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국 관광 공사에서 진행하는 숙소체험 이벤트에 당첨돼 힐리언스 선마을이라는 곳에서 1박 한 적이 있다.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것처럼 그곳만의 독특한 컨셉을 가진 숙소다. 이렇게 특정 숙소의 숙박기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같은 언컨택트 시대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이런 유일무이한 것 같은 독특한 숙소에서 지내보는 것도 하나의 여행법이라 생각해 경험담을 끄적여본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웰에이징을 위한 식습관, 운동습관, 마음습관, 생활 리듬습관을 체득할 수 있게 도와주는 웰에이징 힐링리조트.
뭔가 그럴 듯해 보였지만, 난 성격상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인위적인 어떤 설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 특히 그 설정이 어떤 규율을 강요한다면 그 마음은 더욱 강해진다. TV도 인터넷도 없는, 심지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그런 문명에서 벗어난 공간에서의 완벽한 휴식. 을 표방하는 힐리언스 선마을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네 하는 호기심과 함께 그런 설정이 주는 거부감이 동시에 일었다. 그런 모순된 마음을 안고 강원도 홍천으로 떠났다.
한참을 달려 네비게이션에 찍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로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방향을 꺾자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외길 도로가 나타났다. 좁은 도로를 따라 1km 남짓 들어가자 힐리언스 선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과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핸드폰의 신호가 사라졌다. 오호~ 이제 시작이군.
차를 세우고 리셉션이 있는 듯 보이는 건물로 갔다.
웰컴 센터로 명명된 건물의 호텔 로비 같은 곳에서 이곳에 대한 홍보 자료를 보며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 일정표와 리플릿을 들고 예약해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약된 방이 하필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시작부터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래도 왠지 이왕 온 김에 이곳이 제공하는 자연을 충분히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잘 닦인 도로가 아닌 좁은 오솔길을 선택해 걸었다.
한참을 걸어 정말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겨울이었기 망정이니 여름이었으면 땀 좀 흘렸을 게 분명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이 좀 좁은 듯했으나 깔끔한 정리정돈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창밖으로 연결된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좋았다. 나무가 한창 푸르를 때오면 훨씬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리로 된 천장에서 들어오는 햇살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생활한복(왜 이런 곳에선 꼭 이런 옷을 입는지 모르겠지만)으로 옷을 갈아입고 기념사진을 한방.
역시나 우리에겐 옷이 좀 짧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슬슬 걸으며 선마을을 둘러봤다.
요가나 강의, 스파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이가 있어서 그냥 산책에 만족했다.
솔직히 내 돈 내고 이곳에 왔다면 어떻게든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일정표를 보고 꼼꼼히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허나 몸이 움츠러드는 쌀쌀한 날씨에 굳이 몸을 펴고 싶지 않았다. 숙소부지가 넓고 여기저기 둘러볼 것이 많아서 산책만 해도 그리 지루하진 않았다.
이곳의 컨셉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감정이 솟아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산책하는 내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같았다. 묵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서도 왠지 모를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몸도 녹일 겸 카페에 가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셨다.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실내에 많이 모여있었다. 당연히도 다들 좀 심심해보였다.
할 일도 없던 차에 식사시간이 돼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나름 건강식이라 말할 수 있는 간단한 뷔페였는데 음식들이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한 티가 났다. 전반적으로 정갈하고 맛이 훌륭했다. 고기반찬 없는 식단이었으나 이 정도면 몇 끼 정도는 충분히 즐길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를 안고 다닌 탓도 있고, 평소 운동을 게을리한 탓도 있겠지만 내가 묵는 방에 다다르는 길의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산책하느라, 밥 먹느라 두어 번 내려갔다가 올라왔더니 이제 다시 올라오는 게 귀찮아서 더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말하는 ‘의도된 불편’까지는 좋은데 ‘강요된 불편’도 조금은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TV나 인터넷이 없으니 할 일이 없어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유리 천장 사이로 별들이 보였다.
아내와 별을 바라보며 오랜 대화를 나눴다. 아마도 이곳은 이런 효과를 바라고 지어진 것이겠지.
이곳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정히 인사를 나누는 문화였다. 아저씨들은 좀 어색해했지만, 아주머니들은 정답고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장수마을로 유명한 파키스탄 훈자 마을 카리마바드에 갔을 때 꼭 그랬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열흘을 지내고 나니 어느새 먼저 인사를 건네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장엄한 자연, 순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흘 만에 내 속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때 난 그 짧은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이 정화된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이곳이 훈자마을 카리마바드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향기가 느껴진 건 사실이다. 큰 차이점은 그곳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이고, 이곳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것.
솔직히 갑작스레 결정된 방문이고 마음의 준비도 없었던 터라 이곳의 규칙 속에서 계속해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군것질도 못 하고, 이런 자연 속에서 맥주 한잔할 수 없다는 것도 짜증이었다.
그래도 읽고 싶었던 책 싸 들고, 한 일주일쯤 이곳에 머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숙소 가격이 녹록지 않아서 일주일 지낼 돈이 있으면 이곳에 올까 싶기는 하다만...
PS. 이곳에 방문했을 당시가 2017년 초였다. 이번에 글을 쓰며 다시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숙박비가 거의 절반 가격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와인과 최고급 육류 석식이 포함된 프리미엄 숙박이 생긴 걸 볼 수 있었다. 장사가 잘 안되나 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