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으로 부활한 4·3 영령이시여
기자명 양김진웅 기자 입력 2004.04.03
[제56주년 제주4·3 범도민위령제] 도민 하나된 추모 열기
-다시 푸르름으로-
신성여자고등하학교 2년 정현정
탕, 탕.
두근대던 심장에
이 땅이 울었다.
목에서 피가 맺히도록
부르던 그 소리는
생각의 벽에 부딪혀 잦아들었다.
이 곳은 붉게 물들었다
어린 그들의 마음이 터져서 외친다.
하늘은 알 수 없이 푸르고,
눈시울은 끝없이 붉어지고,
흩어지는 꽃잎은 빛을 잃어도
쌓이고 쌓여
새로운 씨앗으로
마음은 다시 틔운다.
잦아들던 그들의 숨소리로
다시 이 땅은 숨을 쉬고
4월로 새롭게 푸르른 숲속
파랑새는
다시금 날개를 편다.
▲ 제주 4·3사건 희생자 범도민 위령제가 3일 오전 4·3평화공원 추념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기가 내걸렸다.ⓒ 김영학 기자
'원한의 섬'에서 '평화의 섬'으로
간간히 흐느낌이 들려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4.3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 이후 열린 첫 범도민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은 살아생전 다하지 못한 아픔을 가슴에 묻고 저마다 국화꽃 한송이를 가슴에 안아들었다.
3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제주4.3평화공원 추념광장에서 열린 제56주기 제주4.3사건 희생자 범도민위령제는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유족 1만 2000여명이 제주시 봉개동의 거친 오름 자락을 가득 메웠다.
이날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추도사를 대신 낭독한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금은 과거의 반목, 갈등, 원한의 벽을 뛰어넘어, 또 지역.계층.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국민대화합을 이뤄 나가야 할 때"라며 "모두 이 불행한 사건을 가슴깊이 새겨, 다시는 이 땅에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영원히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자"고 말했다.
이어 "'원한의 섬'을 21세기에는 인권과 평화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탄생시켜나가도록 하자"며 이를 위해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정부의 4.3 후유장애자들에 대한 의료지원금 지원 현실을 보면서 그리 마음속 깊이 다가오지는 않는 듯 했다.
우 지사 "4.3 평화재단 적극 검토...후유장애자 대책 강구'
'4.3국가추념일 정부 지정' 촉구
또 우근민 범도민위령제봉행위원장은 주제사를 통해 "4.3의 교훈 위에서 이 아픔의 땅에 '평화의 섬'을 선언했다"며 "모두 과거의 상처를 쓸어 내리고, 갈등과 원한의 굴레를 벗어나서 화해와 상생이 희망찬 내일로 모두 함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특히 "제주도가 정부에 건의했던 수형인을 포함한 희생자들에 대해 조속한 심의 결정이 되길 바란다"며 "4.3 국가추념일 지정 문제 등이 실현되기를 다시 한번 바란다"고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
우 지사는 "아울러 4.3후유장애자들에게 지급되는 의료지원금이 미흡하다면 이를 해소할 근본대책을 강구하고, 제주도 자체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을 찾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우 지사는 또 "4.3유적지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4.3 상징 노래 공모, 평화음악제 개최 등 실질적인 사업을 펼쳐나가겠다"면서 "도민 주체의 4.3평화재단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4.3이 주는 교훈을 전국화.세계화시킬 수 있는 평화네트워크도 구축하겠다"고 4. 3관련 사업을 위한 다양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 청산...유족과 도민들의 몫"
이어 이성찬 제주4.3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대통령 사과와 정부의 4.3진상보고서로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기틀을 다졌다"며 "하지만 희생자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4.3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4.3특별법 정신을 상기시킨다면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 지난 역사의 아픔을 교훈삼아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걷어치우는 일은 우리 4.3 유족과 도민에게 맡겨졌다"며 '가신 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불어 살아가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주제사와 추도사가 끝나자 신성여고 2학년 정현정 학생의 추모시 낭송이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내 어머니가 저 곳에 있다'며 '내 형제가 있노라'고 흐느끼는 유족들의 오열이 간간히 터져나왔다.
송창부씨(제주시 오라동.71)는 "반세기전에 겪었던 가족의 아픔이 눈에 선하다"며 "위패가 모셔 있다고 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4.3평화공원 행사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날 제주불교여성합창단은 '4월의 님 앞에'를 부르려 4.3 영령들을 위로했다.
이날 위령제에 앞서 식전 행사로 억울하게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초혼의식, 살풀이 춤, 평화의 노래 등이 이어졌다.
제주4.3의 산파역 김명식 시인, 역사학자 이이화 등 찾아
▲ 역사학자 이이화
이날 위령제에는 제17대 총선 후보와 시.군의원 및 자치단체장 외에 특이한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범국민위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역사학자 이이화씨(68.전 역사문제연구소장)가 4.3 위령공원 현장을 찾았고, 1980년대 4.3자료집 '제주민중항쟁'을 펴내고 제3세계의 민중사를 조명한 '아라리연구소'를 세우며 4.3민주화의 격랑의 한 가운데 있던 김명식 시인(61.강원도 화천 노동리 거주)이 8년만에 제주를 찾아 현장을 지켜봤다.
4.3중앙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삼웅, 서중석 교수와 소설가 현기영 한국문화예술원장도 내내 4.3 위령제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또 영국에딘버러대학교 사회인류학과 권헌익 교수(43)도 영국학술원이 주관한 '냉전과 문화'를 주제로 한 연구프로젝트(3-5개년) 준비를 위해 '제주4.3' 연구차 위령제와 4.3 미술전시회 현장을 두루 찾았다.
[인터뷰] 김명식 시인 "4.3 디아스포라(DIASPORA) 재건해야"
▲ 시인 김명식
특히 지난 1999년 '제주 4.3희생자 명예회복보상특별법'을 대표발의한 공로로 제주도로부터 명예도민증을 받은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 4.3 유족은 "아무리 대통령의 사과가 끝났다고 하지만 어떻게 정부사과 이후 처음 치르른 역사의 현장에 각 강의 정치책임자들이 한 명도 안 올 수가 있느냐"며 중앙 정치인들의 무관심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추미애 의원 '제주발전을 위한다면 남은 한석 지켜달라'
추 의원은 "4.3과 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니냐"며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4.3특별법을 통과하는데 누구보다 노력했다"며 제주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이어 "4.3은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라며 "민주당이 제주도 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남은 한석이라도 지켜달라"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추의원은 위령제 행사가 끝난 후 이날 낮 12시 30분께 홍성제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제17대 총선 제주도선거대책본부 발대식에 참가했다.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4.3 유족들은 차례로 줄을 서며 56년전 세상을 달리한 원혼들의 위패를 찾기 위해 추모탑 안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내 좁은 추모탑 입구로 간신히 들어가 내부를 둘러본 유족들은 겉모습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추모공간 조성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인터뷰]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 "3보 1배 행보 제주에서 결심"
웅장(?)한 '외형' 속에 실속없는 '4.3 평화공원' 조성 우려
▲ 제주 4·3사건 희생자 범도민 위령제가 3일 오전 4·3평화공원 추념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유족들이 4·3영령 추모탑 내부에 희생자 명단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학 기자
유족들은 "외형만 거창하고 내부 공간은 너무나 협소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며 "아무리 위패를 모셔 놓은 곳이지만 이곳에 1만 2000여명의 신위가 어떻게 다 들어갈 수 있느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른 유족 문모씨(63.북제주군)는 "이름 석자를 찾으려고 했지만 너무 높은 때문이지 찾을 수 없었다"며 "적어도 위패의 높이가 눈높이에 맞춘 1m 정도에 위치해 나이든 유족들의 입장을 배려해 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주문도 했다.
특히 유족들은 "4.3유족회에서 숙원사업으로 제기한 별도의 '각명비' 문제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4.3 원혼들은 물론 남아있는 유족들을 배려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거창한 추모탑의 외형에 비해 비좁은 위패봉안소에 대해 실망했다"는 한 4.3 유족은 "앞으로 2단계 공사가 진행될 4.3 평화공원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캄캄하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공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4.3사업소 "임시로 위패 모신 것....각명비도 별도로 고민하고 있다"
이에대해 제주도 4.3사업소 관계자는 "오늘 위령제 행사를 위해 임시로 위패를 모셔놓은 것"이라고 밝혔지만 유족들의 숙원 사항으로 줄기차게 요구해 온 '각명비'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관계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희생자 명단에 대한 별도의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4.3 유족회와 관련 단체에서 제기한 개선점은 되도록 모두 수용토록할 방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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