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한국불교사
가마타 시게오 / 신현숙 옮김/민족사
2565. 9. 10
제3장 고려의 불교
1. 諸王과 불교
諸王의 奉佛行爲 13
神宗
5년(1202) 10월, 경주인들이 영주를 공격했을 때 雲門賤(운문사승도) 및 符仁·桐華寺의 승려들도 영주를 공격했는데 도리어 공격을 받아 패주했다. 승려들이 군사를 조직하는 것은 중국 北魏의 佛敎匪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고려에 있어서도 같은 양상이었다. 신종 때에도 잇달아 소재도량 등 많은 도량을 설치했는데 이 시대에 바로 韓國禪을 일으킨 개조자 知訥이 출현하는 것이다. 희종 7년(1211) 제4 왕자가 출가하여 鏡智선사가 되었고 제5 왕자가 출가하여 冲明국사가 되었다. 강종 2년(1213) 6월, 승려 至謙을 왕사로 삼았다.
高宗
3년(1216) 일본 승려가 건너와 불교를 배우기를 요청했다. 이 시대에는 일본에서도 道元·親鸞·明惠 등이 대활약을 하던 시대이나 고려에 온 승려가 누구인지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3년 9월 契丹의 군사가 묘향산을 침입해 들어와 보현사를 소각했다. 다음 해 정월에는 승려들이 최충헌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최충헌의 군사로부터 공격을 받아 3백여 명의 승려가 참살되고 많은 승려들이 잡혀 갔다. 또한 도주한 승려 3백여 명을 南溪寺의 하천에서 참살하는 등 모두 8백여 명의 승려가 죽었다. 승려들의 반란도 점차 규모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 해 12월 최충헌은 術人 李知識의 말을 믿고 乾元寺를 파괴하고 또 북병의 침입을 물리치고 성종의 초상을 개국사로 옮겼다.
10년(1223) 8월 최충헌의 아들 崔瑀는 황금으로 13충탑과 꽃병을 만들어 홍왕사에 두었는데 무게가 2백근이나 되었다 한다. 19년, 몽고병이 침입하여 부인사의 장경판목을 소각했다. 禳兵을 위해 소재도량을 종종 개설하고 사찰에도 행차하였지만 25년(1238)에는 몽고병이 동경(경주)까지 공격해 들어와 탑을 소각했다. 이렇듯 국가가 위태로운 시기를 틈타 27년 12월에는 崔禳의 서자인 승 萬宗과 萬全이 무뢰한 승려들을 모아 식리사업을 시작하고 패당을 지어 극악의 비도를 행했다.
38년(1251) 9월 왕은 서쪽 성문밖에 있는 大藏經板堂으로 행차하고 백관과 함께 분향하였다. 현종 때 판목이 몽고병에게 소각되었던 것을 고종과 군신들이 다시 판각을 만들고자 도감을 설치하여 16년의 세월이 지나 겨우 그 사업이 끝났다. 대장경의 조인에 관해서는 뒷 절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고종은 화엄신중도량을 비롯해서 많은 도량을 개최하여 양화구복을 빌었다.
종진 옮겨 적고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