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태을도 소설치성 태을도인도훈
마음의 변화, 시각의 변화
2022. 11. 22 (음10. 29)
안녕하십니까, 태을도인 새달입니다. 지금 2022년도 11월이라, 학교에서는 2학기 막바지 평가작업이 한창입니다. 전 지금 초등학교 5, 6학년 음악교과를 맡고 있는데, 오늘도 평가내용을 나이스에 열심히 입력하고 왔습니다.
5학년을 데리고 사물놀이 중 별달거리 장단을 세 시간 가르쳐서 수행평가를 했었는데요, 세 시간이라고 해도, 사물악기에 대해 설명하고 악기 보여주고 한 번씩 만져보고 쳐보게 해서 본인이 어떤 악기를 다루고 싶은지 생각하고 모둠을 짜서 악기를 분담하는 데 한 시간, 그리고 별달거리 장단을 악기별로 연습하는 데 한 시간, 그리고 나머지 한 시간은 모둠별로 모여서 잠깐 맞춰보고 수행평가를 실시했습니다.
평가를 위해 실제로 악기를 가지고 제대로 연습한 시간은 한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수행평가를 할 때에는 장단을 제대로 치나 못치나, 또 사이사이 들어가는 사설을 또렷하게 잘하나 못하나, 일일이 체크하면서 평가를 했었는데요.
그런데 아이들이 의외로 참 잘하더라고요. 꽹과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평소에 만져보기가 어렵고, 또 장구는 북편을 치는 궁굴채를 반대쪽으로 넘겨 채편을 치는 테크닉이 필요한 장단으로 되어있거든요. 북도 처음 만져보고, 징도 장단은 간단하지만 들어가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의외로 어렵습니다. 게다가 징이 학교에 2개밖에 없어서, 자기 모둠에서 징을 맡은 아이들은 징 하나에 셋이 붙어앉아 돌아가며 연습해야 해서 악기를 손에 익힐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하는 동안 많이 즐거워했고, 제가 만약 5학년으로 돌아가서 저보고 하라고 하면 그 정도로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참 잘해줬습니다. 그래서 ‘잘함, 보통, 노력요함’의 3단계 평가를 하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잘함’을 주었습니다.
잘함을 주면서, 문득 20대 초반 임용교사로 재직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수행평가부를 제출하고, 교감한테 불려갔더랬습니다. 옆반은 60명 중에 ‘수’가 25~35명인데, 선생님반은 ‘수’가 열 명 남짓이라 왜 이리 성적을 박하게 주냐고 질책을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신참내기교사였던 저는 당당하게 항변했지요. 항목별로 꼼꼼하게 채점해서 나온 성적이라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결과가 이런데 어떻게 대충 잘 주냐, 공정하게 한 거다, 하고 말이지요. 아이들에게 이렇게 박하게 줘서 어떡하냐, 옆반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라는 교감의 강한 권고에도 그렇게 못한다고 젊은 패기로 뻗댔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점수를 잘 받고 싶어서 애쓰는 게 눈에 보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목을 세세하게 쪼개서 칼같이 기록하고 평가하는 바람에, 무사히 통과해서 수를 얻는 아이들이 적었습니다. 기대하던 성적을 못 받아 실망하는 표정을 보면서도, 저는 그걸 공정하다, 평가를 엄정하게 잘하고 있다, 자부하며 무시했지요.
사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항목을 세세하게 쪼개고 꼼꼼하게 누가기록해서 엄격하게 성적을 주는 게 얼마나 와닿았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지역은 부유하지도, 가정에서 생활지도가 그렇게 잘되는 곳도 아니었거든요.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차라리 점수를 넉넉하게 주어서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를 다니도록 하는 게 교육적으로 더 나았을 것입니다.
원래 제가 지적질을 잘하는, 다른 사람의 허점이 눈에 잘 들어오는 비판적인 사람입니다.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면 화도 잘 내고, 시비를 가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는데, 증산상제님을 만나고, 또 제 주변들의 인연들에 즐거워도 하고 고민도 하고 힘들어도 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특히 태을도를 하면서 증산신앙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지요.
증산상제님 말씀 중에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란 말이 있습니다. 또 ‘사단취장(捨短取長)’도 말씀하셨지요.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좋게 보면 다 좋은 것을...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저부터가 결점투성이 인간입니다. 시비를 가리기 좋아하고 지적하기 좋아하는 것 자체가 상극기운이지요. 그걸 나름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그렇게 화를 낼 이유도 필요도 없었는데. 내 주위 인연들은 다들 하느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서운해 했을까.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제가 그만큼 저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어왔다는 건데, 환갑이 훞쩍 넘은 나이가 되어서 이제사 철이 드는구나 싶습니다.
그러한 저를 이렇게 바뀌도록 계기를 마련해주신 천지부모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 그러한 저를 견뎌내면서 지금까지도 인연을 맺어온 가족들, 지인들에게도 참 고맙고 많이 미안합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저를 많이 생각하고 바뀌게 만든 태을도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바뀌어가는 것이 바로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마음 닦기’이며 고수부님께서 말씀하신 ‘마음닦는 공부’라는 것을, 태을도를 하면서 하나하나 느끼며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계속 저를 바꿔서, 정말 천지부모님이 원하시는 도제천하의 천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상생의 태을도인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여러분도 포기하지 말고, 또 우리의 든든한 뒷백인 천지부모님을 믿고서, 상생을 향한 진리의 태을세상을 향한 태을도인의 길을 힘차게 같이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또 그 길에 더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소설인데요. 겨울로 또 한 걸음 성큼 들어섰습니다. 점점 추워지겠지만, 그 추위 속에서도 풍성한 시간을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