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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 김훈
도라지수녀원의 정식 명칭은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다. 교구청의 김요한 주교가 이름을 지었다.
마가레트 수녀는 12세기 라인 강 언덕의 자연동굴 안에 들어 있던 ‘피에타 수녀원’ 소속이었다. 아들의 사체를 무릎에 안고 성부에게 간구하던 마리아의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그 수녀원의 서원이며 일과였다. ‘피에타 수녀원’은 라인 강의 시퍼런 강물이 산악 구간을 굽이쳐나가는 협곡에 자리잡아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수녀원의 계율은 은둔과 침묵이었는데, 계율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은둔과 침묵은 그 동굴 속에서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 ‘피에타 수녀원’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았고, 알 수 없는 세월이 지난 후에 동굴 입구는 가시나무 덩굴에 덮였다. 19세기 초에 산사태로 동굴 입구가 드러났고 대학 발굴단은 동굴 안에서 청동제 성합(聖盒)과 사슴 뼈로 만든 묵주, 늙은 여성의 허벅지 뼈, 젊은 여성의 어금니, 두개골 파편들을 다량으로 수습하고 거기가 중세 고행주의 수녀원의 자리였음을 확인했다. 타격에 의해 파열된 골편들과 불에 탄 낱알이 널려 있는 걸로 봐서 수녀원은 라인 강을 건너온 이교도의 습격을 받아 소멸한 것으로 발굴단은 추정했다. 여러 세기들의 저녁에 라인 강은 노을 속을 흘러서 하늘에 잠겼는데, 퉁퉁 불은 사체들과 전쟁 쓰레기들이 뒤엉켜서 물과 하늘이 닿은 그 너머로 흘러갔고 덜 죽은 말들이 떠내려가면서 울었다.
마가레트 수녀는 삼십대 초에 이 은둔과 침묵의 동굴을 버리고 대처로 나와서 말 먼지 속에 천막을 치고 부상자, 나환자, 전쟁고아 들을 거두어 먹이고 죽음의 곁을 지켜서 임종을 보살폈다. 적대하는 이쪽과 저쪽의 부상병들, 전염병 환자, 종군 창녀, 병든 아이들이 마가레트의 천막에서 죽었고, 죽어가는 여자들이 가랑이를 벌리고 애를 낳았다. 이쪽과 저쪽이 싸우고 저쪽은 또 그 너머의 다른 쪽과 싸워서 끌려나온 군병들은 어느 쪽과 싸우는지를 모르면서 돌격했다. 적대하는 여러 군대들이 마차에 부상병을 싣고 와서 마가레트의 천막촌에 버렸고, 들에 널린 사체를 따라서 전염병이 번졌다.
마가레트는 죽어가는 자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의 궤적을 묻지 않았다. 마가레트는 죽어가는 자들을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씻겨서, 구원이나 인도가 아니라 동행의 방식으로 임종까지 함께 가서 망자들을 배웅했다. 망자들이 숨을 거두고 나면 마가레트는 늘 기도했다.
―주여, 저를 이 사람보다 나중에 거두어들이시니 제가 이 사람을 배웅합니다. 주여, 이 영혼을 받아주소서.
그 기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자리로 보냈다. 기도는 평안했으나 죽음에는 동행이나 배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 마가레트는 또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가레트는 구십 살이 넘도록 전쟁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콜레라에 걸려서 죽었고, 마가레트가 숨을 거둘 때 라인 강 이쪽과 저쪽에 무지개가 드리워졌다고 구전되었다. 이교도들의 기록에는 마가레트는 수녀가 아니고 수도복으로 위장한 마녀였고 그녀가 부상자들을 고친 것은 모두 주술의 힘이었다고 남아 있다. 후세에 문자로 정착된 기록은 구전과 설화와 전달자들의 몽상으로 뒤섞여 있었다.
수녀들이 노후를 의지할 곳이 없어서 교회는 오래 걱정했다. 교구청은 철새 돌아오는 충청남도 바닷가에 호스피스 수녀원을 설립하고 늙은 수녀들을 모셨다. 교구청은 이 수녀원의 이름을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라고 지었는데, 죽음을 보편적인 자연현상 속에 내던져버리지 않고 죽어가는 자들을 하나씩 개별적으로 씻기고 달래서 경계까지 동행한 마가레트 수녀의 그 한없이 낮은 뜻을 기리는 이름이었다. 이름을 지은 김요한 주교는 혼자서 만족했다. 죽음이 죄의 대가라 하더라도 세상의 한없는 죄와 죽음을 유형별로 나누어 개념화하거나, 세상의 저울로 달아서 무겁고 가벼움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심은 인류 전체의 보편성이나 추상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 살아 있는 구체적 존재에 대한 개별적 사랑이라야 마땅하므로 마가레트 수녀의 생애는 사랑의 구체성, 개별성, 직접성을 실현함으로써 인간의 힘으로 섭리를 증명한 것이라고, 김요한 주교는 축성미사 강론 때 수녀원 이름을 지은 배경을 설명했다. 십 년 전의 일이다.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은 자체의 응급의료진이 있었고 지역의 종합병원과 의료전달망이 연결되어 있었다. 교구청에 속한 여러 본당에서 젊은 수녀들이 파견되어 이십사 시간을 교대로 수발을 들었다. 교구청은 수녀원 오른쪽의 임야 일만여 평을 매입해서 묘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허가를 받았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서향 언덕이었다. 경사가 완만해서 드러난 심술기는 없었지만 썰물 때는 앞이 아득해서 닿는 곳이 없었고 뒤는 기댈 곳이 없었다. 땅이 좌우가 비어서 근본이 들떠 있었고, 저녁 무렵에는 먼바다로 내려앉는 햇빛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가 이내 사위는데, 빛이 물러갈 때 땅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가뭇없었다. 바람을 피할 만한 가림이 없어서 땅은 피부가 없는 살처럼 해풍에 쓸리었다. 늦가을에 왔다가 겨울을 나고 가는 새들도 갯벌에서 먹고 잤고, 그 바람맞이 언덕에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 땅을 꺼려해서 묘를 쓰지 않았지만 교회는 풍수와 무관했다. 묘지는 수녀원 마당에서 오른쪽 샛문으로 통했고 샛문 아치 위에는 줄장미가 넝쿨졌다. 교구청에서는 상장례(喪葬禮)를 공부한 신자에게 묘지 관리를 맡겼다. 수녀원에서 죽은 수녀들은 그 관리인의 염습을 받아서 언덕 묘지에 매장되었다. 수녀원이 설립된 지 팔 년 만에 봉분 열다섯 기가 들어섰다. 봉분들은 석양에 붉었다가, 새벽에는 이슬에 젖었다.
봉분 열다섯 기가 들어서는 동안 늙은 수녀들 사이에서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라는 이름은 ‘도라지수녀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문서에까지 그렇게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교구청은 모른 체했다.
수녀원 화단에는 장미가 흐드러졌다. 여러 종류의 장미들이 봄부터 피어났는데, 초겨울에는 서리 맞은 장미송이들이 오히려 생생했다. 마당에는 인기척이 없어서 꽃송이들은 더욱 영롱했다. 화단에는 도라지는 없었고, 묘지 뒤쪽에 두어 포기가 저절로 올라와서 꽃이 피었다. 저절로 올라온 자리에 뿌리를 내려서 해마다 꽃이 피었는데, 땅이 메말라서 도라지는 더이상 퍼지지 않았다. 늙은 수녀들은 건물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산책할 때도 묘지까지 올라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가 죽어서 매장을 할 때 수녀들은 묘지에서 도라지꽃을 보았다. 흰 꽃과 보라색 꽃이 섞여 있었는데, 장미 화단의 넘쳐나는 색깔에 눌려서 묘지의 도라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꽃에서 수녀원 이름을 따오자면 ‘장미수녀원’이 제 이름일 것 같은데 ‘도라지수녀원’으로 굳어진 까닭을 늙은 수녀들은 설명할 수 없었다. 묘지 이름도 ‘도라지동산’으로 굳어졌다. 재작년에 이 수녀원에서 여든일곱 살로 죽은 오수산나 수녀가 죽기 전에 그 이름의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도라지수녀원’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이 아니고 저절로 되어진 것인데, 그 까닭은 도라지꽃의 색깔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백도라지꽃의 흰색은 다만 하얀색이 아니라 온갖 색의 잠재태를 모두 감추어서 거느리고 검은색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요. 저녁 무렵에 꽃술 밑을 들여다보면 하얀색의 먼 저쪽 변두리에 노을처럼 번져 있는 희미한 검은색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애써 보지 않아도 저절로 보입니다. 도라지는 삶에서 죽음으로 번지면서 건너가는 이 호스피스 수녀원의 이름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어졌어요. 그래서 ‘도라지’는 이름이라기보다는 잠이나 숨 같은 것입니다, 라고 오수산나 수녀는 설명했다. 보라색 꽃도 정처 없는 색감으로 흔들리면서 보라 저 건너편의 검은색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들 보이시지요? 그래서 보라색 꽃이나 하얀 꽃이나 차이가 없는 것이겠지요, 라고 오수산나 수녀는 말했다.
그때 오수산나 수녀는 마지막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다. 정신이 드나들어서 햇빛이 맑은 오전에만 사람을 알아보고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다. 간병하는 젊은 수녀가 오수산나 수녀의 말을 알아듣고 문장을 만들어서 교구청에서 발행하는 주보에 실었다. 글의 제목은 ‘도라지꽃 속으로’였고 오수산나 수녀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부활주간의 저녁에 김요한 주교는 교구청 집무실 소파에 기대서 홍차를 마시면서 그 글을 읽었다. 늙은 수녀들 사이에서 수녀원 이름이 저절로 바뀌고 있는 사태를 별도의 지침을 내려서 바로잡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김요한 주교는 생각을 정리했다.
하느님은 인간의 시간 앞에 죽음을 예비하지 않았고, 죽음은 죄의 대가로 인간이 스스로 불러들인 운명이지만 하느님은 그 운명 안에 부활과 신생을 약속하셨으니, 그것이 당신의 권능으로 베푸는 사랑과 희망의 섭리라고 김요한 주교는 특강 때마다 신학생들에게 말했다.
도라지꽃 하얀색의 먼 저쪽에서 삶이 죽음에 스며 있다는 늙은 수녀의 환상은 죽음 안에 신생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다가 김요한 주교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신학생 시절에 기숙사 뒷산에 도라지는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김요한 주교는 그 하얀색을 떠올렸다. 하얀색이 아니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색이었다. 색은 멀리서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색은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시간과 공간을 흘러서 사람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스스로 전진하고 있었다. 김요한 주교는 도라지꽃에 대한 늙은 수녀의 환상에 대해서 아무런 사목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김요한 주교는 젊은 부제들에게 말했다.
―주보에 실린 ‘도라지꽃 속으로’는 글이 맑더군. 글이 아니라 물이야. 다들 읽어봐.
김요한 주교는 노수녀들의 마지막 나날이 꽃과 더불어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기도는 하늘로 향하지 못하고 도라지꽃 하얀색에 실려서 색깔의 저편으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김요한 주교는 도라지수녀원과 가까운 성당의 사제들에게 문서를 보내서, 수녀원에 자주 들러서 늙은 수녀들과 함께하고 영혼과 육신을 보살피라고 일렀다.
오수산나 수녀는 ‘도라지꽃 속으로’라는 글이 주보에 실린 지 다섯 달 후에 죽어서 ‘도라지동산’에는 열여섯번째 봉분이 들어섰다. 봉분 앞에 흰 페인트를 칠한 나무 십자가가 박혔고, 거기에 검은 글씨로 ‘주의 종 오수산나’라고 적혀 있었는데, 생몰연도는 없었다.
김요한 주교는 도라지수녀원의 사목을 장분도 신부에게 맡겼다. 장분도 신부는 부제과정을 마치고 사제품을 받은 지 삼 년째였다. 신도들은 장분도 신부를 ‘애기신부’라고 불렀다. 선대 어른들이 신유박해, 기해박해 때 순교했고 더러는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장분도 신부는 달아나던 숯쟁이 교인이 섬에 버린 사내아이의 후손이었다. 신앙의 뿌리가 핏줄을 따라 퍼져서 장분도 신부는 물에 젖듯이 성직의 길로 인도되었고, 신학생 시절에도 영적 번민이나 세속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 장분도 신부의 신학생 시절에 김요한 주교는 신학교에서 서양교부철학을 강의했다. 신앙과 학문 사이에 통로를 뚫어서 그 길로 학생들을 인도하는 것이 그가 하느님께 간구하는 소망이었다.
―하느님의 섭리는 끊임없이 발현되어서 시공에 가득 찬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인간의 영혼으로 응답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지향성(指向性)이다. 멀리, 그리고 가까이 나타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스스로 느끼는 것, 그것이 인간의 영성이고 모든 앎의 발단이다. 그러므로 지식과 신앙은 계시를 감지하는 영혼의 작용으로서 동일하고 영성 안에서 통합된다.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지, 앎이라는 정신작용의 동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궁극적 실체를 사유해야 한다.
라고 김요한 주교는 신학생들에게 말했다. 신학생 장분도는 그 말이 자신의 영혼 속에서 끝끝내 살아서 작동되기를 기도했다.
죽음을 맞는 수녀들의 사목을 젊은 신부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새롭게 소명을 받는 젊은 신부의 힘찬 영성의 기세를 김요한 주교는 신뢰했다. 장분도 신부는 수녀원에서 가까운 읍내 성당의 보좌신부로 복무하면서 어촌계 마을 공소(公所)를 맡아서 미사를 집전했고, 틈틈이 도라지수녀원을 살폈다.
수녀원 안에도 제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장분도 신부는 마을 주민과 늙은 수녀들에게 고해성사와 장례미사를 베풀었다. 장신부가 서품되던 날 어머니는 울면서 말했다.
―너는 이제 천주의 아들이다. 내 아들이 아니야.
어머니는 순교자 집안에서 전해내려온 청동촛대 한 쌍을 선물로 주었다. 장분도 신부는 어촌계 공소나 수녀원에 미사 드리러 갈 때 그 청동촛대 한 쌍을 배낭에 짊어지고 갔다. 장분도 신부는 그 촛대에 촛불을 켜고 미사를 드렸다. 장분도 신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걸어서 갔다. 도중에 김밥을 먹었다. 김요한 주교는 젊은 신부의 어려움을 헤아려서, 수녀원이나 공소 사목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문서로 보고하고 함께 의논하자고 장분도 신부에게 일렀다.
손안나 수녀는 도라지수녀원에 들어올 때 여든 살이었다. 들어오던 날 손안나 수녀는 차에서 내려서 부축받지 않고 마당을 걸어왔다. 걸어올 때, 손안나 수녀는 아무런 중량이 없이 땅을 스치는 것 같았다. 몸이 마르고 키가 작아져서 수도복이 헐렁했다. 검버섯이 얼굴을 덮었고 두 볼에 살이 빠져서 입술이 벌어졌다. 손안나 수녀는 이가 드러난 입을 늘 손으로 가렸고, 묵언했다. 손안나 수녀는 서른 살에 종신서원하고 미군 기지촌 성당과 시립병원, 보건소, 급식소, 탁아소에서 일했다. 성당을 청소했고, 고아원과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다. 주일 오후 미사 때는 미군에게 몸을 파는 기지촌 여자들이 성당에 와서 무릎 꿇고 합장했다.
성당에 올 때 여자들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이었다. 여자들의 얼굴은 화장독이 올라서 시퍼렜고 기미가 번져 있었다. 여자들은 얼굴을 미사보로 감쌌다. 미사가 끝날 때 신부가 두 팔을 벌려서 하느님의 축복을 전하면 여자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행정기관에서는 여자들을 특수업태부(特殊業態婦)라고 불렀고 주민들은 양갈보라고 불렀다. 부대에 성병이 번지자 미군 사단장은 시청에 항의했고 병사들의 외출을 금지했다. 매출이 줄어들자 상인과 특수업태부들은 미군부대 앞으로 몰려가서 시위했다. 시장이 미군 사단장을 만나서 검역을 강화하기로 약속하고 외출금지를 풀었다. 보건소 직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여자들을 검진했다. 직원들은 여자들의 질에서 가검물을 채취해서 균을 배양했다. 균들이 현미경 속에서 꼬물거렸다. 양성반응이 나온 여자들은 치료감호소에 수용되었다. 치료감호소는 시 외곽의 산속에 있었다. 거기에 갇혀서 여자들은 매일 항생제 주사를 맞았고, 사흘에 한 번씩 질 검사를 받았다. 음성반응이 나오면 치료증을 받고 풀려나서 영업을 계속했다. 한번 들어가면 이 주나 삼 주쯤 걸렸다. 성병이 여자들로부터 미군에게로 옮겨가는지 그 반대인지는 미군 사령관도 시장도 알지 못했지만, 이리 옮겨가나 저리 옮겨가나 아무 차이 없었다.
손안나 수녀는 교회의 비용으로 사설 학원에 다니면서 조리사자격증과 간호사자격증을 받았다. 손안나 수녀는 치료감호소에서 여자들의 가검물을 채취하고 주사를 놓고 진료기록부를 작성했고, 구내식당의 취사를 감독했다. 손안나 수녀는 그 여자들 앞에서 수도복을 입지 않았다. 그 여자들은 수녀의 수도복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할 것이었다. 손안나 수녀는 치료감호소에서 일할 때는 수도복이 아니라 일반 간호사의 복장을 허용해줄 것을 주교에게 청원했다. 주교는 허락했다. 치료증을 받고 퇴소하는 여자들은 미군에게서 받은 허쉬초콜릿이나 맥스웰 가루커피를 손안나 수녀에게 선물했고 손안나 수녀는 시청 보건과에서 맡긴 콘돔을 나누어주었다. 손안나 수녀는 퇴소하는 여자들이 산길을 걸어내려가는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여자들은 어깨가 다소곳했고 허리가 잘록했고 엉덩이가 푸졌고 긴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흘렀다. 여자들이 걸어갈 때, 몸속에서 리듬이 흘러나와서, 어깨 허리 엉덩이 머리카락이 그 리듬에 실려서 출렁거렸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품음직했다. 하느님은 여자를 저런 모습으로 창조하실 수밖에 없었겠구나, 다르게는 하실 수가 없었겠어……라고 손안나 수녀는 생각했다. 손안나 수녀는 그 여자들에게 신앙을 권유하지는 않았다.
특수업태부들의 상조회는 이름이 ‘백합회’였다. 백합회는 회비를 걷어서 크리스마스 때 파티를 열고 미군을 초청했고 미군들이 며칠씩 기동훈련을 나가서 장사를 할 수 없을 때는 화투치기 대회를 열었다. 회원이 죽으면 백합회는 장례를 주관했고 기금에서 장례비를 부담했다. 특수업태부들은 약물 중독이나 연탄가스 중독, 만취 후 실족 추락, 작업 중 심장마비로 죽거나 자살했다. 원인을 모르게 방안에서 혼자 죽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아무도 모르게 어느 날 사라지는 여자도 있었다. 자살할 때는 제초제나 살충제 원액을 써서 미수(未遂)가 없었다.
백합회는 치료감호소 뒷산 양지바른 사면에 땅을 구입해서 죽은 특수업태부들의 묘지를 만들었다. 손안나 수녀는 장례행렬을 따라서 그 묘지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손안나 수녀는 여염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오래된 봉분은 허물어졌고 나무십자가는 썩어서 쓰러져 있었다. 꽂힌 지 오래지 않은 십자가에서는 죽은 여자들의 이름을 판독할 수 있었다.
―이엘레나
―브리지트김
―박크리스티나
백합회 회원 명부에는 그 이름이 상호(商號)라고 등록되어 있었고, 호적명이나 가족관계는 기록에 없었다. 그때 손안나 수녀는 죽은 여자들의 영혼이 천당의 주민으로 등록되었음을 믿었고, 천당이 없더라도 여자들의 영업이 끝났음을 감사했다.
도라지수녀원에 들어왔을 때 손안나 수녀는 가벼운 허리결림증과 기억상실증 외에는 특별히 이름 붙일 만한 병은 없었다. 손안나 수녀의 말년은 병명이 없이 바스라져갔다. 비 오거나 흐린 날 기억상실 증세는 심했는데, 그 증세가 날씨와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현재와 과거가 거꾸로 뒤집히거나 뒤섞였다. 기억상실이라기보다는 기억착란에 가까웠다. 치매의 초기일 수도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손안나 수녀의 의식 속에서는 영양제 주사를 놓아주러 들어온 간호사 수녀가 자신이 젊었을 때 항생제 주사를 놓아주던 특수업태부로 바뀌어져 있었다. 손안나 수녀는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간호사 수녀의 엉덩이를 더듬어서 주사를 놓아주는 시늉을 했다. 간호사 수녀는 장분도 신부에게 손안나 수녀의 증세를 알렸고 장분도 신부는 김요한 주교에게 알렸다. 김요한 주교는 손안나 수녀의 착란된 의식을 다시 흔들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젊은 간호사 수녀는 정신착란이 손안나 수녀의 의식을 지나가는 동안에는 손안나 수녀에게 항생제 주사를 맞는 특수업태부의 역할을 했다.
―주사가 좀 아플 텐데…… 나가려면 두 주일쯤 걸립니다.
―주사는 안 아파요. 휴가온 셈 칠게요.
맑고 서늘한 날에 손안나 수녀의 정신은 온전했다.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이 고이거나 옥죄이지 않아서 마음이 마르고 가벼웠다. 지나간 시간들은 스쳐가기는 했으나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다시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듯했는데, 그 앞쪽의 시간을 건너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 날, 손안나 수녀는 지팡이 없이 수녀원 뜰을 산책했다. 손안나 수녀의 걸음은 땅 위를 흘러가는 듯해서 사람이 그림자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수녀원 마당에서 장미는 피고 지기를 잇대었고, 지면서 더욱 피었다. 꽃 한 송이는 죽음의 반대쪽에서 피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꽃이 지는 것이 죽음은 아니었다. 모처럼 맑은 의식 속에서, 손안나 수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안나 수녀는 장미 화단을 지나고, 줄장미 넝쿨 아치를 지나서 수녀원 공동묘지 쪽으로 올라갔다. 젊은 수녀가 멀리서 손안나 수녀의 걸음을 지켜보다가 달려와서 부축했다. 손안나 수녀는 나무둥치에 기대서 무덤 쪽을 바라보았다. 묘지 울타리에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고, 죽은 수녀들의 이름이 나무십자가에 적혀 있었다.
―박루시아
―오수산나
―김막달레나
손안나 수녀의 의식 속에서, 그 무덤들은 젊었을 때 미군 기지촌에서 보았던 특수업태부들의 묘지와 뒤섞였다.
―아, 여기가…… 거긴가…… 라는 목소리를 손안나 수녀는 손으로 막았다. 그날 이후로 손안나 수녀의 정신착란증세는 악화되었고 병실에서도 청소하는 시늉, 아이 목욕시키는 시늉, 주사 놓는 시늉을 거듭했다. 젊은 수녀가 고함을 질러서 손안나 수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녀님, 지금이 여름인가요, 겨울인가요?
―수녀님, 여기가 동두천인가요, 오산인가요?
손안나 수녀가 듣는지 못 듣는지를 젊은 수녀는 알 수 없었다. 손안나 수녀는 대답하지 않고, 하던 시늉을 계속했다. 장분도 신부는 손안나 수녀의 증세를 김요한 주교에게 보고했고, 김요한 주교는 손안나 수녀의 착란된 의식을 헝클지 말라고 거듭 지시했다. 김요한 주교는 말했다.
―손 수녀님의 의식 속에서 도라지공원묘지와 특수업태부의 묘지가 동일시되거나 뒤바뀌어 있다는 것은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또 손 수녀님께서 몇 년 전까지도 계속하시던 여러 가지 봉사활동의 동작을 흉내내고 있다는 것도 우려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 착란 속에서 하느님의 뜻은 손 수녀님의 몸을 통해서 계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사목적 판단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손 수녀님을 이제 그만 쉬게 해주십사,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장분도 신부가 문서로 회신했다.
―공경하는 주교님, 손 수녀님의 착란 속에 임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저도 손 수녀님을 쉬게 해주십사 주교님을 따라서 기도하겠습니다.
장분도 신부는 주일 아침 여섯시에 어촌계 마을 공소에 도착해서 고해성사를 베풀고 일곱시부터 미사를 올렸다. 공소에 등록된 신자는 삼십여 명이었지만 주일날 미사에 나오는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었고, 그중 오륙 명이 고해성사를 받았다. 신자들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늙은 여자들과 은퇴한 어부들이었다. 제대 왼쪽 한켠을 합판으로 막은 자리가 고해소였다. 늙은 여자들은 귀가 어두워서 목소리도 컸다.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소리가 고해소 밖에까지 들렸다.
장분도 신부는, 목소리를 작게 하라고 일렀으나, 늙은 여자의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장분도 신부는 고해소를 공소 마당 한 귀퉁이로 옮기고 순서를 기다리는 신자들이 멀리 떨어져 있게 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저는 노파가 사제에게 죄를 고백했다.
―이틀 전 보름 밤에 을(乙)뻘에서 바지락을 캐서 암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사제가 말했다.
―지난번 고해 때와 똑같군요.
―그전과도 같습니다. 신부님이 여기 오시기 전부터 그랬지요.
어촌계는 갯벌을 갑, 을, 병, 세 구역으로 나누어서 관리했다. 한 구역에서 두 달씩 바지락을 캐는 동안 나머지 두 구역은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렇게 해서 바지락 가격을 유지했고 속이 덜 찬 바지락의 남획을 막았다. 어촌계의 오래된 생산관리방식이었고, 주민들의 반발은 없었다. 물이 멀리 빠지는 보름 밤에 주민들은 금지된 뻘에 들어가 바지락을 캤다. 주민들은 달밤에 뻘에서 서로 마주치면서 모른 척했고 아무도 신고하거나 신고당하지 않았다.
신자들은 고해 때마다 다들 똑같은 죄를 고백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가 저절로 빚어지는구나, 장분도 신부는 그런 혼란에 빠졌다. 죄라기보다는 생활이었으므로, 어떤 신자들은 금지된 뻘에서 바지락을 캔 일은 고백하지 않았다. 바지락 판 돈의 액수를 아들에게 줄여서 말한 죄, 주정뱅이 남편이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한 죄들도 다들 비슷했다. 젊었을 때 속 썩이는 자식을 죽어라고 때려준 죄, 아이가 들어앉을 짓을 한 기억이 없는데도 저절로 붙은 다섯째를 낙태한 죄를 오십 년이 넘은 뒤에 기억해내어 고백하고 끼룩끼룩 우는 노파들도 여럿 있었다.
―신부님, 아주 오래전 것도 말해도 되나요?
―그럼요. 죄는 오래됐다고 해서 묽어지지 않습니다.
―휴가온 셈 칠게요
-처녓적 것두요?
―너무 억지로 끄집어내지는 마십시오.
일상 속에서 거듭되는 죄를 거듭 사해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장분도 신부는 김요한 주교에게 문의했다.
세속의 일상을 죄와 죄 아닌 것으로 양분할 수는 없을 터이며, 사제가 세속으로부터 멀어서 일상을 만질 수 없고 낙태하는 여자의 고통과 슬픔을 사제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사제가 사하는 죄를 함께 사하여주시겠노라는 하느님의 약속에 의지하라고, 김요한 신부는 회답했다.
바지락은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깔려서 수만 년 동안 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만 년 전의 바지락이나 지금의 바지락이나 껍데기에 패어진 골의 개수가 똑같다고 학자들은 말했다. 어촌계 마을 갯가에는 신석기시대의 조개껍데기 무덤이 남아 있었다. 일만여 년 전의 음식물쓰레기 폐기장이었다. 선착장을 만드느라고 갯벌이 매립되어서 조개무덤은 땅 위에 돌산처럼 솟아올랐다. 거기에 쌓여진 조개껍데기도 모두 바지락이었다. 조개껍데기는 삭아서 가루가 되었고, 가루가 바닷물에 반죽되어서 돌이 되었다. 예수님은 이천여 년 전에 태어나서 신유(辛酉)생 닭띠라는데, 조개무덤은 일만여 년이 넘었다.
고해성사와 주일 아침 일곱시 미사를 마치고, 장분도 신부는 도라지수녀원으로 향했다. 어촌계 마을에서 도라지수녀원까지는 조개무덤 앞을 지나는 소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었다. 장분도 신부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조개무덤 앞을 지날 때, 장분도 신부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조개무덤을 향해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았다.
입춘 무렵에 가창오리들은 바이칼 호수로 돌아갔다. 오리떼는 도라지수녀원과 바다 사이의 늪지에서 겨울을 났다. 돌아가기 며칠 전부터 장거리 비행을 준비하는 오리떼가 갈대숲 바닥에서 퍼덕거리며 흙목욕을 했다. 새들의 날개치는 소리가 수녀원 병실에까지 들렸고, 갈대숲이 수런거렸다. 오리떼는 끼룩끼룩 울면서 수녀원 상공을 날아갔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음향으로 조개무덤 너머의 시공을 건너왔다. 한 무리가 이륙하면 다른 무리가 뒤를 따랐다. 대개 스무 마리 정도로 대오를 갖추었지만, 너댓 마리의 비행대도 있었다. 늙은 수녀들이 입춘의 양지 쪽에 앉아서 돌아가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올 때의 무리와 갈 때의 무리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새들이 무리를 짓는 인연은 무엇인가. 새들도 친인척이 있고 벗이 있고 이웃이 있는지, 금년에 온 새들은 작년에 왔던 그 새들인지, 바이칼 호수는 얼마나 먼지를 늙은 수녀들은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새들이 하늘에 스며서 가물거릴 때 수녀들은 희미한 새떼를 향해 성호를 그었다.
죽어서 도라지동산에 묻히는 수녀보다도 새로 들어오는 수녀가 더 많았다. 수녀원에 방이 모자라서 두 명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룸메이트를 정할 때, 나이가 비슷한 수녀들끼리, 쇠약의 정도가 비슷한 수녀들끼리 한방을 쓰도록 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친소관계를 고려해서 방을 바꾸어주도록 김요한 주교는 지시했다.
손안나 수녀의 룸메이트는 김루시아 수녀였다. 두 수녀는 도라지수녀원의 오십여 명 수녀들 중에서도 고령자였고, 쇠약의 정도는 누가 더 낫고 못하고가 없어서 의약(醫藥)이나 진단은 무의미해 보였다. 김루시아 수녀는 팔 년 전 수녀원이 문을 열 때 들어왔다. 손안나 수녀보다 두 살이 많았다.
열 평쯤 되는 방에 사물함이 딸린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방문을 기준으로 손안나 수녀가 왼쪽, 김루시아 수녀가 오른쪽이었다. 침대 옆에는 당직 간호사를 부르는 비상벨이 불빛을 깜빡거렸다. 오른쪽 벽에 걸린 십자가는 대패질하지 않은 밤나무 토막 두 개를 노끈으로 묶은 것이었고, 그 밑에 성녀 마가레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성녀의 아우라에서 별이 반짝였다.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공동목욕실은 복도 끝에 붙어 있었다. 공동목욕실까지 혼자서 갈 수 없는 수녀들은 당직 간호사들이 휠체어로 옮겨서 몸을 씻겨주었다. 두 수녀는 미사에 갈 때만 수도복을 입었고, 방안에서는 환자복을 입었다. 방안에 거울이 없어서 두 수녀는 머릿수건을 쓸 때 서로의 매무새를 잡아주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늙음을 알았다. 김루시아 수녀와 손안나 수녀는 둘 다 불면증이 깊었다. 몸이 살아서 병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병이라기보다는 시간이었다. 새벽까지 의식은 물러가지 않았고, 그 속으로 어둠이 번져서 잠과 깸은 구분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잠과 깸이 겉돌았고 벽시계가 재깍거리면서 그 어둠을 찔렀다. 김루시아 수녀가 사무실 직원에게 부탁해서 벽시계를 떼어냈다. 어둠 속에서 비상호출벨 점멸신호 두 개가 깜박거렸다. 늪에서 잠든 가창오리들이 갑자기 깨어나서 날아올랐다.
새들은 별이 가득한 하늘을 헤집고 끼룩끼룩 울었다. 수녀들은 오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울음의 꼬리가 잦아들고 오리떼가 다시 잠든 후에도 수녀들은 옆 침대에 누운 사람이 잠들지 않았다는 걸 서로 알면서 뒤척거렸다.
김루시아 수녀는 자신의 생애에 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루시아 수녀는 재처럼 조용했고, 마음속에서도 말이 들끓지 않았다. 김루시아 수녀는 기도할 때도 말이 태어나지 않는 저편에서 장궤(長跪*
김루시아 수녀는 삼십대 초부터 남해의 먼 섬에 격리된 나환자촌에서 일했다. 항구에서 섬까지는 뱃길로 사십 킬로미터였다. 김루시아 수녀는 물을 데워서 나환자들을 씻겼다. 김루시아 수녀는 때수건으로 나환자들의 등을 밀었고, 약을 먹였고, 장례 때 화장장에서 기도했다. 나환자들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났다. 육지의 보육원에서는 나환자촌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김루시아 수녀는 섬 안에서 미음을 먹여서 아이를 길렀다. 부모는 감염이 무서워서 아이를 만지지 않았고 날 때부터 부모와 격리된 아이는 누구의 품으로나 파고들었다. 이 세상의 이유 없는 고통이 모두 하느님의 섭리라면 자신의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맞서는 것이며 그 또한 섭리일 것이었다. 나환자촌에서 한 생애를 다 살아내고 여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봄날에 절벽에서 물로 뛰어내려 자살한 환자를 건져서 화장할 때, 김루시아 수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말이 되어 나오려고 하는 그 생각을 김루시아 수녀는 버렸다. 자살한 환자는 김루시아 수녀와 동갑이었고 젊어서 실명해 있었다. “보이는 곳으로 가겠다”는 문장 한줄이 그의 유서였다.
김루시아 수녀도 섬에서 늙었지만 섬에는 노후를 의탁할 곳이 없었다. 도라지수녀원에 들어 올 때 김루시아 수녀는 골반뼈에 구멍이 뚫려서 걸음이 어려웠고 심장이 메말라서 숨을 힘들어 했다. 의사들이 긴 병명을 붙였지만 병은 이름으로 지칭되는 것이 아니었다.
룸메이트를 정하던 날에는 김루시아 수녀가 먼저 들어 있던 방에 손안나 수녀가 들어왔다. 손안나 수녀는 지팡이를 짚기는 했지만 부축 없이 방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사물 가방을 든 직원이 뒤따랐다. 김루시아 수녀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서 손안나 수녀를 맞았다.
―어서……
김루시아 수녀는 그렇게만 말했다. 룸메이트가 될 사람의 얼굴을 보자 김루시아 수녀는 자신의 날들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방을 합치던 날 손안나 수녀가 다가와서 김루시아 수녀의 손을 잡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소리가 되지 못했다. 두 수녀는 서로 마주 보며 성호를 그었다.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 장분도 신부는 밤늦도록 본당 사제관 피에타 성모상 앞에서 기도했다. 장분도 신부는 어촌계 주민들을 위해 기도했고, 늙은 수녀들을 위해 기도했다. 세속의 법이 어촌계 주민들의 죄를 물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가엾은 죄를 묻지 마시고, 하느님의 부름을 기다리는 수녀들의 날들이 길어지지 않기를 장분도 신부는 성모께 간구했다.
마음이 몸을 느끼지 못하도록 기도는 집중되었다. 됐습니다. 이제 주무세요. 신부님이 기도하시는 뜻을 하느님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 라는 성모의 목소리를 장분도 신부는 들었다. 장분도 신부는 자정이 넘어서 자리에 들었다.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문자신호가 울렸다.
―신부님, 저예요.라고, 여섯 글자가 찍혀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였다. 장분도 신부가 문자로 응답했다.
―아직 안 주무시는군요.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와요.
―기도하십시오. 잠을 간구하십시오.
―기도 싫어요. 간구하면 잠이 더 안 와요. 신부님, 자고 싶어요. 영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수녀님……
―새들이 울어요, 신부님……
거기서 문자가 끊어졌다. 장분도 신부는 불안했다. 장분도 신부는 도라지수녀원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서 김루시아 수녀의 방에 가보라고 일렀다. 십 분쯤 후에 당직 직원이 장분도 신부에게 보고했다. 김루시아 수녀의 방에 가보니까, 응급상황은 없었고, 어둠 속에서 두 수녀가 침대 위에 앉아 있길래 기도하는 줄 알고 물러나왔다고 직원은 말했다.
수녀들의 빨랫감은 사흘에 한 번씩 세탁부가 걷어갔다. 수녀들은 속옷이 바뀌지 않도록 색실로 표시를 해놓았다. 세탁부는 표시를 보고 누구의 옷인지를 알아서 나누어주었고, 빨래가 잘못 배달되면 수녀들끼리 복도에서 만나서 바꾸었다.
빨래는 수녀원 뒷마당 빨랫줄에 널렸다. 속옷 가장자리에 실밥이 풀려 있었고, 뜯어진 솔기를 바늘로 기운 것도 있었다. 가을볕이 빨래에 스며서 낡은 섬유의 올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맑은 날에 마른 빨래는 바스락거리면서 빛 속으로 증발할 듯싶었다. 잠자리들이 조바심치다가 빨랫줄에 내려앉았다. 작대기로 버틴 빨랫줄은 양쪽으로 늘어졌다. 바람이 불면 땅 위에서 빨래 그림자가 흔들렸다. 빨래 그림자들 사이에서 잠자리의 희미한 그림자가 땅을 스쳤다. 날이 좀더 차가워지면 빨래는 굳으면서 말라갔고, 빨랫줄에 앉은 잠자리 날개는 수평을 잃고 아래로 처졌다.
김루시아 수녀는 가끔씩 대소변을 지렸다. 그것이 언제 몸 밖으로 새어나오는지를 김루시아 수녀는 알지 못했다. 잠과 깸 사이의 어느 갈무리할 수 없는 시간에 그것은 새어나오는 모양이었다. 수면제를 삼키고 눕는 새벽에, 잠과 깸은 비벼졌다. 코를 골면서, 자신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뒤척이는 밝을녘에 그것은 잠과 깸 사이를 건너 몸 밖으로 새어나왔다. 반쯤 잠들어서도 그것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냄새가 잠의 나라에서 발생해서 깨어 있는 세상으로 걸어오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아랫도리가 젖어 있었고, 그것은 확실히 거기에 와 있었다.
그것이 새어나온 아침에 김루시아 수녀는, 아, 짧게 비명을 삼키면서 자리에서 몸을 꼬부렸다.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다. 옆침대의 손안나 수녀는 냄새를 맡고 돌아누웠다. 돌아누워 주는 것이 예절이라는 것을 손안나 수녀는 알았고, 김루시아 수녀도 손안나 수녀가 베푸는 예절을 알고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대소변을 지린 속옷을 세탁부에게 주지 않고 손수 빨았다. 김루시아 수녀는 빨랫감을 비닐백에 넣고 복도 벽에 의지해서 목욕실로 갔다. 거기서 김루시아 수녀는 몸을 씻었다. 몸이 남 같아서, 자신의 몸이 젊었을 때 나환자촌에서 씻겨주던 환자들의 몸처럼 느껴졌다. 몸과, 그 몸을 씻기는 또다른 몸이 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거기서 속옷을 빨았다. 더럽혀진 옷을 버리고 새옷을 입는 편의를 김루시아 수녀는 배우지 못했다. 김루시아 수녀는 빨래에 비누칠을 해서 손으로 빨았다. 팔목 힘이 없어서 헹군 빨래를 짜지 못했다. 김루시아 수녀는 목욕실 뒷문으로 나와서 뒷마당 빨랫줄에 물이 듣는 속옷을 널었다. 속옷에 검은 색실로 R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속옷은 루시아의 것이었다. 빨래가 가을볕에 말라서 햇볕 냄새가 배었고 덜 빠진 오물이 희미한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R자 속옷 위에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았고, 바람이 불어서 속옷과 잠자리의 그림자가 땅 위에서 흔들렸다.
세탁부가 김루시아 수녀에게 오물 지린 속옷을 손수 빨지 말고 버리든지 맡기라고 말했을 때, 김루시아 수녀는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붉혔다. 말을 잘못 꺼냈지 싶어서 세탁부가 오히려 민망했다. 세탁부는 김루시아 수녀가 새벽에 목욕실과 빨래건조장을 오가다가 넘어져서 다치게 되는 불상사를 걱정했다. 세탁부가 그 걱정을 장분도 신부에게 전했고, 장분도 신부는 김요한 주교에게 전했다. 김요한 주교는 문서로 회신했다.
―김루시아 수녀님의 빨래를 수거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고유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인간의 예절이며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죄를 고백하는 것도 죄의 사함을 받는 것도 개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로 수녀님의 결벽과 수줍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성녀 마가레트의 뜻을 기억하십시오.
김요한 주교는 김루시아 수녀와 손안나 수녀가 쓰는 방을 목욕실 가까이 옮겨줄 것과 그 방을 자주 문안할 것을 간호사들에게 지시했다.
11 월이 지나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일교차가 커서 시간의 허방이 넓었다. 도라지수녀원에서는 한 달에 세 번씩 장례미사가 있었다. 장분도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일요일에는 아침 일곱시에 주일미사를 드리고 나서 바로 장례미사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장례미사가 너무 잦을 때 장분도 신부는 영성의 힘을 집중하기가 지쳐서 허덕였고, 김요한 주교가 도라지수녀원에 와서 미사 일정을 도왔다. 김요한 주교는 장례미사를 합동으로 드리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김요한 주교는 장례미사 때 강론에서 말했다.
삶은 죽음을 배제할 수 없지만, 죽음은 치유불가능한 몸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구원의 문이다.
그러므로 부활한 예수의 빈 무덤에서 그리스도와 사도는 만나는 것이다, 라고.
걸을 수 없는 수녀들은 장례미사에 참례하지 않았다. 열댓 명만 관 둘레에 장궤했고, 상체를 세우지 못하는 수녀들은 바닥에 앉아서 벽에 기댔다. 수녀들은 울지 않았다. 똑같은 미사와 강론이 겨우내 계속되었다. 관들은 수녀원 뒷문으로 운구되어서 도라지동산에 묻혔다. 묘지가 가까워서 운구하는 데 십오 분 정도가 걸렸다. 어촌계 마을의 남자들이 와서 관을 옮겼다. 장지까지 따라온 수녀는 너댓 명 정도였다. 관이 내려갈 때도 수녀들은 울지 않았다. 장분도 신부가 흙 위에 성수를 뿌렸다. 도라지동산에서 내려와서 수녀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저물어서 당직 직원이 여러 방들의 비상호출벨을 점검했다. 12월 들어서 두 번째 장례미사가 있던 날 밤, 저녁기도가 끝난 시간에 장분도 신부는 김루시아 수녀의 전화를 받았다. 문자가 아니라 음성이었다.
―새로 받은 수면제가 잘 들어요. 잠도 잘 오고 아침에 개운해요. 신부님, 잠은 아주 좋아요.
―다행입니다, 수녀님. 어서 주무세요.
―아직 일러요, 신부님.
그럼 기도하십시오, 라는 말을 장분도 신부는 눌렀다. 김루시아 수녀가 말했다.
―신부님, 관은 너무 좁아요. 전 그냥 해주세요.
―그냥요?
―네, 그냥. 그냥 이대로 잠옷으로……
―수녀님……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장분도 신부는 다시 장궤하고, 김루시아 수녀를 재워주기를 하느님께 간구했다.
추위가 깊어지자 손안나 수녀는 급속히 쇠약해졌다. 성대가 오그라지고 혀가 안으로 말려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담당 간호사만 손안나 수녀의 말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간호사에게 거꾸로 주사를 놓아주는 시늉을 하는 착란현상은 여전했다. 간호사는 손안나 수녀의 착란에 몸을 대주었다.
성탄절이 지나고 나서 손안나 수녀는 고해성사를 받고 싶다는 뜻을 간호사 수녀를 통해서 장분도 신부에게 전했다.
―아니, 수녀님이 무슨 고해할 일이……
―그야, 그분이 아실 테지요.
―말씀도 잘 못하실 텐데……
장분도 신부는 김요한 주교에게 문서로 물었다.
공경하는 주교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말을 잃어버려서 죄의 내용을 사제에게 전할 수 없고, 사제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죄를 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요한 주교는 닷새 후에 회신했다.
―고백하는 자의 간절함에 따라서, 사하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한다는 것은 이미 저지른 죄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그 죄업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일 것입니다.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손 수녀님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장 신부님의 편임을 믿습니다.
손안나 수녀는 걷기가 어려웠다. 장분도 신부는 손안나 수녀의 병실로 가서 고해성사를 주었다. 간호사가 손수녀의 룸메이트인 김루시아 수녀를 휠체어에 태워서 방문 밖 복도로 나왔다. 거기서, 김루시아 수녀는 방안의 고해성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손안나 수녀가 해독할 수 없는 음향으로, 뭐라고 애써서, 간절히 질러대는 소리가 복도에까지 들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밀려 나오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짓눌려 음절을 이루지 못했다. 밤하늘에서 짖는 가창오리들의 울음소리를 김루시아 수녀는 떠올렸다. 손안나 수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뭐라고 계속 소리 질렀다. 장분도 신부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수녀님, 됐습니다.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만하세요.
손안나 수녀가 고백하려는 죄가 대체 무엇일까를 헤아리다가 김루시아 수녀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장분도 신부는 지쳐 보였다. 장분도 신부는 휠체어에 앉은 김루시아 수녀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장분도 신부가 말했다.
―수녀님, 수면제가 잘 듣는다면서요. 요즘 잘 주무시지요?
신부님이 불쌍하다……라고 김루시아 수녀는 말할 수가 없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환자복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손안나 수녀는 거듭해서 고해성사를 청했다. 장분도 신부는 그때마다 병실에 왔다. 손안나 수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고, 장분도 신부는 사하여 주었고, 김루시아 수녀는 복도로 나와서 귀를 막았다. 이제는 됐습니다, 다 됐어요, 라고 장분도 신부는 소리 질렀다.
2월 말에 김루시아 수녀는 룸메이트를 바꾸어주거나 독방을 달라고 요청했다. 힘들어서 그런다……고, 김루시아 수녀는 말했다. 김요한 주교는 힘들어서 그런다……는 김루시아 수녀의 말을 힘 안 들이고 이해했다. 주교는 김루시아 수녀에게 독방을 주었다. 환자실과 간호사실을 줄이고 합쳐서 방 한 칸을 더 만들어 손안나 수녀를 옮겼다.
김루시아 수녀는 독방을 쓴 지 두 달 만에 죽었다. 부활주간의 첫째 날이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아침에 복도 바닥에 쓰러진 사체로 발견되었다. 환자복 차림이었고 옷이 젖어 있었다. 침대에 오물이 묻어 있었고 빨랫줄에는 R자 속옷이 널려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새벽에 대변을 지렸고 목욕실로 가서 몸을 씻고 속옷을 빨아서 뒷마당 빨랫줄에 널고 다시 병실로 돌아오다가 복도에서 쓰러진 것이었다.
김루시아 수녀의 몸은 작고 가벼웠고 꼬부라져서 늙은 태아 같았다. 죽은 몸은, 살았을 때의 소망에 따라 관에 담지 않고 잠옷 차림으로 들것에 실어서 도라지동산으로 옮겨졌다. 흙이 다 녹아서 땅은 삽을 편안히 받았다. 흙 속에서 봄의 기운이 끼쳐왔다. 흙은 비리고 축축했다. 장분도 신부가 장지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수녀 일곱 명이 장지까지 따라왔다. 손안나 수녀는 오지 못했다. 연락이 안 닿았는지, 유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잠옷을 입은 시신이 내려갈 때 수녀들이 성호를 그었고 장분도 신부가 성수를 뿌렸다. 인부들이 삽으로 흙을 퍼서 잠옷 위로 던졌다. 일교차가 커서, 늙은 수녀들은 서둘러 장지에서 내려왔다. 수녀원 뒷마당 빨랫줄에는 R자 속옷이 말라서 바람에 흔들렸다. 햇빛에 섬유의 올이 한 가닥씩 드러났고, 거기서 덜 빠진 오물이 얼룩져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의 유품은 옷가지 몇 점과 묵주 한 개, 나환자촌에서의 일지를 기록한 노트 몇 권이 전부였다. 옷가지는 태워서 없앴고 묵주와 노트는 교구청 자료실에 보관되었다. 김루시아 수녀의 사물함 서랍에서 은박지에 싼 약봉지가 발견되었다. 봉지 안에는 수면제 몇 알과 도라지 씨앗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수면제를 반알씩 먹었는지 한 알 반씩 먹었는지 세 개는 온전했고 나머지는 반쪽이었다. 수녀원 직원이 수면제와 씨앗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방안을 소독했다.
김루시아 수녀를 묻은 오후에 장분도 신부는 손안나 수녀의 알아들을 수 없는 죄를 고백받고 사하여 주었다. 저녁에 장신부는 자전거를 타고 어촌계 마을로 돌아갔다. 썰물의 갯벌에서 석양이 퍼덕였다. 조개무덤 앞을 지날 때 장분도 신부는 자전거에서 내려 성호를 그었다. 밤에 김요한 주교가 장분도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김요한 주교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