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책장에서 시오노 나나미 저 <로마인이야기1>권을 꺼내 읽은 연도를 살펴보니 1998년이다.
그러니까 내가 <로마인이야기 2>권을 처음 읽은 것도 그 언저리쯤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서른두 살이었던 나는 마흔다섯 살이 되어 다시 <로마인 이야기 2권 한니발 전쟁>을 재독했다.
처음에 <로마인이야기 1>권을 읽으면서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서술 방식에 매료되어
'어떻게 역사책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펼쳐 보여주는 로마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언젠가 로마에 꼭 가 봐야지."라는 결심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를 10권까지 읽게 되었고, 그녀가 그려 내는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책들도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서술 방식은 지루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지나간 시대의 고루한 이야기가 아니라, 방금 여기서 내 눈 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고 실감나게 묘사한다.
사료가 부족하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고증과 깊이 있는 연구로 치밀하고 촘촘하다.
거기에다 그 자리에 가본 사람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현장감까지 살려낸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에스파냐에서 출발해 10만 대군과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칸나이 전투에서 승리해
이탈리아 남부 지방을 점령하고 로마를 16년 동안이나 벌벌 떨게 한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그려볼 수 있었고,
명장이자 전술가이자 책략가인 한니발을 모방하여 로마에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준
로마인 스키피오의 모습이 눈앞에 실감나게 그려진다.
처음 읽을 때는 시오노 나나미가 따라오라는 대로 따라가고, 저자가 보여주는 대로 보았다면,
두 번째 읽게 된 지금은 내가 주인이 되어 이천이백 년 전 로마와 카르타고, 지중해 세계를 그려 보고
무얼 보여 주고 싶은지 저자의 의도도 짚어 보고, 포에니 전쟁 전의 로마와 전쟁 후 로마와 지중해 세계의 패권과
이후의 세계 역사와 전쟁에 대해서도 폭넓게 조망해 보게 된다.
기원전 264년부터 146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강대국이었던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마케도니아와 시리아를 점령하고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우리 바다)으로 만든다.
그 와중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일으킨 2차 포에니 전쟁이 이 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로마인들은 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으로 부른다.
그만큼 한니발은 로마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적장임에 틀림없다.
로마를 제패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한니발은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로마를 침략한다.
근거지인 에스파냐에서 로마를 향하는 상식적인 방법들(지중해를 거치는)이 아니라 수만 명 병사들의 희생이 따르고
불가능이라 여겨져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바로 적의 허를 찌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29세의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티치노에서 로마군을 이기고 그 후 4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한다.
한니발은 로마 연합을 무너뜨려 공화정 로마를 바깥에서부터 붕괴시키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저자의 분석대로라면 그 당시 로마인들이 싸움을 못 한 게 아니라 한니발의 전술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집정관이 일 년에 한 번씩 바뀌고 중무장 보병이 주력군인 로마군은 알프스를 살아서 넘어 온 카르타고군의 의지와
기병의 비율이 많아 전투에 유리한 군대와 한니발의 정보 수집력, 선택과 활용 능력, 치밀함과 신중함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그 후로 16년 동안 한니발은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했지만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가
카르타고의 본국 아프리카에 당도해 로마를 뒤로 하고 스키피오와 싸우러 자신의 고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은 자신의 전술을 그대로 모방한 (기병 중심과 포위 전법) 스키피오에게 전멸당하고 만다.
간신히 살아서 돌아온 한니발은 그 후 망명가 신세가 되어 전전하다가 자살하고,
스키피오는 원로원의 일인자가 되어 로마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살다가 말년에 누명을 쓰고 죽게 된다.
사실 나는 전쟁에 대해 관심이 없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쟁에 대해 혐오감까지 느끼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를 읽다 보면 한니발이 그려낸 전술과 로마인들이 그려낸 전술 그림을 보고는
속으로 쯧쯧,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지.'
'아, 그래서 한니발이 이기는구나.'하면서 말이다.
이천이백 년 전 서양인들이 겪었던 전쟁, 치뤘던 전쟁을 살펴보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영토를 넓히기 위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맹국을 위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로 치뤄지는 전쟁들......
누군가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고
누군가는 전쟁으로 명예를 얻고 재산을 얻고 경험을 얻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단지 이름만 바뀐 승리자만 남는 게 아닌가?
지중해의 주인은 이집트였다가 마케도니아였다가 카르타고였다가 로마가 된 거 아닌가?
그리고 지금은 로마가 주인은 아니지 않은가?
전쟁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결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생무상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한 말 중에 인상깊은 구절이 있다.
"역사를 쓰는 작업은 역사와 맹렬히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든 지능과 모든 존재를 걸고 결투를 벌이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스스로 '평화주의자'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사람들간에 화평하고 조화롭고 배려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나에게 평화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가 그랬듯이
나는 모든 존재를 걸고 결투를 벌이는 내 안의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첫댓글 역쉬~ 논리 있고 느낌을 잘 정리해 전달하는 임명옥님은 독후감의 달인이십니다.... 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