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삼팔선은 지도 위에 존재했던 가상선이지만 현실세계에도 군데군데 주요한 지점에는 반드시 표식을 남겼다. 강원도 철원 가는 길에서 삼팔선 표지석을 만났다. 여기에서 목적지인 승일교까지 차로 이동하는데 삼십분 가량 걸린다. 육이오 이후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삼팔선 너머 북쪽으로 그 시간만큼 더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길가에 서 있는 ‘남북경협거점도시’라는 공익광고판을 스쳐 지나간다.
늦은 오후인지라 승일공원의 주차장은 한적하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강가로 천천히 내려갔다. 길이 끝나면서 가파른 내리막 시멘트 계단이 나왔고 그 계단마저 끝나는 급경사 부분은 물가까지 좁다란 철계단을 설치하여 다리를 강바닥에서 하늘방향으로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탄강의 검은 협곡 위로 시멘트로 만든 두 개의 장대한 교각을 중심으로 반월형 구조물 3개가 서로 이어지는 당당한 연출이 장관이다. 그 옆으로 나란히 1999년 ‘한탄대교’가 개통되었지만 오히려 승일교(본래이름이 ‘한탄교’였다)의 짝퉁처럼 보일만큼 오래된 오리지널 다리로써 여전히 그 위엄을 과시했다.
다시 공원방향으로 올라와서 다리 상판 위로 걸을 수 있는 길 입구를 찾았다. 건설한지 오래 된 다리인지라 차량이동이 가능한 시절에도 13톤 이하 자동차와 장갑차만 통과할 수 있다는 표지판을 세웠덤 모양이다. 특히 ‘대형장갑차 통행금지’를 의미하는 표식을 함께 병기한 것이 전방의 군사지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해준다. 대형다리를 새로 만든 뒤에는 모든 기능을 새 다리에 넘기고 본래 다리는 사람과 자전거만 통과하는 관광레져용으로 바뀌었다. 밤에는 조명 빛까지 더해진다고 하니 야경감상까지 하려면 따로 시간을 내야겠다. 길이 120m 높이35m 너비8m 다리는 튼튼해 보이는 교각과는 달리 상판 바닥과 난간은 일백여년의 비바람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서 바랠만큼 바랬다.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다리 위를 걸으면서 좌우와 전후 풍광을 찬찬히 음미했다. “...험한 세상의 다리되어 너를 지키리...”라는 오래된 노래가사가 딱 어울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