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넓적한 돌을 위 짝과 아래 짝 중쇠에 맞춰 포개어 놓고, 위짝에 구멍을 파서 나무 손잡이인 맷손을 끼워 만든 것이 맷돌이다. 위짝 뚫린 구멍에 곡식 낱알을 넣고 맷손을 돌리면 두 맷돌 사이로 들어간 곡식들이 곱게 갈아져서 사방으로 흘러나온다.
일찍이 인간이 사용한 갈돌과 절구에 이어 가장 늦게 맷돌이 등장하고, 지금은 믹서기나 녹즙기와 원액기 같은 자동 맷돌이 개발되었다. 이들은 맛보다는 식감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맷돌의 손잡이를 순 우리말로 ‘어처구니’나 ‘어이’라고 한다는 설이 퍼져 있다. 이것에는 으레 ‘어처구니 없다’는 말의 어원이 맷돌을 돌리려고 보니 손잡이가 없을 때의 황당한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따라 다닌다.
시골에서는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손 두부가 꼭 놓인다. 이때 맷돌을 돌려 콩 물을 만드는 일에 건강한 장년의 힘이 쓰인다. 거품 가득 내뿜는 돌판이 끊임없이 돌아간다. 맷돌 손잡이를 잡는 사람과 돌 틈바구니에 콩을 퍼 넣는 이 사이에, 돌리고 양을 조절하는 주고 받음이 맞아야 한다. 대량으로 쓰이는 곳에는 연자매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학교의 상징을 본받아 시절의 흐름에 맞춰 계를 만들었는데, 또래 예닐곱 명이 모여 월 회비 천 원씩 내어 시작한 모임이다. 그동안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총각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직장을 잡고 각기 배우자와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도 두었다. 초창기 의견이 맞지 않아 한 두명이 빠져 나가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불행하게도 어린 자녀를 두고 유명을 달리한 녀석도 있다.
회비가 모이면서 유익한 일을 하자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진학하는 자녀에게 등록금과 교과서 비용을 장학금으로 제공하고, 부모님을 식당으로 모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한 후 약간의 용돈을 봉투로 전했다. 자녀는 모두 장성하여 성인이 되고, 부모님은 대부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본인과 가족의 경조사와 입원 시 약간의 위로금을 건넨다. 이 모두 오십 년을 이어온 우리들의 작은 정을 엿본다.
여행에 필요한 돈을 모아 외국으로 나가기도 하고, 국내 경치를 둘러보았다. 숙박에 이어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엿본다. 의견 충돌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자기 주장이 강하여 가끔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한 두해 본 일이 아니기에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장소를 옮겨간다.
자녀들이 가정을 꾸리고 각자의 가족이 늘어나면서 우리들 모임도 달라지는 느낌이다. 끈끈한 우정은 삶의 깊이에 반비례하여 옅어지는가. 어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등지면서 우리가 어른의 역할을 한다. 계의 중요성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어쩌면 의무감에 격월로 정한 날에 얼굴을 내미는 형국이다. 지난날 살갑게 다가와 서로의 고민거리와 걱정을 나누는 일은 사치인가. 스스로 되돌아 본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이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한다.
두 번째 해외여행을 목표로 비용이 몇 년 째 모아진다. 언제 어느 나라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다. 무한정으로 날을 기다릴 수도 있다. 일주일 가량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공통분모를 찾아 교집합으로 서로의 의견을 헤아린다. 인생의 전반기를 함께 한 이들과 남은 시간을 꾸려 갈 것이다.
맷돌은 우리의 전통 먹거리에 쓰이는 대표 도구다. 잘게 쪼개는 기능이 편리성에 따라 기계의 힘이 빌려지고 크기를 줄여 안방에 들어오기도 했다. 커피 한 잔의 감성이 함께 한다. 도구는 어느 한 면이 빠지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관계 속에서 채워졌다.
지난날 미래를 내다보며 손가락을 걸었던 이야기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이가 들면서 수용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앞선다. 의지는 사그라들고 굽어지는 허리만큼 곧추 세우기가 머뭇거린다. 마음처럼 몸이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도 몸도 쇠약해져 세포가 노화로 접어든 것을 늦추고자 저항을 한다.
어떤 건강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9988이라. 걷기 앱이 하루를 따른다. 걸음 숫자가 채워지면 계좌로 입금이 된다. 과거의 일이 현재에 이어진다. 비용이 없어 걷기가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반복한다. 맷돌에 갈아진 따뜻한 두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