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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8편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의 은혜를 찬송
(찬송 시편 138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3-4-25, 화
맥락과 의미
138편부터 145편까지는 공통적으로 “다윗의 시편”이라는 같은 제목이 이어집니다. 이 시편들은 구성 상으로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138편과 145편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이 주로 나오고, 그 사이에 있는 139-144편에서는 악인에게서 구원하시기를 구하는 내용이 주로 나옵니다.
138편에서는 전반부와 후반부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구원을 받은 일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땅의 임금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노래합니다. 기도와 구원, 그리고 찬송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감사의 내용을 이룹니다.
1. 우상들을 뒤로 하고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1-3절)
2. 땅의 임금들이 드리는 감사 (4-6절)
3. 원수 앞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신뢰함 (7-8절)
4. 확신과 복음의 비밀
1. 우상들을 뒤로 하고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1-3절)
시인은 자기의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이 크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여서 찬송합니다.
“신들 앞에서,” 곧 “우상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1절). 우상들 앞에서 그것들을 뒤로하고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는 모습은 그 우상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을 다니엘서 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큰 신상을 세우고 그것들에 절하게 했습니다. 그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그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단 3:18).
이것은 느부갓네살의 왕권에 중대한 도전이 되었기에 그는 그들을 풀무 불에 던져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세 친구의 용기있는 신앙은 우상숭배자 느부갓네살도 우상들 앞에서 여호와만이 참된 신임을 인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단 3:28-29).
세상의 부와 영광을 약속하는 신들에게 등을 돌리고 성전으로 향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 즉 절을 하였습니다(2절). 자기의 마음과 목소리뿐 아니라 몸으로도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님의 이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2절).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현세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시인은 자기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높였습니다.
주께서 시인을 긍휼히 여기셔서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결과, 주님의 이름과 그분의 말씀이 높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목도한 시인은 그 사실을 고백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3절에서는 시인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에 주께서 응답하여 주심으로써 시인의 영혼에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주님께 기도를 드림으로써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변화가 없었다 하더라도 시인은 그의 영혼이 주님에게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당한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시인이 기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시인은 그 일을 가리켜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말씀이 높이 들린” 일이라고 말합니다.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서 기도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모든 것 위에 높이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참되다는 것이 널리 드러난 것입니다.
2. 땅의 임금들이 드리는 감사 (4-6절)
138편의 중간 부분에서는, 땅의 임금들이 모두 주님께 나아와서 감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길을 노래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137편에서는 에돔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을 기도하였는데, 여기서는 이 땅의 임금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로 돌아올 것을 기도합니다.
4절에, 땅의 임금들이 주님께 돌아온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5절에, 그 임금들이 “여호와의 길을 노래합니다.” 임금들이라면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길을 찬송하면서 따라갑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영광이 크기 때문”입니다(5절).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셔서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면 땅의 임금들도 여호와의 길을 찬송하며 순종할 것입니다. 지금 이 이방 임금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은혜를 누림으로 여호와의 큰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2절에도 나오고 4절에도 나옵니다. “주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시인의 간구를 듣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간구를 듣고 응답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을 땅의 임금들도 함께 듣고 구원의 은혜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는 시인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살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또한 교만한 사람은 멀리서도 알아보고 심판하십니다. 그 결과 땅의 임금들도 교만한 자리에서 내려와서 시인과 같이 주님을 믿고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삼갑시다. 하나님께서 높이 계시며 비천한 이를 도우시고, 교만한 사람을 심판하십니다(참조. 사 57:15; 시 113:4-9).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겸손히 낮출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함께 구원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겨도 그 사람이 여호와께 마음으로 경배하는 데에 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논리로 상대의 주장을 논파할 수는 있어도 그 교만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의지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 기도를 사용하여서 교만한 사람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십니다.
3. 원수 앞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신뢰함 (7-8절)
앞서 시인은 주님의 능력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시인은 여전히 환난 가운데서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는데 여전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주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자기를 버리지 말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7절에, 원수들이 분노에 차서 공격하므로,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그것을 누르시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구원 얻을 도리가 없습니다. “주께서… 살아나게 하시고…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구원하시리이다.” 구원의 주체가 모두 하나님입니다. 그 어려움에서 구원받는 것이 자기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확신합니다.
시인은 끝까지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자기가 나가서 막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보호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원수의 분노에 대하여 나의 분노로 맞대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 시인의 확신이 있습니다.
8절에, 주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것은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시인은 기도의 근거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있음을 알고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실 것”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나와 관련된 것을 완전케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나와 관련된 것”은 8절 후반부의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과 대구를 이루면서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손으로 지으신 것은 창조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보면 “주의 손으로 지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주 쓰입니다(욥 14:15; 사 60:21-22; 64:8-9).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처럼 우리를 주님의 손으로 빚어서 만드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서 주님께 피하였습니다.
138편은 이렇게 고난 가운데 부르짖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1연과 비슷하게 3연에서도 부르짖으면, 2연과 비슷한 구원의 일이 4연에서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 시편을 함께 부르며 고난 가운데 주님께 부르짖읍시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구원의 은혜를 우리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 계속해서 경험하며 주와 동행하는 복된 인생길을 살아갑시다.
4.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 가운데 거하며 복음의 비밀을 찬송함
하나님께서는 독생하신 아드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십자가와 부활로써 해결하셨습니다.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실 때에, 그분은 또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6:18).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는 친히 지어 가시는 그 교회를 중간에 포기하시는 일이 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계속하여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비록 교회와 성도들의 삶 가운데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주님 때문에, 이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임금들과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조롱을 당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분을 버렸고, 심지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그를 외면하셨습니다. 그때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오직 주님의 구원을 바라면서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바로 우리와 같이 교만한 자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자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고난을 통해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골 1:24). 복음의 일꾼은 그 말씀을 먼저 맛보고 전하는데, 그 핵심은 고난을 통하여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참조. 고후 4:7-12).
고난을 맛보면서 우리는 부활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눈물로 받은 그 말씀을 사용하여서 교만한 자들을 유순한 자들로 바꾸어 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매일 그렇게 바뀌어야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일을 매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마음에는 애통과 감사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복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않으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곧 나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께 나와서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합시다. 그러한 찬송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내려 주시고, 실제적인 어려움에서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도가 고난 가운데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주위의 불신자들에게도 큰 감화를 미칩니다. 교만한 자들이 자기들의 교만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내 주위 가족과 친지, 성도들의 구원에 귀하게 쓰임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원수에 대하여서도 분한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을 의지하며 선을 행하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확신하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합시다.”(살전 5:16-18)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내 주위 가족과 친지들, 교회의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나와 주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신들(엘로힘)”=이방의 우상들
1절에 “신들(엘로힘)”이라는 말을 “천사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시인이 하늘의 성전에 이르러서 천사와 함께 찬송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시편들은 세상 권세와 우상에 대한 변증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우상들 앞에서 그것들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참조. 시 135:5; 136:2-3).
<참고> 2절, “주의 이름과 주의 말씀을 모든 것 위에 높이셨다”
2절 하반절을 개역 성경은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하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하면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모든 이름보다 높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좋은 해결책은 “모든”과 “이름” 두 단어를 붙여 읽도록 마소라 본문에 표시한 연결 부호[마켑]를 무시하고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과 “주님의 이름”을 떼어서 읽으니까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말씀을 모든 것 위에 높이셨다” 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하는 성경들이 더 많습니다(새번역, ESV 등).
<참고> 8절의 교차대구적 구조
8절은 교차 대구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기를” 구하고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시기를” 구하는 내용이 앞뒤로 있습니다. 그 중간에는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참고> 한나의 기도와 시편 138편의 연관성
어떤 사람이 기도를 드려서 구원을 받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한나의 사례가 이 사실를 잘 보여 줍니다.
한나의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였습니다. 한나는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4-5)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것을 알고 그러한 기도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과 다윗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그 나라를 구원하셨습니다.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138편”을 검색해서 들으며 연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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