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보양 음식으로 사랑받았던 인삼정과는 인삼의 쓴맛은 없애고 은은한 향과 달콤한 맛이 더해진 고급 음식이다. 향이 짙고 육질이 단단한 풍기 인삼을 사용하고 비법과 정성을 다해 만든 김영희 명인의 인삼정과는 부드러운 식감, 고운 색과 모양을 자랑해 현대인을 위한 고급 영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향이 깊고 단단한 풍기 인삼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나고 자라 결혼한 풍기 토박이 김영희 명인. 어린 시절부터 인삼 농사를 짓는 부모님 덕에 인삼을 말리고 인삼을 이용해 손님상을 차리는 일을 돕곤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인삼 농사를 크게 지으셨어요. 인삼은 가공해서 판매했는데 농사지은 것만으로는 모자라 인근 지역의 인삼까지 구입하곤 하셨죠. 가을이 되면 마당에 100여 명이 넘는 아낙들이 모여 인삼을 손질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답니다. 집 전체에는 인삼 향이 가득했지요.”
수돗물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인삼 손질은 주로 삼베로 했다. 아낙들은 삼베를 입에 물고 인삼 사이사이를 닦아낸 뒤 칼로 일일이 깎아 인삼다리를 접어 실로 묶는 작업을 쉼 없이 했다. 이렇게 묶은 삼은 연탄불에 말리고 다시 실을 풀어 햇빛에 말리기를 수없이 반복해 백삼으로 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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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뇌두(머리)는 열이 많아서 수삼으로 먹을 때는 제거하는 것이 좋다. 반면 가열해서 만드는 홍삼이나 정과는 뇌두까지 모두 사용해도 된다. 2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겨낸 수삼은 채반에 베보자기를 깐 후 올려 끓는 물에 삶아낸다.
우리나라 인삼 재배 규모로는 개성이 으뜸이었고 그다음이 금산과 풍기였다. 그중 풍기 인삼은 규모 면에서는 가장 작았지만 품질로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곤 했다.
“산삼이 약효가 뛰어난 이유는 춥고 기압이 높은 산에서 자라기 때문이에요.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삼일수록 약효가 뛰어나죠. 풍기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특히 가을이 깊어요. 일교차 역시 커 인삼의 조직이 단단하고 잘랐을 때 내공이 없어요. 삼계탕에 풍기 인삼을 넣어 끓이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삼이 풀어지는 법이 없지요. 향도 진해 다른 지방의 인삼에 비해 가격도 후하게 받는 편인데 작은 지역이다 보니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특히 풍기 인삼은 중국산과 비교했을 때 그 품질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이 김영희 명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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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희 명인이 즐겨 찾는다는 소백인삼영농조합. 직접 인삼 농사를 지어 팔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수삼 외에도 소백인삼영농조합에서 직접 가공하는 홍삼과 백삼, 홍삼농축액 등을 판매하고 있다.
“중국 인삼이 국산으로 둔갑해 판매되는 경우도 많은데 중국 인삼과 한국 인삼은 육안으로도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중국산은 뇌두 즉 인삼의 머리 부분이 몸통보다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또 직삼이기 때문에 잔뿌리가 없어요. 만져보면 단단하지 않고 풀뿌리 향이 납니다. 반면 국산은 뇌두보다는 몸통인 ‘주근’과 다리인 ‘지근’이 발달되었습니다. 오래된 나무처럼 잔뿌리가 많고 조직도 단단하고요. 국내산 삼에 잔뿌리가 많은 이유는 중국에서는 삼의 열매를 심어 캘 때까지 그대로 키우지만 국내에서는 삼을 심은 후 1년 뒤에 다시 지력이 좋은 토양에 옮겨 심기 때문이죠. 이렇게 자란 국내 삼은 쓴 내와 함께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약효 역시 뛰어나고요.”
당침액의 비율과 불조절이 중요한 인삼정과
예부터 인삼을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는데, 날로 씹어 먹기도 했지만 쌉쌀한 맛 때문에 꿀에 찍어 먹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또한 생즙을 내어 마시거나 쌀과 조를 함께 넣어 인삼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한여름 복중의 보신 식품으로 유명한 삼계탕은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식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냉장 시설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인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말리거나 정과로 만들어 보관하곤 했다. 인삼정과는 생삼의 껍질을 벗긴 뒤 삶거나 찐 후 꿀에 버무려 약한 불에서 조린 음식이다. 궁중에서 즐겨 먹었으며 양반가의 폐백 음식으로도 빠지지 않았던 귀한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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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럽게 삶은 삼은 꿀에 넣고 약한 불에서 거품을 걷어내며 조리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 색이 붉고 투명해지면 건져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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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은 몸통 부분은 달고 뿌리 부분은 쓰다. 하지만 몸통에 함유된 사포닌과 뿌리에 함유된 사포닌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삼의 영양을 통째로 섭취하고 싶다면 잔뿌리까지 모두 먹는 것이 좋다.
“늦가을 삼을 캐고 나면 어머니는 상처 나거나 떨어진 인삼뿌리들을 모아 조청에 조리곤 했어요. 귀한 삼을 살뜰하게 먹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이상한 건 인삼이 강한 열에서 조리면 흑색으로 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는 장작불이 한 번 확 타오르고 난 뒤에 약한 불에서 인삼을 고곤 했지요. 은근한 불에서 고아진 인삼은 꺼내 식힌 후 다시 조리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속까지 조청이 침투해 투명하고 붉은빛으로 색이 고와져요. 완벽하게 조려진 정과는 1년 정도 상온에서 보관해도 부패하지 않는답니다.”
김영희 명인의 인삼 요리는 외할머니와 딸에 이르기까지 3대째 전수되는 가문의 음식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배운 인삼 요리를 한층 체계화시키고 싶어 1998년도에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2010년까지 12년간 매주 2~3차례 서울을 오가며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1800년대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인삼정과 요리법이 적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옛 조리서를 두루 섭렵하다 보니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전해 내려온 인삼정과 요리에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조청으로 조린 인삼정과는 색이 탁하고 또 설탕으로 조린 것은 딱딱해 먹기가 불편하더군요. 당침액과 인삼의 양에 따라 불 조절과 시간 조절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특히 설탕보다는 과당과 물엿을 이용해 조린 뒤 센불에서 마지막에 꿀로 코팅하면 정과의 색이 투명한 유리처럼 빛이 나는 데다가 주름이 생기거나 딱딱하지 않고 식감이 부드러워지더라고요. 또 삼을 처음 삶을 때 제대로 삶지 않으면 아무리 여러 번 당침액에 조려내도 부드러워지지 않고 오히려 딱딱하고 뻣뻣해집니다. 인삼은 어느 때 보면 사람보다 더 고집이 셉니다.(웃음) 그래서 만들 때부터 한눈을 팔지 않고 세심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인삼정과 역시 사포닌 함량이 높은 6년근 인삼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좋으며 또 살아 있는 인삼을 사용해야 만들었을 때 크기가 줄지 않고 주름 역시 생기지 않는다고 김영희 명인은 조언한다. 만져보았을 때 물렁한 죽은 삼은 당침액에 조리면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딱딱하다고. 당침액은 100% 꿀을 이용해도 좋은데 꿀은 맛과 영양적인 면에서 인삼과 궁합이 좋다고 한다. 정과를 만들 때 나오는 꿀은 차로 마시면 홍삼액처럼 인삼 향이 깊고 맛이 부드럽다.
“조금 더 준비한 후에 인삼정과를 상품화할 생각이에요. 또한 40년 동안 연구해온 인삼정과의 요리 비법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 사라져가는 우리의 훌륭한 음식들을 되살려서 후손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게 길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