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에는 제일로 치는 것이 많다.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물뿌리가 여기 있고
제일 높으나 시간이 멈춘 추전역, 긴 정암터널,
높은 만항재, 광산터, 희귀식물 등...
화방재~피재 능선은 어느 구간보다
백두대간의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구간이다.
함백산에 서서 보면 사방팔방이 그야말로 장대함 그 자체라는 걸
여러 번의 산행을 통해 알기에
그 크고 넓은 품을 다 보고 싶었지만
신새벽의 어둠속에서
서로의 이마에서 발해지는 작은 불빛으로
저 멀리 산그리메를 두루 살펴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함에도 지난 구간의 태백능선자락보다
훨씬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함(^^)에
상석씨 곁에서 한참을 머물며 멋진 상고대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니
그것 자체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시야가 트일 때라면
북쪽으로 두타산과 청옥산,
남으로는 태백산을 거쳐 소백산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수많은 고봉준령 가운데서도 한반도 등줄기로서의 당당함이 돋보였을텐데.....
아쉽긴 하지만 다음이 있기에 발걸음을 옮긴다.
중함백을 지나면서부터 간밤의 눈으로
등로를 확보하지 못하여 알바를 하기도 했지만
좋은 기운의 산맥에서 덤으로 좋은 기운을 더 받으며
자연이 빚어놓은 아름다운 풍광속에서
작은 점으로 자연스럽게 자연이 된다.
각각의 점들은 때로 나란히 걷기도 하고
어울렁 더울렁 풍광속에 스며들기도 한다.
사는 것이 사는 것처럼 서로에게 스며듦이
이토록 절절한 아름다움이 되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조릿대는 감당할 만큼의 눈을 얹은 채
등로를 하얗게 수놓았다.
어릴 때 방과후에 남아
담임선생님께 배웠던 수묵화 중 대잎의 기본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걷는 발걸음만큼이나 행복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서서히 사위가 밝아지고 두문동재 못미쳐 아침을 먹는다.
손시렵지 않아서 먹는 일도 수월하고 맛도 더하다.
식후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헉헉대며 오르니
수줍은 새색시 마냥 은대봉이 고개를 숙이며 비켜섰다.
한참 부끄럼 많던 어릴 적 모습이 덧없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터널 중에 가장 긴 정암터널(길이 4,505m)이
발 밑에 있기에 조심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금새 두문동재에 내려선다.
두문동은 조선 건국을 반대하던 고려의 충신 72명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두문불출하다
태조에게 불에 타 죽임을 당한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두문동재서 걷기 좋은 등로를 따라
약 1km가량 더 걸어 금대봉에 도착한다.
함께 사진도 찍고 고운 눈 밭을 떠나지 못하여 서로 즐기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자그마한 봉우리를 서너 개 지나며
아름드리 물푸레 나무가 있던 수아밭령에 닿는다.
예서 왼쪽으로 꺾어들면 검룡소로 빠진다는 이정표를 보고
직진하여 숨이 턱에 닿는 오르막을 오른다.
금대봉, 함백산, 태백산이 한눈에 보이는 비단봉(1,279m) 정상이다.
이름이 참 곱고 아련하다.
비단봉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하이얀 눈에 덮인 나무와 산자락이 몽환적이다.
약한 눈발이 이어지는 하늘도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파아란 하늘이 열려 쨍함을 즐기지는 못하나
멜랑꼬리한 정감 가득하니 절로 커피 생각이 깊다.
세상사 다 양면의 즐김이 있기에 살만하고도 남는다.
본격적으로 매봉산을 가는 길에 이른다.
고랭지 채소밭은 거의 초죽음의 비경이다.
고랭지 채소밭이 형성되어 먹거리에 큰 역할도 하겠지만
오늘은 그야말로 수평의 은백평원이라 맘도 드넓어지는 듯하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맥을 놓고 보고 또 보며 매봉산길을 돌고 돌아 오른다.
바람의 언덕, 큰 매봉산 상석, 매봉산풍력발전단지를 거쳐
꽁꽁 숨겨졌던 매봉산을 겨우 찾아든다.
천의봉이 따로 있나 둘러보았는데
상석의 뒷면에 천의봉이라 새겨놓았네.ㅋㅋㅋ
하늘봉이라는 천의봉이 어찌하여 매봉이란 이름을 얻었는지 궁금타.
태조 때부터 매사냥을 즐겨 한 곳이었는가?
천의봉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이름일진데 아깝다.
하산하며 눈을 헤친 발자국을 따르다 낙동정맥의 발원지를 놓쳤다.
산이랑님 등 몇 분을 만나 길안내 도움을 받아 발원지까지 도로 오른다.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래치는 곳이니
지리지형상 매우 중요한 곳이겠다.
명랑 쾌활하여 주변을 기분좋게 만드는 국화님과 함께 걸으니
재미없는 임도도 신난다.
언제나처럼 날머리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회장님을 뵙고
빗방울이 떨어져 세 곳으로 나뉘어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된다는 삼수령까지
무사히 잘 내려와 이번 구간을 마무리 짓는다.
첫댓글 태백산구간보다 약간덜추워서 조금더 편히다녀오신것 같아보입니다~~ㅎ
올겨울 소백산 ~태백산~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큰산들을 눈꽃산행으로 즐기시는 것 같네요~~ㅎ
다녀오시고, 바쁘실텐데 대간기까지 올리시어 즐겨감상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깨끗한 사진이 작가수준 입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한구간을 이뿌고 상세하게 꾸며 놓으셨어요
항상 섬세하신 재주에 놀랍습니다
사진찍고 글 올려 놓으시고 참 감사할따름 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자연이 빚어놓은 아름다운 풍광속에서
작은 점으로 자연스럽게 자연이 된다.
각각의 점들은 때로 나란히 걷기도 하고
어울렁 더울렁 풍광속에 스며들기도 한다.
사는 것이 사는 것처럼 서로에게 스며듦이
이토록 절절한 아름다움이 되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마치, 스피노자의 그 유명한 이데아의 이데아 론을 읽는 것 같습니다. 신은 자연과 세계 속에 존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 신이 결국 사람이 아닐까? 란선님의 문장에서 그런 자연이 발견되어 설렘이 남습니다.
사실 저 자연 속 아름다움 한 점 얻으려고 떠나는 여행은 길을 나서는 자에게 주어지는 설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냥 부럽기만한 요해입니다. 그래 오늘 밤 베란다 밖에 작은 점들이 있는지 나도 함 관찰해 봐야겠습니다.
보석이라면 아름답고 희귀한 광물질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일반적인 보석이 외적 치장에 쓰이며 부를 과시하기도 합니다.
란선 님이 쓴 주옥같은 글을 읽고 있노라니 ‘글 보석’ 또는 ‘보석 글’이 있음을 느낍니다.
‘글 보석’은 내면의 정제(精製)된 사유(思惟) 과정을 거쳐 벼린 정신적 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 많이 쌓인 긴 구간을 걸으며 발자국 하나하나에 깊은 사색의 결과물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수놓는 재주와 정성을 접하면서 놀라움과 존경심이 솟습니다.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을 수강하려면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고, 학원에서 이른바 ‘일타 강사’에게 과외 수업받으려면 고액의 수강료를 내야 하거늘, 구독료와 수강료를 지불하지 않고 수준 높은 글을 접할 수 있어 기쁘고, 한편으론 ‘도강’(盜講)하는 느낌이 들어 미안한 마음도 일어 납니다.
깨끗하고 선명한 사진 멋집니다.
눈 많고 먼 길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사진도 예술이고 글도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 달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