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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4-25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 박조준 목사
오늘 주신 말씀은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가나안 정 복의 영웅인 여호수아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가 사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도 전을 합니다 . 그 말씀을 준 곳이 세겜이라는 곳입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세 가지 중요한 장소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 장소들은 이스라엘 팔레스틴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 서 아주 의미 심장한 것입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리고 근처에서 여리고 공략을 준비하면서 열 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운 곳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건널 수 없었던 요단강을 건너 주 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에게 있어서 길갈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장소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할례 받지 않은 사 람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 로 태어났으므로 그 사실을 자기자신에게 계속 상기시키기 위해서 할례라는 표시를 받은 것입니 다. 그들의 육체의 할례가 행해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살아가 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를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왜 세례를 받습니까? 우리가 왜 세례를 받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하나 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그 사실을 선언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군에 입대하면 군복 을 입힙니다. 군복이 없이도 군인이 됩니다. 그러나 군복은 입음으로 자기가 군인에 합당한 삶 을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나안의 약속된 삶에 대한 시 작의 이정표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길갈이라는 장소에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 니다. 그리소 길갈 다음에 중요한 장소가 실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이스라엘 백성은 실로에 장막을 세웠습니다. 장막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 입니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여기서 회막 이라 불렀습니다. 회막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만 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장소를 성별해서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을 때는 이 회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회 막 안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실로는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요,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졌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은 반드 시 실로로 찾아나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 실로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시곤 하십니까? 우리가 예배당에 나아와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과 만나고, 말씀을 듣고, 내 갈 길을 내 다보며, 내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실로에서 삶의 방향을 교정 받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 와서 드리는 예배에서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할 때 실로로 오세요. 주님 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지고 가는 짐이 너무 무거워 피곤하고 지치셨습니까? 실 로로 오세요. 주님이 그 짐을 대신 져주실 것입니다. 모든 일에 의기소침하고 낙심되십니까? 실 로로 오세요. 주님이 마음에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근심에 싸여 우울하십니까? 실 로로 오세요. 주님이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달해야할 세 번째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세겜입니다. 세겜은 그리심산과 아멜산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입니다. 양쪽 산의 가운데 파묻힌 계곡의 도시입니 다. 그 도시는 그러므로 천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있으며 아주 아름다운 정경을 이루고 있습니 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그는 바로 이 세겜에 도착해서 하나님께 제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새로 운 삶을 꾸려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야곱이 메소포타미아의 방황에서 돌아오면서 이방에서 우 상을 가지고 왔는데 잘못을 깨닫고 그 우상을 땅속에 파묻고 그의 생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기 로 결심한 곳도 세겜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예감하면서 그의 사랑했던 이스라엘 백 성들을 세겜으로 모아놓고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의 초점은 네 하나님만 섬기라 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4∼15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 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저희 열조가 강 저편에 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 라.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가 자기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백성에게 꼭 주기 원한 메시 지였습니다. 하나님만 섬기세요. 주님만 섬기세요. 섬기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제스추어(gesture)가 아닙니다. 섬김은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결단의 자리, 세겜의 경험이 있으시 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섬김의 자리에 이를 수가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1절 이하를 보세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보인지라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그러니까 우 리의 조상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강 저편에서 삶의 희망과 삶의 의미와 목표와 방향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왔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 이하에 무슨 단어가 제일 많이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지를 보세요.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 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 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산을 소유로 주 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 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냈었었노라 내가 너 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 즉 애굽 사람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 열조를 홍해까지 따르므로 너희 열조가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 사 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가 목도하였 으며 또 너희가 여러 날을 광야에 거하였었느니라 (3∼7)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방땅에서 인도하여 여기에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삶 의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방향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를 늘 인도하셨습니 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축복과 능력을 허락하셨으며 조건과 환경을 조절하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궁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궁지에서 구출해 주셨습 니다. 이 메시지를 주신 다음에 본문 말씀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흡을 주셨으므로,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의 능력을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으므로,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다만 인식의 차이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이 축복하셨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 속에 그 손길과 입김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움직이고 계시며 하나님이 내 삶의 위기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모든 일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성실과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내 삶의 주인이 하 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그 렇다면 제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 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둘째,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14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다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우리에게서 우상을 제거해야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상은 예수 믿기 전 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은 후에도 얼마든지 우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한 것이 성 취되면 어느새 우리는 기도를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성취했다고 모든 영광을 자 기에게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내 삶 속에 나 라는 우상이 나를 지배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건강,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자기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성취한 것 그 자체를 하나님보다 귀중히 여기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내가 땀흘려 번 돈, 내가 노력해서 얻은 이름, 재물과 명예가 내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게 하 신 하나님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23절에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 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섬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 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혹 너희 섬길 자 를 오늘날 택하라 (15절)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섬기지 않고는 우리 마음속의 텅빈 공간을 아무것으로도 메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의 목숨과 젊음과 정열을 던질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은 현대의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를 지으시고 인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 기며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자랑이며, 긍지이고 환희입니까! 여호수아는 이것보다 더 위대한 삶의 차원이 없다는 사실을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 피부로 느 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섬기는 그 대상만큼 밖에는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지지 못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이 결단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한 것입 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결단을 요구하는 말을 듣 고 16절에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라고 말했 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이 고백을 영원히 인치기를 원했습니다. 22절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백성에 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고 했습니다. 재차 그들의 결단을 확인한 여호수아는 그들이 자기들의 결단을 잊지 않도록 증거를 세웁니다. 26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이 모 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취하여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 무 아래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즉 너희로 너희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도 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26∼27). 우리는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그 결심이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그래서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한 것은 계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내가 결심한 것을 계속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내 현실이 계속 다시 상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일깨우 는 역할과 구실을 무엇이 담당하든 간에 나의 선택과 내 결단을 끊임없이 상기하면서 살아가야 만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이 결단을 확인해야 합니다. 삶의 새로운 과제 앞 에 설 때마다 우리의 결단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합니다.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길갈에 오셨습니까? 새롭게 시작하셨습니까? 그러면 계속해서 실로에 오세요. 그래서 모든 문제 를 하나님께 아뢰세요. 그리고 세겜에서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