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족보가 애매한 상주아리랑
인터넷이나 아리랑 주제 공연 자료에서 ‘아리랑’을 검색하게 되면 여러 종류가 뜨는데, 그 중에는 <상주아리랑>도 있다. 명창 김소희(1917~1995)선생이 불렀다는 설명과 함께,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지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사설에 중모리, 엇모리장단으로 불린다고 되어있다.
사설의 내용으로는 1928년 경북 상주 지역에서 30가구가 간도지역에 이주하는 상황이 보도되고 있어 얼핏 이러한 상황을 노래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찾을 수가 없다. 역시 인터넷이나 민요관련 자료 어디에서도 배경에 대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도 학위논문에서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바 있는데, 이는 전국적 명성에 비한다면 의외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어떤 아리랑을 말하게 될 때 ‘족보가 어떻게 되느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물음은 강원도·경상도·전라도·경기지역 아리랑 중 어느 지역의 어떤 아리랑과 계보가 닿느냐라는 것이거나, 그것이 문헌상에 근거가 있는 것이냐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개는 후자에 방점을 두게 되는데, 바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아리랑 중의 하나가 바로 <상주아리랑>이다. 우선 문헌상의 출현 여부를 살피기로 한다.
1924년 엄필진이 발행한『조선동요집』에는 “이 童謠는 尙州지방에서 유행하나 어느 향촌을 물론하고 15세 이하의 목동들이 흔히 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채록 시점을 밝히지 않아 들은 시점을 정확하게 댈 수는 없지만 1924년 이전에 아리랑이 동요로 부렸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매일신보>(1930, 5, 23)에 수록된 상주지역 아리랑인데 설명에는 ‘목동들이 영남지방에서 흔히 부르는 노래’라며 <아리랑 아리랑>을 수록했다. ‘목동의 노래’라는 점에서는 위의 동요와 같다.
‘아리랑고개에 집을 짖고/ 동모야 오기만 기다린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얼시구 아라리야’. <아리랑 아리랑>의 첫 절과 후렴이다. 이는 4년 후인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보도 된 <목동의 아리랑>과 사설은 다르지만 ‘목동의 노래’라는 점은 같다. 이는 1920~30년대 ‘목동의 아리랑’의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이상에서 일제강점기 문헌에 수록된 상주 지역의 아리랑은 각각은 다르지만 ‘목동의 아리랑’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날의 민요조사에서는 확인 되지 않는다. 그럼으로 이들은 일정 기간 또는 특정인들에 의해 불려진 것들이지만 상주의 지역성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고유 아리랑은 아닌 것이 된다. 물론 오늘날 불리는 <상주아리랑>과 다른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1980년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사, 90년대 한국문화방송 조사, 그리고 문화재청 이소라 전문위원과 경북대 김기현교수의 조사 자료(2006 문화재청 발행 <아리랑종합전승실태조사보고서>)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또한 앞에서 제시한 오늘날의 <상주아리랑>도 이들 조사보고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의 아리랑들은 전승이 끊겼기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보면 되는데, 현재 전국에서 불리는 <상주아리랑>이 이들 조사자료에 수록되어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욱이 상주지역 문화원 등에서도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다. 그야말로 이 <상주아리랑>은 족보가 애매한 아리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