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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던져지지 않으려면
마가복음 9:41~50
41.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
42. 또 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43.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4. (없음)
45.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6. (없음)
47.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누구나 다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요즘 우리 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우리 경제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상위 10%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입니다. 지난주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22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4명 중 3명(75.1%)은 월소득(종합소득세 신고분)이 100만 원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숫자로 보면 861만 명입니다. 소득이 전혀 없다고 신고한 건수도 8.2%, 95만 명에 달했습니다.
20대들의 경제 상황은 더욱 말이 안 됩니다. 생활고에 시달려 대출을 갚지 못한 20대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말 기준 한국신용정보원에 등록된 20대 신용유의자는 6만5,887명이었습니다. 2021년 말 5만2,580명에 비해 25.3% 급증한 수치죠. 이들 중 대부분은 수십만~수백만 원 대출을 갚지 못한 소액 연체자들입니다. 이런 현상은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경기 둔화 여파에 취업난까지 겹쳐 청년층에 빚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2022년 11월 이후 2년 내내 계속 감소세를 기록 중입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국갤럽조사에서 최저 20%로 떨어졌고 부정평가도 70%에 달했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처신과 잘못도 있지만 김건희씨와 장모의 공도 적지 않습니다. 윤정권의 몰락은 이채양명공주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 많죠. 이 말은 윤정부의 대표적인 6가지 범죄 의혹을 뜻합니다.
첫째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정권 차원의 의혹이고, 둘째 해병대 채상병의 죽음과 관련된 대통령의 권한 남용과 은폐 의혹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것이죠. 셋째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과 이로 인해 김건희 여사 일가가 막대한 이득을 봤다는 의혹이고, 넷째 2022년 9월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개인 사무소에서 최재영 목사에게 300만 원 상당의 디올백을 선물 받았다는 의혹이며, 다섯째는 지난 총선 공천에 김 여사가 지휘 개입했다는 의혹, 마지막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 김건희의 범죄 가담과 검찰의 부실수사 의혹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특히 경제와 관련하여 ‘노임산실장’ 문제가 노동권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윤석열 정권의 치명적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일명 '노란봉투법'입니다. 이 법은 노조법 2조, 3조를 개정하자는 것이죠. 이미 21대와 22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인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지 되었습니다. 이 개정안은 노동쟁의에 대한 사용자 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등과 노동자로 분류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임금체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생계 수단의 전부입니다. 해고가 살인이라면 임금체불은 그 자체로 죽음으로 내모는 끔찍한 일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임금체불액은 1조 436억 원이며, 피해 노동자는 15만 503명에 달합니다. 체불액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7%나 늘었고, 연말이 되면 사상 최초로 2조 원을 넘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부가 나서 시급히 해결해 주어야만 할 일입니다.
셋째는 산업재해의 꾸준한 증가 현상입니다. 올해 상반기 산재 신청 건수가 처음으로 8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대비 5.5% 증가한 수치죠.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는 138명입니다. 하루에 1.5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죽어간 것이죠.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어도 산재 사망 사고는 늘어만 갑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안전불감증과 반노동 시각에 기인한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인가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64. 7. 1) 60주년 되는 올해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는 노동 안전 세상'은 정녕 멀기만 한 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넷째는 실업율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실업급여를 50% 감액하겠다는 무도함입니다. 비록 5년간 6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 적용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를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는 것은 책임회피죠. 실업급여를 자주 받는다는 것은 해당 노동자가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에 단기간 일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 약자의 재취업을 위한 마중물이자 생명줄인 실업급여는 감액하고, 상속세, 법인세 등 부자에게는 막대한 세금을 깎아주는 반서민적, 반노동적인 부자만을 위한 정부의 민낯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명입니다. 김문수는 유신 시절 학출 노동자 1호로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구로공단에서 활동하며 구로 연대투쟁 등에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재 정권에 투항하여 극단적인 반노동 행보를 저질러온 사람이죠. 노란봉투법에는 대해서 "불법 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는 발언을 했고, 화물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는 "사유재산 제도를 없애려는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망발을 퍼부었죠. 광주글로벌모터스 사업장 방문 후 노조가 없고, 평균임금이 4천만 원이 안 되는 것에 감동하였다는 내용의 글을 SNS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무노조와 저임금 노동을 예찬하는 고용노동부 장관이라? 도대체 이 정부의 인사는 하나 같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 뿐인가요?
지난 9월 26일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출범한 지 5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제단은 50년이나 된 단체이지만 아직까지 따로 가입이나 탈퇴 절차가 없다고 합니다. 회원명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회비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임 안내와 작은 소식 정도가 우편을 타고 날아온다죠. 사제단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폭압적 정권이 들어서면 그동안 잠잠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전국 사제의 2/3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기도 하였지만, 제도교회와 정치 권력으로부터는 우려와 탄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사제단은 민중들의 고난의 현장에서 해야 할 마땅한 싸움을 해왔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고통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변해 왔죠. 지학순 주교의 민청학련 관련 구속이 그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지 주교의 석방을 요구하는 주교들의 자발적 참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되었고, 70~80년대의 군부독재와 유신반대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성용 신부는 민들레의 기고 글에서 사제단의 50년간의 활동은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 선택’이라는 기치 아래 ‘더 세상 안으로, 그러나 덜 세상 적으로’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가지고 헌신했던 결과물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80년 5.18 민주화 운동 진상 발표, 87년 6월 항쟁, 89년 문규현 신부의 통일행진, 2003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 2003년 KAL 858 진상규명 선언, 2009년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 2013년 박근혜 퇴진 시국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시국미사, 2023년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시국미사 등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서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다며, 이는 ”생명의 가치와 존엄이 훼손되는 모든 일에 그 옛날 예수처럼 ‘시비꾼’이 되어 싸움의 현장을 마다하지 않은“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50주년이 되는 사제단과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선’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 고난받는 작은 한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함께 연대하자고 말하며 이렇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삼척에서 외롭게 석탄발전소를 반대하고 있는 시민운동가에게,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어가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좋은 말은 차고 넘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가엾은 시대입니다. 사제는 ‘복음(福音)’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단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경청하는 사제들, ‘세상의 고해성사에 귀를 기울이는 사제단’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19주입니다. 성서 일과 중 마가복음 9장의 말씀을 골랐습니다. 9장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1절에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는 예수님의 선언과 이후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2~13절에는 그 유명한 변화산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의 말씀을 하시고 6일 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모하죠.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한 예수님이 모세,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제자들이 목격합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단단히 당부하시죠.
14~29절에는 악령이 들린 아이를 고쳐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악령의 발작으로 불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물속에 빠지기도 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아이를 아비가 데려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변화산에 있는 동안 제자들은 아이에게 씌운 악령을 쫓아내려 했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이를 고쳐주신 뒤 제자들에게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30~32절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를 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란 예언이었죠.
33~37절은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로 다툰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시죠. 그것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38~41절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주시죠. 그리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택한 말씀이 나옵니다. 41절은 앞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 구절이지만 본문에 포함시킨 것은 42절 이하의 말씀이 앞의 애용들과 연관성 속에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2절로 47절까지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작은 자들 중 하나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권면이 주어집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실족시키는 자는 연자맷돌이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경고하죠.
예수시대 연자맷돌은 ‘나귀가 끄는 맷돌’이었습니다(마 18:6; 눅 17:2).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돌리는 대형 맷돌 중에는 지름이 120-150㎝에 무게가 1톤이 넘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둥그런 원판 모양의 아랫 맷돌 위로 바퀴처럼 생긴 윗 맷돌을 짐승의 힘으로 돌려 가루를 빻는 원리입니다. 그러니 이 무거운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은 ‘완전한 죽음’이라는 벌을 뜻하는데, 당시 로마법에는 사회를 혼란케 한 자나 도덕적으로 문란한 중범죄자에게 이 같은 극형으로 처벌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이 매우 큰 범죄임을 뒤따르는 구절을 통해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던져질 중죄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죄를 범하게 만드는 손과 발을 찍어버리고 눈을 뽑아 불구자로 사는 것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면서까지 말이죠.
48~49절 말씀은 지옥에 대한 짧은 설명입니다. 지옥에서는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는 것과 거기에 떨어진 자는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라는 말이죠.
예수께서 말한 지옥의 원문은 헬라어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예루살렘 성 외곽의 항상 불이 타고 있는 쓰레기 소각장의 이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흰놈 골짜기’로 불렸는데 자녀를 불에 태워 희생제물로 드리는 인신 제사, 곧 몰록 숭배가 성행했던 곳입니다. 유다 왕 아하스(대하 28:3; 왕하 16:3)와 므낫세(대하 33:6; 왕하 21:6)는 자기 아들들을 몰록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기도 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렘 32:35). 항상 우상 숭배로 인한 역한 냄새가 나는 이곳을 유대의 묵시문학에서는 지옥의 입구, 혹은 지옥 자체로 불렸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지옥’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마 5:22, 29-30; 막 9:43-47).
악인들이 바로 그 '불타는 게헨나에 던져질 것'이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정의와 평화를 무너뜨리고 가난하고 약한 자를 고통과 죽음에로 내모는 자들은 영원히 구제받을 수 없는 형벌에 처해 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는 50절의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소금의 중요함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다만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소금의 짠맛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소금을 많이 지닌 호수가 말라 만들어진 암염이나 진흙덩이 소금이 많았습니다. 이 암염에는 광물질이나 식물 분해물 등 이물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었죠. 그런데 오랜 기간 비와 햇빛에 노출되어 짠 성분이 모두 씻겨 내려가거나 분해되어 불순물만 대량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보기에는 소금 같지만 실상은 그냥 흙덩이에 불과한 경우였던 거죠.
그러니 소금을 잃지 않고 간직한다는 것과 그것으로 서로 화목하라는 당부는 제자들에게 소금의 본분을 명심하고 세상에서 잘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지키고 부패를 방지하여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참다운 의미의 화목,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의구현 사제단 50주년 기념 인터뷰를 한 함세웅 신부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사제가 될 때 신학교에서 또 다른 그리스도다, 또 다른 예수다,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 신앙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야 된다고 배웠다. 민족과 역사와 공동체를 위해서 바치는 삶이 사제의 삶, 아름다운 시민의 삶, 또 선조들을 따라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대화하고 호소하고 싶다. 일제시대 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나라를 찾기 위해서 앞장선 분들은 청년 학생이었고, 독재와 싸웠던 분들도 청년 학생들이었다. 요새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청년 학생들이 이런 가치를 조금 놓치고 있지만, 청년 학생들이 깨어나야지 그 민족과 공동체에 희망이 있다. 이제 청년 학생들이여, 일어나 주십시오.“
노신부의 고백과 당부는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 정말 꼭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1974년 9월 26일 독일에서 귀국하는 지학순 주교를 민청학련 관련자로 체포하자 가톨릭 젊은 사제 중 3분의 2가 모여 석방을 요구한 지 50년 지나도 바뀌지 않은 현실을 개탄한 것입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60대 이상 노인들이 또다시 거리에 나서야 하는 세상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은 우리 시대를 독재와 반독재,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이 아니라 ‘양심과 욕심의 양극화 대결 시대’라고 말합니다. 모든 불의와 불평등, 억압과 차별이 이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작금의 현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양심을 내던지고 욕심만 따라 움직이는 이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씌운 자들이 세상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어제 전국 14개 시도에서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 친일매국 행태에 분노한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당장 윤석열을 퇴진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전국민중행동, 자주통일평화연대, 전국비상시국회의에서 주관하였던 대회입니다.
‘반민주, 반민생, 반평화, 친일 역사 쿠데타를 가속시키고, 물가 폭등, 의료 대란, 노동·농업 파괴하며, 일본과 동맹으로 독도 영토주권 포기하려는 정권을 10월 8일부터 국민투표를 진행하며 광범위한 퇴진요구를 모아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디 이 정권과 그를 호위하는 악의 세력들이 지옥에 던져지는 일이 없도록 회개하기를 촉구하며,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