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4.日. 맑음과 몇 방울의 소나기
<틈새 이야기> 빅마트의 손님들.
“여보, 식료품도 사야하고, 휴지도 떨어졌는데 빅 마트에 함께 좀 다녀와요.”
“그럽시다. 그런데 시간이 꽤 된 것 같은데, 어라 벌써 자정이 지났나본대.”
“일요일 밤은 차라리 아주 늦은 이 시간이 한가해서 좋아요. 언젠가 일요일에 식료품 사가지고 와서 반찬해서 저녁 먹자고 이른 저녁 시간에 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얼마나 복잡한지 혼났잖아요.”
“그래, 그날 밤 정신없었던 기억이 나는구먼. 무슨 세일 기간이랑 휴일이 겹쳤었지 아마. 서울 시민들이 빅 마트로 다 몰린 것 같다며 내내 불평을 하면서 돌아다녔지.”
“그날 밤 비까지 내려서 날씨가 눅눅한 게 공기가 습기 차고 끈끈했었지요. 그날 밤에 빅 마트에 다녀온 뒤 저녁 식사하고 나서 다 정리하고 나니 자정 가까이 되었거든요. 대단한 밤 쇼핑이었어요.”
“아이들은 자고 있소?”
“둘째는 자고 있고, 큰애는 낮잠을 한숨 붙이더니 아직 자지 않고 컴퓨터 게임하고 있나 봐요.”
“그럼 아이들을 데려갈까, 어떻게 하지?”
“큰애가 함께 가겠다면 둘째도 데려가야 할까 봐요. 혹시 자다 깨어나면 놀라지 않겠어요?”
“그게 좋겠군, 그럼 준비합시다.”
“여보, 지금 밖에 비가 내리나 봐요. 창을 닫혀놓고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째 분위기가 추근히 가라앉아 있는 것이 이상하다 했었는데 비가 오고 있었네요.”
“흐음, 여보 기억나오? 비 오던 그날 밤 빅 마트에서 돌아오던 길에 하마터면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온 화물 트럭하고 큰 사고가 날 뻔 했었던 일말이요.”
“맞아요, 얼마나 놀랬는데요. 아마 그 화물 트럭 운전수 졸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정말 비오는 날 야간 운전은 조심해야 되요. 시야도 좋지 않고, 길은 미끄럽고, 오래 운전을 하면 공기가 눅눅한 게 슬슬 졸리기도 하거든.”
“당신 혹시 지금 졸리신 건 아니지요?”
“졸리긴, 나도 일요일이라고 오랜만에 낮잠을 한숨 잘 붙였더니 이 시간에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해서 밤새 잠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여보, 애들 데려올 테니 준비하고 나가요.”
“둘째는 뒷좌석에 눕혀놓아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데, 큰애도 언제 잠이 들었나 봐요.”
“글쎄 그 녀석 방금 전까지 뭐라고 재잘대더니 금세 잠이 들었나보네. 빗줄기가 더 굵어지는 걸 보니 밤새 비가 제법 오려는 모양인데.”
“그러게요. 저, 여보. 저녁 먹고 나서 시간이 나기에 가계부를 잠깐 정리해보았거든요. 얼마 있지 않으면 둘째도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 교육비 지출이 딱 두 배로 늘어나거든요. 큰애 유치원에 보내보니까 생각보다 무슨 돈이 그리 많이 드는지 놀랐는데, 이제 둘째까지 유치원에 보내야 하니 걱정이에요. 그렇다고 둘째를 유치원에 안 보낼 수도 없고요. 그래서 생각해보았는데 나 일자리를 찾아볼까 해요. 그래도 괜찮겠죠, 여보?”
“응? 당신이 일자리를? 당신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당신이 가사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요새 경제가 이래놓으니 일자리 알아보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뭐, 나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어느 집이든 가장이야 돈 벌어오는 일이 당연한 일 아니겠소. 프로젝트를 몇 개 더 따내서 일을 좀 더 해볼게.”
“당신 혼자 밖에서 너무 애를 쓰시는 것 같아 미안하단 말이에요. 당신에게 짐을 다 지우고 나는 집에서 놀고만 있는 것 같고요.”
“당신이 집에서 놀다니 그건 아니지. 아이들 둘을 감성 있게 잘 키우는 일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는 일인데. 당신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표현력이 좋고, 늘 밝은 모습인 게 얼마나 마음 든든한데 그래. 내가 대학 4년간 자취를 해 보아서 가사에 대해서 좀 아는데 해도해도 표가 안 나고, 안 하면 금세 표시가 나는 끝도 없이 지루한 가사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차라리 밖에서 돈 벌어오는 게 훨씬 쉬운 일이지, 암만.”
“당신이 허락만 해준다면 몇 가지를 알아봐 났거든요. 우선 아이들은 이웃 동네 사는 언니에게 부탁을 해 놓았고요, 학교 일은 지금 학장님이 삼촌 친구인 장 교수님이셔서 지난주에 한 번 찾아뵈었어요. 며칠 전에 전화를 받았는데, 다음 학기부터 강의 몇 개를 맡을 수 있다고 이력서하고 학위증 가지고 한 번 들르라고 하셨거든요. 당신이 싫다고 하시면 없었던 일로 하겠지만 당신이 허락해주시면 좋겠어요, 네?”
“글쎄 당신이 날 생각해서 그러는 줄은 아는데 당신 일이 두 배로 늘어 힘이 들 텐데. 아무리 애들을 처형께 부탁한다고 해도 당신 성격 상 당신이 직접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손이 다 가야할 테고 강의 준비는 또 그것대로 시간이 드는 일이라서 말이지. 여보, 그래도 꼭 일을 하고 싶소?”
“여건만 된다면 꼭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이 기회가 참 좋은 거 같고요. 나하고 거의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해서 애 키우다가 시어머니께 모두 맡기고 지난해부터 일을 시작한 친구 소군小君이가 부러웠거든요. 응, 여보~”
“그래요. 당신이 오죽 신중하게 생각을 했을까, 당신이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요. 그리고...”
“여.. 여보! 저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저 화물차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저 차가 어어 여, 여보!”
“끼이~ 익, 끼익~ 끽.”
“여보, 괜찮아? 뒷좌석 애들은 어때?”
“네, 괜찮은 것 같아요. 나도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서 괜찮아요. 당신은요?”
“뭐야 저 화물차,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뛰어 들어오다니. 당신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정면으로 들이받을 뻔 했잖아.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시껍했네.”
“여보, 자정이 넘은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너무 한가한 것 같지 않아요? 이 넓은 빅 마트에 우리 식구만 있는 거 같아요. 비가 와서 더 그런가보네요.”
“그러네, 정말 한적하군. 여기는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곳이니 근무자들이야 어딘가에 있겠지만 손님들은 우리가족 뿐인 것 같은데, 이 넓은 곳을 통으로 우리가 전세를 낸 것 같군.”
“여보 우선 화장지하고 세제를 카트에 담고 정육부로 가요. 사골을 한 팩 산 뒤 고아서 당신과 애들에게 먹여야겠어요. 당신을 닮아서 애들이 입이 짧아 잘 먹질 않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키가 쑥쑥 자라질 않은 거 같아요. 당신도 요즘 얼굴이 피곤해하는 기색이 있고요.”
“어, 저기에 정육부가 있는데.”
“여보 잠깐만요. 드시기에 도가니가 좋겠어요? 사골이 좋겠어요? 팩 크기는 비슷한데 어떤 걸로 해드릴까요?”
“아무거든 당신이 알아서 해줘요. 그런데 그건 뼈밖에 없는데 그럼 국물만 마시는 거요?”
“살코기하고 당면은 따로 사서 국물에 함께 넣어 먹어야지 맛이 있어요. 그래야 애들도 잘 먹거든요. 그런데 도가니에는 가격표가 안 붙어 있네. 여보, 저쪽 칸에 서 있는 사람에게 가격을 좀 물어보고 올게요. 애들이랑 잠깐만 계세요.”
“알았소.”
“여보, 가격을 물으러 도가니 팩을 들고 저쪽으로 갔더니 거기 서 있던 직원이 황급히 자리를 뜨지 않겠어요? 무어가 그리 바쁜지 내 말은 채 듣지도 않고 가버리네요. 그래서 다른 데를 둘러봐도 근무자가 마땅히 보이지 않아서 그냥 돌아 왔어요. 그냥 가격표가 붙어 있는 사골로 할래요. 살코기도 두 팩을 넣으면 이젠 여긴 다 됐어요. 저쪽 채소부로 가요, 여보.”
“저기가 채소부인 것 같은데 등이 고장인가 불이 깜박거리고 있네. 여보 나 큰앨 데리고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채소부 쪽에 먼저 가있어요.”
“여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내가 화장실로 가볼까 했어요.”
“글쎄 이 녀석이 응가를 하겠다고 해서 시간이 좀 걸렸소. 그런데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 설 때도 화장실 안에 있던 청소 아줌마가 황급히 뛰어 나가던데 왜 그렇지?”
“오늘밤은 불친절한 빅 마트 근무자들이나 고장이 나서 깜박거리는 등이나 뭔가 좀 이상해요. 그나저나 당신이 좋아하는 감자하고, 달걀하고, 풋고추와 나물을 좀 사가지고 우리도 집에 빨리 돌아가요.”
“여보, 우유하고 요구르트도 사가야지.”
“그래요. 깜박했어요. 채소부에서 계산대로 가는 쪽에 유제품 코너가 있어요. 치즈도 사야겠어요. 김밥을 쌀 때 치즈를 넣어주면 아이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여보, 저기로 가요.”
“저어, 지배인님, 채소부 직원하고, 화장실 용역 직원이 방금 전에 사무실로 쫓아 들어와 신고를 했거든요. 벌써 비오는 일요일 자정 넘긴 시간이면 몇 번째 반복된 사건이라 이 시간대에는 직원들이 근무를 서로 기피하는 눈치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이 나자 고객들도 비오는 날이면 밤 시간대에는 우리 빅 마트 사용자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심야 교통사고 이후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그랬지요. 박 팀장, 알았소.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겠군요.”
(- 틈새 이야기, 빅마트의 손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