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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22
마태복음 5:17-20
율법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산상강론 초두에서 팔복을 통해 하나님 왕국의 본질과 핵심을 선포하셨다. 천국을 소유한 자 아니 하나님 왕국에 사로잡힌 자에게서는 그 왕국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이 다스리는 세상에서는 천국에 사로잡힌 자들이 박해를 받을 할 수밖에 없지만 천국 백성은 그것을 오히려 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왕국 백성의 정체성은 이 땅에서 소금과 빛의 존재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 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갑작스런 예수님의 선포는 당황스럽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과 잘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또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왜 율법과 선지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서가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은 계속해서 구약을 인용하면서 말씀의 성취를 여러 번 언급함으로 구약과의 연관성을 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마태는 구약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이방의 빛으로 오셨다고 선언하였고(4:12-16),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말씀하는 복(창 12:1-3)을 하나님 왕국의 복으로 산상강론에서 나타내었다. 산상강론 자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시내 산에서 율법을 선포하신 일과 같은 차원의 것으로 보여주었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자 헤롯의 공격을 받은 것 자체가 모세가 애굽에서 바로와 대적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과 같은 구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광야 실패를 완성하시는 예수님의 시험은 철저히 구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이었다.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천국에 대하여 선포하여 알리시는 이 일 자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선포한 일과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은 철저히 구약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예수님은 전혀 근거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각처에서 나아온 유대인, 즉 구약적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에게 이 선포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수천 년간 은혜를 누린 자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천국 복음이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은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히실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만이 복된 사람이며 의로운 사람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허황되고 황당한 선포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구약적 근거를 가지고 새로운 모세, 진정한 언약의 왕으로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라고 선포하셨다.
“율법과 선지자”란 유대인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한마디로 구약 성경 전체를 지칭한다. “폐하러”라는 말의 ‘카탈뤼오’는 ‘파괴하다, 부수다, 폐지하다’라는 뜻이고, “완전하게”라는 말의 ‘플레로오’는 ‘채우다, 충만하다, 충족시키다, 완성하다, 이행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무너뜨리고 파괴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진리로 충만하게 하시고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은 결코 구약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나 언약을 부인하고 폐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을 나타내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 왕국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부르고 다스리심에 있어서 모세와 선지자들에 의한 옛 언약의 체제 아래에서 주어진 말씀을 부인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취하는 것이요 충만하게 하는 것이고 완전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 즉 성취자, 종결자로 오셨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하셨을 때 요한이 거부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임 당하실 것을 암시한 말씀이다. 결국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이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더 이상 유대인들과 같이 행동으로 지켜 자기 의로 천국을 차지하려는 뜻을 완전히 차단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으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은 율법을 조항으로 만든 613가지 계명을 다 지키셨다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드러내셨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9-10)
새 언약은 옛 언약을 성취하고 완전하게 할 뿐 부정하거나 폐하지 않는다. 제사 제도와 성전이 폐하여졌고 절기들이 폐하여졌으며 구약의 레위인 제사장 제도가 폐하여졌기 때문에 폐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이 폐하여진 것이지 제사 자체, 성전 자체, 절기 자체, 레위인 제사장 자체가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유월절에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단번에 완전한 제사로 드리셨다(히 10:1-18). 그러기에 더 이상 동물을 죽이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고 절기와 성전이 의미가 없게 되었으며 인간 제사장이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18절). 기존에 보이는 하늘과 땅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계 21:1). 율법이 주어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져야 한다. 율법 세상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율법은 없어지지 않는다. 율법은 이루어지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의 일점 일획”이란 율법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율법이 의도하는 바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인데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19절). 계명을 크고 작은 것으로 나눌 수 없다. 모든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명이 아무리 크게 보이고 또는 작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율법의 근본이요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계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일이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다는 것은 그로부터 분리가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그는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 곧 지극히 작은 자라는 것이다.
반면에 천국에서 크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친히 행하며 가르치셨기에 천국에서 큰 자이시기 때문이다.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언약이다. 이런 점에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큰 자는 나중에 하나가 된 직은 자를 말씀으로 섬기게 된다. 섬길 때 그 어떤 계명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가르친다면 그는 큰 자이다. 이처럼 큰 자가 작은 자를 말씀으로 섬기는 자들을 교회라고 하고 하나님 왕국이라고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절). “낫지 못하면”의 헬라어 ‘페릿슈오’는 ‘넘치다, 풍부하다, 탁월하다’라는 뜻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였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누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될 수 있는가?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0-22)
십자가에서 친히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자이시다. 예수님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선포했던 모세보다 더 완전한 권위와 권세로 율법을 완성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롬 10: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그러기에 죄인인 우리들은 완전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다. 나의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내 믿음은 행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 나의 죄인 됨을 깨닫고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이다(2024090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