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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이스라엘!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이다.
할렐루야!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인류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후손으로 이스라엘 조상을 삼으시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모세 오경)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강조하시고 잘 지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율법을 잘 지키게 하는 내용을 후대의 신학자를 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루터를 통한 믿음과 의롭게 됨에 대한 강조는 성령의 인도에 따른 율법(모세 오경)의 완성과 굳게 함에 대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왜곡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루터의 유대인에 대한 미움에 편성해서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으니 하나님께 큰 아픔을 주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도 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합세한 개신교는 물질을 모으는데 정신이 팔려서 성령을 통한 율법의 준수를 놓치고 천주교도 역시 율법에 대해서 깊이 이해를 못하고 200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일이라 판단하시고 2000년의 세월을 복음의 온 지구상에 전파에 모든 성도가 매진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모든 지구상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으니 교파가 서로 하나가 되는 일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의 숫자가 차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제 그 때가 되어 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국가와 성도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오신 후 나라가 없는 유대인을 수도 없이 괴롭히고 박해하고 죽인 것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또 하나님의 법 율법(모세 오경)을 예수를 믿는 이보다 더 2000년 동안 잘 지키면서 보존한 이스라엘을 공로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모든 민족 중에서 여전히 가장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의 뜻 비록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르는 채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는 3500년의 변함없는 이스라엘의 노력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바울 사도가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이런 저런 모습으로 방황할 때 오직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율법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했으니 이는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을 일을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대로 구원을 받을 이방인의 숫자가 차 가고 있음으로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유대인의 귀환을 고대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우리 주 예수님을 전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이스라엘이 읽고 수천년을 기다리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기적인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부디 제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기다림을 잘 전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이스라엘! 모든 이스라엘의 국민과 온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 동방 한국에 사는 목사가 인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늘 충만하시고 이스라엘과 모든 국민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오신 예수님과 그의 이방인의 사도 역시 유대인인 바울 사도의 간절한 바램 대로 이스라엘인과 이방인 크리스천이 예수님 안에서 속히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히 온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친구가 되고자 하는 저는 동쪽 한국에 사는 예수님의 도구 김 정관 목사입니다. 저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을 올바로 이해하고 사랑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은 땅의 끝이라 할 수가 있는 나라로 아시아 대륙의 끝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닮은 면이 많습니다. 먼저 인종적으로 노아의 후손 중에서 셈족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한국 국민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양보를 좋아하며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은 이스라엘과 같이 작은 나라로서 주변의 강대국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수도 없이 받으면서 보복하지 않고 3000년을 한 민족으로 잘 살아왔습니다.
샤론의 꽃이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후손이 바닷가를 따라서 온 세상으로 이동할 때 한국의 조상은 가장 멀리 왔습니다. 작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부한 한국에 기원전 1000년경에 처음으로 이 땅에 상륙한 우리의 조상은 고인돌로 무덤을 만들며 한반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알래스카를 거쳐서 캐나다 미국 그리고 브라질 페루 등으로 이주를 했고 이는 동일한 무덤 양식인 고인돌로 이를 증명합니다. 이스라엘의 골란 지방에서 발견된 고인돌이 지중해를 따라서 영국과 독일에도 있고 또 페르시아 만과 인도를 지나서 중국의 남부와 동남아시아로 고인돌 족의 이동에 따라서 분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고인돌의 왕국으로 온 세상이 고인돌 7만 기 중에 약 4만 기가 있으니 고인돌 왕국이요 고인돌로 무덤을 만들던 사람들의 본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호흡을 고른 후 일본과 알래스카 그리고 신대륙 남북 아메리카로 들어가서 백인들이 오기 전에 적어도 2000년의 세월을 너무나 넓고 비옥한 땅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살았을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이들의 고인돌 유적과 조개 무지는 동일한 곳으로 고인돌 족이 바닷가에 살면서 조개를 먹고 그 껍질을 버렸는데 지금까지 삭지 않고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한국에서 유럽과 동방의 이스라엘의 주변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을 이해하고 친구로 예수님께 인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의무요 특권이라 믿습니다. 한국은 같은 성향을 지니고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도리어 주변의 강대국국에 의해서 수천년을 시달리며 산, 이스라엘과 같은 고난을 경험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세우고 위로함이 세상의 모든 나라보다 더 앞서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담의 직계 후손으로 혈통을 이어서 노아로 연결이 되고 그리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모세로 다윗 왕으로 그리고 다윗의 혈통을 이은 왕들로 그 국민과 백성이 모든 세상의 민족 중에서 가장 먼저 유일하게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지금 우리 크리스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상 최고 최선의 법을 받았으니 율법(모세 오경)입니다. 이 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지구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입니다.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NIV)
이 법을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약 3500년 전에 받은 후 지금까지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잘 보존하고 또 잘 지키려고 하니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뜻을 지구상의 어떤 민족보다 더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법은 어떤 유대인 랍비가 잘 정리를 해서 613 조문으로 정리를 했는데 하라는 규정 248 규정, 하지 말라는 규정 365규정 합쳐서 613조항입니다. 이 조항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10계명으로 정리를 해 주셨으니 모세의 십계명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6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십니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NIV)
이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쉐마라 해서 잘 암송하고 자녀에게 가르치고 잘 지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데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레 19: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NIV)
율법모세 오경)은 예수님께서 정리해 주신 것으로 보면 그 중심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입니다. 그 중에서 율법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그대로 나타냈었다고 보면 율법 중에서 사랑의 실천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 저희는 예수님을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으로 믿는데 정확하게 당시의 율법학자 즉 지금의 유대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NIV)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NIV)
절대로 예수님께서 1500년 이상의 전통이 있는 이스라엘의 근간이 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조문 조문도 잘 지키라고 하시면서 더 중요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우선시 하라고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지 않고 잘 지키도록 가르치지 않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더라도 영원토록 지극히 작은 자로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당시의 율법학자가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롭게 살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의로운 면에 있어서 이들보다 더 의롭지가 못하면 그 사람은천국에도 절대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게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율법에 대해서 한 번도 아무렇게 대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중히 여기고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에 해당하는 구절을 더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율법을 이스라엘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역시 잘 지키려고 합니다.
당시에 율법학자와 예수님께서 충돌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 서로 신뢰할 수가 있는 이 땅의 천국을 만드시려고 모세로부터 온 인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받은 유대인이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조문 조문을 지키는데 몰두한 나머지 수많은 죄를 범하고 있었기에 충돌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로 율법을 모범적으로 지켜서 백성의 본이 되어야 하는 이들이 위선으로 살기에 예수님께서 이들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여! 지구상에서 누가 이스라엘을 책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율법을 주시고 무려 1000년의 시간동안 이스라엘이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멸망하게 되는 것을 이스라엘은 잘 압니다. 그리고 400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택한 민족에게 사람으로 오십니다.그리고 율법의 중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잊고 사는 율법학자를 책망한 것입니다. 너무나 예수님께서 당연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은 이를 정확하게 증명합니다.
마 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NIV)
구약의 쉐마 즉 신명기 6장의 내용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완벽하게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 즉 모세 오경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완벽하게 일치함을 이렇게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예수님께서 오심이 이스라엘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법을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과 충돌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당시의 수많은 무리가 즉 이스라엘 민족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어디 다른 민족의 분이 아니시고 틀림없는 유대인 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대부분 유대인이었습니다. 지금 유대인의 조상들입니다.
그리고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에 따라서 성령을 받은 무리들이 전도를 해서 교회를 세우고 이렇게 복음이 널리 전파가 됨에 따라서 로마도 기독교 국가가 되고 중세는 교황이 다스립니다. 천주교가 중심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정교회가 약 1000년쯤 성령의 발현에 대해서 논쟁이 붙어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500년이 지나니 이제는 독일의 루터를 중심으로 믿음이 강조가 되면서 개신교로 천주교에서 또 떨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현재의 세개의 교회가 기독교 안에 있는 것을 모든 지구인이 압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를 받습니다. 그 이전에 이스라엘의 역서를 보면 기원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받습니다. 그리고 136년이 지난 후 기원전 586년에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은 앗수르, 바베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70년 지나 뒤에 포로에서 돌아옵니다. 그리고 역시 페르시아를 거쳐서 그리스로 주변의 강대국이 흥하고 망함에 따라서 이들의 속국으로 나라가 없이 살아 갑니다. 그러다 다시 지중해 주변을 로마가 통치하면서 온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될 때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혈통으로 이스라엘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당시의 율법학자, 제사장 등의 위선을 비판하며 수많은 백성의 지지를 얻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죄를 인정치 않고 도리어 예수님께 대적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의 법정에 세우고 본디오 빌라도의 사형 선고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다 예수님을 비판하고 덤빈 것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이 주동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예수님을 매단 유대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더욱 궁극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의 이방인의 사도 바울 서신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기독교 국가가 된 유럽에서 여전히 유대인들은 다양한 고난을 겪으면서 국가가 없는 가운데 이 나라 저 나라를 방랑하며 또 2000년의 힘든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나고 1948년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2500년의 방랑의 세월을 마치지만 여전히 수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서 미국의 중심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한국에 3000년의 역사에서 주변의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쉬지 않는 침략과 약탈을 이기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살아남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수많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백성이 추종하고 그분의 제자들이 다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후의 기독교가 어떻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존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유대인을 박대하고 핍박한 것인지 그 이유를 밝혀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과 그리고 그분의 율법에 대한 태도는 분명하게 지금의 유대인이나 당시의 유대인에게 절대로 악의적이지 않고 완벽하게 율법의 목적과 일치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천주교가 살고 개신교나 정교회가 살았다면 절대로 유대인을 박대하지 않고 귀한 민족으로 대접하고 환대를 해야 했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스라엘과 율법에 대한 뜻은 조금도 지금의 유대인이나 당시의 유대인에게 해가 되는 내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는 부분과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신 구약을 통해서 과연 이스라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약 성경과 그리고 구약 성경 중에서 핵심인 모세 오경 즉 율법에 대해서 신약은 어떻게 설명을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이고 나머지 사도행전부터 서신서는 그분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과 위배될 수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의 즉 유대인인 사도 바울 사도의 유대인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울 사도의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그의 스승이자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절대로 이전에 자신이 믿던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을 존중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진실로 새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선민 이스라엘(공동 번역)
롬 9:1.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움직이는 내 양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줍니다.
2.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3.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4. 나의 동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느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고 참된 예배가 있고 하느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5. 그들은 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들이며 그리스도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NIV)
동족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바울 사도의 사랑이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특권과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과 계약과 그리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으며 훌륭한 혈통이 있고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혈통이심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롬 10:1. 형제 여러분, 나는 내 동족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2. 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NIV)
바울 사도는 동족이 구원을 받기를 또한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율법을 잘 배우고 율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보고서 이에 대한 열정이 누구 어느 나라 못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이 민족을 사랑하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며 또한 이 민족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이렇게 예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율법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공동번역)
롬 11:11. 그러면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패망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오히려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12. 이렇게 이스라엘의 범죄가 세상에 풍성한 축복을 가져왔고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가져왔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구원을 받는 날에는 그 축복이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13. 이제부터는 이방인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나는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서 내가 맡은 직책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4. 나는 내 동족 유다인들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켜 그들 가운데 일부나마 구해 주고 싶습니다.
15. 그들이 버림을 받은 결과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다시 받아주실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16. 떡 반죽에서 떼낸 첫 부분을 하느님께 드리면 그 반죽덩어리 전체도 거룩합니다. 또 나무 뿌리가 거룩하면 그 가지도 다 거룩합니다.
17. 올리브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가지 몇 개가 잘리고 그 자리에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접붙인 가지들은 올리브 나무 원 뿌리에서 양분을 같이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이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들입니다.
18. 그러니 여러분은 잘려 나간 가지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럴 생각이 날 때에는 여러분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여러분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9. 여러분은 "저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그 자리에 우리를 접붙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20. 그것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그들이 믿지 않은 탓이고 여러분이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은 여러분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두려워할지언정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21. 하느님께서 원 가지들도 아낌없이 잘라내셨으니 여러분들도 아낌없이 잘라버리실 수 있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기도 하고 준엄하시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여러분에게는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자비를 저버리지 않을 때에 한한 일이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여러분도 잘려 나갈 것입니다.
23. 믿지 않았던 탓으로 잘려 나갔던 가지들이 믿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그 가지들도 접붙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에 잘라내셨던 가지들이라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24. 원래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였던 여러분이 잘려서 제 나무가 아닌 딴 좋은 올리브 나무에 쉽사리 접붙여졌다면 잘려 나갔던 가지들이 제 올리브 나무에 다시 접붙여지는 것이야 얼마나 더 쉬운 일이겠습니까?(NIV)
하느님의 심오한 경륜
2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장담할지 모르지만 아직 깨닫지 못하는 숨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여러분도 그것을 꼭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란 이런 것입니다.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은 완고하지만 모든 이방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날에는 그 완고한 마음을 버릴 것이고
26. 따라서 온 이스라엘도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성서에도, "시온에서 해방자가 나와 야곱의 후손으로부터 사악을 제거하리라.
27.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할 때 그들과 맺으려는 나의 계약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28. 복음의 견지에서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하느님의 선택의 견지에서 보면 그들의 조상 덕택으로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입니다.
29. 하느님께서 한 번 주신 선물이나 선택의 은총은 다시 거두어가시지 않습니다.
30. 전에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를 받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32.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누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34. "주님의 생각을 잘 안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36.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 아멘.(NIV)
이스라엘은 믿지 않으므로 참 감람나무이지만 잘려져 나갔고 그리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접붙임을 받아서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받아먹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을 이방인의 성도가 성령으로 율법이란 진액을 빨아먹고 있다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사명과 의무가 있음을 밝히면서 이렇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 부분이 믿는 이들이 반드시 새롭게 이해를 해야 되는 부분이고 이스라엘 사람도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하는 성경의 새로운 이해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접을 붙여진 이방인 성도의 자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늘 겸손해야 함을 설명합니다. 원가지를 자르신 하나님께서 접붙인 가지도 아끼지 않을 수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충분하게 이방인의 구원이 이루어지면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로마서는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한 번 주신 선택이나 은총을 거두지 않고 있음을 설명하십니다. 이렇게 바울 사도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하시는 일에 대해서 미래의 이스라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구원을 하실 것에 대해서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이렇게 이스라엘에 접목이 되어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 절대로 경거 망동 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막으십니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을 이방인 크리스천 즉 천주교인, 정교회인, 그리고 개신교인이 깊이 알았다면 그렇게 자신들에게 하나님을 잘 믿도록 구약을 비롯해서 믿음의 전통을 전해준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신자 사이에도 이렇게 같은 성경 말씀을 두고서 서로 깊이 반목하고 서로를 배척하고 죽이는 가운데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개신교인들이 많이 이주를 했으니 미국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시에 유럽의 각국에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박해가 있자 수백만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고 또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서 미국을 발전시키고 자신들도 미국에서 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형제끼리 서로 싸우며 죽인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독일과 온 유럽과의 전쟁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독일은 나치즘으로 이탈리아는 파시즘으로 같은 예수를 믿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온 독일이 루터의 모국이며 개신교의 원조인 독일이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과 그리고 바울 사도가 죽기까지 사랑하는 유대인을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유대인의 학살은 한 민족에 대한 학살로 끝이 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의 전통 즉 구약의 전통을 끝내는 것이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약속을 끝내는 것이요, 온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인 율법(모세오경)을 끝장나게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행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NIV) 라고 해서 현대와 과거에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이방인 신자의 행위의 척도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방인 성도의 견제 장치입니다. 이 장치를 말살하고자 하는 행위를 독일을 한 것을 기억하고 이는 예수님의 뜻을 심각하게 저버리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루터의 신학으로 예수를 가장 잘 믿는다는 자들이 위의 성경 말씀으로 볼 때 역사상 가장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지가 어디에서 옵니까? 이는 전적으로 성경 로마서의 온전하지 못한 이해에서 옮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도 역시 천주교의 율법에 대한 무지에서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히 성경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이런 악행을 온 인류에게 저지르고 특히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이스라엘에게도 저지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두 교회는 겸손하게 이들이 온 인류에게 그리고 유대인에게 행한 악행을 고백하고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런 교회들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로마서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이해를 종식시키고 이제는 두 교회가 함께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교회가 함께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앞에서 설명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태도와 바울 사도의 동족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로마서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온 세상의 크리스천의 화해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논의의 발단은 중세 천주교의 면죄부등의 일부 부패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독일 신부였던 루터는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기존의 천주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풀고자 했으나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1장 17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천주교는 이 새로운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무려 500년 동안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 연구도 하고 토론도 하였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루터의 주장의 종주국인 독일의 만행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도 되고 구원도 얻고 천국에도 간다는 루터와 그를 따르는 개신교의 주장은 절대로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서 믿음에 무언가 다른 행위가 천국에 가고 의롭게 되는데 필요하다 고 천주교는 주장합니다. 절대로 믿음 만으로 구원도 없고 의롭게 될 수도 없다는 천주교의 주장과 이와는 다른 위의 개신교의 주장이 서로 조금도 양보함이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이들 이방인 국가의 논쟁이 자신들의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 둘의 주장이 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너무나 다르다고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진영 다 율법에 대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서로 격렬하게 믿음을 가지고 이에 더해서 행위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놓고 피가 터지게 싸우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이해는 이렇게 온 세상의 역사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세 진영이 공히 공감하고 화해하고 서로 하나가 되는 로마서의 이해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해가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저는 약 7년간 온 세상의 주요 대학에 전했고, 그리고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110개국 약 40만이 넘는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이 로마서에 대한 이해가 바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하나가 되고 비로소 온 세상이 하나가 되는 평화와 질서의 복음이라 믿는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이스라엘의 율법에 대한 생각과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 본 예수님과 바울 사도의 주장을 보면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에 대한 태도와 그렇게 다르지 않고 도리어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주장(예수님의 마태복음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예수님을 구세주로 같이 믿는 천주교가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바울 사도를 믿는 개신교가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이들이 율법을 이스라엘과 같이 지키게 하는 것을 막습니까?
우리가 율법에 대한 이 두 교회의 태도를 성경즉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바로잡는다면 이스라엘과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앞에서 예수님과 바울 사도의 예에서 분명하게 보았으니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르고 바울 사도를 따르는 것이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상기시키면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의 더 중요한 조항도 잘 지키고 다른 조항도 잘 지키라고 분명하게 모든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명령이니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모두가 다른 말이 필요없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을 찬양합니다. 제가 논하는 내용은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높고 귀한 내용입니다. 저는 성경도 이런 진리도 조금도 모르던 죄인이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글을 씁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그분(부활하신 예수님)이 회개를 시킨 골수 율법주의자인 바울 사도의 주장을 그의 서신서를 통해서 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NIV)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NIV)
롬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NIV)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NIV)
갈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NIV)
갈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NIV)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한결같이 율법이 아니고 이제는 믿음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자신감이 넘치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도 되고 구원도 받는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성경의 근거가 너무나 다양하게 위와 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의 주장도 역시 성경에 있으니 야고보서의 주장입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NIV)
이러니 둘 다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서로 양보없이 다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진영이 팽팽하게 500년 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다투면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이들을 보시고 이들이 이상하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려고 위와 같이 성령의 감동으로 주장을 했는데 이들이 자신의 로마서를 보고서 또 갈라디아서를 보고서, 그리고 야고보의 야고보서를 보고서 서로 예수님의 명령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서 역시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이들이 자신이 믿고 지키는 율법에 대해서 아예 배척을 하려고 하니 이들은 자신과 같이 갈 수도 없는 이상한 종교를 믿는 집단이라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런 세월이 약 2000년이 흐른 것입니다. (어두운 마음의 상태에 있었던 저입니다. 성경도 예수님도 모르던 저입니다. 이런 제가 이렇게 주장하니 얼마나 밝은 빛이 제 마음에 온 것입니까? 그 빛되신 예수님의 도구가 되어 그분이 빛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빛으로 모든 독자의 영혼이 밝아기지길 기도합니다. 저는 질그릇과 같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문제를 하나님께서 직접 해결을 하십니다. 어떻게 해결을 하십니까? 동방의 한국에서 빛이 나가서 온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빛 된 가르침이 바로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인 것입니다.
먼저 위의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위와 같이 율법에 대해서 아니다고 하고 믿음이라고 하는 주장을 펴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율법 즉 모세 오경은 이방인의 성도의 입장에선 생소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 성도에게 율법이 아니고 믿음입니다 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서신은 당시의 로마를 비롯해서 갈라디아 등의 예수님을 믿는 교회에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성도들이 유대인 신자, 이방인 신자, 그리고 로마인 신자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야 하는 성도들을 꾑니다. 어떻게 꾑니까? 그들은 성도들이 율법을 조문 조문 지켜야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꾑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렇게 예전에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율법을 지키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 새로운 방법으로 섬겨서 놀라운 체험을 쉬지 않고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엉퉁한 뚱딴지 같은 유대인이 나타나서 성령의 도움으로 자신이 세운 교회와 교인을 다른 길로 가게 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즉 자신이 과거에 살던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믿음 생활을 잘 해라는 것입니다. 즉 조문 조문 율법을 지키던 그가 행한 과거의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믿음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 라는 말은 그 의미입니다. 그 믿음 생활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입니다.
이렇게 위의 구절을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 진실로 올바른 이해입니다. 당시의 유대인이나 2000년 동안 예수님 오신 이후에 산 유대인이나 그리고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바로 구약의 율법을 잘 어릴 때부터 배우고 그대로 살고자 합니다. 무려 3500년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긴 역사를 율법으로 사는데 예수님께서 끼워 들었고 이스라엘인이 바울 사도가 끼어 듭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구약도 보고 신약도 보면서 율법에 대해서 선 소극적이 자세를 보임으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믿는 종교와 다른 종교를 믿는 것과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나 다 율법을 존중하고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과 달리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지키라고 하는 것이 다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 신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이고 유대인은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또 만민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반드시 유대인도 이해하고 모든 세상의 성도가 이제는 올바로 이해해야 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로마서 전체를 보면서 제가 “예수님과 바울 사도”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과 바울 사도 중에서 일부를 인용함
이제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같이 봅니다. 우리가 너무나 주목을 하지 않고 특히 개신교인은 별로 관심도 갖지 않는 구절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는 구절입니다. 바울 사도의 주인의 말씀이 종의 말씀보다 더욱 권위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의 경우 모든 율법을 잘 지켰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 소유를 팔아서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잘 지킨 율법에 대해선 말씀을 더하지 않으시고 더하여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기관이 지혜롭게 대답하자 천국이 멀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생각과 바울 사도의 율법에 대한 생각 혹은 행위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개신교인은 아래 예수님의 말씀보다 바울 사도의 이신칭의에 더욱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오직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이와 같이 걸리는 내용들이 성경에 있고 특히 예수님은 바울 사도의 주인으로서 주인의 말씀에 더욱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당연한데 우리는 어떤 상태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주소입니다.
이제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울 사도의 서신서 그리고 야고보서의 관계를 풀고자 합니다. 시원하게 풀고자 합니다. 그 열쇠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잘 이해를 하면 이 부분들이 너무나 쉽게 시원하게 풀립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먼저 올바로 이해를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배운 내용과 다른 내용이며 절대적으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내용을 하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세상에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도 모르는 흉악한 죄인이었고 예수님을 믿고도 늘 올바르게 살지 못한 못난 성도에 불과합니다. 이런 저를 선택하셔서 이렇게 진리를 전함은 모든 분이 저보다 나으니 회개하시고 이제부터 바로 믿으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 하나님께서 저와 같은 못난 죄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을 봅니다.
영어로 함께 봅니다. 여러분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700명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에게 먼저 편지로 보낸 내용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NIV)
이 구절은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는 말씀을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 1장 17절로 인용을 하신 것입니다. 이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문제를 대부분 풀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쉬운 길이 있는데 이렇게 500년 개신교의 가르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복음이 먼저 온 세상에 퍼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본문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답이 있습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이 말씀에 바로 답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세 파트로 나눕니다. 주어 "The righteous와 조동사 will과 본동사 live 그리고 수단의 by faith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을 하면 의인은 살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서 즉 의인이 되려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루하루 삶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무슨 행위가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면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즉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가 답이며 성경 말씀이며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이미 성경 본문에 답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믿음이다 아니다 믿음+행위이다 하십니까? 그런데 이렇게 쉬운 문제가 또 걸리는 것이 있으니 바울 사도의 로마서의 위의 내용과 갈라디아서의 변함없는 오직 믿음이 의롭게 된다는 표현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또 풀어야 합니다. 이도 역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경으로 풀면 됩니다. 모든 이런 문제가 풀리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제게 순서대로 하나씩 알게 하셨습니다. 시간도 성령을 받고 33년 정도 걸렸습니다.
어디서 풉니까 이도 본문에서 풉니다.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이 구절에 답이 또 있습니다. 본문에 모든 답이 있는데 우리는 신학으로 이 문제를 500년 동안 풀려고 해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의인데 이 의는 믿음으로 오는 의인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라고 합니다. 우리 성경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로 번역을 해서 첫 믿음 끝 믿음이란 본문의 의미를 절대로 한글 성경으로 알 수가 없게 합니다. 공동번역을 봅니다. 천주교(개신교와 공동)의 번역입니다.
롬 1: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칭의를 올바른 관계로 설명했고 첫 믿음 끝 믿음에 대한 의미도 번역이 없습니다. 다른 한글 번역을 봅니다(개역 한글, 표준 새 번역 등). 이렇게 다른 번역도 보아야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5가지 공인된 번역이 있는데 모두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번역을 해서 영어의 faith from first to last란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1:17.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KJV) 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고 되어 있어 우리의 번역과 일치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또 로마서 4장으로가서 이 부분을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두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1장 16절까지는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롭다 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처음 만나시고 자손과 민족의 약속을 하실 때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 있는 내용입니다.
창 15.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내용을 로마서 4장 1-16절로 설명을 하시고 이는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디아서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내용과 너무나 일치를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는데 우리가 읽기는 읽어도 잘 이해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저도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야고보서 내용과 같이 새롭게 배웁니다. 자 보시겠습니다. 야고보서도 이참에 같이 봅니다.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 이때가 100세가 지나서 임)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제 우리가 보면서도 그냥 지나간 부분을 반드시 잘 보아야 합니다. 내용이 무엇입니까? 분명하게 로마서 4장 1절에서 16절까지는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내용을 16절에 걸쳐서 설명을 합니다. 본문을 읽어 보시고 확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100세가 되어도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의로움이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만나서 믿기에 의롭다 하신 것, 즉 이 때는 아브라함이 75세였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나서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 두 가지 의롭다 하심이 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봅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혹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이 여기서 풀립니다. 25년 뒤에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그렇게 믿으니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을 때도 의롭다 하시지만 어떤 시점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어떻게 믿는가 보시면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또한 의롭다 하시는 것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첫 믿음과 어떤 나중의 믿음이 서로 일치를 해야 하고 변치 않고 있어야 온전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 1장 17절의 영어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 와도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즉 의롭게 되려면 믿음을 갖고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믿을 때도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있지만 나중에 이 믿을 갖고 살아야만 또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란 말과 믿음에서 믿음으로란 말과 같이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야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실 때 의롭다 인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아브라함은 두번의 의롭다 인정이 있습니다. 처음에도 합격이고 세월이 지나서 100세가 되어서도 합격입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이삭을 바칠 때면 약 110세가 무렵일 것입니다. 이 때도 합격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의 삶을 온전히 살 때 모든 하나님 보시기에 합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성경을 통해서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로마서 4장은 전체를 통해서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과 의를 주장합니다. 이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첫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라는 말과 일치를 합니다.
야고보서도 같은 내용으로 설명을 합니다. 이부분이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믿고 삶을 사는 것을 설명합니다. 모든 생명을 유지한 성도는 믿고 반드시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숙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존재하는 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삶이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쉬지 않고 믿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에 합격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으로 모두가 확인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첫 믿음과 끝 믿음을 동시에 보시면서 의롭다 하시는데 만약에 처음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되나 나중에 즉 끝 믿음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믿음이 없다든지 다른 일에 분주한다든지 하면 즉 믿음의 삶이 지속이 되지 않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이런 믿음을 보시고 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에스겔서에도 분명하게 밝힙니다.
겔 3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의롭게 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가야 하고 첫 믿음과 끝 믿음이 일치를 해야 합니다. 즉 믿음을 갖고 쉬지 않고 변치 않고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나중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역시 변치 않고 있어야 이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22절은 온 세상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절차를 너무나 생략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아니고 선 절대로 이런 내용을 인간이 아는 것이 불가합니다. 저는 틀림없이 성령을 예수님께 받았습니다. 1992년 초봄에 받았습니다.
이제 더 힘을 내셔서 로마서 1장 17절이 나온 하박국서 2장 4절로 가야 합니다. 이도 우리가 올바로 이해를 해야 비로서 로마서 1장 17절을 온전히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루터가 이런 로마서 4장과 하박국서 2장 4절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후대의 우리가 확인하고 올바로 이해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가장 못난 성도로 누구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징계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박국서는 3장으로 짧은 성경입니다. 하바국은 기원전 608년경 남 유다 말기의 선지자입니다. 이후 기원전 586년에 남 유다가 멸망을 하니 이들의 삶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정도로 율법이 해이 해지고 영적으로 타락이 심했던 시기에 정의롭게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너무나 불의가 성행을 해서 하박국과 같은 의인이 살기에 어려워 하나님께 이런 동족 남 유다를 그냥 두고만 보십니까 하고 하박국이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남 유다를 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박국이 다시 하나님께 여쭙니다. 왜 더욱 불의한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하니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우리가 잘 아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한 구절입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개역 개정, 공동번역, NIV 순)
역시 우리가 본 but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his faith 의인이 되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삶을 산다입니다. 이 구절을 하박국서 1장과 3장을 보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면 비록 남 유다 멸망하는 창자가 꼬이는 비극과 바벨론의 멸망을 동시에 보면서도 견디며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두 나라를 멸망시키고 반드시 정의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서 하루하루 악하게 사는 남 유다의 사람이나 혹은 바벨론의 사람들과는 달리 정의롭게 삶을 산다는 의미가 본문의 의미입니다.즉 로마서 1장 17절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아무리 세상이 불의가 넘쳐서 이런 세상을 정의롭게 심판하실 예수님을 믿고서 하루 하루 삶을 살되 불의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가 정확하게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조금 더 힘을 내셔서 마지막으로 가야 합니다. 로마서 7장 6절에 믿음으로 삶을 산다는 의미를 알아야만 비로소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로 갈 수가 있습니다. 본문을 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개역개정)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공동번역)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NIV)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한 때 얽어 매였던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이 된 율법으로 섬기던 옛날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깁니다. )
이 구절도 넘어야 하는 산이 조금 있습니다. 제가 해석을 ( )로 해 놓은 부분이 영어의 표현인데 이대로 이해를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천주교의 번역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제가 놀랐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해를 가하는 해석은 성경의 올바른 이해로 절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절대로 찬양의 대상인 모세 오경의 말씀으로 성경 중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은 한 마디로 법이다 했는데 저는 이를 수긍하는데 그 법이 바로 율법 즉 모세 오경의 법이기 때문입니니다. 절대로 낡은 법조문 이란 말은 영어에 0.000%도 없습니다. 방법이 오래 되었단 말입니다. 바울 사도가 예전에 예수님도 성령님도 신약의 말씀도 조금도 모르고 오직 구약의 율법에 깊이 빠져서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믿고 살면서 믿는 이들을 잡아서 가두던 그 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예전에 자신이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면서 이것이 다다 하고 믿고 살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이렇게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너무나 강조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빼고 이해를 하고자 하니 모든 것이 어렵게 된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성령에 대한 이해를 먼저 강조를 했는데 잘 보시면 성령에 대한 강조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엔 너무나 많습니다. 저도 갈라디아서를 오직 이신칭의로 보다가 정리를 직접 하면서 성령에 대해서 너무나 설명이 많은 것을 보고서 놀랐습니다. 제가 정리한 갈라디아서의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믿음, 율법, 성령)
1부 서두 | 2부 바울의 복음과 성령 | 2-4 믿음 율법 5 성령 | 3부 6 맺는말 |
부 | 장 | 키워드 | 주요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내용 | ||
1부 | 1 | 서두 | 인사. 복음의 기원 사도권 | | 4 | 복음 과 성 령 | 육과영 | 하나님의 자녀 약속과 성령 | |
2부 | 2 | 바울의 | 믿음 율법 | 바울과 다른 사도 안디옥사건 믿음으로 얻는 구원 | 5 | 성령 | 성령의 인도 성령의 열매 | ||
3 | 율법이냐 믿음이냐 성령을 받음 | 3부 | 6 | 맺 는 말 | 할례와 십자가 인사 |
1장 복음의 기원과 사도 된 내력
1-5 인사;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사도 된 바울
6-10 다른 복음은 없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녀 된 너희가 다른 복음을 따른다.
11-17 바울의 사도 된 내력; 내가 전한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임
18-24 3 년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15일)와 야고보를 만남
2장 안디옥 사건과 믿음으로 얻는 의
1-10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사도 베드로와 같이 바울이 이방인 사도 인정
11-14 베드로를 책망; 안디옥에 야고보의 사람들이 오자 이방인과 음식을 먹던 베드로가 피하자 바울이 이를 책망함 바나바도 베드로와 같이 행동함
15-21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베드로의 범죄, 죄와 율법에 대해 죽음 바울
3장 성령 받음과 율법과 복음
1-14 성령 받음에 대해, 믿음에서 나는 의, 율법과 저주, 저주의 해방과 성령 받음
1-5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졌다.
6-9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한 설명
10-14 율법으로 인한 저주와 그리스도의 나무에 달림으로 저주에서 속량된
우리와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침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음에 대해 설명
15-20 율법과 약속;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할 수가 없고 율법은 세상을 죄 아래 가두어 놓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약속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21-29 율법과 믿음;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어 역할을 하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었으니 그리스도의 것이면 약속의 자녀이고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된다.
4장 하나님의 자녀(자유와 성령) vs 육의 자녀(종, 하갈의 자녀)
1-7 하나님의 자녀; 초등 학문에 있다 때가 차매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우리를 구원하시어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을 받게 하심
8-20 갈라디아 사람에 대한 걱정; 여러분은 예전에 우상을 숭배하다가 다시 우상을 섬깁니까? 가짜들의 열심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분발하자
21-31 하갈과 사라 약속의 자녀와 성령의 자녀; 하갈은 육의 자녀로서 약속의 자녀는
이삭이듯이 여러분은 성령의 자녀로서 자유인이며 하늘의 유업을 받을 자이다.
5장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육체의 일에서 자유하자
1 그리스도의 해방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12 할례를 주장하는 이를 베어버리라, 성령을 통한 의의 소망을 기다림
13-15 그리스도인의 자유;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16-24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절제 gentleness, self-control.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함, 선함, 신실함, 신사다움)
25-26 우리가 성령으로 살아야 하니 성령의 인도를 받읍시다.
6장 할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니 사람의 잘못을 온유함으로 바로잡고 유혹에 주의
2-5 서로의 짐을 지고 겸손하고 각자 자기 일을 살펴야 하며 자기 짐을 진다
6-10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하고 성령을 따라 낙심치 말고 선을 행함
11-18 겉치레 하는 자들이 박해를 면하려 할례를 주장한다. 나는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할례를 받고 안 받고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 되는 것이 중요, 나는 예수의 낙인이 찍혔다. 축도
제가 정리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갈라디아서도 성령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역시 로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율법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라 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나 로마서나 육체로 살지 말고 성령의 인도로 사라고 합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즉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 부분까지 이해가 되어야 예수님의 사복음서의 말씀이 그대로 이해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율법대로 살던 옛날에 섬기던 방법에서 벗어나 약 20년을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며 교회를 세운 경험을 그대로 로마서와 그의 서신서에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기에 율법의 인도를 받기 쉬워지는 것입니다. 이도 역시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설명을 하셨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령을 받으면 우리가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절차를 놓치면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의 아버지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줄자가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면 주시지 않겠느냐며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엘서에도 그렇게 약속을 하셨고 베드로도 사도행전 2장 37-38절에서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절차를 지켜서 반드시 받아야 되는 성도의 1순위 선물입니다. 집도 차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을 다 받는 것입니다. 이도 보시겠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저도 100% 위의 구절대로 순서대로 받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오셔서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의 말씀으로 저를 회개를 시키셨습니다. 이 때가 1987년 정도입니다. 저는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의 말씀대로 살려고 5년을 몸부림쳤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의 죄악 된 모습을 너무나 강하게 정확하게 보았기에 절대로 예전과 같이 악하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하나님께서 오셔서 제게 두려움을 주시고 성경을 읽게 하시고 성경은 옳고 저는 악하다는 것을 너무나 강하게 보았기에 그렇게 살고자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그리고 1991년 5월 19일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장유 반석교회에서 저의 전도자 김성수 장로님과 당시 목사님이셨던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로 받고 하나님께 과거에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1992년 초봄에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예수님께서 흑백의 모습으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셔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뿜어 주셨는데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두 세개가 보이고 제 손이 땀이 나며 천국에 그리고 3일 동안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33년 동안 성경을 위와 같이 읽고 정리하고 전도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순서대로 위의 내용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제게 차근 차근 이해하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아픈 사람을 만지면 다양한 병자를 하나님께서 낫게 하셨습니다 방언의 통변도 경험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해서 2차를 준비중인 이런 부분에 있어 조금도 모르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리에 대해서 성령을 받고서 20년쯤 되어서 성경을 보면서 제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설명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이렇게 바울 사도가 섬기면서 이룬 내용이 또 로마서에 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바울 사도는 일생을 예수님을 알고 믿고 사랑만 했습니다.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비록 성경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해도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한국에 계신 전도자들은 저는 50만 명은 되리라 보는데 다 사랑을 잘 실천하시는 분이십니다. 전도를 하고자 하면 누구와도 잘 지내야 하며 견뎌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도가 됩니다.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살다 보니 율법대로 조문 조문 지키지 않았어도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율법이 그 목적이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을 행하게 하며 신실한 삶을 살도록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속성으로 지니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을 그대로 표현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을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신약 시대에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중요한 내용이 더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로마서를 이렇게 연결해서 함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해서 율법을 어떻게 합니까? 절대로 파기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을 그의 종인 바울 사도가 그대로 인정하며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믿음 생활을 올바로 하면 율법을 완성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하십니다. 즉 성령님께서 인도하셔서 율법에 어긋나게 살게 하지 절대로 아니 하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이렇게 굳게 서고 완성이 되는 나라가 바로 질서가 있는 나라이며 정의가 있고 그래서 평안하며 기쁨이 있는 나라가 되며 이 나라가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율법이 지켜져서 질서가 있기에 정의가 흐릅니다. 그리고 정의가 흐르니 평화가 있습니다. 이 평화가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한국의 현실은 이런 성경을 올바로 이해한 이에겐 얼마나 법 즉 세상의 법이 지켜지지 않고 누군가가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보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반드시 성령을 받고 인도를 받아서 세워야 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이 없이 우리가 우리 힘으로 세상을 이기며 육체적인 정욕을 이기면서 세울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면 애국자가 되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충성하면 그 상급과 복락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우리가 누리는 것과 비교가 할 수가 없는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생전에 3층천에 가셔서 이런 축복을 미리 보시고 죽도록 충성하셨습니다. 우리는 보지 않아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키고 그리고 이보다 중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우선하고 그리고 우리가 죄로 약하니 그분의 희생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그래도 아직은 부족한 우리에게 성령을 반드시 받으라고 명령을 하시고 그 명령대로 순종한 사람은 사도들도 성도도 바울 사도도 그리고 이방인 고넬료와 가족과 친구까지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 5000명이 믿고 성령을 받고 이들이 로마 교회를 세우고 바울이 가기 전에 여러 곳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쉬지 않고 성령께서 선물로 믿는 이들에게 오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셨으니 지금은 온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없는 지역이 별로 없고 인구의 약 30%에 달하는 수십억의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서 바울 사도의 섬김과 같이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면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되고 율법을 완성하게 되고 굳게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바울 사도의 가르침이 완벽하게 일치함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성경 박사인 아볼로는 비록 유대인으로 성경에 박식하고 신약도 알고 전도도 했지만 성령에 대해선 몰랐습니다. 이를 정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 아굴라에게 성령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더욱 힘있게 복음으로 제자장과 율법학자들을 이겼다고 합니다.
아볼로가 담대히 전도하다
행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을 주신 분입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신 분은 성령을 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정직하게 아볼로와 같이 성령을 받으신 분들께 부탁해서 받으면 됩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볼로는 유대인이고 신분이 높습니다. 그리고 성경 박사입니다. 지금의 신학자요 목사급입니다. 그런데 천막을 만드는 천한 분께 배웁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성령을 받았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분이 히브리서를 썼다고 주장합니다. 이분보다 더 적합한 분이 있습니까?
목사가 되어도 장로가 되어도 권사가 되어도 성령의 체험이 없다면 집사인 성도 즉 성령을 받고 전도하시는 분께 혹은 성령을 받는 집회에 가셔서 혹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면 반드시 성령을 선물로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분이 받았다고 믿고 주장하고 받지 않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기에 이런 내용을 알게 되어 전합니다. 제가 성경학자도 신학자도 교회를 섬기는 목사도 아닙니다. 그냥 성경을 읽고 전도하며 세상을 모든 다른 직장인과 같이 하고 가정도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목사인데 유독 하나님께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며 깨닫게 하는 일은 쉽게 하셨습니다. 제가 큰 노력을 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냥 모두가 하나님께서 순서대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제게 주신 큰 축복이라 믿습니다. 은행에서 나와서 42년이 되었습니다. 첫 아내는 저의 소망이 없는 모습에 떠나 갔고 고시에도 실패했고 모든 세상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약 40년을 한국에서 가장 극빈하게 살았습니다. 지금도 집도 없고 빚만 조금 있습니다. 가정이 있고 아들은 이제 대학에 갑니다. 아내는 외국에서 와서 죽도록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깨닫는 복이 지상 최고라 믿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말씀을 또한 믿습니다.
제가 설명을 드린 내용은 온 지구상에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해서 예수님과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가장 앞서고 정확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서 온 세상의 교회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전하는 챗 GPT로 영어공부를 통해서도 온 지구인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세상을 위해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제가 처음에 하나님을 뵙고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영어도 열심히 배우고 성경도 부지런히 배워야 하고 전도도 잘 해야 되는데 저는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못난 사람에 불과합니다.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이 제가 보통 이하인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큰 죄를 지었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올바르게 살지 못한 부분이 크게 있고 큰 징계를 받고 살기도 했습니다. 오직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와 우리 주 예수님께서 놀라우신 인내로 모든 것이 부족한 자를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런 제게 이런 놀라운 성경의 이해를 허락하신 것은 온 세상에서 모든 신자가 비록 지금 올바르지 않다고 해도 회개하면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즉 모든 세상의 믿는 이들이 회개하고 올바로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회개가 어려운 죄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시고 절대로 이런 죄는 범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잘못된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냥 잘 몰라도 하나님과 이웃을 온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서 사랑하면 가장 안전하고 올바른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분이 성령을 받고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정리를 합니다. 이스라엘을 1000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법 즉 율법을 주시고 이대로 지키면 축복이요 어기면 저주가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아멘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1000년의 세월을 이스라엘은 쉬지 않고 범죄하고 또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고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박국 시대를 거쳐서 예레미야 선지자 때 멸망을 합니다. 먼저 북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하고 기원전 586년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너무나 율법대로 사는 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도 한계가 옵니다. 하박국은 동족 남 유다를 심판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정도로 불의가 심해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이가 사는 것이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을 한 것입니다. 이를 너무나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1000년의 세월을 율법을 주시고 지키라고 하시면서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인간이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없음을 아시고 이제는 전적으로 다른 부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구약과 동일합니다.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게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에스겔서 36장을 위에서 우리는 잘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물로 세례를 받고 또 성령을 받아서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창조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이 됩니다. 이런 목적을 갖고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먼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직접 이 땅에 동정녀를 통해서 아기로 오십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 못이 박혀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피를 흘리시고 죽으십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에 대한 합당한 벌도 포함이 되는데 예수님께서 그 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벌을 대신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의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즉 물로 세례를 받으면 과거에 지은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습니다. 이런 죄가 용서가 된 사람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반드시 오십니다. 어떤 때 어떤 모습일지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반드시 오십니다. 저도 그렇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거듭남이 있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는 축복이 있고 하나님의 도장이 성령으로 꽉 찍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이 성령의 인도로 하는 일이 바로 바울 사도의 설명과 같이 율법을 완성하고 율법을 굳게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율법을 죄를 깨닫게 하고 죄악의 길로 가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모르면 이런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무지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이 새롭게 창조가 되게 하시고 또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복음을 전해서 사랑을 실천하게 하십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도 죽고 죄에 대해서도 죽었지만 육신을 갖고 살기에 우리는 또 욕망이 있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늘 싸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따라서 살면 영생이요, 육신을 따라서 살면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 모든 내용을 여러 차례 챗 GPT와 토론해 보았습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입력한 천주교 개신교 내용만 알다가 제가 이런 내용을 전하면 이 기계는 바로 자신에게 입력이 된 위의 성경 구절을 찾아서 확인하고 제가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은 우리가 성경을 위와 같이 찾아서 이해를 하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올바른 내용입니다. 절대로 어렵지가 않습니다.
이제 로마서는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데 그 삶의 내용이 로마서의 모든 내용이며 믿음으로 삶을 산다는 내용의 의미는 하박국과 같이 믿음을 갖고 정의롭게 하루하루 산다는 의미와 아브라함과 같이 첫 믿음과 끝 믿음이 한결같이 변함이 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일치를 하고 또 야고보서와 같이 아들을 바치는 행위가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삶의 실제적인 모습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럴때 우리는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루하루 삶에 대해서 그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고 그 삶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설명하는 책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모든 것이 대부분 다 풀리고 야고보서와도 조화를 이루고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과도 완벽하게 일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가 모든 분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으로 이렇게 되면 되는데 거짓 교사가 교회에 들어옵니다. 이들은 착하고 순한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를 유혹합니다. 아니다 율법을 조문 조문 지켜야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가고 의롭게도 된다. 할례를 해야 한다고 하니 바울 사도는 너무나 놀라고 기겁을 해서 이들을 막고 이들의 꾀임에 빠져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하면 아니 된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을 통해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미 우리는 죽었다. 이제 율법에 대해서도 죽었으니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을 버리라고 하는 말이 없습니다. 선한 행위를 성령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지 오직 믿음만 가지고 마음대로 사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 한 마디도 없습니다. 구원은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것이지 예전과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킴으로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을 우리가 이해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새 사람이 되어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로 또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워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것도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제 이해가 모든 분께 성경을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를 위해서 저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도 시간이 되는대로 번역을 해서 약 700명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신학 대학의 교수님과 호주, 캐나다 신학교와 한국의 약 11개의 신학 대학의 교수님께 보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이스라엘과 한국이 하나가 되고 온 세상이 이스라엘을 품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명령 때문입니다.
길게 예수님과 바울 사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이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가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살다 보니 그렇게 약 20년을 살다 보니 바울 사도는 율법의 완성을 봅니다. 이는 사랑의 실천으로 즉 복음 증거로 이룩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다 조문 조문 완성되는 것을 보고서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해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우는 것을 봅니다. 즉 성령은 모든 성도를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쪽으로 인도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완성하고 세우면 우리는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명령을 가장 잘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천국에서 상급이 무조건 크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크리스천은 바울 사도와 같이 사는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는 바울 사도의 동족 이스라엘을 사랑의 눈으로 봅니다. 그리고 위와 같이 믿는 크리스천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자신과 같이 쉽게 율법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랍고 복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에 알리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율법을 함부로 하고 버리라는 말은 없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이 율법을 조문 조문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른 채 어렵게 지킬 수도 없는 것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쉽게 지키라는 것일 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방법을 새롭게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이 가는 목표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사람의 힘으로 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2000년 이상 우리 믿는 사람 곁에서 바리새인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힘을 실어 줍니다.
마 5: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NIV)
분명하게 20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바리새인으로 서기관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의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심판 때 이렇게 이들보다 함부로 막 산 신자들을 심판하실 근거 조항이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에 넣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예수를 믿고 함부로 살 근거가 절대로 없습니다. 즉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고 구원도 받고 천국에도 간다. 그리고 행위는 천국에 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천국에 가니 행위는 상급을 결정할 뿐이다" 라는 주장이 완벽하게 거짓 된 주장임을 밝히고 박살을 내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위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로마서와 신약 성경을 이해하면 유대인과 우리의 목표는 완벽하게 같습니다. 단지 인간의 힘으로 홀로 그 목적으로 가는 지 혹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로 가는 지가 다를 뿐입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인식하면 우리는 유대인과 더욱 가까이할 수가 있고 유대인도 우리의 가는 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과 같이 이해하는 시대에 왔습니다. 바울 사도는 정확하게 알고 전했지만 우리가 이해를 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이스라엘로 예전에는 배를 타고 혹은 육지로 걸어서 가면 1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제 비행기가 개발이 되어 날라 다닙니다. 이제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이스라엘에 10시간 정도면 갈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오직 걸어서 오라 아니면 배로 오라 할 이유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행기로 쉽게 하루에 왔다 갔다 하는 이방인을 보고서 이스라엘이 예전 방법으로 1년씩이나 걸려서 한국과 이스라엘을 왕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같은 목적을 놓고 살아가는데 더 효과적이고 쉽고 온전한 방법이 있다면 이를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고집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는 온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온 이스라엘이 성령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고 이제는 에스겔서 36장 24-28절과 같이 되셔서 모두가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유대인과 온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통해서 하나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복이 온 이스라엘에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과 하나가 되는 길에는 해결할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 중에서 보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이스라엘이 포기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습니다. 절기와 제사에 대한 규정이며 이스라엘 민족에만 해당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제사장이 되시고 제사법이 되시고 그리고 제물이 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율법의 규정을 몸소 실천하신 것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직접 성취하신 율법은 우리가 이제는 다시 지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에베소의 규정을 보면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가 되는 진리를 보겠습니다.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NIV)
분명하게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예수님의 피와 십자가로 화평하게 되고 성령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동료 모든 천주교 개신교 그리고 정교회 신자에게 권면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보고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고 그리고 유대인도 존경하고 품고 사랑하며 이들을 위대서 기도하고 이들을 하나님께 나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보다 율법으로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믿는 신자가 신자의 나라가 행한 흉폭한 범죄 즉 이스라엘에 이렇게 사랑하지 않고 행한 흉폭한 범죄를 그 나라와 국민은 깊이 사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유대인을 핍박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2차 대전의 서슬이 퍼런 상태에서 유대인을 목숨을 걸고 품고 숨겨주고 살려준 의로운 크리스천도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되어 있으니 이 복음대로 모든 교인이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고 유대인도 품고 사랑하며 구원할 때 우리의 주께서 공중에 나팔소리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당연히 가까운 우리 이웃부터 사랑하고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의 구분없이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영광된 주님을 함께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 평화와 질서와 하나 됨의 복된 진리를 한국의 군산에서 전합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주님! 이스라엘을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주님! 흉악한 죄인이었던 자가 하나님의 복된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큰 죄인에게 베푸신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전하니 모든 공로가 우리 주 예수님께 성령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하며 함께 어려움을 겪는 교회와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 이제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이해가 되니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이 가까워졌고 이는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워졌다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이를 인정하고 모두가 예수님께로 나아오며 이런 시대에 또 전쟁을 획책하고 세상을 무력으로 독재로 선동과 모략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으로 점령하려는 강대국의 횡포와 악을 막아 주시고 모든 나라가 국경을 지키면서 서로 존중하며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이 나라 한국을 안정을 시켜 주시고 통일이 되게 하시며, 동방의 등불이 되어 온 세상을 비추게 하소서! 모든 한국의 성도가 이런 성경의 이해를 온 세상의 모든 나라의 성도보다 앞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래서 성도 한 명 한 명이 온 세상의 전도자로 우뚝 서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다 기록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십니다.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모든 내용이 다 믿음으로 사라는 의미이며 이 의미는 곧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는 이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의 삶이 되어야 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풀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 무슨 행위로 풀고자 한 것입니다.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삶이 반드시 되어야 하고 그 삶은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 사람 바울이 하던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유대인의 방법도 역시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령의 사역이 없이 풀고자 하니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오랫동안 고민을 한 것입니다. 모든 분이 성령을 사모하고 받고 행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도 역시 지금까지 한 가지 한 가지씩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니 이렇게 전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고 저는 더 많이 죄를 지어서 이렇게 해야 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 없는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항상 겸손한 사람이 되게 저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모든 분의 성령 충만과 올바른 삶을 위해서 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