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숲이라는 자연환경이 가져다주는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질병치유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들이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숲에서 걷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단순한 면역력의 증가뿐 아니라 우울증 호전, 스트레스 감소, 고혈압 및 심장박동 안정, 그리고 NK세포의 활성화까지 가져온다는 연구결과가 국내•외 논문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 성분 한 두 가지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나무와 꽃, 바람, 햇빛의 향기 등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적인 공간으로서의 숲 전체로부터 오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이러한 숲의 기능을 이용한 치료를 하고 있는 신윤경 원장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을 만났다.
‘숲에서 명상하며 걷기’의 효과
신윤경 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숲 걷기의 효능에 대한 논문 ‘숲과 체육관에서 명상적 걷기와 운동적 걷기의 심리•생리적 효과 비교’로 의학박사 학위(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정신과학•2012년 8월)를 받았다. 그리고 이 논문은 숲 연구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다고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숲 연구 학술지 (Scandinavian Journal ofForest Research)’ 2013년 1월호에 ‘Differences of psychophysiological effects between meditative andathletic walking in a forest and gymnasium’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이 논문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환경과 활동의 차이에 따른 심리•생리적 효과의 차이를 비교한 선구적 연구이기 때문이다. 특성을 달리하는 두 가지 활동인 명상적 걷기 (meditative walking)와 운동적 걷기 (athletic walking)를 각각 숲(forest environment)과 실내 (indoors)에서 시행한 것을 비교했을 때, 명상적 걷기는 운동적 걷기에 비해 더 큰 정신생리학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운동하듯 속도를 내어 달리거나 하는 것이 아닌, 천천히 사유하며 명상하듯 걸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과 불안감이 감소하는 한편 자존감과 행복감은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나타냈다. 이는 곧 숲이라는 자연환경은 우리에게 주관적인 행복감을 제공할 수 있으며, 특히 숲에서의 명상적 걷기가 행복감을 향상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뭍에서 입도한 육지 사람’의 제주 숲 이야기
신윤경 원장의 논문의 ‘숲’은 곶자왈이다.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시원하여,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제주의 천연 원시림으로, ‘제주의 허파’라 불리며 한겨울에도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곶자왈을 특정하여 2년 동안이나 연구를 했다니, 당연히 제주도 토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뭍에서 입도한 육지 사람’이었다. 삶의 대부분을 서울과 인근 수도권 지역에서 보냈고, 더군다나 산이나 숲에 가는 건 동문회에서 개최하는 산행에 일 년에 한 번 정도 참석하는 게 전부였다는 그가 ‘숲에서의 명상적 걷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숲이 좋다고 느끼기는 했어도 찾아다니지는 않았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생활을 하며 늘 여유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좋아 보이는 생활이었지만, 실제 제 마음과 몸은 점점 더 빈곤해지고 강퍅해졌어요. 그래서 2008년 7월 제주에 임시 직장을 정하고 무작정 내려왔습니다. 그때가 제주에서는 올레 걷기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일 거예요. 그래서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쉬엄쉬엄 올레길을 걸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점점 더 편안해지고 활력이 솟고 기분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았는데, 숲 걷기나 숲 체험이 좋다는 연구가 있기는 했지만 연구 대상자 수가 10명 내외로 너무 적거나 실험 대조군이 없다거나 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 숲을 걷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어요. 제가 경험한 것처럼 천천히 숲과 자신을 느끼며 걷는 것 소위 명상적으로 숲을 걷는 것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되니, 제 안에서 의욕이 샘솟았어요. ‘내가 경험한 것이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될 수 있을까? 한번 알아보자!’ 그래서 그 후로 약 2년 간 거의 매주 제주의 여러 올레길과 숲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더욱 건강해졌구요. 그래서 제주의 여러 곳을 답사한 끝에 최종적으로 2010년 여름 곶자왈 숲길 한곳을 낙점해서 예비 실험을 했고, 가을에 그곳에서 140명을 대상으로 숲을 명상적으로 걷는 것의 효과에 대해 정식 실험을 했습니다.”
직접 경험한 숲의 효능
몇 개월의 휴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내려왔던 제주도에서 신윤경 원장은 올해로 일곱 번째의 7월을 맞이하고 있다. 올레걷기로 건강을 회복한 후에도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만 해도 제주에서 7개월 정도 지내다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익숙했던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다 보니 ‘잘 산다는 건 뭐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어떤 거지? 나는 무얼 좋아하는 사람이지?’ 이런 질문들을 저 자신에게 던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전에도 그런 질문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늘 쫓기는 마음에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지속적으로 품고 있지는 못했던 거지요. 남들이 멋있다고 볼 것 같은 어떤 가치들을 좇으며 바쁘게 살았던 거죠. 그런데 이런 질문들을 마음에 품기 시작하니 다시 이전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이후로 지금까지 저의 선택과 결심에 대해 아주 만족합니다. 물론 제가 제주에 살면서 그런 철학적인 질문에 답을 얻었다거나 제 삶이 온전해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여전히 모순과 여러 갈등이 있는 삶을 살고 있지요. 하지만 이전의 제가 브레이크가 고장난 경주용 자동차였다면 지금은 그 자동차를 수리해서 경주로가 아닌 일반도로를 달리는중이라고나 할까요. 브레이크가 잘 듣는지, 가려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살펴도 보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는 멈추어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고 놀기도 하면서요.”
왜 환경 전체로서의 숲이 중요한가
우리나라에도 숲의 질병치유효과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보통사람들도 피톤치드나 음이온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신윤경 원장이 강조하는 것은 특정 물질이나 단편적인 효능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숲이라는 환경이다.
“사람들이 숲에 자주 가고 숲을 연구하는 것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숲에 가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경험적으로 좋은 것을 사람들이 후에 연구를 통해 입증하는 것인데,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다 보니 복잡하고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과학적 연구의 측면에서는 미국 미시시피 강가의 숲에서 걷기가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해서 세계의 다른 모든 숲들이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 없거든요. 왜냐 하면 숲이라는 환경은 너무나 다양한 요인들로 구성돼 있고 각각의 숲마다 조금씩 때로는 아주 많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숲이라는 환경에서 한 두 요인을 추려내고 그것을 연구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게 연구된 것이 바로 피톤치드나 음이온이지요. 그러므로 피톤치드나 음이온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숲의 효과를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이죠. 숲은 수많은 동식물과 물, 바람, 햇빛 등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숲의 치유 효과를 제대로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숲에 가서 숲의 향기와 모습과 소리와 촉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적 걷기가 무엇인가요
신윤경 원장이 논문에서 말하는 ‘천천히 사유하며 걷는 명상적 걷기(meditative walking)’라는 표현이 생소했다 왠지 뒷짐이라도 지고 철학자가 된 듯 엄숙하게 숲을 거닐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명상을 걸으면서 해야 한다는 것일까.
“사실 숲을 걷는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냥 바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숲과 자기 자신을 느껴보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코스를 완주하듯 주변 사람과 경쟁하며 걷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주변의 나무와 꽃들, 하늘과 새를 보기도 하고 향기도 맡으며 산책하듯 걷는 거죠. 중간중간 ‘내 몸이 지금 어떠한가 내 마음이 지금 어떠한가!’를 느끼면서요. 그런 것이 명상적 걷기입니다. 하지만 늘 바쁘게 지내 버릇했거나 마음이 많이 불안한 분들은 이렇게 천천히 걷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뭔가 집중이 안 되고 무엇을 느끼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우선 땀이 나도록 좀 빨리 걷고 힘들어 지면 중간에 앉아서 잠시 쉬거나 나무를 잠시 보듬고 안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숲이 많이 친숙해지면 그때는 천천히 느끼며 걸어보는 겁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주변 사람들이 신경이 쓰이기도 하겠지만, 가능한 자주 가서 걷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국가의 새로운 산림정책 : 산림의료시대
최근 우리나라에도 건강에 대한 관심과 숲의 질병치유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치유의 숲’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치유의 숲이란, 산림의 피톤치드, 음이온 등 다양한 환경소요를 활용하여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국가의 주도 하에 지자체 및 민간단체가 함께 준비하고 있는 국내 산림치유산업은 그 범위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양평과 횡성 등 네 곳에 조성되어 있는 ‘치유의 숲’을 2017년까지 34곳으로 확장할 예정이며,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 등에 대규모 산림의료시설인 '산림치유단지'를 신설하고, 전문 산림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할 ‘산촌치유마을’ 10곳을 운영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관광휴양림에서 국가의 새로운 산림정책에 따라 산림의료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는 숲의 질병치유효과에 대해서 신윤경 원장은 우려의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뵈리스호펜의 산림휴양단지와, 일본에서 시작된 산림치유가 도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각종 질병을 가진 분들이 보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자연의 치유효과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병이 되기 전에 미리 건강을 잘 관리하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치유의 숲이나 치유단지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숲을 자주 방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최근 마치 숲이 만병통치의 치료법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과장된 것이고 숲은 건강을 관리하고 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며 질병에 대한 치유효과는 보조적인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맑거나 흐리거나 제주의 숲 즐기기
장마철이 아니어도 비가 자주 내리는 제주의 날씨 때문에, 제주를 찾은 많은 분들이 비가 오면 야외활동을 꺼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주의 숲은 비가 오더라도 산림이 울창하기 때문에 산책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비 때문에 더욱 짙은 숲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숲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제주의 숲길은 대체로 연중 기온차가 크지 않아서 비가 오더라도 그다지 춥지 않습니다. 또 나무들이 방풍 및 우산 역할을 하여 기후로 인한 불편을 덜 느끼게 해주지요. 그리고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 숲에서는 피톤치드나 음이온 등의 물질이 더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좀더 상쾌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제주는 다른 도시 지역에 비해 맑은 날은 자외선이 강한 편이라 도리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야외활동에 더 나은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이때 비를 맞아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니, 보온과 방수가 되는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요. 제주는 아름다운 숲을 곳곳에 가지고 있지요. 고려시대부터 국가가 관리해온 비자림을 비롯해서 곶자왈, 사려니숲길, 절물휴양림, 서귀포자연휴양림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곶자왈은 다양한 식물군이 공존하는 곳으로서의 희귀성과 계절 변화에 따른 기온과 습도의 차이가 크지 않아 사계절 모두 접근성이 좋은, 매우 유익한 환경입니다. 실제로 숲의 나무 수령에 따른 치유효과를 비교한 연구에서, 약 50년생 나무들로 구성된 숲과 약 300년생 나무들로 구성된 숲을 비교했을 때, 오래된 숲이 치유 효과가 더욱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최근 조성된 숲보다 곶자왈 숲의 치유효과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겠죠.”
숲과 인간이 함께 이루어내는 치유효과
그는 앞으로 환경과 활동에 따른 효과의 차이에 대해 성별과 연령대를 달리하는 많은 대상자에게 다양한 심리•생리적 지표를 조사하는 후속연구를 준비중에 있다. 현재 해외와 국내의 연구자들에게 의해서 다양한 질병에 대한 예방효과와 보조적 치유효과가 발표되고 있지만 이러한 연구가 극소수 의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아직도 숲이 가진 치유효과를 밝혀내는 연구는 불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숲이라는 환경과 인간이라는 환경이 함께 이루어내는 효과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자연환경도 누구와 함께 어떤 상태에서 경험하느냐에 의해 매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숲의 환경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고 의지하며, 때로는 서로의 밑거름이 되면서 숲이라는 유기적 환경을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숲을 통해 개별 생명체의 유한성과 여러 생명체 사이의 연결성, 그리고 이러한 연결을 통해 생명의 지속성을 느끼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숲으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