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산에 기울자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지면서 거리는 순식간에 20~40대 직장인들로 가득찼다. 식당마다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식당 밖에선 20대 여성 홍보 도우미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신장 개업한 식당과 술집을 선전하고 있었다. 지역 경찰지구대 박경수 경사는 “거리를 지켜보고 있으면 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하루하루 다르다”며 “사람 늘어나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곳은 ‘인구증가특별시’ 경북 구미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잡초만 무성했던 인동동(仁同洞)의 4일 밤 모습이다. 저(低)출산과 인구 감소가 전국적 현상이 된 가운데 유독 구미의 인구 증가세가 멈출 줄을 모른다. 1994년 28만5297명이던 구미시의 인구는 금년 6월 현재 37만106명. 매년 1만명꼴로 증가한 셈이다.
▲ 5일 오후 1시쯤 경북 구미시 원평동 상가 거리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다시피 하고 있다/이재우기자 | |
충청권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중소도시 중 최고의 인구증가율이다. 구미시청 전면(前面)에 걸려있는 ‘경축! 인구 38만시대 열려’ 플래카드의 문구(文句)는 지난해 이맘때엔 ‘37만 시대’라고 적혀 있었다. 구미시가 내건 ‘3년 후 50만 도시 건설’이란 구호가 괜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구미시의 인구 증가 비결은 ‘일자리’에 있다. 지난해 인구 증가분 1만여명 중 55%가 전입(轉入) 인구다. 대구에서 왔다는 황병도(29)씨는 “다른 직장 동료들도 대부분 경북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왔다”고 말했다.
구미공단의 고용인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8만9964명으로, 지난해 4월(7만8297명)에 비해 15%나 늘었다. 2003년 4월에는 6만6194명이었다. 구미시는 ‘국가4산업단지’ 입주가 끝나는 2006년이면 3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돼 10만명이 추가 유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구미에 몰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구미는 낙동강의 풍부한 용수, 단단한 암반지대 등 첨단 산업입지에 필요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구미시는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현재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에 능통한 3명의 별정직 7급 공무원들이 다국적 기업의 해외투자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투자 정보를 전달하면 시 투자유치과는 즉시 출국(出國), 해당 기업을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2003년 일본 아사히글라스에서 투자 여건 조사를 위해 구미에 실무자를 파견했을 당시 투자유치과 직원 5명은 2박3일 일정 내내 30대 실무자 5명을 밀착 보좌했다. 이들은 조사단이 머무는 호텔 바로 옆 방을 잡고 합숙하며 접대를 위한 식사, 새벽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의 한 직원은 자신이 맡은 조사단원의 양말이 물에 젖자 인근 편의점에 뛰어가 새 양말을 사오기도 했다. 아사히글라스는 결국 6억3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시장(市長)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 400명 고용 규모의 LCD 부품 공장을 이전하려던 일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사(社) 유치전 당시에는 김관용(金寬容) 시장이 해당 회사를 방문, 평사원들을 모아놓고 구미의 여건과 인센티브 등을 1시간에 걸쳐 상세히 소개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 구미4단지에 공장을 설립 중인 다국적 기업만 8곳에 이른다.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소방서 등 공장 입주와 관련된 11개 기관 실무자들이 모여 기업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는 구미의 자랑이다. 공장 입주에 필요한 가스·전기 등의 설치를 비롯, 시청 각 부서를 일일이 상대하자면 1개월 이상 걸리는 각종 인·허가 절차를 한 번에 해결해 준다.
다국적 기업이 한국 투자에 있어서 가장 우려하는 노사분규 문제도 구미는 다르다. 구미에서는 지난해 2월 전국 최초로 공단단위에서 근로자와 사업주 간의 ‘산업평화선언’이 이뤄졌다. 시에서는 노사가 함께 공부하는 경영노동대학을 설립하고, 기업에서 추천받은 120명의 모범근로자에 대해 매년 해외연수 및 산업시찰 경비를 제공하고 있다. 4공단 입주를 진행 중인 도래이새한 박용철 과장은 “구미는 도시 전체가 기업을 위해 움직인다”고 말했다.
각종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1995년 이후에만 경북외국어고 등 23개의 초·중·고교를 신설했고, 기존 금오공대 외에 경운대와 기능대를 추가로 유치했다. 또 기존 문화예술회관 외에 선산문화의 집, 구미예술창작스튜디오 등 문화시설도 해마다 보강되고 있다.
기업들도 자신들이 받은 혜택을 시민들에게 환원하고 있다. LG그룹이 선산읍과 도량동에 건설한 복지재단이 대표적 사례다. 김관용 구미시장은 “산·학·연 집적을 통한 혁신클러스터가 완성되는 2008년 구미는 50만 인구의 강소(强小)도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