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11월26일(日)雲
▲팔공산(八公山)(2)(수태골-서봉-파계봉-파계재-파계사)
해봉산악회(29명)
♠참 고
대구시, 영천시, 군위군 부계면(缶渓面), 칠곡군 가산면(架山面) 등의 경계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높이 1,193 m.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하여 동 ․서로 16 km에 걸친 능선을
이루고 있다. 대구의 북쪽에 솟은 진산이며 옛 이름은 부악(父岳) ․공산(公山) ․동수
산(桐薮山) 등이었다. 남쪽에 문암천(門岩川), 북쪽과 동쪽에 한천(漢川) ․남천(南川)
․신녕천(新寧川) 등 여러 하천의 계곡이 발달하였다. 경승지로 이름이 높아 1980년 5월
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팔공산도립공원(八公山道立公園)
개 요
경북의 남부, 팔공산을 중심으로 하는 도립공원.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면적 122.1 km2(대구 30.6km2, 칠곡군 29.7km2, 군위군 21.7km2, 경산시 10.6km2, 영천
시 29.0km2). 1980년 5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공산(1,193m)은 대구 북쪽 끝
에 위치하여 군위군 부계면(缶渓面)․영천시 신녕면(新寧面)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봉(東峰:1,155m)과 서봉(西峰:1,041m)의 양 날개
를 펴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염불봉(念仏峰)․수봉(寿峰)․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
․관봉(冠峰) 등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파계봉(把渓峰)을 넘어 가산(架山)에 이른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9교구 본산(本山)인 동화사(桐華寺)를 비롯하여 은해사(銀海寺)․
파계사․부인사(符仁寺)․송림사(松林寺)․관암사(冠岩寺) 등이 있고, 비로․부도(浮屠)
․양진(養真)․염불(念仏)․거조(居祖)․백흥(白興)․운부(雲浮)․묘봉(妙峰)․중암(中
巌)․내원(内院) 등의 암자가 산재한다. 국보 제14호인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靈山殿),
국보 제109호인 군위 삼존석불을 비롯하여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동화사 당간지주의
금당암(金堂庵) 3층석탑․비로암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운부암 청동보살좌상 등의 보
물 9점, 가산산성(架山山城) 등의 사적 2점, 그 밖에 30개소의 명소가 있다. 팔공산의
북쪽 사면에서는 위천(渭川)․남천(南川) 등이 발원하고 남쪽 사면에서는 문암천(門岩
川)이 흘러 금호강(琴湖江)으로 흐른다. 동화사 근처에는 자연공원이 있어 공중케이블
카 등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 래
팔공산은 우리말로 곰뫼 즉 웅산(熊山)이란 뜻이다. 고대에 곰은 신, 신성의 뜻을 가
졌다. 곰나루(熊津)가 공주가 되듯 '곰'이 '공'으로 표기되었다. 이 공산이 팔공산이라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 8장군이 순절했다고 하여
2. 8고을에 걸친 산이라 해서
3. 8간지를 봉안했다고 해서
4. 8성인이 득도해서 나온 산
이라 하여 팔공산이라 불리었다.
그러나 여덟 장군의 순절설을 보면 고려의 통일 전쟁시에 태조 왕건과 후백제왕 견훤이
동수대전에서 격돌했을 때 신숭겸, 김낙 두 장군 외에 다른 장군의 순절 사실은 없었으
며, 8성인이 득도 했다던 설은 원효의 제자 8인이 천성산에서 공산에 들어와 세 스님은
삼성암에서, 다섯 스님은 오도암에서 득도했다는 설과
신라 헌덕 왕자인 심지대사가 속리산에 가서 진표율사가 미륵보살로부터 받은 팔간자를
받아와서 공산 동사(棟寺)에 봉안한 사실에서 생겨난 불교계의 전설이 있으며, 여덟 고
을에 걸쳐 있었다는 설은 조선초기에 생긴 팔공산의 이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조선초기 이후 공산은 해안(解顔), 하양(河陽), 신녕(新寧), 팔거 부계(缶渓)등 다섯 고
을 즉, 현(県)에 걸쳐 있었지만 여덟 고을에 걸쳐 있지는 않았다. 그러면 팔공산 명칭
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이것은 사대주의 모화(慕華) 사상가들이 중국의 지명에서 따
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중국 안휘성 봉대현 동남 비수(肥水)의 북, 회수(淮水)의 남에
위치한 팔공산에서 북조 전진왕 부견과 남조 동진 효무제 사이에 팔공산 비수에서 대전
이 전개되어 부견왕이 참패한 고사와 유사성이 있어 그 고사에서 따다가 공산을 팔공산
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보겠다. - 삼국사기 -
♥파계사[把溪寺]
대구 동구 중대동의 팔공산(八公山) 서쪽 동화사(桐華寺)의 말사.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804(애장왕 5)
창건자 : 심지
소재지 : 대구 동구 중대동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戒寬)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
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聾山)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
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淑嬪) 최씨에게 현몽하였으며, 이렇게 태어난 아들
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
세(租稅)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
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
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현존 당우로 2층누각인 진동루(鎭洞樓), 법당인 원통전(圓通
殿), 적묵당(寂默堂) 등이 있고, 부속암자로 현니암(玄尼庵) ·성전암(聖殿庵) ·금당암
(金堂庵) 등이 있는데, 성전암은 경북 3대 도량 중의 하나이다. 문화재로 보물 제1214
호 파계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있다.
♣산행 코스
수태골주차장(10시45분)-->오도재(12시12분)-->서봉(12시35분)-->파계봉(15시5분)-->파계재(16시5분)-->
파계사주차장(16시28분) 총 5시간43분
☞☞☞91년 3월 갓바위와 92년 10월 ‘모여산악회를 통해 수태골의 스카이라인을 거쳐
동봉에 올랐다 염불봉을 거쳐 염불암으로 하산한 기억이 있는 팔공산 산행.
어떤 기대감속에 시민회관 앞에 나간다.
고정주차장인 크라운호텔 앞의 부산교통관광버스에 올라 회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
고 습관처럼 총무로부터 산행안내문을 받아 산행지도를 캠코더에 담는다.
내 뒷좌석에 앉은 이, 김커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자 R회원이 특유의 목소리로 불쑥 한마디 한다.
“오늘, 그~ 동네 또 대~기 씨끄럽겠네~~”
그러자 버스 안은 그만 폭소가 터진다.
성질 급한 이 회원은 그만 짜증을 내고...
좀체 빠지지 않은 전 회장 조 사장 부부는 보이지 않고 이틀 전 정기총회 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신사장이 오랜만에 산행에 참여한다.
적은 회원이지만 8시5분, 시민회관 앞을 떠난다.
도시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에 오르자 정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도시속의 산중에
가장 높다며 1193m의 팔공산에 대한 안내방송을 한다.
지난번에 다녀온 주왕산 산행비디오를 보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언양휴게소를 들리
고 동대구I/C로 빠져 거대한 ‘統一大佛“입석 앞에서 좌회전하여
10시38분, 수태골 도로변에 정차한다.
좁은 주차장의 화장실이 깨끗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렵쇼 히터가 도난방지를 위해서인
지 쇠사슬로 묶어 자물통으로 채워놓았다.
외국관광객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동봉자락을 바라보며 인원점검과 상견례를 마치고 산불감시 완장을 두른 김 성수대장이
선두가 되어 출발한다.
10시45분, 지난번 산행 때 발목을 다쳤다는 임 회원과 집행부 아가씨가 불참하고 전원
이 산행길의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올라간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매표소를 지나 수태골로 들어선다.
오른편으로 조선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능이 있어서인가 산의 출입을 막는다는 큰 바
위에 음각한 ‘수릉봉산계표석’을 지나
11시14분, 소나무 숲 속의 갈림길이정표(동봉2.1km 스카이라인800m)를 거쳐 오른편으로
케이블카 정차지점을 쳐다본다.
왼편으로 비스듬히 누운 거대한 암벽이 나타나는데 젊은이들이 암벽타기 교육을 받고 있
는 그 암벽에 ‘石泉然居’이라고 음각해 놓은 게 눈에 들어온다.
11시30분, 바위와 오른편으로 암벽을 끼며 돌아 올라가는 가파른 코스에서 오른편 암벽
에 조난지점인지 추모석판 두개가 수직으로 놓이고 박혀있다.
비탈길 오름의 왼편으로 조릿대 지대가 나타나고 수태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있다.
안전가드레인을 잡으며 올라가 개울을 건너면서 젊잖게 앉은 노송에게 인사하고 완만한
오름을 탄다.
뒤에서 꼬맹이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사내아이가 나뭇가지 지팡이를 짚고 아빠와 함께
올라오는 모습이 보기 좋아 캠코더로 촬영하니
“아빠, 뭐~ 하는데.”
하고 묻자 아빠가
“니 모습이 씩씩해서 찍능거란다!”
격려하며 올라간다.
11시52분, 너덜지대의 갈림길이정표(동봉1.1km 서봉1.0km) 샘터에서 휴식하는데 K양이
남자친구의 배낭에서 몇 개의 캔 주스를 꺼내어 나누어주는 걸 받아 마시고 다시 가파
른 오름을 거쳐
12시12분, ‘정상등산로 109’이라고 썬 표지판과 이정표(동봉700m 서봉400m 파계재
5.5km)가 서있는 지명유래를 알 수 없는 지도상의 오도재에 올라선다.
진짜 정상인 비로봉과 동봉은 거대한 레이다 기지와 각종 통신철탑으로 살벌하게 망가
져 있고 8,9년 전에 올라갔든 동봉정상비가 서있는 암봉 아래 석조약사여래불 입석은 희
미하게 보인다.
한데 새 등산화를 신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가 발뒤꿈치가 물집이 생기려는지 통증이
찾아와 정 대장의 일회반창고로 응급처치를 하고 서봉을 향해 맨 후미에서 출발한다.
3,4분을 가지 않아 ‘위험 주의’표찰이 붙어있고 7,8m 높이의 암괴와 마주치는데 오른
편은 자일이, 왼편은 돌아가며 모가 난 바위를 잡으며 오르는 암능 코스다.
올라선 바위 턱에는 ‘정상등산로110’이라 썬 표찰이 붙어있고 날카롭고 살벌한 동봉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탄한 능선이 이어지다 오른편으로 커다란 암괴를 끼고 돌아 올라서니
12시36분, 서봉을 저만치 둔 헬기장에서 식사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뒤돌아보니
동봉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준비해간 김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먼저 식사를 끝낸
김 성수대장과 캠코더와 캐넌을 챙겨 서봉으로 올라간다.
12시48분, 위험한 바위사이를 지나 모가 없는 바위위에 덩그란이 서있는 정상비에 서서
흐린 하늘 시계가 좋지 않지만 동봉에서 턴하며 파계봉까지 캠코더에 담고
캐넌으로 서로 기념 촬영으로 도장을 찍는다.
한데 동북쪽으로 또 다른 정상비가 서있다.
‘삼성봉’이라고 음각해 놓았는데 그 사연을 알 수 없다.
별칭이 삼성봉이라면 구지 별도의 정상비를 세울 것이 아니라 ‘서봉’정상비 옆에 괄호
를 하든가 하여 삼성봉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낭비와 혼돈이 생기지 않을터인데 오늘의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석연치가 않다.
능선으로 되돌아 나오니
12시51분, 갈림길이정표(파계재5.1km 동봉1.1km 수태골)가 보이고 식사를 끝낸 회원들
이 파계재로 출발하고 있다.
좌로 뚝 떨어져 내려가는 코스 끝에 평풍바위아래의 꽤 넓은 공터에 10여명의 등산객들
이 모여앉아 식사를 하고 있고 종주 길은 오른편으로 암벽을 끼고 돌아간다.
‘등산로116’을 거쳐 너덜지대를 지나 ‘등산로121’등 많은 번호판을 지나면서 바위길
과 흙길의 굴곡이 심한 오르내림을 탄다.
13시26분, 노란 ‘국제신문’의 시그널을 지나 ‘등산로125’번을 거쳐 칼등바위사이를
지나고 ‘등산로127’번을 지난다.
13시39분, 이정표(서봉1.3km 파계재3.7km)를 지나면서 작은 암봉에서 내려오는 일단의
등산객들과 조우한다.
‘등산로133’번을 지나 잔솔이 박혀있는 암봉에 올라서고
13시53분, ‘등산로134’번을 지나니 왼편으로 비스듬히 누운 너럭바위에서 또 다른 등
산객 10여명이 휴식하며 조망을 즐기고 있다. 대구광역시의 동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돌아보니 스카이라인과 동봉이 아스라이 보이고 잿빛 구름이 높게 떠있다.
작은 암봉을 오른편으로 끼고 바위사이를 뚝 떨어져 내려가는 코스에서 장년회원 둘이
“유격! 유격!”
소리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김 신 회원과 동행하며 다시 바위 길로 올라서니 저만큼 정 대장이 작은 암봉 앞에서 오
른편으로 돌아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돌아내려 올라가는데 좌측의 암벽에 습지에 음지여서인가 하얀 어름이 박혀있는걸 정 대
장이 스틱으로 쳐서 떨어뜨린다.
14시16분, 이정표(파계재2.9km 서봉2.1km)를 지나 또 다른 암봉과 만나는데 매듭진 로프
가 내려져 있다.
암괴가 차곡차곡 쌓인 사이 길을 매달리듯 올라서니 얼마가지 않아 다시 로프를 잡고 내
리막을 탄다.
멀리 11시 방향으로 헬기장이 보이고 가까이는 안가님을 쓰며 부녀등산객들이 내려온다.
이제 암능 길은 끝이 났는가.
낙엽 덮인 완만한 내림의 진창길을 거쳐
14시43분, 헬기장에서 뒤돌아 멀리 동봉에서부터 서봉으로, 이어서 지금까지 거쳐 온 날
카로운 암능을 캠코더에 담는다. ‘등산로149’를 지나
15시5분, 깃대가 서있고 작은 PVC파일이 박혀있는 밋밋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지도와 주변을 살펴 볼 때 분명 파계봉인데 어느 곳에도 정상비가 보이지 않는다.
좀 전의 서봉에는 두개의 정상비가 있었는데 오늘의 우리사회처럼 우리 산하도 부익부
빈익빈인가.
‘등산로155’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15시27분, 헬기장의 ‘등산로164’를 거쳐
15시30분, 파계재에 내려선다.
'등산로165‘와 작은 석비에는 ’동봉4.1km 제2석굴암‘, 이정표(동봉6.2km)로 표기되
어있어 무언가 혼란스럽다.
기다리든 정 대장은 먼저 파계사쪽으로 바쁘게 내려가고 뒤이어 장년 회원 세 사람과 낙
엽 깔린 완만한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간다.
15시46분, 쉼터 육각정에 당도한다.
이정표(파계재700m 파계사500m)와 별도로 ‘조국순례자연보도 파계사0.5km 파계재
0.7km’라는 인조목판을 걸어놓았다.
휴식하는 세 회원에게 캠코더로 촬영하며 산행소감을 물으니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오밀조밀한 코스에 우리체질에 딱 알맞은 산행이었다.”
“갈비(낙엽)로 시작하여 갈비로 끝난 낙엽 밟는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제각기 다른 느낌을 발표한다.
모양이 각기 다른 수많은 돌탑을 촬영하며 내려가다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
고 곧
설선당(說禪堂)을 시작하여 시간이 없어 바쁘게 보물인 원통전(圓通殿)과 적묵당(寂默
堂)을 캠코더에 담고
16시10분, 진동루(鎭洞樓)로 빠져나간다.
파계(把溪)란 이름은 절의 좌우 계곡에서 흐르는 9개의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는데 그 물줄기는 찾아볼 기회가 없고
16시14분, 오른편으로 저수지를 바라보며 내려가다
16시18분, 일주문을 통과한다.
16시21분,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의 가로수를 촬영하며 내려가는데
16시27분, 저만치 주차장이 보이는가 했더니 부산교통관광버스가 크락숀을 울리며 바쁘
게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예정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는데 돌발사태가 생겼나보다 여기며 차에 오르자 배 기
사는 화난 듯이 평소와 달리 급운전하며 내려간다.
집행부 이야기는 하산주는 주차장 근처에 식당이 없어 가다가 적당한 곳에 덜리겠다고
하는데
17시3분, 바로 동대구T/G를 빠져 달리다 논스톱으로
19시20분, 부산T/G를 통과한다.
색다른 체험을 한 일일산행이 기사양반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심통으로 빛이 바래버린
건 나만의 느낌 일까?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