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월성(반월성)
이곳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제곱미터이다. 동에는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하나의 방위선 역할도 하게 되어 있다.
원래 월성 안에는 남문과 북문격인 귀정문(歸正門)·북문·인화문(仁化門)·현덕문(玄德門)·무평문(武平門)·준례문(遵禮門) 등의 문과 월상루(月上樓)·망덕루(望德樓)·명학루(鳴鶴樓)·고루(鼓樓) 등의 누각, 왕이 정사를 돌보던 남당(南堂 : 都堂),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사신을 접견하던 조원전(朝元殿), 삼궁(三宮 : 大宮·梁宮·沙梁宮)을 관할하던 내성(內省)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1741년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 만든 석빙고(보물, 1963년 지정)만 남아 있다.
지금도 월성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초석 등이 깔려 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년(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
또한, 경주석씨(慶州昔氏)의 시조를 모시는 숭신전(崇信殿)도 있었으나 1980년 석탈해왕릉(昔脫解王陵) 남쪽으로 옮겨졌다.
동쪽의 명활산성(明活山城), 서쪽의 서형산성(西兄山城, 일명 仙桃山城), 남쪽의 남산성(南山城),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이 나성(羅城)으로 호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석탈해가 원래 호공(瓠公)의 거주지인 이곳을 거짓꾀를 부려 호공을 몰아내고 차지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경주 석빙고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 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 당시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월성에서 바라본 계림(鷄林)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또는 신월성(新月城) 사이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 · 느티나무 · 단풍나무 등의 고목(古木)이 울창하게 서 있는,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던 곳이다. 시림(始林)이라 부르다가 김씨(金氏)의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난 이후부터 계림(鷄林)이라 하였다.
▲반월성에서 바라보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로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慶州府) 남쪽 월남리(月南里)라고 하였고, 계림(鷄林)의 북방 약 150∼200m, 내물왕릉 동북방 약 300m 되는 곳이다. 이 근방을 속칭 비두골이라고도 한다.
첨성대는 『삼국유사』기이(紀異) 권2의 별기(別記)에 “이 왕대(王代)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를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덕여왕 때(재위 632∼647)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같은 책 왕력(王曆) 제1에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 이야기 끝에 “능은 점성대(占星臺) 서남에 있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현재의 내물왕릉과 첨성대의 위치 관계와 잘 부합된다. 이 기록에서 첨성대가 별명으로 점성대라고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반월성에서 바라본 월정교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63-1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교량(橋梁)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고증을 거쳐 2018년 4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1984년 11월 26일부터 1986년 9월 8일까지 진행된 두 번의 복원 설계를 위한 자료수집과 발굴조사를 통해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공사로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의 교량 복원이 완료되었다.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다리 양 끝의 문루(門樓) 2개동을 건립하는 공사를 진행하여 2018년 4월 준공되었다.
▲경주 남천(南川)
형산강 수계에 속하는 지방 2급 하천이다. 일명 문천(蚊川)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구정동 산지에서 발원하여 불국동·평동·남산동·탑정동 등을 거쳐 형산강으로 유입된다. 유로연장 21.78㎞, 유역면적 85.92㎢이다. 동쪽에 토함산(吐含山), 남서쪽에 금오산(金鰲山)과 마석산(磨石山)이 있다. 유역 내에 불국사(명승 및 사적 제1호)·월정교지(月精橋址:사적 제457호)·석빙고(보물 제66호)·경주 월성(사적 제16호) 등의 많은 유적이 산재하며, 하류 부근에 경주국립박물관이 있다.
▲경주 국립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에 소재한 국립 박물관. 1913년 경주고적보존회 창설로 1915년부터 옛 객사 건물에 신라 유물 전시를 시작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 1926년 9월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되고, 해방 이후 1945년 9월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개편되었다. 1975년 7월 현재의 위치에 본관을 신축하여 이전하고, 같은 해 8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동궁과 월지(東宮과 月池)
674년(문무왕 14)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신라 왕궁의 별궁(別宮)으로 동궁(東宮) 안에 창건된 전궁(殿宮) 터.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