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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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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자유 대기 농축 강화)의 결론이 꼭 자명할 필요는 없다. 이산화탄소는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동물은 이산화탄소에 질식해 죽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이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좋아한다. 이산화탄소에 듬뿍 노출된 식물은 더 크게 자란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이산화탄소 비옥화’라고 한다. 앞으로 지구상의 초록 생명은 열기와 가뭄에 시들겠지만, 한편으로 21세기의 답답한 공기에 많을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생장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후 변화(아마도 나쁜 것)와 이산화탄소 비옥화(아마도 좋은 것)가 상호작용을 할 것이며, 그 결과는 21세기가 내놓을 가장 중요한 답변의 하나일 거라는 얘기다.
쌀 농사꾼에게 있어 나쁜 소식의 하나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지표면 오존 농도의 상승이다. 오존은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질식시킨다. 지표면의 약 1/4이 오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존 오염의 피해를 세계 식량 생산과 관련하여 추산한 주요 예상 수치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가 어떤 자신감을 가지고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어렴풋한 그림자는 이미 느끼고 있다. 2008년 영국 왕립학술원은 오존 오염으로 미국에서만 매년 20~40억 개체의 농작물이 손상된다고 계산했다.
다른 FACE 연구소에서 이미 우울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세계 식량 안보에 대한 현재의 예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충분히 예상했던 결론이다. 그들은 또 오존이 기존의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야채를 기르기가 점점 힘들게 된 것이다.
2007년 중국의 쌀 수확량은 1억 8,700만 톤이었다. 중국의 국내 수요를 훨씬 초과한 양이다. 도시에서는 비만 인구가 늘고 있다. 당뇨병 병동도 더욱 분빈다. 특히, 중국인들은 고기를 많이 먹고 있다. 1989년에 도시 거주 중국인은 평균적으로 하루 열량의 21%를 지방에서, 66%를 탄수화물에서 얻었다. 1997년에는 지방의 비율이 33%로 높아졌다. 변화의 주요 원인은 고기 섭취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잘 먹은 식사 한 끼’는 보통 단백질 잔치다.
중국인들은 기적의 씨앗을 갖게 되었다. 첨단 종자 회사에서 만들어낸 유전자 변형 씨앗 말이다. 미국의 메인 주부터 인도 뭄바이까지 전 세계의 농장이 앞 다투어 밀과 쌀, 옥수수의 다수확 품종 씨앗을 받아들였다. 수확 결과는 놀랄 만큼 좋았다. 하지만 악명도 높다. 재배 시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며, 또 비료와 농약을 퍼붓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매번 파종할 때 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들은 미친 듯이 자란다. 중국도 이 씨앗을 땅에 심었고, 어마어마한 양의 질소 화학비료를 쏟아 부었다. ‘최고 비료 국가’라는 명칭을 다른 나라가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많이 말이다.
중국의 1인당 농작물 소비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생산량은 감소하는 중이다. 새로운 씨앗의 힘으로 이룬 수확량 증가는 중국과 서방 국가 모두에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유전자 변형의 기적 외에 식량 증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기후 변화의 그림자까지 엄습하고 있다. 이상 고온에 인구 과밀이다. 게다가 마법의 씨앗까지 효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 세계는 과연 뷔페 음식을 계속 내올 수 있을까? 아직 해답은 없다.
농업이 발명되기 전에 인류는 신선한 고기와 채소를 먹었다. 하지만 농경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풀의 씨앗 즉 곡식으로 만든 죽이 주식이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음식물의 질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미각의 즐거움은 반감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새로운 음식이 충치를 유발한다는 것이었다. 치과의사가 없던 시대에 결코 작은 불행이 아니다. 또한, 대부분의 곡물에는 일부 미량영양소나 다양한 영양소가 부족했다. 예를 들어, 옥수수에는 필수아미노산이 없다. 기장이나 밀처럼 가루로 빻는 곡물에는 철분이 없다. 쌀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는 무용지물이다. 단백질 결핍은 인체의 비타민A 사용 능력을 저해하는데, 이 때문에 많은 아시아 농부들이 시력을 잃었다.
나아가 농업 혁명은 아이들의 발육도 저해했다. 신석기 유적의 미성년 장골을 분석해 보면 농업이 뿌리를 내리던 기간에 그 길이와 골밀도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수렵‘채집인의 골격이 정착한 농사꾼의 그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인류는 산업혁명 시대에 와서야 1만 년 전 조상의 키를 회복했다.
식물이 푸르고 건강하게 자라려면 열일곱 가지 다양한 화학 원소를 섭취해야 한다. 이들 원소는 햇빛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물과 결합하여 당분, 단백질, 식물 조직 등을 형성한다. 열일곱 가지 원소 중에서 질소가 가장 중요하다. 질소는 인간의 아기부터 해파리, 박테리아에 이르는 모든 생체를 이루는 생화학적 벽돌의 하나이자. DNA 분자의 주요 구성물 중 하나이다. DNA는 모든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토대이다. 그리고 질소는 아미노산의 밑바탕이고 아미노산은 단백질의 밑바탕이다. 식품 포장지의 영양 성분표에서 흔히 보는 단백질은 우리와 같은 동물이 살고 자라는 데 꼭 필요하다.
질소의 문제는 돌아다니는 개체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공기 중에는 질소가 무척 많다. 지구 표면을 둘러싼 대기의 78%가 질소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행히도 분자의 형태이다. 두 개의 질소 원자가 이른바 삼중결합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식물은 이 분자에 반응할 수 없다.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흡수해서 단백질을 만들 수 없는데 화학 용어로는 ‘비활성’이라고 한다. 동물 역시도 호흡을 통해서는 질소를 사용할 수 없다. 이것을 몸 안으로 들이려면 반드시 섭취를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구의 토양에 갇혀 있는 질소는 굉장히 한정된 양이기 때문이다. 한 뙈기 땅에서 얼마나 많은 식량을 기를 수 있느냐는 바로 그 땅에 있는 질소의 양에 따라 정해진다. 물을 제외하면 이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없다.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간결하나 함축적인 말로 질소를 찬양한다. “농업의 주된 목표는 흡수가 가능한 어떤 형태로든 질소를 생산하는 데 있다.”
물론 우리 몸은 다른 원소들 역시 필요로 한다. 탄소는 탄수화물의 형태로 섭취한다. 사탕수수 밭은 막대한 양의 탄수화물 열량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없다. 사탕수수만 먹고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어떤 땅의 수용능력, 그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작물의 한계량, 즉 그 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질소의 양이다. 질소는 잉여 식량과 교역과 인구 성장을 제한하는 병목인 셈이다.
질소가 농업에 유용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원자가 서로 갈라져서 다른 무언가와 결합해야만 한다. 보통의 재결합 상대는 산소이다. 이렇게 결합해서 나온 것이 질소산화물이다. 수소도 짝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암모늄이나 암모니아가 만들어진다. 질산 이온은 식물 뿌리에 쉽게 흡수되는 장점이 있다. 훌륭한 비료가 된다는 의미다. 단, 이들이 음이온이 아니고 토양 입자에서 빠르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토양 입자들도 마찬가지로 보통 음전하를 띤다. 특히 모래땅에서 그러하다. 반대로 암모늄 이온은 매력적인 양이온이다. 사실상 토양이 이들을 끌어당긴다. 빨리 씻겨 내려가지 않고 배고픈 식물의 뿌리 근처에 오래 머문다는 의미이다. 암모늄 이온은 소멸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암모니아는 농부를 위한 최적의 질소화합물이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공기 중의 무용한 질소를 식물에 유용한 화합물로 바꾸는 데는 딱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첫째는 번개가 치기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번개는 분자를 둘로 쪼갠 다음에 주변의 산소 원자와 결합시켜 질소산화물을 만든다. 아니면 수소 원자에 들러붙어 질산이 되게 한다. 이들은 수증기에 흡수된 뒤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식물 안으로 들어간다. 비는 정말로 작물에 고마운 존재이다.
질소를 고정하는 더 확실한 방법은 하늘이 아니라 땅 아래에 있다. 근류균이라는 박테리아는 콩과 식물의 뿌리혹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근류균에는 ‘질소 고정 효소’가 있는데 이것이 분자의 파열을 촉진한다. 반으로 쪼개져 나온 질소 원자는 주변의 수소 원자와 결합하여 암모니아를 형성한다. 질소 고정 효소에는 이러한 특별한 힘이 있다. 근류균은 이 효소를 만드는 극소수 생물 중 하나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콩과 식물에는 질소를 수월하게 토양에 고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완두콩, 알팔파, 클로버 등은 모두 지친 땅을 위한 자양강장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작물에 질소를 공급해온 가장 주된 방법은 이것을 땅에 펼쳐놓는 것이었다. 밭에 거름을 뿌린다는 말이다. 인간 배설물에는 질소가 많지 않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 오줌, 머리카락, 손톱 자른 것도 마찬가지다. 외양간 거름은 더욱 강력하다. 하지만 넉넉한 똥 무더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지력 고갈 문제를 완전히 풀 수는 없다. 대부분의 작물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탐욕스럽다.
예를 들어보자. 쌀과 밀, 옥수수와 같은 주요 곡물은 7%에서 14% 가량이 단백질이다. 질소 함유량으로 환산하면 1.1~2.2% 사이가 된다. 설령 우리가 이들 곡물을 먹고 난 모든 찌꺼기를 다시 원래의 들판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더라도, 이를테면 가을밀 8톤을 생산한 1헥타르의 땅은 여전히 지구에 매년 약 130킬로그램의 질소를 요구하는 셈이다. 쌀의 경우도 사정이 낫지는 않다. 쌀은 단백질 함량이 낮기는 하나, 대부분의 논은 이모작을 한다. 그래서 토양의 연간 질소 순손실을 따져보면 밀밭의 경우와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수치로 질소를 잃는다고 할지라도 만약에 소규모 지역 단위로 식품을 생산하고 소비한다면 토양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농부들은 거름을 들판에 뿌리고, 또 피복작물인 글로버 등을 돌려짓기하여 땅이 지력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신경 써서 관리한다면 농장의 토양이 파괴될 이유란 하나도 없다.
오늘날 하버-보슈법은 여전히 합성 암모니아를 제조하는데 사용된다. 암모니아는 액체 질소 비료와 요소의 주재료이다. 요소는 식물 비료인 동시에 단백질 보충용 가축 사료로도 쓰이며, 또 플라스틱부터 폭발물 제조에 이르는 광범위한 용도로 쓰이는 공업 원료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이제 고정된 질소를 만든다. 어떤 자연적 공급원보다도 질소의 고정 상태가 좋다. 지구가 생산할 수 있는 단백질의 한계를 정하는 고대의 문지방을 넘어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질소 비료의 약 1/3을 사용한다. 2006년 중국은 질소 비료 3,100만 톤을 들판에 퍼부었다. 밀밭이 주요 수혜자였다. 미국에서는 매년 1,200만 톤을 땅에 뿌린다. 인류는 무에서 식품을 창조할 능력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메마른 땅과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화학품 한 자루는 지속가능성과 토양 고갈을 막는 모든 오래된 방법을 잊게 만들었다. 이것은 땅과 물의 자연적 한계가 식품 생산의 자연적 한계로 이어지는 제약을 깨뜨렸다. 오늘날, 지구 인구의 40%가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단백질에 의존해서 산다. 약 30억 명의 인구가 인공적으로 고정시킨 질소의 화학적 토대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세포는 다름 아닌 휴스턴과 인촨과 첸나이의 희뿌연 공업 지대에 있는 암모니아 공장의 생산품인 셈이다. 푸르른 지구의 산물이 아니란 말이다.
어쨌거나 합성 단백질은 한때 기아에 허덕였던 가난한 땅의 아이들을 더 크고 건강하게 길러냈다. 그리고 최대 부양 인원 30억 명에 맞게 진화해온 지구는 이제 인구 100억 명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우리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유사한 문제에 직면한다.
이제 토양 고갈은 과거처럼 치명적이지 않다. 지력이 다할 때까지 땅을 혹사한 다음에 불모지가 되면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나서는 오랜 반복 과정을 화학비료가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 서기 6년 고대 이집트에 흉작이 들었을 때 로마인들이 굶주렸다면, 오늘날은 지구 전체가 하버-보슈법에 대한 의존과 결과의 사슬에 묶여있다. 인공 비료가 없다면 우리는 토양의 질소를 고정하기 위하여 다시 콩을 심어야만 한다. 아니면 초석과 구아노를 파내든지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옥수수 생산은 붕괴한다. 쌀은 1년에 단지 한 번만 수확할 수 있게 되고 고기는 다시 사치품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질소의 안정적 공급이 없다면 세상은 굶주리게 된다.
하버-보슈법은 사실 거짓 해결책이다. 이것은 질소에 대한 우리의 의존을 질소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의존으로 바꾸었다. 화석연료가 없다면 질소 생산은 멈춘다. 현대 세계의 다른 너무 많은 것들처럼 질소는 화석연료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의식 있는 소비자들은 쇼핑카트에 담긴 식료품이 모두 공평한 조건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예를 들어, 고기는 화석연료를 낭비한다. 그냥 옥수수를 생산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옥수수를 생산해서 이것을 다시 여러 달 동안 소에게 먹여서 살찐 고기를 얻는 것보다 기름이 덜 든다. 기름값이 싸다면 이렇게 소를 사육해서 도시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스테이크용 고기를 공급해도 경제적 타산이 맞는다. 지난 60여 년 동안은 보통 그래왔다. 하지만 기름값이 훨씬 비싸질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유지될 수 없다. 하버-보슈법은 사실 기적의 기술이다. 수많은 인간의 삶을 지속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가스도 필요로 한다. 고열을 내기 위한 연료로, 또 느슨해진 질소 원자와 결합시킬 수소의 공급원 양쪽 모두로서 말이다. 결국 화석연료가 인류의 배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식생활을 환경적 명령에 따라 바꿀 것이냐, 경제적 명령에 따라 바꿀 것이냐, 어느 쪽이 되었든 인류의 식습관은 변화해야 한다. 식품 체계, 광대하고 얽히고 설킨 세계 식품 제국은 연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버-보슈법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가스에 의존한다. 가스를 채운 풍선에 이끌려 하늘을 떠다니는 만화 속 사람을 상상해 보자. 그는 추락하지 않도록 풍선의 끈을 꽉 붙잡고 있어야만 한다. 불안정한 시장과 정부 보조금과 배고픈 저개발국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만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땅으로 내려 올 때 꼭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할 필요는 없다. 농부들은 질소를 더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는 희망적인 발전이다.
오늘날 농부가 실제로 밭에 뿌리는 질소 중에서 약 절반만 이 농작물에 흡수된다. 가장 효율적인 농법을 사용하더라도 질소 흡수율은 70%를 넘기 힘들다. 이와 관련한 연구가 유럽과 아시아에서 꾸준히 진행됐다. 곡물 밭에 살포된 질소가 헥타르 당 150킬로그램 이하일 때는 흡수율이 약 65%이지만, 일단 그 이상이 되면 흡수율은 곤두박질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오늘날의 경작지에 뿌려지는 모든 질소 비료의 약 절반은 그냥 버려지는 거나 다름없다. 냇물과 강으로 씻겨 내려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물길 오염의 약 70%의 책임이 농업 화학품들에 있다. 경작지에서 흘러나온 영양 물질이 미국 전체 지표수의 37%를 오염시킨다. 이 물은 사람이 먹을 수 없고 물고기도 살 수 없다. 질소는 미시시피 강과 멕시코 만과 체서피크 만을 죽이고 있으며, 또 라인 강과 황허 강고 양쯔강을 빠르게 오염시키는 중이다.
피해는 돌이킬 수 없지만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부는 식물이 실제로 생장 중이어서 식욕이 왕성할 때 비료를 뿌려줌으로써 질소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또 트랙터를 GPS와 연결하면 작은 구역 단위의 맞춤 경작이 가능하다. 소비자는 곡물 사료가 아니라 풀만 먹여 키운 소고기를 구입하는 방법으로 돕는다. 그렇게 육류 생산 과정에서 옥수수를 뺄 수 있다. 비료의 수요도 줄이고 말이다. 잘 사는 나라의 정부는 자국 내 비료 사용에 세금을 부과하여 그 돈으로 토양이 척박한 빈곤국을 도울 수 있다. 모두가 질소를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박테리아는 축축한 유기물에서 번식한다. 그러니 식품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것은 항상 식품 보존의 목표였다. 박테리아가 살 집을 빼앗는 것, 건조는 아마도 인류의 가장 초보적인 식품 보존법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청어의 내장을 제거하여 차가운 햇볕 아래 걸어 말리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식품에 연기를 실컷 쏘이는 것, 훈제였다. 그러면 식품이 마르면서 그 분자 구조가 탄화수소로 가득 메워진다. 소금에 염장하는 것 역시 수분을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과일은 설탕을 더하면 아주 좋다. 이것은 화학적으로 젤리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젤라틴 껍질로 식품을 감싸서 보호하는 것이다 고기를 냄비에 넣고 뭉글하게 삶는 조리법처럼 말이다. 절임도 좋다. 식초와 같은 약한산이나 소금물, 알코올, 혹은 식물성 기름에 담그면 된다.
식품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보존 방식의 대안 하나가 발효이다. 발효는 일종의 ‘분자 예술’이다. 이번에는 박테리아가 좋은 용도로 사용된다. 식품을 단순히 썩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한다. 발효 식품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지만 역사적으로 인류가 가장 즐겨온 식품 중 하나였다. 술은 보통 곡물과 과일로 담근다. 물론 몽골인과 같은 유목 민족은 젖으로 술을 만들기도 한다.
산업시대가 오기 전에 쓰였던 아마도 가장 이상한 방부제는 초석이었을 거다. 초석은 비료로 또 화약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땅에서 긁어 채석하는 이것은 지옥불 같은 냄새를 풍긴다. 고대 인도인과 중국인은 초석이 음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로마인은 초석에 고기의 색깔을 불그스름하게 해주는 특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오늘날에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같은 육가공품에 질산 변형물(아질산나트륨 등이 발색제)을 직접 주입하여 곡괭이로 초석을 캐는 수고를 덜어준다.
캘리포니아 주 어디서나 농부는 농작물 위로는 농약을, 아래로는 화학비료를 쏟아 붓고 있다. 농업은 과학적 효율성의 정점을 달리고 있지만 강물이 독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다들 외면한다.
한때 별 볼일 없는 밀밭이었던 캘리포니아가 원예 농업의 노다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관개 덕분이다. 그러나 물이 오염되면서 캘리포니아 주의 대수층도 말라갔다. 원래 농부들은 냇물이나 강물로 밭에 물을 댔다. 땅속 깊이 취수공을 박아서 지하수를 퍼 올리는 방법을 배운 때는 1920년대였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지하수를 뽑아 썼다. 빗물로 다시 채워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1980년대의 추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지하수면은 매년 평균 15센티미터에서 1미터 정도씩 줄어들었다고 한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고성능 펌프로 너무 많은 지하수를 빨아들여서 땅이 실제로 움푹 내려앉기도 했다. 샌와킨 계속에서 펌프질을 시작한 이래로 약 135만 헥타르의 땅이 적게는 30센티미터에서 많게는 9미터까지 가라앉았다.
물론 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수층에서 물을 뽑아 쓰는 것은 별로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머지않아 물은 곧 마를 것이다. 캘리포니아도 농사 짓는 방법을 바꿔야만 할 것이다.
수질 오염과 지하수 고갈은 농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토마토처럼 특정 작물을 특화시켜 키우는 것은 수익성이 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토마토 농부들은 현대적 수확 기계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빚을 졌다. 이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매년 토마토 밭에 심어야 할 최소 수량이라는 게 있다. 더 나아가, 토마토 가공 회사는 안정적 원료 확보를 위해서 재배자에게 장기 공급 계약을 강요한다.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토마토를 길러 매년 같은 양을 납품하는 것이다. 그러니 설령 환경 의식이 있는 농부라고 할지언정 농약을 덜 쓰거나 돌려짓기를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토마토와 관련해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낙농업의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캘리포니아는 목장을 통합하고 현대화함으로써 미국 낙농 여왕의 자리에서 위스콘신을 몰아냈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소 무리가 빽빽하게 모일수록 그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축산폐기물을 만들어 낸다. 캘리포니아의 지하수는 이제 소똥과 섞여 걸쭉해졌다.
특화 작물을 기르는 이유는 모두 돈 때문이다. 재배에 자연적 이점을 지닌 몇 개의 수익성 좋은 작물을 골라서 지하수와 농약과 비료의 뒷받침으로 키운 다음, 시장에 내다 팔았다. 자급자족은 상관없다. 오로지 수익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1890년대에 불경기가 닥치고 밀밭에 흉년이 들어 농촌 경제가 무너졌을 때 캘리포니아 농부들은 특화 작물을 포기하기보다는 연방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서 로비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황량하고 생기 없는 풍광에서 양상추를 기르는 ‘초현실주의 농법’을 바꾸기보다는 정부가 주는 수표를 받는 편이 나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20세기 후반의 극단적 전문화는 ‘제3차 체제’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옛날의 정육 업계와 과일 산업을 대체했다. 제3차 체제는 단순한 산업화 이상이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단일 작물 재배였다. 광대한 땅에서 단일 품종 작물이 자란다. 농약을 물처럼 줘야만 생존할 수 있는 품종이다. 촌락지리학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단일 재배를 ‘공간 동질성’으로 표현한다. 자연의 법칙은 ‘간편 종합 재배액’ 깡통으로 대체한다. 토양에 질소를 다시 채우기 위하여 비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과 깍지콩 7만 톤 수출 계약을 맺는다.
제3차 체제의 밑바탕에 깔린 전제는, 사람들이 빵 한 덩이를 2.99달러에 살 때 여기서는 수질 오염, 산림 벌채, 지구온난화, 사회의 파멸 같은 추가 비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히 대부분의 소비자는 쇼핑 영수증에서 이러한 ‘유령 달러’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식품이 싸다고 착각한다. 만약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이러한 비용은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식품은 싸지 않다. 우리는 이것이 단지 ‘공짜 점심’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경제에는 생산과 소비 사이에 복잡한 일련의 연결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농부가 렌즈콩을 기르는 순간과 소비자가 이것을 먹는 순간 사이에 연료, 노동, 가공, 포장, 광고, 유통 등의 세세한 단계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비용을 계산하기란 매우 어렵다.
오늘날의 경우가 청동기 시대 중국이나 로마제국, 혹은 19세기 시카고에 있었을 이러한 단계를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판매 가격과 실제 생산 비용 사이에 기이하리만치 커다란 간극이 생겨난 것은 인간이 얻은 새로운 능력 때문이다. 냉장 기술의 발달로 식품을 장기간 저장할 수 있게 되고, 또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한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진 이유이다. 하지만 현대 식품 제국은 그 본성이 아니라 단지 규모만 바뀌었다. 더 크게 말이다. 로마와 중세 유럽을 괴롭힌 문제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냉동 농축 과즙을 만들려면 과즙에서 대부분의 수분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슬러리(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걸쭉한 물질)가 만들어지면, 이것을 냉동하고 포장하여 트럭에 싣고 항구로 가져가서 대기 중인 냉동 화물선에 싣는다. 슬러리를 실은 배는 전 세계로 출항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물만 타면 된다.(우리나라에는 음료 회사가 이 냉동 농축 과즙에 물을 타서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미국, 유럽에서는 냉동 농축 주스를 사서 물에 타 먹는 게 일반적이다)
오렌지 주스는 세계 식품 제국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조각이다. 인류가 마시는 음료의 약 15%가 주스이다.
주스에서건 산업에서건 집중은 문제를 만든다. 냉동 농축 오렌지 주스는 신선한 주수보다 맛도 영양도 떨어진다. 그리고 전 세계가 소비할 오렌지 주스를 몇 개 회사가 몇 군데 특정 재배지에서만 생산한다는 얘기는, 만약에 해충이 오렌지 나무를 보호하는 농약의 방책을 뚫는다면 세계의 주스 공급이 완전히 파탄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황룡병으로 알려진 감귤녹화병은 감귤나무이라는 아시아의 한 벌레가 퍼트리는 세균성 질병이다. 황룡병 때문에 오렌지 농부들은 나무를 아예 농약에 푹 담글 수밖에 없었다. 나무에 꽃이 필 때 농약을 뿌리고, 열매를 맺을 때 뿌리고, 그리고 나뭇잎에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살균제를 섞은 노약 칵테일로 마무리 지었다. 캘리포니아 토마토 재배지와 마찬가지로 오렌지 농장에서도 농약은 주변 환경을 독성으로 바꾸어 악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오렌지 산업은 만약 정부의 보호가 없다면 감귤나무이가 득실거리는 오렌지 나무 신세가 될 것이다. 곧 쓰러져 죽을 정도로 위태롭다는 말이다. 플로리다의 오렌지 주스 산업이 브라질에 완전히 짓밟히지 않았던 이유는 관세와 ‘플로리다 평형세’가 생산 비용의 차이를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21세기 글로벌 식품 제국은 정말로 병이 들었다. 농축 오렌지 주스는 어떻게 되는가? 상품 시장, 수송 선단, 도매상, 쇼핑 카트의 파악이 불가능할 만큼 어마어마한 조직체는? 생산 비용과 판매 가격은 계속 그 간격이 조금씩 더 벌어지고 있다. 식품 교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긴 자본의 실에 엉켜 있다. 그 실로 계속해서 풀기 힘든 복잡한 매듭을 묶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