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사람을 빚다
― 문경요 천한봉을 찾아서
천한봉 명장의 따님 천경희 선생님의 안내로 도천도자미술관을 찾았다.
문경의 산자락에 들어서자 산과 산 사이로 오래된 가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 듯했다. 미술관 입구에는 커다란 돌에 ‘문경요’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오래된 돌과 나무, 가마를 둘러싼 풍경을 보고 있자 이곳이 단순한 전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평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천경희 선생님을 따라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에는 천한봉 명장의 글씨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물레와 작업 도구가 놓여 있었다. 나무로 만든 오래된 물레를 바라보니 흙을 앞에 놓고 앉아 물레를 돌렸을 한 장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열네 살의 어린 소년은 처음 흙을 만졌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음부터 도예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흙을 평생 놓지 않았다.
흙을 빚고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불을 지피는 시간이 쌓였다. 그렇게 소년은 장인이 되었고, 장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그릇을 남겼다.
미술관 벽에서 천한봉 명장의 글을 만났다.
“흙이 지닌 본질적인 생명력을 사랑한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느낌은 더 깊어진다.”
한참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흙에도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흙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손에 쥐면 형태도 없고, 무엇이 되겠다는 뜻도 없다. 그런데 사람의 손을 만나고 물을 만나고 불을 만나면 그릇이 된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람도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과 여러 일을 만나며 조금씩 만들어진다.
부모와 자식,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실패와 기다림.
내가 선택한 시간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나를 더 많이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시장에 놓인 그릇들을 보면서 사람을 생각했다.
천한봉 명장이 만든 그릇들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흙의 질감이 그대로 보이고 불을 지나온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같은 그릇처럼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모양도 색도 조금씩 달랐다.
사람도 그렇다.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각자 지나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벽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도자기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만족스런 작품을 얻을 수가 없다.”
기본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흙을 고르고 물을 맞추고, 물레를 돌리고 형태를 만들고, 말리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어 불을 지피는 일.
어느 하나 건너뛸 수 없는 일들이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책을 읽고 한 줄이라도 글을 쓰고, 걷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시간이 쌓여 한 사람의 삶이 되는 것 같다.
미술관 한쪽에 오래된 나무 물레가 놓여 있었다.
그 물레를 보면서 천한봉 명장의 손을 생각했다.
그 손은 얼마나 많은 흙을 만졌을까.
얼마나 많은 그릇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그릇을 실패했을까.
가마에서 나온 그릇 가운데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그릇도 다음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되었을 것이다.
잘된 것만 모아서 장인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패하고 다시 만들고 또 실패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천경희 선생님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그릇만이 아니었다. 물레와 가마, 작업 도구, 글과 사진, 그리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딸이 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미술관 앞에서 천경희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뒤에는 아버지 천한봉 명장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새겨진 벽이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뒤에 두고 서 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잠시 멈췄다.
아버지가 남긴 시간이 딸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릇도 그렇게 사람에게 이어지는 것 같다.
흙에서 시작해 장인의 손을 거치고 불을 지나 그릇이 된다. 그리고 그 그릇이 차인의 손에 놓인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릇을 손에 들고 다시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만난다.
흙은 그릇이 되고,
그릇은 사람을 만나고,
그릇을 만든 사람의 시간은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간다.
문경요 천한봉 선생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뜻밖에 오래전 인연을 다시 만났다.
차에 입문할 수 있도록 처음 길을 열어주셨던 석산 이진수 선생님의 자료를 읽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로 통화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을 찾아가다가 또 다른 인연을 만난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있다.
한참 잊고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다시 나타나고,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연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천도자미술관을 나서며 문경의 산을 다시 바라보았다.
산 아래 흙이 있고, 그 흙을 만진 사람이 있었고, 그 손에서 그릇이 태어났다.
나는 오늘 도자기를 보러 왔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었던 사람.
그리고 평생 흙을 만지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사람.
문경요를 떠나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빚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매일 하는 일들이 언젠가 나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게 될까.
그리고 나의 시간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흔적으로 남게 될까.
문경의 산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2026. 8. 14.
송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