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고이즘(Jingoism)
1. 개념
징고이즘(Jingoism)은 호전적·배타적·맹목적 애국주의 또는 강경 외교정책을 의미한다. 즉, 편협한 애국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배타적 애국주의 등을 말하는 것으로서 넓은 의미로는 광신적 대외강경주의자, 저돌적 주전론자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징고이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1870년대의 러시아-투르크전쟁 때 과거부터 있었던 마술사의 구호인 ‘Hey Jingo!’에서 유래한 ‘by Jingo!(당치도
않다, 어림도 없다는 뜻의 강조문구)’를 인용한, 다음과 같은 영국의 대 러시아 강경정책을 노래한 애국적인 속가에서 유행하였다. “싸우고 싶지는
않지만 싸우겠다면 싸우자, 바이 징고! 배도 있고, 군대도 있고, 돈도 있다”(We don’t want to fight, but by
Jingo! if we do, we’ve got the ships, we’ve got the men, we’ve got the money,
too). 그 후부터 영국의 수상 디즈레일리(B. Disraeli)의 대외정책 지지자인 주전론자를 징고(jingo) 또는
징고이스트(jingoist)라 부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878년에 징고이즘이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징고이즘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정책을 피력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이는 1877년부터 1878년까지 이어졌던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원조하기
위해 전쟁에 개입해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전론자들에 의해 구체화된 것이다.
한편, 제국주의(imperialism)란 말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1877년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려고 하였을 때 영국의 총리 디즈레일리가 무력행사에 의한 강경정책을 취하여
이른바 징고이즘(jingoism)이 생겨난 이후부터이다.
이러한 징고이즘은 프랑스어로 사용하는 쇼비니즘(chauvinism)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례
1) 영국의 포클랜드 침공
분쟁은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제도에 대한 주권행사를 둘러싸고 1982년 벌인 제한적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분쟁의 요인은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1820년 말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선포하고 1826년에 자국민을 정착시켰으나, 1832년 들어 영국이
동 제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착민을 추방하고, 식민지를 함에 따라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이 후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제도를 말비나스(Islas Malvinas)로 호칭하며 주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2천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포클랜드 등 3개 제도를 침공하였고, 18,000명의 병력을 증원하여 이 제도들을 점령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은 4월 2일 기동부대의 파견을 결정, 4월 26일 남부 조지아 섬 탈환을 시작으로, 5월 21일 카를로스 섬에 상륙하였다. 영국은 6월
14일 스텐리항을 탈환하여 클랜드 주둔 아르헨티나군 사령관인 메넨데즈장군의 항복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영국의 포클랜드 침공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미에 대한 유럽 식민지배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전적·배타적 애국주의 또는 강경 외교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징고이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교도 유격대와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 사이에 내전양상이 있었는데, 내전의 원인은 1978년 4월
좌익 장교들이 중도파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전복시킴으로서 발발했다.
지지기반이 약했던 새 정부는 소련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만들어가면서
무자비하게 반대파를 숙청하고 광범위한 토지개혁과 사회개혁을 실시함으로써 독실한 이슬람교도들과 많은 반공산주의적 대중들로부터 원한을 샀다.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항하는 이슬람교도 폭동이 일어났고 칼크당과 파르캄강 연립정부 내에서도 내분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을
자극해 1979년 12월 3만 명의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요인을 제공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0만 명의 소련군이 대도시와 중소도시
및 주요 군사주둔지를 장악하고 인구를 감소시켰으며 주민들의 탈주를 불러 1982년까지 약 28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이 파키스탄 수용소로
도피했으며, 150만명은 이란으로 탈주했다.
이후 1988년 소련군이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비동맹국가로 다시 복귀한다는 협정이
미국,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소련사이에 맺어졌다. 결국, 1989년 고르바초프 집권기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완전히 철수하여 전쟁은
일단락되게 된다.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은 공산주의를 유지하려는 소련의 호전적·배타적 애국주의, 그리고 강경 외교정책이라는 점에서,
징고이즘과 유사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평가
호전적·배타적·맹목적 애국주의, 강경 외교정책 등을 특정유래를 근거로 징고이즘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강경 외교정책인 징고이즘이 나타난 배경을 단순히 제한된 사례로서만 조명할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입체적인 요인에 의해서 분석하여 도출하는 것이 좀
더 객관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Chesterton, G. K.(2007), What's Wrong With the
World, Quiet Vision Pub.
Hobson, J. A.(2010), The Psychology of Jingoism,
Nabu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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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징고이즘, 영국의 포클랜드 침공,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저 자: 양승일(ysivd@cyc.ac.kr;ysivd@korea.kr)
작성일:
201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