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별로 없지만 예전엔 집으로 ‘여론조사 전화’가 꽤 많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받기도 했지만 몇 번 받은 뒤에는 ‘여론조사’라고 응답이 오면 바로 끊었습니다.
질문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누구를 지지하느냐? 어느 정당을 선호하느냐? 까지는 좋은데 그 뒤로 가면 황당한 질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어디냐? 직업이 무엇이냐? 등 지지와 관계가 없는 것들이 이어지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전화는 일체 응답하지 않고 끊습니다.
<#1. “‘내가 굳이 여론조사에 답해야 할까’, ‘어차피 여론조사는 조작이다’며 답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순수하게 아직도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 못 하고 고민 중인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걸 숨은 표로 보고 있다.”
#2. “소극적인 지지층 가운데는 당당하게 밝히기를 조금 꺼리시는 분들도 분명 있다. 이런 분들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런 분들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숨은 지지층이다.”
①데자뷔
앞의 말(#1)은 지난해 4월 이진복 옛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했다. 21대 총선을 2주 앞두고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와 내부 판단에는 차이가 있다”며 꺼낸 얘기다. 당시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숨어있는 표가 많다”며 ‘샤이(shy) 보수’의 존재를 주장했다. 이 본부장은 “적게는 4%, 많게는 8%의 샤이 보수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결과는 통합당 참패였다.
4·7 재·보선을 역시 2주 앞둔 26일 더불어민주당이 똑같은 논리(#2)를 반복한다. 이 말을 한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진성준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언론들이 전하고 있는 여론조사 상황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며 ‘샤이 진보’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에 대해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언론 조사에서 20%포인트씩 격차가 벌어지고 있지만 숨은 표를 내부적으로 분석해보니 10%포인트 격차”라며 “여기서 단기적인 야권 단일화 효과를 제거하면 딱 7%포인트 차이로 본다. 이걸 5%포인트 이내로만 줄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②역전의 기억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두 정당의 희망 회로는 여론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번에는 지난 17일 친(親) 조국 유튜브 채널(시사타파 TV·개국본 TV)에 출연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여론조사가 가진 기술적인 방법으로 장난을 많이 치는데 실제로 작년 총선을 치르면서 해보니까 거의 3분의 2는 장난친 것”이라고 신호탄을 쐈다.
당내에서는 과거 여론조사 예측이 빗나간 두 가지 사례를 거론한다. 2010년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 10%포인트 넘게 앞섰지만, 개표 결과는 단 0.6%포인트 차이의 오 후보 신승이었다. 2016년 정세균 대 오세훈 접전 양상이던 서울 종로 총선은 뚜껑을 열자 정 후보가 12.9%포인트 앞지른 대승으로 판가름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 2월 선거법 개정으로 여론조사 정확도가 크게 높아진 걸 간과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유선전화 RDD(임의 전화걸기) 방식만 쓰던 과거와 달리 휴대전화 안심번호(가상번호)를 활용해 조사하기 때문에 민심 흐름을 훨씬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유선전화 조사를 많이 했던 시절에는 표본의 대표성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20대 남성’ 등 대표성 있는 샘플의 틀을 이동통신사에서 받을 수 있어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에도 유무선 병행조사를 한 YTN·마이크로밀엠브레인 조사 등은 정세균 후보의 역전승을 예측했다.
③NOT SHY, BUT ANGRY
현재 박영선 후보는 조사 방식(유·무선)에 관계없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 뒤진다. “샤이 진보가 일부 존재한다고 해도 선거 결과를 결정적으로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규모는 아닐 것”(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 미국 정가에서 ‘샤이 트럼프’를 처음 거론한 데서 알 수 있듯, 대개 정치적 ‘샤이(부끄러움)’는 의견 표출에 적극적이지 않은 고령층·보수 진영의 현상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 후보는 사회·경제 활동이 가장 활발한 40대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진복 전 위원장은 지난해 “샤이는 (정치 성향을) 표현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보수 정권일 땐 ‘샤이 진보’, 진보 정권일 땐 ‘샤이 보수’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집권 중에 민주당 지지세를 숨기는 것 자체가 정권 심판론의 또 다른 표출이자, 이례적인 현상인데도 정부·여당이 경각심을 갖기는 고사하고 선거용 세 결집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출범 초기 문재인 정부를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은 부동산 문제, LH 사태 등으로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샤이가 아닌 앵그리(화난) 상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민주당이 ‘미워도 다시 한번’을 바라고 있지만 누적된 실정으로 본의 아니게 부동층(浮動層)이 된 이들은 투표장에 안 가거나 반대편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진성준 위원장은 2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또는 박영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조금 못 된다”고 은연중에 실정(失政)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는 앞서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과반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 정치 지형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샤이 진보의 존재를 주장했지만 이날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34%를 기록했다.>중앙일보, 심새롬 기자.
우리나라의 여론조사가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실일 겁니다.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보통 10 ~ 15%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1000명에게 전화를 하면 겨우 100명에서 150명이 응답을 하고 심한 경우는 30명이나 50명일 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응답률로 분석을 하니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같은 기간에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결과가 조사기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여론조사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후보를 낸 정당들도 여론조사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나오면 환호를 보내고 불리하게 나오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그들의 생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같은 논리로 여론조사의 결과를 대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샤이 진보, 샤이 보수,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지만 그게 또 여론조사의 결과와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빨리 선거가 끝나야 세상이 좀 조용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