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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목사
주일설교.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 1장 13~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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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 이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부활신앙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부활신앙을 간직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중의 핵심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지냈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를 직접 목격한 후에야 비로서 믿는 자들이 되었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아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부활절 이후에도 확고한 부활 신앙을 드러내고 부활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팀켈러 목사님의 『부활을 입다』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전에도 한번 훑어본 책인데 이번에는 정독중입니다. 이 책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부활신앙의 믿음을 얻는가? 부활신앙으로 인해 나는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아보는데 유익합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은 기본으로 계속 읽어 나가시면서 신앙도서들도 선택해 보셔서 부활의 능력이 내게 온전하게 입혀지고 항상 충만케 유지되어 실제적으로 내 삶 속에서 역사하도록 믿음을 굳게 지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은 무한 합니다. 회복의 능력, 이기게 하시는 능력, 담대하게 하시는 능력, 순종하게 하시는 능력, 이루 다 셀 수가 없는 능력이 부활을 믿는자엑 날마다 공급되어집니다.
이런 능력을 공급받은 우리는 부활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늘 염두에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라는 물음에 한 단어만 이야기한다면 ‘거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 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는 내 앞에서 온전하여 거룩하게 행하라”라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거룩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마음에 믿음이 준비됨 없이 몸만 나와서 의무적으로 희생제사(예배) 드리는 사람들은 마당만 밝는 사람들(사 1:12)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당 공간에만 왔다갔다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보좌 앞)까지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곳 까지 나아가려면 반드시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 거룩함을 우리에게 입혀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믿고 믿음을 소유하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자격 없는 내 힘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라는 찬양도 지난주에 불렀습니다.
죽음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이름을 믿고 매일 같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부활신앙을 경험한 사람들이 행하여야 할 삶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습관이 ‘거룩’입니다.
오늘 본문 위에 제목이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되어 있고,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4월 한달 동안은 부활절 이후 우리의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함께 ‘거룩’이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3~14절을 읽어 드립니다.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아멘.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살리셔서 우리 모두에게 ‘산소망’이 있게 하셨고,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 받고 있다는 말을 한 후에, 13절에서 “그러므로 (산 소망과 믿음이 있는)너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재림) 때 주실 은혜(영생의 면류관)를 바라라” 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주실 은혜를 바라며 기다리는 자세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허리를 동여 매는 이 자세가 무엇을 할 때의 자세인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를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당시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출 12:11)고 했습니다. 머나먼 신앙의 여정을 떠날 시점에는 믿음의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동여)매야 합니다. 긴장감을 잃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허리띠를 동이라는 것을 좀 더 확장시켜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항상 집중하라, 환경과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재림의 주님을 맞이 할 수 있는 믿음을 늘 점검하라,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마음과 거룩한 행실을 지켜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언제든지 하나님 나라에 같이가자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면 똑똑히 듣고 곧바로 떠날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는 신앙생활을 견지하라는 뜻입니다.
파이디온 영아 찬양 중에 “준비됐나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은 “준비됐나요 준비됐나요 예수님 오시는데 준비됐나요 준비됐나요 예수님 오시는데 / 기도로 불 밝히고 사랑으로 길 만들어 준비됐나요 준비됐나요 예수님 어서오세요”라는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어린이 때부터 이런 준비된 마음을 훈련시키고 어른이 되어서도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우리 주님 오시는 그날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준비하기를 게을리 하거나 아예 준비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다가는 도둑 같이 이르게 될 심판의 날에 어두운 곳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 한 것은 부활의 주님을 목격하고 체험한 자들이 산 소망과 믿음의 선물(은혜)를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거나 다시 세상의 즐거움과 유익을 쫒아가 버리는 어리석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경계심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채우기는 어려운데 까먹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한 후에 베드로 사도는 15절 하반부에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권면을 하였습니다. 이 말이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권면입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있어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하는 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 권면의 제목이었을까? 그것은 거룩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자신이 거룩함으로 항상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장소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을 만난 곳도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신 회막의 지성소 역시 임재의 장소이자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는 모든 곳은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반드시 우리의 몸과 마음과 행실이 온전하게 거룩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는 절대 거룩하지 않으며, 거룩해 질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는 말씀은, 우리의 모든 말, 생각, 행동, 마음구석 구석의 삶의 전 영역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이 충만함을 항상 구하라는 뜻과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 있으라는 뜻과고 동일합니다.
바지의 허리띠는 밖에 나갈 때는 동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풀어 버리지만, 마음의 띠는 한 번 동이면 계속해서 조임만 있을 뿐 절대로 풀리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마음의 띠가 풀리는 순간 우리의 거룩함은 언제 든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 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함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 14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과거로부터 몸에 베어 있는 사욕(욕심, 욕망) 때문입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을 억제시키지 못하면 거룩함이 있어야 할 자리가 욕심덩어리로 가득찹니다. 마음에 욕심이 차고 넘치는데 긴장감 있는 신앙생활이 될 리가 없습니다. 사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또 하나의 관건입니다.
부활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베드로 사도가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것이 부활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삶의 자세여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체험한 후에 거룩을 빼놓고는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을 추가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16~19절 말씀입니다.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아멘.
1.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유념해야 할것 – 동행, 항상함께를 추구
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나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 하나면 다른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룩하신 아버지(부모)을 따라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몸과 옷에서 악취가 난다면 누구라도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겠죠. 하나님도 죄와 악에 빠져 영적으로 불결하고 정결하지 못한 자들과는 절대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녀들만이 하나님 보좌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하고 싶다면 거룩, 또 거룩해야 합니다.
부활절 이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항상 하나님 곁에서 함께 지내겠다는 다짐도 했고, 그러한 소망도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게 하시려면 거룩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라는 말씀이 마음판에 지워지지 않도록 각인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로 살아기를 원하고 바라신다면 항상 몸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에 주의하고 또 주의하여야 합니다. 내 스스로 힘써서 거룩함을 지켜 갈수 없음을 빨리 인정하고 성령님에게 보호를 요청하여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죄와 악으로 더러워졌다면 즉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기대어 진심으로 참회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주의하고, 인정하고, 참회하고, 돌이키면,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방향을 잘 잡으신 겁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적으로 실천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 부활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되어야 하고,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왜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갈급함이 없을까? 내가 거룩함보다 세상의 것을 선택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전혀 작동되 않을까? 내가 더 이상 거룩함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느끼지 못할까? 내가 지니고 있던 거룩함을 소모하고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 곁에 가까이 머물기를 원하십니까?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항상 함께 생활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분들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려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오직 거룩함만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2.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유념해야 할것 – 나그네길, 행위대로 심판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마지막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종말의식, 심판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종말론적 긴장감이라고 표현 합니다.
17절에서 처럼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심판의 때를 두려움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있는 삶이 심판을 인식하는 삶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평가는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결정됩니다. 우리 모두는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아온 모든 행위들을 직고(바른대로 알리다, inform truthfully)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다가 그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멸망뿐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각자가 행한 일들이 벌거 벗은 것같이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고 심판 받는다는 사실을 그다지 두렵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두려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17절 후반부에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는 우리의 한정된 인생의 시간을 의미하고,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은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 하며, 의식하며, 인식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범죄 검거율이 유독 높고 빠른 것은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 되어 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4시간 켜져 있는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겁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까지도 다 기억하시고 언제든지 그 장면들을 생방송 하듯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소름끼치도록 두렵습니다. 진짜로 두렵다고 실감이 되시나요?
내가 만약 겉으로는 모범적으로 살고있는 것처럽 보이지만 실제로는 음란과 거짓과 폭력을 저지르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나의 숨겨진 일상들이 광화문 광장 홍보용 전광판에 라이브로 생중계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속용 카메라에 찍혀 한 건에 1000만원씩 과태료 고지서가 온다면 과속이나 신호 위반에 무감각 하겠습니까?
단 한사람도 나쁜짓 못할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삶을 언제든지 생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실 때가 곧 심판대 앞에 서는 날입니다. 이제는 좀 무서우신가요? 정말 진지하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심판을 생각한다면, 나그네 같은 짧은 우리 인생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것입니다.
정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살아가려고 치열하게 몸부림 칠 것이고,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나그네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룩하지 못한 더럽고 냄새나는 추악한 행위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겸비한 자세를 취하려고 무단히도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부활신앙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 이름을 붙잡는 치열함, 죄를 버리고 거룩함을 취하는 남다른 겸비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살아가라는 권면으로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가 되라”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3.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유념해야 할것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대속
마지막으로 베드로 사도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대속함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으면 거룩한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을 위해서 피 흘리시고, 죽으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 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는 은혜, 이 은혜가 계속해서 은혜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곧 거룩한 삶입니다.
보배로은 피 흘리심을 일평생 감사로 영광 돌려도 부족한데, 점점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이미 확보된 내 물건처럼 여긴다거나, 더 이상 어떤 감동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로 방치한다면 참으로 본회퍼 목사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값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가 되는 시작, 과정, 결말에는 보배로운 피 흘리심의 대속함이 중심에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항상 고백하며, 항상 감사하며, 항상 겸손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거룩함의 기본이자 출발점이 됩니다. 대속함의 은혜를 매일 고백 하시고 매일 감사하십시오. 그런 일상의 반복이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권하는 마지막 말씀을 보겠습니다. 20-21절입니다.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아멘.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말미암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며, 영광을 주시는 분임을 굳게 믿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 믿음과 소망이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 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 하나씩 유념하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 잊어 버리고, 다 실천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워 언행에 겸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든 이들에게 증거하는 것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이름 붙들고 살아가는 것에 최선을 다한 다면 우리는 무조건 거룩함으로 덧입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과거에 지었던 죄 때문에 묶여있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의 문제와 상황 때문에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그네 인생길에 대한 허무함과 미래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주여졌다는 사실만 단단하게 붙잡고 살아가면 됩니다. 예수 이름만이 능력임을 명심하시고 살아가시면 됩니다.
제발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마시고, 상황의 좋고 나쁨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거짓말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들을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예수 이름이면 죽음도 우리를 막아설 수 없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과 소망을 지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니,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는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이후 우리 모두의 삶이 거룩, 거룩, 오직 거룩함만이 충만하여져서 친구 되시는 우리 예수님과 천국 길로 동행하는 기쁨의 날들로 채워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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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과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죄와 악에서 보전하여 주셔서,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산 소망이요 믿음의 주인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