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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현동욱 제 목 오은선, 2010 IMS(국제산악정상회의)참석..유럽 미디어의 인식을 바꿔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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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은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7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린 IMS총회에 참석, 세계 정상급 산악인들과 교유하며 여러 프로그램에 참가, 좋은 평가를 받는 한편 유럽 언론에, 그녀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던 인식을 바꾸어 놓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아래 내용은 '사람과 산'의 샤모니(프랑스) 주재 이진기 기자가 이탈리아 현지로 가서 취재한 내용입니다. (사진은 IMS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아서 압축을 푼 다음 다시 올린 것입니다.)
마지막 날(11월6일)은 올해 중심 주제인 여성과 등산이라는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여성 최초 14좌를 오른 한국 오은선씨와 최고의 여성산악인(The World best Female mountaineers)이란 책을 출판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에바 마리아가 참석했다. 독인인 빌리비에링도 함께했는데 그녀는 1960년부터 히말라야 원정대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를 돕고 있다. 여성으로서 산에 오르게 된 동기와 남성 위주의 산악계에서 여성 산악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관해 논의했다. 모든 진행은 배우이면서 기자, 텔레비전과 라디오 진행자인 케이러쉬(Kay Rush)가 진행했다.
IMS를 기획한 알렉스는 IMS에 오은선씨 참가가 이번 행사의 하일라이트라고 결론 지었다. 알렉스가 이번 행사의 결과를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대답한다.
“그녀(오은선씨)가 행사 기간에 보여준 개방적이고 친절한 태도는 이번 유럽 미디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그녀 또한 IMS는 자신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것 같습니다.
돌로미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심포지엄도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IMS는 남 티롤 지방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고 새로운 시도들이 IMS을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
IMS 워크(산행)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알피니스트들을 알 수있는 계기가 됩니다. 내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더욱 확대할 것입니다.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이 IMS의 목표입니다.
특히 메스너와의 산행은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오은선은 올해 두개의 워크(산행)에 참가했습니다. 종합하면 작년에 비해 참가자는 증가했습니다. 포럼에 5,600여명이 참석하였고 볼더링 슬랙라인 경기에 4,0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금요일, 토요일 볼더링 홀은 관중들로 가득 찼고 최초의 슬랙라인 챔피온도 탄생했습니다.
==================<이하 이진기 기자가 보내온 기사 全文>====================
2010 International Mountain Summit 이탈리아 브릭슨(Brixen/Bressanone)에서 10월30일부터 11월7일까지 ‘IMS’가 열렸다. IMS는 ‘인터내셔널 마운틴 써밋’의 약자로, 2009년 시작한 국제 산악 정상회의다. 등산 역사에 위대한 역할을 한 등반가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모였다. 산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기에 IMS는 ‘산악계의 파노라마’ 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사람·경험·산과 관련된 이슈와 주제를 논의하는 세계적인 국제회의다. 한마디로 IMS는 산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개최 도시 브릭슨은 남부 티롤의 심장이다. 돌로미테 지역을 상징하는 ‘치메딜라바레도봉’ 인근이다. 한해 300일 이상 맑은 날씨로 유명하다. 2010 IMS는 20개국의 산악인과 등반가가 참여했고 88명의 저널리스트가 참석해 성공적으로 끝났다. 방문객도 8,500명이 넘었다. 성공 요인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등반가들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등반계의 전설인 라인홀트 메스너 (Reinhold Messner)가 행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브릭센은 그가 태어난 지방이다. 행사 프로그램은 IMS 톡(Talk), IMS 콩그레스(Congress), IMS 워크(Walk)로 구성되어있다. 부대 행사로 20편의 산악 영화를 삼일동안 상영하고, 2010 IMS컵 볼더링 페스티벌과 슬랙라이닝(줄타기)월드컵이 함께 열렸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나는 IMS와 같이 깊이 있는 산악 페스티벌을 만난 적이 없다. IMS는 아이디어를 자극시키는 경합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이다.” 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가 하려면 입장권(유료)이 필요하다. 전체 일정을 참가하려면 자유 이용권(179유로)을 이용하면 된다. IMS 토크와 콩그레스를 참가하면 48유로다. 산악 관련 행사를 컨텐츠로 개발해 제공하는 것이 신선하다. 관람객중 베를린에서 온 하이네씨는 “지난해 IMS에 방문 했는데 많은 영감을 받아 올해도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등반가 시모네모로(Simone Moro)는 “IMS는 나에게 세계적인 등반가를 만나고 그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는 준 곳이다.” 라고 전했다. 한국인으로는 오은선씨가 참가했다.
행사 프로그램 IMS 토크 세계 정상의 등반가들과 만나, 그들의 경험을 듣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등반가는 극한 환경에 자신을 노출 시킬 때 자아를 발견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청중들은 흥분시키기 충분하다.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올해도 내노라 하는 등반가들이 참석해 강의를 했다. 제5회 아시아 황금피켈 심사 위원장을 했던 데니스우룹코도 참석했다. 강연장 한쪽에는 그가 발간한 책을 판매하고 있다. 독일어판이다. 그는 네권의 책을 펴낸 저술가다. 첫날 강연은 니베스메로이(이탈리아)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남편 로마노와 함께 8.000m 봉우리 11개를 올랐다. 알파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들의 도전은 계속 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부드러운 알파인 스타일은 경량등반과 진실성이 담긴 등반을 말한다. 부부가 함께 산과 조화를 이루며 오르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한다. 올해 3월 캐나다 템플 산에서 추락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스티브 하우스의 강연도 있었다. 강연이 전부터 포럼을 가득 메운 청중을 보니 그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다. 연예인도 아닌 등반가를 보기 위해 표를 사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는 발표에서 사고 후 재활과 산에 대한 그의 애정에 관해 보여주었다. 듣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딛고 서있는 양쪽 발을 꼼짝 할 수 없고 왼쪽 피켈을 고정 시킨 채 오른쪽 피켈로 홀드를 찾았죠. 헤드로 분설을 헤치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찍어 봤지만, 더 이상 버틸 수 가 없었죠. 그리고 24미터를 떨어졌죠.” 그가 말한 사고 순간이다. 갈비뼈 다섯 대와 세 곳 이상 복합 골절된 부위가 두 군데다. 하지만 사고는 그의 의지를 꺽지 못했다. 삼 개월 만에 침대에서 일어났고 지금은 재활을 통해 간단한 운동도 한다. 그가 보여준 등반은 혁신적인 알피니즘이었고, 전 세계 산악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탈리아 등반가 시모네 모로는 세계 최초 동계 마칼루 초등을 했다. 데니스 우룹코와 함께다. 그의 주제는 ‘스노우레오파드’ 다. 쿠르트 딤베르게르는 히말라야에서 처음 알파인 스타일을 적용한 등반가다. 1957년 헤르만 불과 함께 파키스탄의 브로드피크(8,047m)를 초등했다. 4명의 대원은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등정에 성공했다. 그 후 헤르만 불과 함께 초골리사(7,665m)등반을 간다. 정상부근에서 후퇴하던 중 헤르만 불이 추락하여 실종된다. 1978년 쿠르트는 46세에 마칼루 종주 등반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1986년 영국인 쥴리 툴리스와 함께 K2로 떠난다. 둘은 악천후 속에서 보틀넥의 캠프에서 머무르다, 툴리스가 사망한다. 쿠르트는 손가락 2개를 절단한다. 그의 5번째 8천미터 등반이었다. 그는 ‘불확실성을 향하여’ 라는 주제로, 인간의 도전은 계속되어 왔고, 이제 젊은 세대는 새로운 목적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발표자로 예정되었던 쿠르트 알베르트(Kurt Albert, 독일)가 지난 9월28일 비아 페라타를 하던 중 사망해 참석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의 강의는 추모 영상으로 대신했다. 그는 1988년 파키스탄의 트랑고 타워의 유고루트를 최초로 프리 등반으로 올랐고, 볼프강 궐리히와 함게 프리루트인 이터널 플레임을 초등했다. 파타고니아를 비롯해 수많은 거벽을 프리클라이밍으로 올랐다. 레드포인트 즉 여러 차례 도전해서 루트를 프리 클라이밍으로 완등 하는 개념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프리로 루트를 완등한 후 루트에 붉은색 점을 찍어 두었다. 인공 등반가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를 프리클라이밍의 전도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고인이 된 쿠르트 알베르트외 14명의 등반가들의 발표에서 등산 활동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니베스메로이(Nives Meroi, 이탈리아), 데니스우룹코(Denis Urubko,카자흐스탄), 한스카머랜더(Hans Kammerlander,이탈리아), 크리스토프 위아리스키(Krzysztof Wielicki,폴란드), Andy Holzer(앤디홀쩌르,오스트리아), 스티브 하우스 (Steve House, 미국), 믹 포울러(Mick Fowler, 영국), 시모네모로(Simone Moro, 이탈리아), 라인홀트메스너 (Reinhold Messner, 이탈리아), 알렉산드로 곤야(Alessandro Gogna, 이탈리아), 제리 모펫(Jerry Moffatt, 영국), 실비오 몬디엘리(Silvio Mondinelli, 이탈리아), 쿠르트 딤베르게르 (Kurt Diemberger,오스트리아), 스테판 배나블스(Stephen Venables, 영국)
IMS 콩그레스(Congress)
세계 각지에서 전문가 56명이 발표자로 모였다. 산과 문화·산과 사람·산과 건강·산과 안전·산과 조직이라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그들의 지식과 노하우를 듣는시간이다. 남 티롤·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파키스탄의 알파인클럽대표와 UIAA·국제구조협회등이 파트너로 참가했다. 첫날(11월2일) 주제는 위험의 정의다. 발표자중 알렉스후버는 ‘위험은 개인적인 일’ 이라는, 평소 그의 생각을 말했다. 산악 활동의 위험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산악단체의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회의는 17명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오후10시까지 이어졌다. 둘째 날(11월3일) 주제는 산과 지속 가능한 관광이다. 파키스탄 알파인 클럽회장 나지르(Nazir Ahmed Sabir)씨는 히말라야와 힌두쿠시 지역의 도전과 보전에 관한 내용과 고산지대의 구조 활동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제목으로 발표 했다. 국제산악연맹(UIAA)이사를 맡고 있는 인고(Ingo Nicolay)씨는 산악 여행을 위한 개발을 단계적 허가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째날은 날(11월4일)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 유산에 관해 논의를 했다. 돌로미티의 보존을 위해 세계 문화 유산 지정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11월5일은 ‘고산에서의 구조’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다. 구조대를 조직하고 교육하는 방법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마지막 날(11월6일)은 올해 중심 주제인 여성과 등산이라는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여성 최초 14좌를 오른 한국 오은선씨와 최고의 여성산악인(The World best Female mountaineers)이란 책을 출판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에바 마리아가 참석했다. 독인인 빌리비에링도 함께했는데 그녀는 1960년부터 히말라야 원정대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를 돕고 있다. 여성으로서 산에 오르게 된 동기와 남성 위주의 산악계에서 여성 산악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관해 논의했다. 모든 진행은 배우이면서 기자, 텔레비전과 라디오 진행자인 케이러쉬(Kay Rush)가 진행했다.
IMS 워크(Walk)
IMS 행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행사다. 유명 산악인과 산행을 함께 하러온 참가자 들이 많다. 오은선씨를 비롯해 라인홀트 메스너 스티브하우스 한스카머랜더 니베스메로이 실비오 몬디넬리 시모네모로 데니스우룹코등이 참가했다. 각 트레킹은 3시간에서 5시간 걸린다. 자신의 체력에 맞는 코스를 고르면 된다. IMS의 총 지휘자인 알렉스씨는 내년에는 참가자들과 등반가들이 교감할 수있는 시간을 늘리겠다고 한다. 브릭센 주변 티롤을 대표하는 트레킹 코스 9곳을 선정했다. 각 코스는 오전 8시 포럼에서 집결해 버스를 타고 출발한다. 11월 남티롤 지방의 2,000미터 이상은 눈이 쌓여 있다. 간단한 하이킹 수준의 산행도 준비물을 빠트리지 않는 것이 좋다. 메스너와의 산행은 예약 인원을 초과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산악영화상영, 볼더링 대회, 슬랙라이닝 월드컵이 열렸다. 슬랙라인 월드컵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슬랙라인은 지난 10월 양재동에서 열린 2010 마운틴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적이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신종 스포츠다. 이번에 IMS에서는 슬랙라인 월드 투어 챔피언과 IMS컵 챔피언을 가렸다. 등반가들이 로프나 슬링을 나무에 연결해 놀던 놀이가 스포츠로 발전했다. 경기 결과는 이변이었다. 15세 신예 마리와이즈(모모,애칭)가 나타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번에 주최 측은 경기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볼러링 홀에 모인 관중들은 열기를 더해갔고, 참가자들의 공개행사는 왜 이들이 세계 최고인지를 입증하였다. 결승전 첫 번째 경기인 “원온원” 에서 앤디 루이스와 닉텐 호픈이 대결했다. 4분 경기 후 앤디가 우승했다. 앤디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우승후보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루스 메이어가 일본 선수인 아자칸을 이기기 위해 고분 분투하였다. 베런드 하스맨은 폴란드 출신의 자넷크와의 경기에서 고전하였으나 승리를 거두었다. 각 경기시합에서 슬렉라인 선수들의 퍼포먼스 수준은 높아졌고, 몇 분만에 표는 매진되었다. 한 시간 동안의 아슬아슬한 묘기의 최종 결과는 뜻밖이었다. 겨우 15세의 모모는 뮌휀과 프리드리사펜 월드컵 컴퍼디션의 우승자인 앤디 루이즈를 대항하여 경기를 치뤘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 경기장에 모든 사람들은 움직임 없이 관심을 모았다. 우승후보 앤디가 백플립(backflip)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착지해 우승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모모가 시크내스티(Sick Nasty)와 쓰리식스티 투 더블니드롭(Three-sixty to Double Kneedrop)을 해낸 후 백플립을 성공했다. 3명의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고 우승자가 정해졌다. IMS 슬랙라인 월드컵의 1등 상금인 1,000유로는 15살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마리 와이즈(모모)에게 돌아 갔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앤디 루이즈는 2등을 했다. 상금 500유로를 거머 쥐었다. 앤디 루이즈는 뮌휀과 프리드리히사펜 경기에서 1등을, 이번 IMS에서 2등해 월드 투어의 승자 자리를 지켰다.
IMS를 기획한 알렉스와 마커스 Alex Ploner Markus Gaiser,
“모두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IMS를 기획한 동기를 묻자 그가 말한 대답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방송국 출신 저널리스트였다. 하지만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소개한다. 13년간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도 했다고 한다. 작은 이벤트와 공연을 기획하던 그는 3년 전 마커스(Markus Gaiser, IMS 공동창시자)를 만난다. 마커스는 포럼의 컨설턴트였다. 포럼은 시에서 운영하는 극장과 회의실을 갖춘 건물이다. 둘은 포럼을 활용할 방안을 찾다가 IMS를 기획한다. 알렉스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처음에는 마라톤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티롤 지역과 어울리지 않았죠. 주제를 산으로 바꾸고 나니 모든 것이 투명해 졌습니다. 그리고 라인홀트 메스너를 떠올렸죠. 전 세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산악인이 가까이 살고 있어 큰 도움이 되었죠. 지난해 IMS를 끝내고 산악계의 영향력 있는 알파인 클럽과 현장에서 일하는 기관들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일반 참가객들이 힘이 되었죠. IMS가 등반가 프로 클라이머 산악가이드 레스큐 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알렉스는 IMS에 오은선씨 참가가 이번 행사의 하일라이트라고 결론 지었다. 알렉스가 이번 행사의 결과를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대답한다. “그녀(오은선씨)가 행사 기간에 보여준 개방적이고 친절한 태도는 이번 유럽 미디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그녀 또한 IMS는 자신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것 같습니다. 돌로미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심포지엄도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IMS는 남 티롤 지방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고 새로운 시도들이 IMS을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 IMS 워크(산행)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알피니스트들을 알 수있는 계기가 됩니다. 내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더욱 확대할 것입니다.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이 IMS의 목표입니다. 특히 메스너와의 산행은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오은선은 올해 두개의 워크(산행)에 참가했습니다. 종합하면 작년에 비해 참가자는 증가했습니다. 포럼에 5,600여명이 참석하였고 볼더링 슬랙라인 경기에 4,0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금요일, 토요일 볼더링 홀은 관중들로 가득 찼고 최초의 슬랙라인 챔피온도 탄생했습니다. 선수들이 IMS컵에서 보여준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IMS 내년 행사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올해 보다 약간 빠르게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번 행사에 해외 미디어들의 관심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IMS 기간 동안 마운틴 월드(Mountain World)를 브릭슨에서 봤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죠.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어 내년까지 가기를 바랍니다. 올가을에는 한국에 들러 IMS를 소개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근처 가볼만한 곳 메스너 마운틴 뮤지엄(MMM) MMM은 총 다섯 곳이다. 한곳은 건축중이라고 한다. 그가운데 Firmian, Juval 두 곳이 볼만하다. 라이홀스 메스너는 Firmian을 ‘마법에 걸린 산’이라 부른다. '시그문스크론' 란 성(Castle)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유명한 산 사진과 작품을 곳곳에 녹여 놓았다. 계곡에 위치한 박물관은 갤러리를 겸한다. 티벳 예술품·산 그림·마스크를 전시한다.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숙박을 겸할 수 있다. 두 곳의 위치는 브릭센에서 42키로 떨어진 볼자노 인근이다. 2010
산행 때문에 오은선의 참석여부를 묻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답이 없어 아마도 바뿐 모양이구나 라고 잊고 있었는데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문자가 온다. 마침 출근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라 누가 새벽에 문자를 보내나하고 확인을 하니 오은선 한 테서 온 문자다. “선배님 저 이탈리아 티롤에서 열리는 IMS총회에 참석하고 있어요” IMS총회?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세계 유명산악인들이 모이는 상당히 지명도 있는 세계 산악인 행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최초 8천 미터 14좌 완등자 자격으로 오은선이 초청되었다고 한다. 특히 매스너가 오은선에게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있어 특별히 초청된 듯 한데 마침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고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정부의 훈장 수여까지 취소시키는 마당에 우리나라의 다른 산악인들을 전부 제쳐두고 오은선만 특별히 초청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그곳에서의 등정 시비 문제에대한 관심도가 어떠했는가 물어보니 의문점 몇 가지 물어보더니 그것으로 끝이고 오은선에 대하여 모두들 호의적 이였다는 대답이다. 오은선은 이번에 같이 초정된 파사반을 만나면 칸첸중가 등정시비에 관한 의문제기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행사 사흘 전에 이유도 없이 갑자기 못 온다는 통보를 해서 아쉬웠고 오은선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얘기도 나왔다는 전언이다. 떳떳하다면 왜 피할까? 오히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찾아와 세계유명 산악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따졌어야 할 텐데…….
그리고 이번 행사 중 매스너가 최근에 독일어로 쓴 “정상에 여성들이 드디어 올라” 라는 책을 하나 받았는데 이 책에 오은선에 대한 부분이 상당분량 집필되어있어 이번에 가지고 와서 김영도 선생에게 번역을 부탁하여 사람과 산에 전재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일련의 얘기를 듣고 나는 옛날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을 치르며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도 당쟁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던 일이 생각났다. 그 당시 전쟁이 끝날 무렵 명나라에서 파견된 진린 도독은 자기나라 황제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캐(훗날 청국)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캐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대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휘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 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매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 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대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은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 폐하께 충(忠)을 다할 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캐(훗날의 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이야기 인가?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이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고 내편이 아니면 나라가 망해도 좋으니 안 되기를 바라는 심보, 이런 고질병은 아무래도 고쳐지기 힘들 것 같다.
나는 오은선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산악인들과 어울릴 생각 말고 외국산악인들과의 교류에 신경을 쓰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이 이야기에 오은선도 긍정을 한다. 그는 이번에 엄청난 시련을 겪고 많은 것을 깨달은 듯하다. 내편인줄 알았더니 앞에서는 가장 걱정해주는 듯 하면서 뒤에서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그럴것이다 라는 가정하에 죽기살기로 음해에 앞장을 서는 것은 비단 오은선에 관해서만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다. 囊中之錐라는 말은 아무리 감추려해도 주머니속의 송곳은 저절로 남의 눈에 들어난다고 뜻이다. 억지로 이해시키려고 할 필요 없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진실은 들어나게 마련이다. |
첫댓글 감사히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