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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꾸란)의 성립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집대성한 것이 코란 (꾸란, Qur’an) 이다. 코란은 610년부터 632년 무함마드가 타계할 때까지 간헐적으로 계시된 것을 모은 것이다. 코란 자체의 기록에 의하면 코란에 담겨진 계시는 신의 언어 자체이고 하늘에 있는 석판(石板)에 새겨진 계전(啓典)이고 서구의 이슬람 학자들에 의하면 무함마드의 종교적 직관과 체험의 기록이다.
코란의 내용은 무엇이며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고 근래에 들어 각 방면에서 관심이 쏟아졌다. 코란은 이슬람의 경전 (經傳)이다. 이슬람교는 유태교, 기독교에 이어 나타난 셈족계의 종교로서 유일신의 계시에 근거를 둔 같은 일신교 계통의 종교이지만 계전으로는 선행하는 두 개의 성전 (聖典) 구약성서와 신약성가 이야깃거리로서로 재미있고 역사적인 사건이 내포되어 있는 데 비해 마지막에 나온 성전 코란은 이런 면에서 무미건조하다.
코란 96장 1 ~ 2절, ‘읽어라, 창조자이신 그대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은 응혈로 인간을 만들어 주셨다. 읽어라, 그대 주님은 고귀하신 분’은 코란 계시 중 최초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 구절의 ‘읽어라’라고 번역되고 있는 ‘iqur’a는 아랍어로 읽다 (quar’an)은 아랍어의 ‘qara’a와 같은 어근 (語根)에서 나와 관사를 붙여 이슬람의 경전 (慶典)을 가리키고 있다.
코란은 약 7만 8천 어휘로 구성되어 있고 신약성서와 거의 같은 분량의 책이다. 전체는 114장으로 나뉘어졌으며 코란이 현재와 같은 형식으로 편집된 것은 제3대 칼리프 오스만 (재위 644년 ~ 656년)의 치세중이며 그때는 권두에 짧은 개경 장을 내놓고는 제일 긴 장을 처음에 제일 짧은 장을 마지막에 수록하는 배열법을 취했다. 때문에 무함마드의 신관 (神觀)의 발전을 장의 순서에 따라 볼 수 없으며 특히 메타 시대 초기의 계시는 대부분 짧은 것이며 모두가 코란의 끝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코란이 먼저 강조한 것은 자애로운 자비의 신이라는 관념과 유일신의 존재이다. 신이 유일하다는 신앙은 이슬람의 근본적인 교리이며 알라와 같은 동렬 (同列)의 신을 인정하는 것은 다신교이다.
일반적으로 코란의 문체가 우리들의 귀에 주는 인상은 극히 장엄하며 그 인상은 근본적으로는 아랍어라는 언어 그 자체에서 오는 특징이기도 하다. 참으로 코란은 특수한 문체상의 기교가 아주 잘 사용되어 있고 이 기교 내지 기술은 인위적으로는 그리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코란의 문체의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은 산문과 시의 중간 비슷한 것으로 길고 짧은 여러 구 (句)를 일정한 시적 율동없이 다음다음으로 쌓여져 구절의 끝은 리듬으로 꽉 찬 흔치 않은 발상용법이다. 이것은 또 장렬한 울림이 깃든 아랍어라는 언어에 꼭 들어맞는 것이다. 현저한 고조의 어구대소가 몰려오는 큰 물결처럼 서로 덮여서 그것을 반복하고 또 같은 울림의 각운 (脚韻)으로 잘라 가면 언어의 흐름에는 말할 수 없는 긴장이 깔려서 그 언어 자체에 도취되고,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황홀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코란의 내용에도 중대한 시사를 주는 것이며 준열하고 충격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많다.
무함마드는 610년, 약 40세쯤부터 때때로 자기로서도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되어 특이한 말씀을 받았는데 이 최초의 체험은 마치 무엇인가 무서운 병마의 발작과 같이 맹렬하게 격한 경련과 함께 전신에서 진땀을 흘리며 처음으로 계시를 받았다. 이 시기의 계시가, 지금 코란으로 말한다면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각각의 10절, 20절 또는 그 이하로서 전체적으로 말 못할 긴박감이 넘쳐흐르고 수수께끼와 비슷한 말이 떨어진 암석의 부분처럼 힘있게 던져져 있다.
즉 코란은 신들린 한 사람의 영적 인간이 ‘엑스터시’ 상태에서 말을 던진 언어의 집대성이다. 코란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함마드의 설교가 아니고 무함마드에 의해 옮겨진 알라 유일신의 말씀인 것이다.
때가 지남에 따라 무함마드는 이 계시라는 체험이 습관화에 따라 차차 초기의 긴박감은 이완되어 서서히 율동으로 변하고 이에 문장도 점점 길어졌고 계시도 기술화 되어가고 있다. 초기의 계시는 모두 일방적인 수동체로 언제 어디서 신이 옮겨져 말해졌는지 몰랐지만 어느새 무함마드가 주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이에 신이 답을 내리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 경향이 무함마드의 예언자적 활동의 후반기 즉 그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에 이주하면서 더욱 그러했다. 이 무렵에는 신앙산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문제가 튀어 나오게 된 것이다. 희사금을 얼마나 내어야 하나, 아내 한 사람으로는 족하지 않다, 이혼한 여자를 다시 처로 마지할 수 있냐는 등이며, 이것을 일일이 알라께 여쭌 다음에 재결을 받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때의 알라의 판결은 장엄하고 율동적이며 무함마드를 통하여 신자에 고하여졌다.
이것은 편의상 무함마드라는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신 자신이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그가 말한다 하더라도 1인칭으로 말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무함마드가 제 2인칭이며 말하는 상대이다. 때로는 무함마드를 거치지 않고 직잡 신자들에게 너희들이라고 부른다든가 소리를 높여 이교도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든가 저주와 조소와 질책 등이 있으며 때로는 풍자가 있고 유머가 있는 것도 있다. 산문적이라면 산문적인 문체이면서도 좀 특수한 각운이 있는 문체이다.
(코란 명문당 2002)
코란의 계시 과정
코란은 무함마드가 집필한 서적이 아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의식을 상실한 상태로 완전히 타자의 의식 중에 말한 신비스런 언어의 집대성이다. 이 타자적 의식으로 말한 것이 알라의 계시이며 이는 한꺼번에 내린 것이 아니고 조금씩 간격을 두어 약 20년 동안 긴 세월을 두고 내린 것이다. 코란이 계시된 20년 동안을 전과정으로 하여 대체적으로 3단계로 구분하면,
(1) 초기 ? 메카 시대
(2) 중기 ? 메카 메디나 시대
(3) 후기 ? 메디나 시대
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코란에 기록되고 있는 처음 것은 후기에 해당되며 가운데 것은 중기, 끝의 것은 포기에 해당된다. 이것은 대체적인 구별이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복잡한 혼합이 있으며 하나하나의 장 자체에도 동일 시대에 속하는 경우가 적고 여러 시기가 혼합된 것을 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상기 구별 방법이 오늘의 코란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구별 방법이다.
또 코란이 이루어지는 20년간 예언자 무함마드의 눈부신 활약, 인간적 성장, 사회적 정치적 조건의 발전을 생각하면 이것도 코란에 여실히 반영된 것을 볼 수 있고 코란 그 자체에도 확실히 하나의 발전사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신앙자 또는 순수한 내적 신앙에서만 사는 세속을 떠난 종교가라기보다 강력한 종교운동의 지도자이며 또 현세적인 일대왕국의 정치적 지도자인 동시에 신흥국가의 입법가이며, 정치적인 무수한 현실적 문제를 처리하는 민완한 권모술수의 사람이고 또 군사적 지도자이기도 하여 오늘날까지 이슬람적 생활의 규범이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코란에 처음있는 개경 장은 후에 붙인 것이므로 전연 별개의 것이지만 제2장 암소 장으로부터 순서에 따라 읽어가면 1장 1장이 차차 짧게 되어가며 그와 동시에 조금씩 거의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문장이 긴장되어가고 마지막 4분의 1쯤 되면 누구도 확실히 운율의 독특함을 알 수 있게 되고 마지막 끝의 10수 장에 이르면 처음에 나오는 것과는 비슷하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언어적 미와 공포와 전율의 차원에 들어간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초기 메카 시대, 특히 그 초기에 있어서는 무함마드는 순수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다가오는 천지 종말과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순간적인 현세를 말하고 벌의 무서움을 강조하는 경고자였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알라의 소리를 신들린 상태로 강렬한 어조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중기 메카 시대 후반에서부터 미나 시대 전반에 걸친 시대는 커다란 곡선을 그리면서 변화되기 시작한다. 이 변화의 증후는 문체나 내용에도 확실히 나타난다.
문체에서 보면 무엇보다 표현의 이완이 눈에 띈다. 말하자면 초기의 이상스럽도록 긴박한 계시가 숨이 막힐 듯했으나 차차 압력이 사라지고 문장이 이완되어가는 것이다. 이완된 어구는 마치 아라비아 사막에 끝없이 계속되는 모래언덕과 같이 완만한 기복을 그리고 있다. 타자의식적인 신들린 무당적 발상법은 형식으로서는 아직 남아 있지만 그것은 살아가는 약동적 형태가 벌써 아니다. 초기에는 말을 한다기보다 울부짖는 데 가까운 형태에서 차차로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설화체적인 산문화가 되고 현실주의에 이행되고 있다.
이 시기는 무함마드의 설화능력, 이야기의 상상력이 가장 활발히 움직인 시기이다. 그리고 코란의 문학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촉발시킨 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교도와의 관계이다.
622년 무함마드가 메카 지배층의 압박을 받아 메디나에 이주(헤지라) 할 때 메디나에는 유태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성서, 특히 구약성서의 지식을 많이 얻었으며 그 중에서도 모세의 설화는 그의 상상력을 많이 자극한 것 같다. 이때 그가 받은 계시는 구약문학의 중심인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실낙원, 노아의 홀수, 아브라함의 믿음, 애굽의 모세, 음란의 도시 소돔성의 멸망, 다윗과 솔로몬… 등을 배경으로 한 주제에서 몇 개의 색채가 선명한 스토리를 제공하고 있다.
중기는 설화적인 것이 많고 독특한 정신태도 즉 현실적인 제문제의 처리 가운데 많은 설화를 넣어 사람들을 설복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후기 메디나 시대의 코란은 율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무함마드가 예언자적인 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율법은 그때의 필요에 의해 알라로부터 계시되었지만 그것은 낮잠 자는 시간에 다른 집을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에티켓류로부터 시작하여 예배와 순례에 관한 규정, 음주와 노름, 이자 취득의 금지, 음식물의 금기, 혼인의 규정에 이르기까지 신자의 일상생활과 모든 행동에 관한 것이 규정되어 있다.
이슬람이 단지 종교의 체계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활의 전체계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특이한 율법은 내세에서 영원의 생명을 보중받기 위해 현세에서 여하히 행동하여야 하며 무엇을 기피할 것인가 하는 행동의 규범을 신자에게 주는 목적으로 된 것이 많다. 이 시기에 무함마드는 하나의 대집단을 이끄는 정치적 지도자요 율법적인 통치자여야 하므로 코란의 내용도 이렇게 반영된 것이다.
오늘날 서아프리카의 세네갈, 모리타니에서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의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거의 12억으로 추정되는 대수의 이슬람교도가 언어도 같지 않고 습관도 같지 않고 자연환경도 천차만벌하며 민족도 다양한데 사고와 생활에 통일성이 인정되는 것은 이 코란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켜내는 데 있고 이것이 대체로 후기 메디나 계시인 율법적인 코란의 가르침에 있다는 것이다.
메카와 메디나
코란의 계시는 메카와 메디나 두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도시에 대한 예비지식을 갖는 것이 코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코란의 배경을 아는 데도 도움이 된다.
메카는 나무라고는 하나도 없는 황량한 나산에 둘러싸인 골짜기에 발단된 도시지만 상업의 중심지로 고대에는 굉장한 경제적 중요성을 띠고 있었다. 즉 페르시아, 바빌론, 시리아, 이집트, 인도 등과의 교역이 성행했으며 이 국제무역의 통로로서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한 곳이 메카이다.
인도양과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통상의 요지로서 번영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도시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메카의 번영은 그 당시 주요 주민인 쿠라이시 부족의 경제력 힘입는바 많았지만 쿠라이시 부족은 아랍사람들 중 가장 명문이며 부자이고 장사에 대하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과 현세적인 야심은 코란 도처에서 풍자적으로 나타나 있다.
메카의 번영은 쿠라이시 부족의 상술에서도 왔지만 메카에는 ‘잠잠 우물’이라고 불리는 샘물이 있고 카바 신전이라고 불리는 대신전이 케카 중심지에 있어서 이슬람 이전시대에는 다신교들의 총본산으로 매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 모이는 데 있었다. 이러한 행사는 후에 이슬람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계승하였는데 이러한 종교적 성격이 메카를 번영케 한 측면도 된다.
잠잠 우물은 메카 중심에 있는 카바 신전의 흑석 전방에 있는 샘으로 목마른 대상 (隊商)도 동물도 다 이 땅에서는 이곳을 통과하지 안되었다. 1년 중 대부분이 바삭바삭 건조해 버리는 아라비아에서 솟아오르는 맑은 물의 고마움이 어느 정도인지는 코란을 읽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천상의 낙원이란 아래에 냇물이 흐르고 샘이 솟는다는 말이 코란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단지 허식이 아니라 정말 아랍 사람의 이상향인 것이다. 이런 샘이 메카에 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며 이 샘은깊이 약 42m인데 위는 둥근 지붕으로 덮여 있다.
카바 신전은 현재는 전세게 이슬람교도의 신앙의 중심적이나 이슬람 이전 시대에는 이 신전은 다신교의 신전이었다. 코란에 의하면 아랍인의 먼 조상 아브라함이 카바 신전을 재건했을 때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초석을 받아 놓았다고 한다. 여하간 무함마드가 탄생하기 100년 전인 6세기경에는 벌써 쿠라이시 부족이 카바의 보호를 한다는 자격으로 완전히 그 신전의 제사를 한손에 잡고 있었다.
이슬람교가 아직 전파되기 전인 이 시기에는 카바 신전에서 숭배되고 있는 (偶像)의 수는 수백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여하간 모든 부족이 각각 자기 부족이 신봉하는 우상을 안치하고 있었다. 유일신 알라도 이중 중요한 신의 하나였다. 코란의 거의 모든 장에서 알라와의 동반자, 동렬에 이들 사신 (邪神)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불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신전은 한 해에 한 번 전 아랍 부족의 집합장소였다. 부족 중심적인 아랍인으로서는 이곳에서만은 하나의 민족이었다. 이와 같은 것은 메카 이외에서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이고 때문에 메카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른 아랍 도시에 비견할 수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1년 중의 태반을 서로 습격하고 습격당하는 약탈의 세월이었지만 신전순례 (神殿巡禮) 시기인 신성월 (神聖月) 에는 모든 전투행위가 종교적으로 금지되어 어떠한 무법자도 이것만은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아랍 각 지방으로부터 온 순례자들은 보통 때는 원수지간인 부족끼리도 이때만은 친우로서 교제가 되었다. 고대 아라비아의 서정시는 이 한정된 짧은 시일 동안, 타는 듯한 사랑의 기쁨과 잠시 동안의 쾌락 후 신성월이 끝남과 동시에 멀리 서로 헤어져 가는 이별의 슬픔을 읊고 있다.
메카의 번영과 쿠라이시 부족의 경제적 세력은 이와 같은 특수한 사정으로 이루어졌다. 무함마드의 활동이 활발해져서 메카의 지배권에 대한으로 이루어졌다. 무함마드의 활동이 활발해져서 메카의 지배권에 대한 정치적 문제가 대두되자 쿠라이시 부족의 대상인 계급이 생사를 걸고 반항한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메디나 -. 원래는 야슬리브라고 하였으나 무함마드가 메카 지배계급의 박해를 받고 이 도시로 그를 따르는 일단의 신자들과 옮긴 후 부족들과 무장충졸을 하여 630년 무함마드 자신이 메카를 항복시킴으로써 이 도시를 마디나 (메디나), 즉 ‘예언자의 도시’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메디나는 메카에서 북방으로 걸어서 이틀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부근에는 코란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싸움터 우흐드 산이 있으며 또 해안쪽에는 바드로 싸움터가 있다.
메디나는 메카와 같이 국제적인 무역로상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그러나 메카와 같은 특수한 배경이 없었으므로 그 경제적 세력은 메카보다 뒤지고 있었디. 그러나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이 도시에는 메카에서 볼 수 없는 농후한 유태적 색채를 볼 수 있다.
메디나는 모든 점에서 메카와 극히 대립적인 입장에 있었다. 메카 주민인 쿠라이시 부족은 대표적 북아랍인의 한 분파이나 메디나의 아랍인은 같은 아랍인이라 하여도 남방계의 예멘 족속이다. 다음 메카의 지배권은 완전히 아랍인이 장학하고 있었으나 메디나에서는 부유계급은 전부 유태인이었다.
또 메가가 우상숭배의 중심지인데 반하여 메디나는 구약성경적인 일신교 (一神敎)의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무에서부터 만유 (萬有)를 만든 창조주라든가 유일무이한 신이라든가 계시라든가 성전이라든가 하는 계시종교 (啓示宗敎) 특유의 개념은 메카에서는 좀 진귀한 생각이었지만 메디나에서는 오히려 상식이었다. 이러한 메디나와 대조적인 메카에서 있었던 무함마드의 종교활동, 즉 코란의 계시는 두 개의 다른 세계에서 전개된 것을 의식하고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코란 명문당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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