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예안면의 한 농민과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지도사가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칼라병·TSWV) 피해를 본 고추밭을 살펴보고 있다. 원 안은 칼라병에 감염된 고추로, 얼룩덜룩한 무늬가 생겨 상품성이 없다.
안동·영양·청송·예천 등지서 대거 발병…농가 불안감 커져
서해안 중심으로 나타났던 ‘고추 칼라병’ 동쪽으로 확산 강원 강릉·삼척도 일부 피해
총채벌레가 바이러스 옮겨 나무 줄기·잎 검게 썩고
열매엔 얼룩덜룩 반점 생겨 수확해도 내다팔 수 없어
지역 농기센터 대책마련 고심 “내병성 품종 도입 검토 필요”
대표적인 고추 주산지로 꼽히는 경북 안동의 예안면 일대. 8월이면 고추 수확으로 한창 바빠야 하지만, 16일 찾아간 이곳엔 바싹 마른 고추줄기만 남은 밭이 곳곳에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잎은 검게 말라붙었고, 고추는 얼룩덜룩한 반점이 생겨 상품성이 없어 보였다. 고추밭을 초토화시킨 건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칼라병·TSWV). 4~8월 수시로 바이러스가 발생해 예안면 일대 고추밭 수십곳에 피해를 준 것이다. 33년째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박수만씨(61)는 “탄저병은 열매 일부라도 수확할 수 있었지만 이 병은 열매를 하나도 안 남기고 고추를 죽인다”며 “우리 지역에서는 이 병을 처음 본다”고 말했다.
서해안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고추 칼라병이 동쪽으로 확산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동안 경북·경남 내륙과 동해안의 고추 재배지는 상대적으로 칼라병의 ‘안전지대’로 여겨졌지만, 올해 바이러스가 대거 발생하며 앞으로 고추재배에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북도농업기술원 영양고추연구소의 작황 조사에 따르면 올해 안동을 중심으로 영양·청송·예천·봉화·의성에서 칼라병 발병이 확인됐다. 그동안 경북의 한두개 시·군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난 사례는 있었지만, 이처럼 광범위하게 발생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강원 강릉·삼척의 일부 농가도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칼라병에 감염된 고추는 면역력이 약한 신초(새순)부터 서서히 오그라들다가, 전체 줄기와 잎이 검게 썩어들어간다. 열매에는 얼룩덜룩한 반점이 생겨 수확을 해도 내다팔 수 없다. 총채벌레가 바이러스를 몸속에 품은 채로 밭을 옮겨 다니며 감염을 시키는데, 한번 바이러스에 걸리면 뚜렷한 약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충남 예산에서 처음 발생했던 칼라병은 그동안 서해안을 따라 확산하는 흐름을 보였다. 충남 태안·서산, 전북 고창, 전남 신안으로 영역을 넓힌 바이러스는 인천 강화까지 퍼져 고추농가에 큰 피해를 줬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인 총채벌레가 큰 산이 없는 서쪽 해안가를 따라서 활동범위를 넓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총채벌레가 서해안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 건 2~3년 전. 충남 청양, 전북 진안·임실 등 서해안 내륙은 물론 전남에서 경남을 거쳐 경북 경주로 북상하는 양상을 보였다. 권오훈 도농기원 영양고추연구소 연구사는 “총채벌레는 크기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서서히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경북에서 알이 월동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에 바이러스가 확인된 경북 북부지역은 전국 고추 생산의 약 20%를 차지하는 곳으로 지역 농업기술센터는 총채벌레 방제와 내병성 품종 도입 등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권순하 안동시농기센터 원예기술팀장은 “올해는 농가들이 바이러스가 생소해서 뒤늦게 감염을 확인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지역에 내병성 품종 도입을 검토해야겠지만 아직 감염 사례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데다 내병성 품종 가격이 일반 품종보다 20~30% 비싸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육묘단계에서부터 방제교육을 할 계획이지만, 영남지역 역시 칼라병의 취약지역임을 농가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