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1,2 / 유치환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유치환(柳致環): 1908 - 1967>
<해설> 1939년 유치환의 첫번째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에 수록된 시이다.
유치환의 시에는 <바위>, <생명의 서>과 같이 현실 극복과 허무 의지를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 많아 의지의 시인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의지의 시인이라는 평에 대해 유치환은 스스로 "의지적인 특성은 작품상에 나타난 경향일 뿐 사실은 흔들리기 쉽고 구겨져 쓰러지기 쉬운 비의지적인 나약한 심지의 인간" 혹은 "작품상의 그러한 경향은 자신의 본질이 의지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갈구하는 나머지의 허세에 불과한 것이고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희원의 발현" 이라고 하였다.
유치환 그리움에서는 유치환 스스로 말하는 감성적 인간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현대시작품, 인터넷)
유치환이 통영여고에서 같이 근무했던 시조시인 이영도 여사를 좋아했다. 유치환은 유부남이었고, 이영도는 딸 하나 있는 미망인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유치환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지만, 유치환의 끝없는 구애에 드디어 이영도는 마음을 열고 둘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행복>, <그리움 1,2>도 유치환의 구애의 시의 하나라고 한다.
이영도는 시 그리움으로 화답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리움 1은 이영도 시인이 청마를 잊기 위하여 학교에 사표를 내고 부산으로 잠적했을 때 청마가 쓴 시라고 한다.
이영도(李永道)시인은 시조시인으로 이호우(李鎬雨) 시인의 여동생이다.
그리움 / 이영도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 한 가슴
밀고드는 그리움
그리움 2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해설> 1939년 유치환의 첫번째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에 수록된 시이다.
누구를 향한 그리움이길래 이렇게 절절할까.
바닷가에 서 본 사람은 안다.
끝없이 밀려와 부딪치는 파도의 엄청난 에너지를, 그 무게를. 그것을 잘 아는 바닷가 출신 시인이기에 파도에게 묻는다. 그렇게 끝없이 두드려도 임은 뭍(육지)같이 끄떡도 하지 않고, 부서져 내리는 것은 자신의 마음뿐임을.
파도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갈망을, 그러나 매번 꿈쩍도 않는 상대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격렬한 괴로움과 몸부림을, 그러는 나를 어쩌면 좋으냐고 파도에게 애절하게 묻는다.
그럼에도 시인은 시 <행복>에서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고 했다. 나는 시인의 그 사람을 곰곰이 떠올린다. 사랑하면 생각나는 시들이 있다. 내겐 이 시가 그렇다. 아마 내 사랑의 궤적이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학사는 청마를 생명과 허무의 의지를 노래한 시인이라고 기술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의 시인으로 기억한다. 그는 동명의 시를 3편 남겼다. (곽효환/시인, 중앙일보 '시가있는아침')
* 유치환은 이영도 시인과의 사랑으로 유명하다. 유치환은 평생 이영도에게 5천여 통 이상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당시 유치환은 유부남이었기에 이영도는 그 사랑을 끝내 받아 줄 수 없었다.
그러니 이런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시인은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부드러우며, 때로는 부서지기도 하는 자신의 사랑을 파도에 비유하면서 뭍처럼 흔들리지 않는 임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