子進) | 수산 | 사평 | 수산공 | 나주 |
▷호당록(湖當錄):
독서당의 별칭이며 사가독서(私家讀書)라고도 한다(한강 두 모포 에 두었다.).
․ 세종 때 유능한 학자를 우대하기 위하여
월급은 주되 직무는 수행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게 하는 제도
․ 호당을 거치면 출셋길이 보장되고 족보에도 수록된다.
․ 대제학의 추천으로 왕명에 의하여 들어감
세수와 휘 | 왕 조 |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24세 김 구(絿) 24세 김질충(質忠) 26세 김계휘(繼輝) | 조선 중종 조선 명종 조선 명종 | 자암(自菴)
황강(黃岡) | 부제학 정랑, 지제교 대사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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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淸白吏):
청렴결백한 선비를 선발해 후세에 거울을 삼기 위한 관기숙정 제도이다.
․ 청백리에 녹선 되면
자손들은 부모의 음덕으로 과거를 보지 않고 벼슬길에 나가는 특권이 주어짐
․ 후보선정은 의정부, 육조, 한성부 이품이상 관원,
대사헌, 대사관이 후보를 심사하여 왕의 재가를 받음.
세수와 휘 | 왕 조 |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19세 김약항(若恒) 22세 김겸광(謙光) 25세 김 개(鎧) 27세 김장생(長生) | 조선 태종 조선 성종 조선 명종 조선 선조 | 척약재(惕若齋) 서 정(西亭) 독송정(獨松亭) 사 계(沙溪) | 대사성 우참찬 형조판서, 호조판서 형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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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록(將臣錄):
국란을 당했을 때 어전에서 부월(斧鉞)을 받고 출두하는 장수
무과급제자 267명, 생원 350명, 진사 450명, 계 1028명을 배출했다
세수와 휘 | 왕 조 | 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29세 김익훈(益勳) 30세 김만기(萬基) 31세 김진구(鎭龜) 34세 김기석(箕錫) | 숙종 숙종 숙종 고종 | 광남군 광성부원군 광은군 정무공 | 어영대장 훈련대장 훈련대장 어영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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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관(經筵官):
․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고 토론하는 벼슬
․ 왕은 일과 중에 3번을 공부하였다.
왕의 하루 일과는
일반인 생각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자리는 아닌 듯싶다.
하루의 일과를 살펴보면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왕대비의 아침 문안 인사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 경연이라 하여 신하들과 학문을 논하고,
정치를 토론하는 경연이 끝나야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아침식사 후 조회를 열고, 조회가 끝나면
신하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들으면 12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
주강이라 하여 점심식사 후에
낮 경연도 아침 경연처럼 신하들과 공부하고 토론한다.
낮 경연이 끝나면 지방수령으로 임명을 받아 떠나는 신하와
외직에서 올라온 신하를 만나야 한다.
하루 일과 중 왕으로서
가장 중요한 업무가 인시와 묘시(오후 3~5시)사이에 있다.
그날 밤 왕궁을 호위 맡은 군사들과, 암호를 정하는 일과,
숙직하는 신하들의 명단을 만들고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새로운 암호를 정하는 것은
왕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생략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석강이라 하여 저녁식사 전에 하는 저녁 공부도,
아침 경연이나 주강처럼 진행된다.
석강이 끝나야 저녁식사를 할 수 있고,
밀린 일이 있으면 끝을 내어야 쉴 수 있었다.
저녁 취전에 다시 웃어른에게 저녁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계몽사)
세수와 휘 | 왕 조 | 호 또는 시호 | 그때의 벼슬 | 유사 P |
21세 김예몽(禮蒙) 23세 김여석(礪石) 23세 김극픽(克煏) 23세 김철문(綴文) 23세 김내문(乃文) 24세 김 구(絿) 25세 김 개(鎧) 27세 김장생(長生) 28세 김 집(集) 27세 김우형(宇亨) 30세 김만중(萬重) 34세 김정묵(正黙) 36세 김낙현(洛鉉) | 세조 세조 중종 중종 중종 중종 명종 인조 인조 효종 숙종 정조 고종 | 충목공(충목공) 문경공(충목공) 평정공(平靖公)
문의공(文懿公)
문원공(文元公) 문경공(文敬公) 정혜공(貞惠公) 문효공(文孝公) 과재(過齋) 문경공(文敬公) | 집현전부제학 예문관검열 좌찬성 홍문관부응교 사헌부장령 홍문관직제학 돈영부사 사헌부집의 사헌부대사헌 홍문관교리 예조판서 사헌부지평 사헌부대사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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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耆社)는 기로소(耆老所)의 별칭이다.
․ 태조 때부터 노신하를 예우하기 위한 제도
․ 기사에 들려면 정이품 이상 실직을 지낸 사람으로 나이는 70세 이상
․ 왕도 늙으면 참가하여, 신하와 왕이 동참하는 것이라 하여
관청의 서열이 으뜸이었다.
․ 매년 삼월 삼짇날, 구월 중양절에 잔치를 베풀었다.
․ 사천 목씨의 담, 서흠, 래선 3대가 입사하여 이방면에 기록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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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김에서는 두 분이 들어갔다.
27세 우형(양간공, 직제) 공조판서를 거쳐 1685년 숙종 때 입사
37세 영전(양간공, 의정) 자헌에 올라 종묘 제조를 지내고 고종 때 입사
※봉조하(奉朝賀)
치사(致仕: 정 3품 이상 70세가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 차시한 분들에게
종신토록 알맞은 녹봉을 주고 국가 의식에 조복을 입고 참여케 하였다.
36세 상현, 문헌공, 대제학, 고종 때 봉조하(NO.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