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086]金之岱-忠孝雙修(충효쌍수)
忠孝雙修(충효쌍수)
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충효쌍수〉(忠孝雙修))라는 시를 지어 붙였다
김지대(金之岱)공은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김지대金之岱,영헌(英憲), 김중룡(金仲龍)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이부상서,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 첫 이름은 김중룡(金仲龍).
생애 및 활동사항
1217년(고종 4) 3만 명의 거란병(契丹兵)이 침입하였을 때, 아버지를 대신해 출전하였다.
모든 군사들이 방패머리에 기이한 짐승을 그렸으나, 김지대는 “나라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해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는
시를 지어 붙였다.
원수 조충(趙沖)이 이를 보고 중요한 자리를 주었
다. 1218년 조충이 시험관으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그를 일등으로 발탁하고,
전주사록(全州司錄)에 임명하였다. 김지대는 고아와 과부 등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펴 구하고,
강호(强豪)를 억제해, 이민(吏民)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 뒤 내직으로 들어와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을 맡았다.
1240년(고종 27) 전라도 안찰사로 있을 때, 진도에서 최우(崔瑀)의 아들
최만전(崔萬全)이 횡포를 부리면서 자기의 수하인
통지(通知)를 보내 자신의 요구를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응하지 않고 직접 최만전을 만나 요구를 즉석에서 들어주었다.
또 다시 통지를 보내 여러 가지를 요구하자, 통지를 묶어 강물에 던져버렸다.
최만전은 원망하였으나 김지대가 청렴하고 근엄해 감히 해치지를 못하였다.
1243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최린(崔璘)과 함께 비서소감(秘書少監)으로
몽골에 사신으로 갔다. 1255년 판사재사(判司宰事)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진사를 뽑았다.
1258년 몽골병이 침입하자, 여색만 탐하고 군무를 소홀히 하던 북계지병마사(北界知兵馬事) 홍희(洪熙)를 대신해 김지대를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에 승진시켜 파견하였다. 이에 서북 40여 성이 안도하였다 한다. 1260년(원종 1) 12월 정당문학(政堂文學)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오르고, 1261년 5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서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해 수태부(守太傅)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하고, 오산군(鰲山君: 鰲山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에 봉해졌다.
풍채가 훌륭하고 시(詩)와 문장에 뛰어났다고 고려사에 적혀 있다.
그는 문무를 겸한 명신으로 고려의 8대시인이자 다도(茶道)로서도 명성이 있었다고 한다.
청년기
28세 때인 1217년(고종 4)에 거란이 침입하자 태학생(太學生)으로서
군대에 자원하여 원수(元帥) 조충(趙沖)을 따라 강동의 싸움에 참가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군사가 이 호신용의 의미로
방패에 기이한 동물(예: 용, 호랑이, 기린 등)이나 도깨비를 그리는 것이 예사였으나,
그는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
〈충효쌍수〉(忠孝雙修))라는 시를 지어 붙였다
마침 거란 토벌군 총사령관 조충이 군사를 점검하다
그의 방패를 보고 놀라 비범한 사람이라 여기고 가까이에 두어 중용하였다
그는 큰 공을 세우고 이듬해 3월에 개선하였다.
1218년(고종 5) 5월 김지대는 문과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하여 관직의 길로 나아갔다
전주사록(全州司錄)으로 있으면서 고아와 과부 등
어려운 사람들을 구휼하고 강호(强豪)를 억제함으로써,
호남의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내직(內職)으로 들어와서는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을 맡았고
당대의 대학자인 최자(崔滋) 등과 교유하였다.
백과사전에서..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