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우즈벡에 의료봉사단 파견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료원장 이순남)은 오는 19~2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의료봉사단을 파견한다. 이에 앞서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은 지난 9일 의학관 A동에서 2014 해외의료봉사단 발대식을 열었다. 이날 발대식을 통해 의료봉사단원들은 각 지역에서 의료 봉사를 통해 이화의 설립 정신인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발대식에는 이순남 의무부총장과 유권 이대목동병원장, 정성민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장, 조종남 이화여대 총동창회장과 윤석완 이화의대 동창회장 등이 참석해 해외의료봉사의 참의미를 되새기며 먼 길을 떠나는 봉사단원들을 격려했다. 우즈베키스탄 봉사단은 19일부터 27일까지 8박 9일 일정으로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에서 정구영 응급의학과 교수를 단장으로 소아청소년과 손세정, 비뇨기과 정우식 교수를 비롯해 간호사, 전공의, 치위생사 및 이화여대와 의전원 재학생 등 총 19명이 참가해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화해외의료봉사단은 1989년 네팔 의료봉사 시작으로 캄보디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으로 봉사활동 무대를 넓혔고, 2007년 이후에는 매년 학생들의 방학기간을 이용 2차례씩 의료봉사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출처 = 아시아뉴스통신)
무역협회, 한-우 비즈니스 포럼 개최
한국무역협회가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오는 2월 타슈켄트에서 우즈베키스탄 정부관계자 및 기업인을 초청하여 한국-우즈베키스탄 비즈니스 포럼 및 비즈니스 상담회를 개최한다. 우즈베키스탄은 풍부한 자원, 높은 경제성장율과 인구증가율을 바탕으로 시장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대표적인 전략 신흥시장임과 동시에 유망한 투자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번 행사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인사 및 기업인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및 비즈니스 협력의 좋은 기회로 보인다. 행사는 2월 2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리며, 한국 측에서는 기업인, 정부 및 유관기관 관계자를 포함 30명 내외가 참석하고, 우즈베키스탄 측에서는 정부관계자 및 기업인 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출처 = 주간무역)
의료용 일회용품 생산 프로젝트 가동
우즈베키스탄은 의료용 일회용품 생산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120만달러를 투자하여 Jizzakh 특수산업지대에 생산시설을 설립할 이번 프로젝트에는 중국의 Zhangjiangang Juiyi 회사가 70만달러를 투자하여 합작으로 참여하게 된다. 의료용 일회용품은 연간 10만개 정도를 생산할 예정이다. 품목은 신발 커버, 마스크, 모자, 코트, 침대 시트 및 기타 제품 등이다. (출처 = uzdaily)
지진 발생시 고층 아파트에서는 “어디가 안전할까?”
우즈베키스탄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집안 어디가 가장 안전할까? 아파트 고층에 거주하게 되면 대형 지진 발생시 밖으로 뛰어 나오는 것도 힘들수 있다. 지진은 한번의 여진과 세네차례 반복 진동이 온후 마지막 한차례의 강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여진은 언제 반복될지 아무도 예측할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레 발생한다. 그렇다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당신은 한번의 여진 발생시 곧바로 밖으로 나가야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를 선택할수 밖에 없다. 당신이 집안에 있겠다고 선택한 순간 밖으로 뛰쳐나가는것을 포기한 당신은 집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은둔해야 한다. 3차례 여진이 반복된다면 당신은 주저하지 말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라. 우즈베키스탄은 1969년 대지진때 건축설계상 가장 안전한 곳을 화장실로 지정했다. 모든 건물의 화장실은 건물의 가장자리로 위치하게 했고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화장실쪽은 버틸수 있도록 기초 단계부터 마감질을 별도로 하게 한다. 또한 건물의 대들보는 화장실쪽을 기준으로 설계하게 했다. 따라서 대지진이 의심된다면 당신은 화장실안에 숨어 있어야 한다. (출처 = geographic)
재외국민특별전형의 오해와 사실
부정입학으로 한창 시끄러웠던 재외국민특별전형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도 크다. 사실 객관적인 실력보다 상위권 대학을 가는 경우의 이야기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말 예전처럼 실력보다 아주 높은 상위권 대학을 간다는 것은 특히 정원 2%의 재외국민전형에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에서는 12년 전과정 해외이수자나 외국인에게만 개방하고 있는 학교도 꽤 있다. 2014학년도 수시에서 3190명 정시에서 263명을 선발한 이 전형은 수시 6회 지원 제한의 틀에 묶여서 이제는 재외국민전형 뿐 아니라 해외고 졸업자의 자격으로 일반전형에 지원하기도 한다. “SKY에 떨어지고 IVY에 간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이다. 자격이 되는 학생들의 숫자가 지금은 엄청나다. 2015학년도 수시에서 6007명 정시에서 172명으로 인원이 파격적으로 늘기는 했지만 반대로 재외국민특례자격이 되는 학생들은 더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이 전형을 원하는 대부분의 학생과 특히 부모님들은 최상위권의 대학만을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막무가내로 상위권대학에 지원했다가 다 떨어진 뒤 이듬해 찾아온 F군은 12년 전과정 해외이수자로 비교적 대학에 진학하기가 쉬운 학생이였으나 객관적인 조건이 불리하였다. 영어와 불어는 원어민이였으나 12년과정자에게 요구하는 TOPIK(한국어시험)을 응시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학교 성적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제약조건이 많았다. 다만 IB(국제 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e))과정으로 영어와 불어 에세이 작성능력은 탁월하였다. 사실 미리 준비를 하였다면 훨씬 좋은 선택이나 전략이 나올 수도 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역량으로만 최고의 결과를 내야할 경우가 많다. 결국 F군에 대한 결론은 서류전형위주로 하되 영어논술과 면접구술시험 위주로 갈 수 밖에는 없었다. 한국말을 떠듬떠듬하는 전형적인 12년 특례입학 대상자답게 한국말에 대한 어휘에서부터 대화는 물론 문화와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었다. 진학 목표가 뚜렷하다 보니 비교적 잘 따라와 주었고 노력도 많이 했다. 만족스럽지는 못했으나 대체적으로 지난 실패에서 나온 경험으로 상당히 진지한 학생이였다. 그래서 결국 지원을 명지대 영어영문학부, 한양대 국제학부, 홍익대 불어불문학과, 국민대 영어영문학부에 지원을 하여 명지대 1차통과, 국민대 1차 통과, 홍익대 1차통과. 국민대와 홍익대의 구술면접을 잘 보았으나 서류내용상 부족함이 있었던지 면접을 정말 잘 보았다는 홍익대에는 불합격하고 최종 국민대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재외국민특별전형이라고 무조건 쉽게 대학 진학을 하는 시대는 벌써 오래전에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고 대학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어야한다. (출처 = 베리타스)
[기획 시리즈] 러시아 이주 150년 ‘고려인 러’ 하원의원 인터뷰’
‘2014년은 고려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옮겨가 정착한 지 150년이 되는 해이다. 폭정과 가난을 피해 동토의 땅으로 이주한 선조들은 척박한 자연환경, 현지인의 멸시와 차별, 당국의 탄압과 강제이주, 분단과 냉전, 소비에트연방 해체 등 신산과 굴곡의 세월을 견뎌내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민족센터는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앞두고 현지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 이민사를 더듬어보고 현주소를 살펴보는 10편의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앞두고 러시아와 한국 간에 유례없는 협력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고려인 3세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인 세르게이 텐(정)은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로 밀접한 인연을 맺기 시작한 한국과 러시아가 최근 들어 협력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텐 의원은 “구체적 예로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으로 양국 간에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되면서 두 나라 국민이 60일 동안 상대국을 비자없이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문화원 설립 협정도 체결돼 문화 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2025년까지 극동 및 자바이칼 지역(동시베리아 지역) 사회·경제 개발 전략을 추진하면서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도 한-러간 협력에 큰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러시아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과 3국 관세동맹을 운영하면서 한국이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옛 소련권 국가들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총선 때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州)에서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해 하원 의원에 당선된 텐은 같은 지역에서 3선 의원을 지낸 유리 텐(한국명 정홍식) 전 의원의 아들이다. 2003년 아버지가 지병인 위암으로 사망하자 그가 운영하던 건설·토목회사 ‘트루트’를 넘겨받아 운영하는 한편 ‘통합 러시아당’ 이르쿠츠크주 청년 조직 지부장을 맡아 정계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트루트는 시베리아와 러시아 남서부의 주요 도로와 공장, 학교, 부두 등을 건설한 중견 업체로 세르게이는 아버지 못지않게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동시에 2010년 이르쿠츠크주 주의회 의원에 선출돼 정치인으로서의 발판을 다진 그는 1년 뒤 연방 의원에 당선돼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론 사업에서 손을 떼고 하원 교통위원회 부위원장과 ‘통합 러시아당’ 시베리아 지역 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텐 의원은 한인 이주 150주년에 언급, “1864년 1월 첫 번째 한인 이주민 14가구가 러시아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러시아 전역에 17만 명(지난해 인구조사 통계. 일부선 20만 명으로 추정)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면서 “대다수 고려인은 잘 교육받고 지적이며 근면한 사람들로 러시아 사회에도 잘 동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고려인들이 이겨내야 했던 고난의 시기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러시아 내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면서 거의 차별을 느끼지 못하지만 아버지 때만 해도 여러 차별이 있었다”며 소련 시절 고려인이 겪었던 수모를 전했다. 세르게이에 따르면 아버지 유리 텐은 극동 사할린에서 태어났음에도 25살이 될 때까지 시민권을 인정하는 정식 신분증(패스포트)을 발급받지 못했다. 성인이 됐을 때 아버지가 받은 것은 무국적자에게 주어지는 신원증명서가 고작이었다. 이 증명서론 자유롭게 러시아를 여행할 수 없었다. 사할린을 떠난 아버지가 이르쿠츠크에서 교육을 받고 정착했던 이유도 신분증이 없어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인 1993년 러시아 연방 최고회의(의회) 결정으로 1937년부터 고려인들에게 취해진 모든 조치가 비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복권 조치가 이뤄졌다. 텐 의원은 “이 시기 일부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데 대해 국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물질적 보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텐 의원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가’란 질문에 “집에서도 한민족의 전통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고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면서 “의원 활동을 하면서도 한-러 관계 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러시아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출처 = 연합뉴스)
[기고] 한류의 위기와 기회 (기고자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이만열) /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유튜브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 동영상이 십억 번 이상 클릭된 것에 한국 사람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할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대단한 역동성과 창의성이다. 하지만 싸이의 최근 비디오 ‘젠틀맨’을 보고 나는 분명 한류가 올바른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인 친구들은 싸이의 동영상이 강남의 물질주의 풍조에 대한 풍자라고 설명한다. 사실 싸이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외국인으로서 그 동영상을 본 나의 솔직한 느낌은 소비문화에 대한 찬양과 여성에 대한 모욕적인 취급이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절박한 이슈는 속도나 양이 아닌 방향성이다. 한국문화가 아무리 역동적이라도 분명한 윤리적 메시지를 담지 못한다면, 즉 한류를 즐기는 세계인들에게 단순한 수동적 소비를 넘어 무엇인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없다면 종국적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류의 융성에 기뻐하기 이전에 역사적으로 경제·문화대국들의 영고성쇠(榮枯盛衰)와, 비전이 없어서 아예 사라져 버린 문화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 17세기 청나라를 이끈 만주족은 강력했다. 한족(漢族)마저 만주족 문화에 압도돼 변발 풍습까지 모방했다. 당시 만주족의 대중문화[滿流]와 행정 제도는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만주족의 문화는 어디에 있나? 17세기 중국인들은 필사적으로 만주어를 배우려 했으나 지금은 만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없다. 만주족 후예(後裔)들도 문화적 정체성을 잃은 채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만류(滿流)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다양하지만 주된 원인은 그 문화가 철학과 문학, 그리고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주족의 뛰어난 통치 노하우도 그들을 구해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만류의 몰락을 한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작금의 한류에 대한 엄중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신체적 장애우들이 케이팝 밴드(K-Pop bands)를 보면서 자신감과 영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거기서 매혹적인 외양보다 더 강력한 공헌, 믿음, 비전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여성들이 한국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리더로 자라날 수 있을까? 오히려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패션과 외모만을 추종하게 되지 않을까? 해외 청소년들이 한국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사회봉사나 평화와 환경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기적인 환상이나 종속성만 키워지는 게 아닐까? 한국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문화적 엘리트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세계적 강국이 된 유일한 국가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은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에 그 어떤 나라도 줄 수 없는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류의 방향이 잘못된다면 전 세계가 그 비극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가령 한국 청소년들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일회용 컵만 쓴다면 동남아·중앙아시아·중동 등지의 청소년들도 이를 모방할 것이다. 한류가 부모와 친구들을 배려하지 않고 개인의 이기적인 삶만 추구하는 풍조를 퍼날라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환경적·사회적 재난(災難)을 부채질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 문화는 어떠한가? 한국 어머니들이 쌀 한 톨이라도 아끼며 살았던 때가 진정 먼 옛날 이야기인가?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의 시대에 그런 절약의 미덕이 다시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런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한류의 핵심이 될 순 없을까?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안분지족(安分知足)했던 옛 선비들의 친환경적인 삶이 더욱 강력하고 영감적인 한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순 없을까? 우리는 상업화된 성과 소비문화를 넘어서야 한다. 화장을 하지 않은 채 공공의 이익과 환경,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소녀시대’를 떠올려 보자. 아프리카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한류에 영감을 받은 한 청년이 분연히 일어나 “나는 케냐의 세종대왕이다”고 외치는 날을 상상해 보자. 그런 장면이야말로 한국 문화에 내재하는 보편적 위대성을 상징한다. 비로소 그때에야 한류가 진정한 한류가 될 것이다. (출처 =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