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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무엇 때문입니까?/욥 1:6-12
○ 욥을 시험하기 위해 허락을 얻는 사단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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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조상호목사
어느 유머집에 ‘교인의 종류’에 대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미 수년 전에 교인의 종류를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한 등급 엎데이트 된 ‘교인의 종류’입니다. 가만히 들어보시고 여러분들이 어떤 종류의 교인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교회 안에는 스스로 나아가지 못하고 항상 뒤에서 밀어주어야 간신히 앞으로 가는 ‘휠체어 같은 교인’이 있고, 이와는 정반대로 앞에서 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트레일러 같은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또 항상 누군가가 등을 두드려 줘야 칭얼거리기를 그치는 ‘어린애 같은 교인’이 있고, 쉽게 끓지만 또 쉽게 식기도 하는 ‘냄비 같은 교인’이 있고, 비만 오면 축 쳐져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종이 같은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 체육 대회 때만 나오는 ‘운동선수 같은 교인’ 있고, 설교시간에 설교 점수 매기는 ‘시험관 같은 교인'이 있고, 설교만 시작되면 고개 숙이고 조는 ’묵상 교인‘이 있고, 축도를 안 받고 도망가는 ’줄행랑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데이트 상대를 구하기 위해 나오는 ’연애 교인‘이 있고, 교인을 상대로 장사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비즈니스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무지 언제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럭비공 같은 교인’이 있고, 언제 터질지 몰라 주위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 ‘고무풍선 같은 교인’이 있고, 항상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깜빡등과 같은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말이 됩니까?
누가 분류했는지 모르지만, 머리깨나 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분류가 현재 교회에 나오고 있는 교인들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구분한 교인의 종류가 너무 많아 다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고민하며 생각해보았더니, 교회 안에는 크게 세 종류의 교인으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저에게 OO을 해주시면 열심히 믿을 것입니다’ 라고 하는 “If 형 교인”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OO을 해주셨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믿겠습니다‘라고 하는 “Because of 형 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믿겠습니다‘라고 하는 “In spite of 형 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종류의 교인입니까? “If 형 교인”입니까? “Because of 형 교인”입니까? “In spite of 형 교인”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만약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때문에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가진 욥의 삶을 살펴보면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욥입니다. 그런데 본문 1절부터 3절을 보면 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이 말씀을 통해 욥의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순전하고 정직한, 다시 말하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신앙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로 일곱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을 둔, 다시 말하면 고대 시대에 자녀가 많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가정적으로도 다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넷째로 7,000마리의 양과 3,000마리의 약대와 500마리의 소와 500마리의 암나귀와 수많은 종들을 거느린,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가장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나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면,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잔치를 벌이다가 혹시 자녀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을까, 파티를 하다가 혹시 아들, 딸들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성결케 하기 위해 자녀 수 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만큼, 그는 매우 훌륭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단이 하나님께 찾아오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말씀합니다.
다같이 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질문할까요?
지금 누가 누구에게 질문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사실 사단이 욥에 대해서 하나님께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단이 이번에는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이 구절이 욥기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욥이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다 하나님이 10명이나 되는 아들딸들을 주시고, 소와 양과 약대와 같은 많은 재산을 주셨으니까,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까 그가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거 아닙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그의 모든 가족과 재산을 다 빼앗아 보십시오. 틀림없이 그가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신 줄 아십니까?
제가 12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좋다. 네가 그의 소유를 네 마음대로 하여라. 그러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욥의 믿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많은 물질과 종들과 자녀들 때문에 당신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단으로 하여금 욥의 믿음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스바 사람들이 와서 소와 나귀를 다 빼앗아 갔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양과 종들이 다 타죽어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갈대아 사람들이 외서 약대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강한 돌풍이 불어 10명의 아들딸들이 한꺼번에 죽는 참사를 겪는 등, 순식간에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한 날에 연이어서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욥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20절부터 22절을 보겠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갑자기 당한 시련 속에서 비록 욥은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며 슬픔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입술을 열어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신 분도 야훼이시며 가져가신 분도 야훼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역경과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질문하겠습니다. 욥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재물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10명이나 되는 많은 자녀들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에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께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축복된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찬양하고 경배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재물이 다 사라졌지만, 그의 자녀가 다 죽었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잃어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위 환경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의 조그마한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에 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야간이었기 때문에, 그는 속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0㎞라고 쓰여진 도로에서는 50㎞로 갔습니다. 60㎞라고 쓰여진 도로에서는 60㎞로 달렸습니다. 80km라고 쓰여진 곳에서는 80km로 달리는 등, 속도를 확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경찰차가 ‘삐오삐~‘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오더니 차를 멈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차를 세우십니까?"라고 따졌습니다. 그 때 경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운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 동안 도로변에 있는 가로등과 다른 차량의 불빛을 따라 운전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산다고 말은 하면서도 여전히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다니며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이 밝아지면 좋아하고 환경이 어두워지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믿음을 초보적인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 때는 징징거리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도, 환경이 좋아지고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는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초보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물질로 말미암아 어려움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나빠져서 고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베테랑 믿음’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은 어떤 종류의 믿음입니까? ‘초보적인 믿음’ 입니까? 아니면 ‘베테랑 믿음’ 입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욥은 ‘베테랑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비록 재물이 다 사라졌지만, 자녀들이 다 죽임을 당했지만,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박국이라는 선지자가 바로 욥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박국 3장 17절과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말을 요즘 말로 바꾸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월급도 제 때 못 받았다가, 급기야는 회사가 어려워져 문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것도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입니다. 벌어둔 돈은 다 까먹어 빈 통장만 남았습니다. 집세는 밀리고, 카드 빚은 늘어나고, 아이들은 학비 달라고 매일 아침 성화를 부리고, 허구헛날 빚쟁이가 빚 독촉을 합니다. 미래가 깜깜합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즐거워하며,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화과나무 열매가, 포도나무 열매가, 감람나무에 달린 소출이, 밭에 있는 식물이, 우리 안에 있는 양이, 외양간에 있는 소가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잘 되고, 시험은 쳤다 하면 A 학점이 나오고, 돈이 필요할 때는 아르바이트도 척척 생기며, 하는 일마다 잘 될 때, 그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감사하소 기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업은 잘 안 되고, 기름값은 점점 올라가서 차 끌고 다니기 어려워지고, 학기말 고사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은 곳에서만 시험이 나와 시험을 죽 쑤었을 때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습니까?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까?
1930년대 미국에 대공황이 몰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라는 유명한 무신론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법률가 출신인데 무신론자가 되었고, 거기다가 무정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이 경제 공항에 빠지자 그는 자기의 무신론을 설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돌아다니며 강연할 때마다 “여러분, 이 사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어려운 상황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데모와 무장폭동을 일으키도록 부추겼습니다. 하루는 흑인들을 모아놓고 무신론 강연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꿈도 잃었고, 재산도 잃었고 노래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소리를 치는데, 갑자기 저 뒤에서 한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들더니 “박사님, 저는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클래런스 박사는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노래할 수 있단 말입니까?”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큰 소리로 “예수님 때문에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맞습니다. 맞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입니다.”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한 순간 그 강연회 장소의 분위기가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살았던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죄 가운데 살다가 심판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먹보다도 검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망 권세와 마귀에 매여 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안을 선물로 누리며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되고 유익이 됩니다.
6주 만 지나면 성탄절이 되는데, 1870년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올 때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도 양군은 서로의 진지 속에서 한동안의 총격전을 치른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참호 속에 누워서 반짝이는 성탄의 별을 바라보며, 고향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 싸워야만 하는가?' 그들은 추위와 바람 속에서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성탄의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프랑스군의 참호에서 한 병사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테너의 음성으로 “오 거룩한 밤”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거룩한 밤, 별들 반짝일 때
거룩한 주 탄생한 밤일세.
오랫동안 죄악에 얽매여서
헤매던 죄인을 놓으시려
우리를 위해 속죄하시려는
영광의 아침 동이 터 온다.
경배하라! 천사의 기쁜 소리,
오! 거룩한 밤, 주님 탄생하신 밤,
그 밤, 주 예수 나신 밤일세."
아기 예수를 향한 찬송은 전쟁터의 밤하늘에 은혜롭게 퍼져 나갔습니다.
독일 병사들은 깜짝 놀라 총을 겨누었지만, 어느 누구하나 총을 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프랑스 병사의 찬송이 끝나자, 이번에는 독일군 참호 속에서 바리톤의 굵은 음성이 들려 나왔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루터가 작사한 “하늘 위에서 땅으로 내가 왔노라(Form heaven above to I come)”라는 곡이었습니다. 결국 찬송을 통해 잠시 동안이지만,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찬양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 아니라, 찬양을 드리는 우리가 찬양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답답한 심령이 활짝 열립니다. 컬컬한 심령이 만지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지난 10월20일자 연합신문에 실린 한 기사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 신문에는 온몸에 '26만 마리 벌 붙이기' 성공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사는 43세의 안상규씨는 지난 달 20일 정오 대구월드컵경기장 서편 광장에서 온몸에 26만 마리의 벌을 붙이는 '전신 벌 인간 만들기'에 도전하여 성공했다고 합니다. 안씨의 전신에 벌 붙이기 도전은, 월드컵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2002년 5월에 22만 마리의 벌을 붙이고 번지점프를 한 것과, 지난 5월 경북 칠곡에서 열린 아카시아 벌꿀축제 때 온몸에 25만 마리의 벌을 붙이는데 성공한 것에 이어 3번째라고 합니다. 이날 안씨의 몸에 붙은 벌의 무게만도 50㎏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벌을 온 몸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언론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글자를 섰고, 이어서 26만 마리의 벌을 붙인 채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묘기도 선보였습니다. 원래 안씨는 10월18일에 개통한 대구지하철 2호선의 역사(驛舍)가 26곳이어서, 26만 마리의 벌을 붙이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벌 인간 만들기에 성공한 것처럼 대구지하철도 예전에 지하철에서 불이 났던 악몽을 완전히 잊고, 계속해서 안전운행을 했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가 26만 마리나 되는 벌을 그의 전신에 붙일 수 있었던 비결을 아십니까? 수십 년간 양봉을 해 온 안씨는 이번 이벤트 과정에서 수백 차례 벌에 쏘였지만 그 동안 너무 많이 벌에 쏘였기 때문에 면역이 형성돼 큰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만, 몸무게 800㎏이 나가는 황소도 한꺼번에 150~200차례 정도의 벌에 쏘이면 즉사할 만큼 위험한 벌을 26만 마리나 그의 몸에 붙일 수 있었던 비결을 아십니까? 그 비결은 여왕벌에 있습니다. 안씨는 이날 정오를 전후해 여왕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자기 몸에 발랐는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여왕벌 10마리를 먼저 자신의 몸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눈과 코, 등 얼굴 일부만 제외한 온몸에 다른 벌 26만 마리를 2시간여에 걸쳐 붙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안씨가 26만 마리의 일벌들을 자기 몸에 붙일 수 있었던 것은 겨우 10마리의 여왕벌 때문입니다. 10마리의 벌로 26만 마리의 일벌들을 유인한 것입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일벌이 아니라, 여왕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도 적용이 됩니다. 26만 마리를 전신에 붙이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마리 일벌 대신 여왕벌을 붙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복되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가지의 별로 가치 없는 것들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신 하나님 한 분을 붙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왕벌만 붙들면 나머지 수백, 수천 수십만 일벌들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처럼, 가장 확실한 인생의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붙들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욥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에 기뻐하기 보다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비록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 안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있는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에 기뻐하는 초보적인 믿음의 소유자들이 아닌,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베테랑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어떤 은혜보다 가장 먼저 우리 인생의 해답이 되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