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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 시대의 강해(5부-2)-버가모 교회 시대
*소 개*
월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는 1960년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요한계시록1~3장까지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메시지를 연속으로 설교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 시리즈로 소개해 드리고자합니다.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 계시록2장12~17절.
12.버가모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양날 달린 날카로운 검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13.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16.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 또 흰 돌을 그에게 주리니 그 돌 에는 새 이름을 기록되어 있어 그 돌을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느니라.
* 책망.
계시록2:14.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라.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 버가모 시대에서 주님은 그가 미워하시는 두 가지 교리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1. 바알 브올에서 이스라엘에게 우상 숭배와 범죄들을 가져온 발람의 교리와
2. 에베소 시대에서는 행위에 불과했던 니골라당의 교리.
이 책망과 그가 버가모를 사탄의 보좌로 강조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묶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찌 되었든지
바벨론 종교가 초기 그리스도교와 혼합되었다는 사실을 쉽고, 적절하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가설일 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인데, 우리가 주후 36년 경까지 역사를 거슬러 가서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까지 추적해 봄으로써 증명할 사실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밖으로 흩어졌을 때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온 땅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회당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3년 내에 즉 주후 36년경에 복음은 유니아와 안드로니고에
의해 로마에 전해졌습니다. 로마서16장7절에 보면 그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그 일은 거기서 여러 해 동안
번성했으나, 유대인들 사이에서 언쟁이 계속되자 글라우디오 황제는 그들을 로마에서 쫓아냈습니다.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하자 그 작은 초기 교회의 척추는 실상 부러진 상태였습니다. 아마 장로들도 유대인이었으니
떠나야 했을 것입니다. 그 양떼는 돌보는 자가 없는 상태였고 말씀이 안내자로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이었으므로 이 적은 양무리가 타락하거나 그 당시의 철학자들과 이교도에게 묻혀 버리기는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먹이를 찾는 흉악한 이리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풀려진 상태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로마에 있던 이
작은 교회는 어쩔 수 없이 타락해버리고 그리스도교라는 명칭 아래에 이교도 의식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추방 기간이 13년간 지속되자, 초기 설립자들인 유니아와 안드로니고는 주후 54년까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 아래 끔찍하게도 이교도적인 교회를 보고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 교회 안에는 향을 두고 이교의식을 치루는 제단들도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기존 지도자와
연락이 되지 않자 신실하게 남아 있으려 하던 소수의 무리와 함께 그들은 새 교회를 즉 로마의 두번째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그들 사이에서 이적과 기사로 역사하시사 세째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교회는 경배에 있어 이교도적이며 그리스도적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지만 그 직함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여전히 로마의 첫 번째 교회로 남아 있습니다.—그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 대다수는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나 모두는 마귀의
과녁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정부의 폭정의 목표물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첫 번째 교회는 번성하고 교인 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황제들과 다양한 정부
관리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사실 그 교회를 선호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첫번째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은총을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들은 정부가 진실한 신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핍박하도록 기회로 삼았습니다. 로마의 첫번째 교회의 그와 같은 주교 가운데 한 사람은
2세기에 살았고 폴리캅과 동시대 사람인 아니세투스였는데, 나이 많은 폴리캅이 로마의 첫번째 그리스도
교회가 이교 의식에 연류되어 복음의 진리를 더럽힌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 먼 거리를 서둘러 그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자 거기로 갔습니다. 폴리캅은 그들이 사도들과 성도들의 이름을 딴 우상들 앞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이 양초에 불을 켜서 제단에 향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부활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을 보았는데, 태양신을 기리는 동그란 모양의
빵을 들어 올리고 그리고 나서 포도주를 쏟아 신들에게 헌주하였습니다. 그러나 1500마일을 여행했던 이 늙은
성도는 그들의 하행 추락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4:15"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폴리캅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니세투스를이어 빅토르라는 악한 로마 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교회 안에 더 많은 이교 축제들과
의식들을 도입했고 또한 진실한 그리스도 교회들을 똑같은 사상에 연합시키고자 설득하는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신자들이 그가 요구하는 대로 하려하지 않으므로 그는 정부 관리들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힘을 이용해 신자들을
핍박하게 했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이 증거하듯 그들을 법정에 소환하고 옥에 가두고 심지어 많은 이들에게
사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악한 행위의 그런 예는 빅토르의 친구인 칼리스투스가 셉티무스 쎄버루스
황제를 이기고 데살로니가에 있는 7,000명의 참된 신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그 예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그 이름에 따라, 아스다롯 숭배를 거부하고, 예수께서 죽으신 유월절을 축하했기
때문에 살해케 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거짓 포도나무는 그들의 선조인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택함 받은 자들을 죽임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적하여 분을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참된 교회는 첫번째 교회가 회개하도록 하려고 계속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으로 크기와 영향력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들은 참된 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운동을
계속 벌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고 자기들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대표자라고
주장했고, 그들만이 로마에서 처음으로 생긴 교회이며 그들만이 첫 번째 교회이며, 자신들만이 권위를 가진
교회라며 거짓사실을 마구 자랑했습니다. 정말로 그들은 첫번째 교회입니다, 바벨론의 다신 이교 종교와 교배된
첫 번째로 조직된 교회입니다. 예, 맞습니다. 이 세번째 교회시대 때에 이르면 같은 이름을 소지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두 교회가 있습니다. 한 교회는 진리를 떠나 우상들과 교배된(결혼) 그 안에는
생명이 없는 이름뿐인 교회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잡종화시켰고 그녀 뒤엔 생명이 아닌 사망의 징조들이 바짝
뒤따릅니다. 그녀는 많는 구성원들이 있어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이 좋아합니다.
다른 한 교회는 핍박받는 소수의 무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자가 전한 말씀을 따르고 표적들이 뒤따릅니다.
병든 자들의 병이 낫고 죽은 자들이 일어납니다. 그 교회는 생명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 움직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믿음을 죽음이 온다 해도 고수합니다.
그런데 관료적 로마의 잔혹한 박해가 진실한 신자들에게 가해지다 급기야는 콘스탄틴이 일어나 종교적 경배의
자유를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유가 주어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많은 선량한 황제들은 박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자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한 자들이
그 자리를 이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공론에 이르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명확해 보이는 두번째 이유는 콘스탄틴은 제국의 지배권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힘든 싸움이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자기 앞에 흰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은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위하여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려 준다면 그가 싸움에서 이기리라는
전조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승리를 거두게 되면 그들에게 자유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승리를 거두었고 주후 312년에 낭뜨 칙령에서 경배의 자유가 수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박해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처음에 보이던 것처럼 그리 관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콘스탄틴이 이제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후견인으로서 그의 관심은 다소 관찰자의 관심 이상가는 것을 보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교회가 교회의 문제로 자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들이 의견의 불일치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 하나는 알렉산더의 주교인 아리우스와 연류 된
문제로, 아리우스는 자기 지지자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물로 진정으로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서부교회는 반대 견해를 고수했는데 예수는 하나님의 본질이며 그들이 칭하는
바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들과, 예배에 유입된 이교도 의식을 두고, 콘스탄틴
황제는 325년에 니케아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 모임으로 모든 그룹을 함께 모아서 그들이 그들의 견해차를
해소하고, 한 가지 공통된 이해에 이르고, 모두 하나가 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콘스탄틴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죽지 않고 오늘날도 "세계 교회 협의회(WCC)"로 생생하게 살아
남아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는 진정으로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는데, 오늘날
와서는 그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세계교회주의)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정부들의 교회에 대한
간섭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말씀에서 발견되는 진리나 교회의 형식들 가운데 한 가지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리우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회의의 결정이 전수되어 오다가, 이년
후에는 황제에 의하여 바뀌어져 여러 해 동안 그 잘못된 교리는 사람들에게 몰래 주입시켜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정부가 정치적으로 연합하리라는 사실은 진실로 주님은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버가모라는 이름 자체는 "완전히 결혼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정부와 교회는 결혼했고, 정치와
종교는 결합했습니다. 그 결합의 자식은 계속해서 세상이 여지것 보아온 중에 가장 끔찍한 잡종이 되었습니다.
진리는 그들 안에 있지 않습니다. 가인(첫 잡종)의 모든 악한 행위가 들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정부와 교회가 결혼했을 뿐 아니라 바벨론 종교가 공식적으로 첫 번째 교회에 혼합되었습니다.
사탄은 이제 그리스도의 이름에 접근했고 그는 하나님으로 보좌에 앉아 경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협조로 교회들은 대리석 단과 죽은 성도들의 형상이 줄지어 세워진 아름다운 건물들을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대에 계시록13장3절의 죽도록 상처받은 짐승이(로마제국) 살아나 "영적 로마 제국"으로 권세를
잡았습니다. 자원국으로서의 로마는 많은 고갈을 겪었고 나중에 완전히 고갈 상태를 겪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종교 제국이 외형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내적으로는 그들의 종교가 세계를 통치하는 선두 자리를 지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진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누구라도 제가 성경에 없는 것을, 제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다니엘2:31.오 왕이여, 왕이 보셨사온되,
보소서, 큰 형상이니이다. 이 큰 형상이 왕 앞에 섰는데 그것의 광채가 뛰어나며 그것의 형태가 두려웠고
32.이 형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그의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그의 배와 두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의 두 다리는 철이요, 그의 두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왕이 보셨는데 마침내 손을
대지 아니하고 깍아 낸 돌이 그 형상의 치되 철과 진흙으로 된 그의 두 발을쳐서 그것들을 산산조각 내며
35.그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산산조각 나서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쓸려갔으며
그것들의 자리가 없어졌고 그 형상을 친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웠나이다. 36.그 꿈은 이러한즉 우리가
왕 앞에서 그것의 해석을 고하리이다. 37.오 왕이여, 왕은 왕들의 왕이시오니 하늘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왕국과
권능과 세력과 영광을 주셨나이다. 38.사람들의 자녀들과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날짐승 들이 어느 곳에
거하든지 그분께서 그것들을 왕의 손에 주시고 왕을 그 모든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셨나니 왕은 이 금
머리이니 이다. 39.왕 이후에 왕의 왕국보다 못한 다른 왕국이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다른 놋 왕국이 온
땅을 다스릴 것이며 40.넷째 왕국은 철같이 강하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부수는 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41.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이 나누일 것이로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에 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42.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 것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43.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철과 진흙이 썩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
하리이다. 44.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은 한 왕국을 세우실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45.손을 대지 아니하고 산에서 깍아 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산산조각 낸 것을 왕이 보셨사온즉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후에 있을 일을 왕에게 알리셨나이다. 그 꿈은 확실하며 그것의 해석은 분명하나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본 환상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와, 완성되지 않은 역사의 정확한 이야기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때부터 예수가 다윗의 아들로 와서 통치하실 때까지 이 땅에 임하리라고 예언된 미완성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환상 안에는 역사적으로 네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각 분류 안에 드는 통치 제국(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바벨론, 메대와 바사(미디안-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 제국입니다. 그중 가장 위대한 절대적인 군주 체제는 금 머리로 묘사된 바벨론 제국이었습니다.
다음 영광을 차지한 제국은 역사상 실제로 덜 영화스러웠고 은으로 된 가슴과 팔로 묘사된 페르시아입니다.
다음은 그리이스 제국으로 그들의 왕은 세상에 있었던 모든 군사 지도자들 중 가장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로 적절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이전에 있던 다른 두 제국보다
덜 영화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종아리와 발로 묘사된 마지막 왕국 로마 제국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왕국들은 순수한 광물로 묘사되었는데(순수한 금, 은, 놋) 마지막 제국은 종아리만 순수한
철이었고, 발로 내려오면서 그것은 철과 진흙의 혼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광물과 흙은 섞이지 않고
연계성과 세력을 산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럴 뿐만 아니라, 정말 놀랍게도,
이 마지막 제국(로마)은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그 독특한 “혼합 상태”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철로 된(철은 힘과 반대하는 것에 대항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의미합니다) 이 로마 제국은 주요한
두 덩어리로 분리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물론 정말로 두 개로 나눠지는 제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두 제국은 매우 강력하여 그들 앞에 있는 모든 나라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제국들의 영광과 권세가 쇠하듯이, 이 제국도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로마는 무너졌습니다.
이교도인 로마 제국은 더 이상 철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라는 무너졌습니다. 죽을 상처를 입었습니다.
로마는 이제는 지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끝났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머리는(로마) 상처를 당했어도 죽을 정도의 상처는 입지 않았습니다.
계시록13장3절에 대한 웨스트(Wuest)의 번역을 보면, "그 머리 중 하나가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였더라, 그
목이 깊숙히 베어졌더라. 그런데 그 죽음의 상처가 나았더라. 그리고 전 세계가 놀라면서 그 들짐승을 좇더라."
사람들은 로마를 봅니다. 그들은 이탈리아 나라를 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엄한 제한 속에서 교황이 실제적으로
한 나라 속에 있는 한 나라를 다스리면서 실제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는 그 로마를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로마는 대사들을 가지고 있고 대사들을 영접합니다.
교황의 거짓 그리스도교 로마는 (로마는 영원한 도시라고 불리기까지 합니다.--얼마나 신성모독적인 말입니까)
지금 이교도인 로마가 순수한 철의 세력으로 다스렸을 때보다도 종교로 훨씬 더 능숙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로마는 콘스탄틴이 교회와 정부를 연합시키고 그 연합을 권력으로 후원해 주었을 때 새로운 생명을 다시
부여받았습니다. 이교도인 로마를 움직였던 그 영은 지금 가짜 그리스도교 로마를 움직이는 동일한 영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넷째제국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외형만 바꾸었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니케아 회의가 교회에 정치적인 힘을 부여함으로 첫 번째 교회가 갈 수 있는 곳은 무제한적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박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이었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이제는 박해자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힙포의 어거스틴이(354-430) 교회는 그 자녀들을 양우리 안으로 되돌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도 사용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교리를 거부하던 진짜 신자(씨)들을 이단과 배도자로 몰아 그들을 죽이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규례를 만든 것은 바로 이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거스틴은 기부론자들과의 논쟁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벌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것에
몰리는 것보다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되는 것이 정말로 났지만, 전자의 경우가 더 나은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그것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우리가 증명했고 실제적 체험으로 매일 증명하고 있듯이) 먼저는 두려움이나 고통에 의해 강제로 이끌려지고,
나중에는 가르침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들이 이미 배운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올바른 인도를 받은 자들이 더 낫기는 하지만 분명히 두려움에 의해서 고침을 받은 자들은 수적으로
더 많이 있다. 왜냐하면 누가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말씀으로만 부른 이후에, 그가 바울을 부를 때가 되었을 때, 그는 바울을
음성으로 제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힘으로 바울을 땅에 내동댕이치기도 하셨고, 불신의 어둠 속에서
분노하고 있는 자를 강압적으로 마음의 빛을 소원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는 먼저 그를 육신적인 눈을 치사
멀게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길 잃은 아들들을 돌아오도록 강요하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면 왜 안 된단
말인가? 주님도 직접, “사거리와 울타리로 가서 그들을 강제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교회가 종교적인 성품과 왕들의 믿음을 통해,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지정으로 받은 권세가 사거리와
울타리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즉 이단과 당파들--을 강제로 들어오게 하는 도구가 된다면, 강제로 들어오게
되는 이들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들의 피에 대한 목마름은 점점 더해갔습니다. 스페인에 있는 거짓 포도나무는 막시무스 황제에게
나아가 말씀과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있던 진실한 신자들을 공격하는데 합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타쿠스
주교는 브리스길라파인들을 트레베스로 데려갔습니다.(385년) 그는 그들을 마술과 부도덕의 죄명을 씌워 많은
사람들을 처형시켰습니다. 뚜르즈의 마틴과 밀라노의 암브로즈는 이것을 반대했고, 박해를 멈추라고 요청했으나
허사였습니다. 박해가 연장되자 이 두 주교는 히다투스와 그의 동료 주교들과의 교제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트레베스에 있던 종교 회의는 그 살인을 인정했습니다. 이때부터, 특히 암흑시대 동안,
우리는 육신의 자녀들이 영의 자녀들을 핍박하고 멸망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이제 버젓이 예수의 이름을
고수한 신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는데, 그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둘 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경우처럼
한 분을 아버지로 부르는데 말입니다. 영적부패의 어두움은 깊어갈 것이고 하나님의 참 빛은 수적으로 보면
너무도 희미하게 빛을 비추는 정도로까지 쇠하여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을 지킬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더라."
저는 제가 다루기로 약속한 것 즉 니므롯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혼합을, 역사를 통해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앗탈루스가 바벨론에서 버가모로 도망가 로마제국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자기왕국을 세웠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여러 해 동안 번성했고 이 세상 신에 의해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앗탈루스를
이어 계속 제사장 겸 왕이 이어지다가 앗탈루스 3세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만 알려진
이유로 그는 자발적으로 그 왕국을 로마에 넘겼습니다. 그때 줄리어스씨저는 육적, 영적 두 왕국을 취했는데,
왜냐면 그는 바벨론 종교의 막시무스 교황이 되어 제사장이자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직함은 다음 황제에게
물려 내려왔는데 막시무스3세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스티븐스의 역사에 의하면 바로 그때 교황이 그 황제가
거절한 우두머리 자리를 취했고, 오늘날 세상에 여전히 교황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막시무스 교황입니다. 그는 삼중 관을 쓰고 로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17장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버가모를 사탄의 위라고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곳이 사탄이 사는 곳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 보좌가 있는 방은 더 이상 버가모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 바벨론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있는 게 아니라 비밀 바벨론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곱 산 위에 있는 도시 안에 있습니다.
그것의 머리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홀로 중보자이시고 홀로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막시무스 교황은 오늘날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 책망.
계시록2: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여러분들은 제가 에베소 시대에서 니골라당은 두 개의 헬라어에서 왔다고 말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정복하다를 뜻하는 니카오(Nikao)와 평신도를 뜻하는 라오(Lao). "평신도를 정복하다."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렇게도 무시무시한 것입니까? 그것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정치적
정신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의 손 안에 두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말씀을 공급함으로써 사람들을 이끄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의 보살핌
안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여러 계층으로 분리시키셔서 미사가 거룩한 사제들에 의해 인도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다. 지도층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 회중도 역시 거룩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말씀에는 사제나 목사들이나 누구라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하는 구절은 없고, 그들이 주님을
경배하는데 서로 분리된 그런 구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다 함께 그를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니골라당 주의는 그런 규례를 망치고 대신 목사들을 평신도들과 분리시켜서 지도자들을 종이 아니라 감독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 교리는 실제로 첫째 시대에서 행위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장로”와 “감독(주교)”이라는
두 말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이 각 교회에 여러 장로가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해도, 누군가가(그들
중 이그나티우스가) 감독의 개념은 으뜸이나 권위를 가진 자 그리고 장로들을 주관하는 자라고 가르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진리는 “장로”라는 말은 그 사람이 누군지를 의미하고, “감독”이라는 말은 같은
사람의 직분을 의미한다는데 있습니다. 장로는 그 사람입니다. 감독은 그 사람의 직분입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장로”는 언제나 주 안에서 보낸 나이만을 의미해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는 장로입니다.
그가 선택을 받거나 지정을 받아서나 등등 그래서가 아니라 그가 나이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원숙하고, 훈련을 받았고, 초년생이 아니라, 체험과 그리스도인의 경험의 세월에 연단된 증거로 인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독들은 바울의 편지에 꼭 매달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잘못 이해한 것은 바울이 사도행전20장에서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을 때 바울이 한
얘기를 예로 들며, 17절에 "장로들"을 불렸음을 말하고 있고, 28절에서 그들은 감독자(주교)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 감독자는, (확실히 권력에 대해 정치적인 마음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감독자”는 자기 교회
내에서만 직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 장로보다 더 나은 자라고, 그것이 바울이 준 의미였다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감독은 많은 지역 지도자들 위에 확장된 권위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런 개념은 성서적이지도
역사적이지도 않았지만 폴리캅의 지위에 있는 사람조차도 그런 조직 쪽에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시대에
행위로 시작된 것은 실제적인 교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주교들은 여전히 그 사람들을 지배할 권세를
주장하고 있고 자기들 원하는 대로 그들을 다루며, 그들의 사역에서 원하는 곳에 그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하신 성령의 지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말씀이고 적-그리스도입니다. 마귀의 영입니다.
마태복음20:25.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이방인들의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고 큰 자들이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될지니라. 28.이와 같이 인자도 섬김을 받으려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마태복음23: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10.또한 너희는 지도자라 불리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저는 니골라 당 주의를 이런 식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계시록13:3.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이제 우리는 그 상처 난 머리는 이교도인 로마 제국, 그 커다란 정치적 세계적 힘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머리는 다시 "로마 카톨릭 영적인 제국"으로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주의 깊게 지켜보십시오.
정치적 이교도 로마는 성공의 근간이 되는 어떤 일을 했죠? 로마는, "나누고 정복했습니다."
그게 로마의 씨였습니다.--분열시키고 정복하는 것은, 로마의 철 이빨은 찢고 삼켰습니다. 로마가 찢고 삼킨
나라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는데,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바다 속에 매장시켰던 것처럼. 그 동일한
철 씨는 거짓 교회로 일어났을 때 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책도 동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분열시키고 정복하는 정책. 그것이 니골라당 주의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이 잘못이 교회
내로 침투되자, 사람들은 주교 직분을 두고 경쟁하기 시작하여 결과적으로 이 직위가 좀 더 교육을 많이 받고
세상 물질이 많고, 정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프로그램이 신성한 지혜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성령은 더 이상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비극적인 악이었습니다, 그들은 중요한 것은 교리들과 형식이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말씀이나
의식을 집도하는 것은 더 이상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주교들은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주교들을 성경에서 승인하지 않는 자리로 승진시키는 인간이 만든 교리를 책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종교적인 계층 제도로 세우는 단계별 직함을 수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곧이어 주교들 위에 대주교가 대주교 위에 추기경이 그리고 바니퍼스3세 때에는 그 모든 것 위에
교황이, 한 교황이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니골라당의 교리와 그리스도교의 바벨론 주의의 혼합으로 생긴
순수한 결과는 에스겔이8장10절에서 보았던 것이어야 했습니다. "내가 들어가 보니, 보라, 온갖 형태의 기어
다니는 것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우상이 벽의 사방에 그려져 있고."
계시록18:2.그가 우렁찬 음성으로 힘차게 외쳐 이르되, 저 큰성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그녀가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며 온갖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도다.
3.모든 민족들이 그녀의 음행으로 인한 진노의 포도즙을 마셨고…
그런데 교회 내에 세워진 이 규칙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경건한
사람에 의해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서신과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어떻게
했죠? 의로운 교사들을 파문했고 두루마리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고 이해하려면
특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자, 베드로도 바울이 쓴 많은 서신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잖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로부터 말씀을 빼앗고 나자, 곧 사람들은 사제가 하는 말만 듣게 되고 그가
그들에게 시키는 대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말씀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차지했고, 결국 그들을 포악한 성직자들의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카톨릭 교회가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조종한다는 증거를 원한다면, 데오도시우스 10세의 칙령을
들어보십시오. 데오도시우스의 칙령 제 1호. 이 칙령은 그가 로마 첫 번째 교회에게 세례를 받은 직후에 발표되
었습니다. "우리 세 황제는 우리 백성들이 성 베드로가 로마인들에게 가르쳤고, 전통으로 충실하게 내려왔으며,
현재 로마의 다마써스 교황과 사도들의 제도를 따라 사도의 거룩함을 가진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 주교에
의해, 그리고 복음의 교훈으로 선포되고 있는 종교를 확고부동하게 고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다 함께 거룩한
삼위일체 안에서 동등한 권위를 가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한 신격을 믿읍시다. 우리는 이 믿음의
추종자들은 카톨릭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것을 명하며 우리는 다른 종교를 따르는 모든 지각없는 추종자들은
이단이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을 붙이고 교회라는 이름을 붙인 비밀 집회소를 금하는 바이다.
그들은 신성한 공의의 정죄뿐 아니라, 우리 정부가 하늘의 지혜로 인도함을 받아서 부과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무거운 형벌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이 황제가 발표한 열다섯 가지 형벌규칙들은 여러 해 동안
전도자들로부터 그들의 종교 행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빼앗았고, 그들을 모든 민간 직책에서 면직시키고,
그들을 벌금과 감금과 추방과 어떤 경우엔 사형으로까지 위협했습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우리는 오늘날 그 길로 계속 향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기들이 모(母)
교회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첫 번째 또는 원(元)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타락하여 죄에 빠진 로마의 원 “첫 번째로 조직된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처음으로
조직된 교회였습니다. 축복받은 생명의 길에서 저주받을 사망의 길로 향한 모(어미) 교회입니다. 그녀 안에서는
니골라당의 행위가 다음에는 교리가 발견되었습니다. 모두 그 교회가 모 교회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교회는 어미이고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딸이 한 여자에게서 나옵니다.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자는 로마의
일곱 산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음녀이고 딸들을 낳았습니다. 다음을 듣고 깨달으셔야만 합니다.
진리에 귀를 기울어야만 합니다. 그 딸들은 어미에게서 나와서 다시 조직과 니골라당 주의로 돌아간 개신교
교회들입니다. 그 딸 교회들의 이 어미는 음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음녀는 자기 혼인 서약에 충실치 않은
여자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에게 결혼했고 그 다음엔 나가 마귀와 음행하며 그 음행으로 자기와 똑같은 딸들을
낳았습니다. 이 어미와 딸의 연합은 적-말씀, 적-성령 그리고 결과적으로 적-그리스도입니다.
네, 적그리스도입니다. 제가 너무 멀리 나가기 전에 저는 이 초기 주교들은 자기들이 말씀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자기 죄를 고백하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도 절대로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은 2세기에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중생세례를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늘날 혼란한 상태에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만약 그들이, 오순절 날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렇게 혼란한 상태에 있었다면,
최초의 진리로부터 이미 약 2,000년이 흐른 지금은 얼마나 더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들은 얼마나 더 처참한 상태에 직면해 있겠습니까?
에베소서5:14.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 지금은 깨어날 때입니다.
오, 하나님의 교회여, 한 가지 희망밖엔 없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셔서 말씀과 함께 거하십시오.
* 발람의 교리.
계시록2:14.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여러분이 교회 내에 니골라당의 체제를 세워 두고서, 다른 교리는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알다시피, 여러분이 경배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움직이심을 멀리한다면[영과 진리(말씀)로 예배할
지니라.] 그러면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대용물로서 다른 경배 형태를 대용물로 주어야 할 것이며, 이런 대용으로
인하여 발람주의를 주입하게 될 것입니다. 신약에서 발람의 교리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구약의
교회에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보고 그것을 이 세 번째 시대에 적용시키고 그리고나서 그것을 현재로 이끌어
와야 할 것입니다. 그 말씀은 민수기22장~25장에서 발견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압니다. 그들은 그들 시대의 오순절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 아래로 피했고, 다 홍해에서
물 침례를 받았고 성령으로 노래하고 여선지 미리암이 소고를 치는 동안, 성령의 에너지를 받고 춤을 추며
홍해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계속 여행하다가 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모압이 누구였는지 아시죠? 모압은 롯의 딸 하나가 낳은 아들이었고,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모압은 친척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 점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압 인들은 진리를 알았는데, 그들이 그것에 맞추어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모압 땅 경계에 이르렀고 왕에게 사자를 보내 말했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우리로 당신
네 땅을 지나게 허락하소서. 우리 백성이나 우리 동물이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 값을 내겠습니다."
그러나 발락왕은 매우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그 니골라당 무리의 그 우두머리는 이적과 기사와 성령의 다양한
표명들을 보이고,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을 내는 교회가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무리 중 몇 사람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발락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절했습니다. 발락은 그들을 너무나 심히 두려워한 나머지 선지자 발람을
고용해서 가서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를 해달라고, 전능하신 이가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그들로 무력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도록 부탁했습니다. 발람은 정치적인 일들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여 그렇게 하기로 기꺼이 응했습니다. 그러나 저주할 대상을 보고는, 자기가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저주하신다는 말씀을 받기 위해서, 그는 모압 왕 발락과 함께 가라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하나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자, 그것은 오늘날 우리와 함께 있는 니골라당과 똑같지 않습니까?
자신들의 방식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잘못되었고, 다 저주하려고 합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가도 되는지
물었을 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발락은 그에게 더 많은 보상과
영광을 약속하며 유혹했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갔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한번 하신 대답으로
충분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거듭해서 하나님께 요구 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의 완고함을 보시고,
그에게 일어나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재빨리 나귀에 안장을 얹고 떠났습니다. 발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허용된 뜻이며, 몇 번을 시도한다 해도 그들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발람과 얼마나 닮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세 하나님을 믿고 이름 대신에 세 개의 직함으로
세례를 주면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거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발람에게 하셨듯이 그들에게도 예언의
은사들을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자기들이 정말로 옳다고 믿을 것인데, 그들은 실제로 완전히
발람의 후에들입니다. 아시겠죠? 발람의 교리. 아뭏든 그대로 하십시오. 여러분 방식대로 계속 하십시오.
그들은, "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괜찮을 것입니다."하고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셨음을 압니다. 저는 그걸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람이 취했던
동일한 조직적인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발람은 급히 길을 내려갔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는 (주교,
추기경, 의장, 회장, 그리고 총감독, 등등) 세상 영예와 영광과 돈에 대한 생각으로, 영적인 것에 너무나 눈이
멀어서 칼을 빼 들고 서 있는 천사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어기고 세상 명성에 유혹 받은 선지자를 가로막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태운 작은 나귀는 천사를 보았고, 이리 저리 피하다가 마침내는 발람의 발이 돌 벽에 부딪히게
했습니다. 나귀는 멈춰서 나아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발람은 뛰어내려 나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에게 방언으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 나귀는 잡종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귀는 원 종자였습니다. 그 나귀는 눈 먼 선지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나귀가 아닙니까? 내가 당신을 충성스럽게 태우고 다니지 않았던가요?" 발람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맞다, 너는 내 나귀이고 너는 지금까지 나를 충성스럽게 태우고 다녔다.”
“그런데 너를 가게 할 수 없다면 난 널 죽이겠다.” 와! “이게 뭐지, 내가 나귀에게 말을 하고 있다니?
그것 참 이상하구나, 저 나귀가 말하는 것을 들었고 나는 나귀에게 대답을 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언제나 방언으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의 잔치에서 그 다음에는 오순절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그 일을 다시 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나중에 그 천사가 발람에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발람에게 나귀가 아니었더라면 하나님을 시험한 죄로
지금 죽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발람이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만 말하라는
충고를 하고 앞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내려가서 깨끗한 희생제물 짐승들을 위해 일곱 단을 세우게
했습니다. 그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의미하는 숫양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 접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니골라당을 한번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제물을 드리며,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한 쪽만이 표적이 따랐습니다. 오로지 하나만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예배 형식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표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발람의 교리를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희생제물이 바쳐진 뒤에, 발람은 예언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혀를 꼭 묶어났기 때문에 그들을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발락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그 예언에 대해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해서 말해진 것이었습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그가 그들을
저주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 보기 위해 그들의 뒷부분을 보도록 했습니다. 발락이 사용했던 그 수법은 오늘날
그들이 사용하는 술수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교파들은 작은 무리들을 멸시하고, 추한 소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들에게서 발견한 것을 들춰내어 소리를 높입니다. 현대인들이 죄를 지으며 살면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 중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에 빠지면 목소리를 높여서
나쁜 소문을 퍼뜨립니다. 네, 이스라엘은 뒷(육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칭찬을 받기에 합당치
못한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행위로가 아니라 은혜로 되는 택하심을
따라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가지고 있었고,
내려쳐진 반석과 장대에 매단 불 뱀과 온갖 표적들과 기사들이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증을 받았습니다. 그들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철학박사, 법학박사, 신학박사 학위와 그들의 온갖 훌륭한 조직과 사람이 자랑하는 최상의 것들을
가진 그 니골라 당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귀히 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입증 받은 말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겉보기에는 모압이나 주변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들처럼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황급히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어쨌든 하나님의 축복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일이라곤 양치는 일과 들일을 하는 것과 이집트인들 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노예 생활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자유로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통해 축복받은 백성이었습니다. 물론 모압이나 주변의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업신여겼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직은 언제나 조직되지 않은 것을 멸시하고 그들을 조직에 끌어들이거나
오지 않으려 하면 멸해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에게 이렇게 물을 지도 모릅니다.
“브래넘 형제, 어째서 이스라엘은 조직되지 않았는데 모압은 조직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을 어디서
얻어냈습니까?” 저는 바로 여기 성경에서 얻어냈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 여기에 예표로 나와 있습니다.
구약에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된 것들은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권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민수기23장9절에 있습니다. “내가 바위들 꼭대기에서 그를 보며 작은 산들에서 그를 바라보나니,
보라, 이 백성은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지 아니하리로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은 바위 꼭대기(은혜) 위에서 그들을(우리)내려다 보십니다, 그들의 단점을 찾아 그들을 정죄하면서
골짜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그들을 보기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들을 보십니다.
사랑과 자비의 꼭대기에서. 그들은 홀로 거했고, 조직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선지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고,
말씀이 그 선지자에게 왔고,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들은 유엔(U.N.)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침례교들에, 장로교들에, 하나님의 성회나 다른 어떤 무리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속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연합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협의회로부터 상담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발람이 하나님께 올바른 접근과 특별한 능력의 부여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거짓 무리들 속에 있는 주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발락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했죠?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죽음에 이르도록 강요당하는 계획을 한 가지 짰습니다.
마치 사탄이 이브를 미혹할 수(그녀를 육적인 죄에 빠지도록)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죄에
대해 선언된 죽음의 형을 단행하도록 만들었던 것처럼, 발람도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짓도록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음으로 다루셔야 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그들이 와서 죄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을 계획했습니다. 그는 바알 브올의 잔치에 오라는 초청을 보냈습니다. (우리와 함께 경배합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미혹되어, 아무 의심 없이, 그리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교제를 나누는 게 뭐,
그리 잘못인가?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잖은가? 안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있겠어요?) 다정하게 대하는 것은 결코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죄의 유혹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화장하고 성적인 옷을 입은 모압 여인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락큰롤과 트위스트를 하면서 빙빙 돌며 옷을 벗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서 정욕이 일어났고 그들은
간음을 저지르기에 이르렀고 하나님은 분노하사 사만 이천 명을 죽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콘스탄틴 대제와
그의 후계자들이 니케아에서 그리고 니케아 이후에 행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집회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앉아서 먹을 때, 일어나서 놀았습니다. (교회형식과 행사들과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따라 이름을 붙인 이교도의 잔치들을 참석하면서) 교회는 덫에 걸렸습니다, 교회는 영적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생명이 떠난 교회는 더 이상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리고 성령을 받는 대신에 교회에 가입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죽는 겁니다! 그것이 그의 상태입니다. 교파교회에 가입하지 마십시오. 조직에 들어가 말씀과 성령을 대신하는
신조들과 전통 혹은 어떤 것도 취하지 마십시오. 안 그러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모든 게 끝장입니다.
여러분은 죽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됩니다! 그 일이 매 시대마다 생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이 세상 썪어질 것들로부터 구원해 내십니다. 그들은 피로 말미암아 나와, 말씀으로 성화되고,
침례의 물을 헤치고 걸어 나와 성령으로 충만 됩니다. 그러나 잠시 후엔 처음 사랑이 식어 누군가가 그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는 조직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세대에서 곧장 자신들의 조직을 만드는데 어떨 때는 그보다 더 전에 만듭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예배의 형식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신조와 형식으로 잡종을 만들었고 그들 안에는 생명이 없게 됩니다.
발람은 이스라엘로 행음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육적인 음행이 조직된 종교 안에 있는 영과 동일한
영임을 아셨습니까? 저는 “음행의 영은 조직의 영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행음자들은 모두 다 불못에
자리를 가질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조직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음녀와 음녀의 딸들은 불 못에 있을 것입니다. 종파들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전에도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성직계급과 평신도로
분리시키는 잘못된 영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잘못된 영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직과 교파들이 하는 일입니다. 조직을 만들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분리시키고
영적간음을 행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데 콘스탄틴대제가 사람들에게 특별한 잔치를 베풀었음을 보십시오.
그 잔치들은 교회에서 취한 새 이름을 가진 옛날 이교도의 잔치였습니다. 또 어떤 때는 그리스도인의 의식들을
취해 이교도의 형식들과 섞어버렸습니다. 그는 태양(sun)신 경배를 하나님의 아들(son)로 바꾸었습니다.
대개 태양신에게 드리는 잔치를 축하하곤 하던 12월 21일 대신에, 그들은 12월 25일로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일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12월 달이 아니라 생명이 싹트는 4월에 태어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스다롯에게 드리는 잔치를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축하하게 되어있는 부활절
행사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그것은 아스다롯에게 드리는 이교도의 잔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제단을
설치했습니다. 우상들도 들여놓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사도신경이라 부르는 것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조상을 숭배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것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를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가증한 새가 그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들도 조직들을 통해 동일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정말로 그들이 실제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었다. 라는 의미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예루살렘 공회가 그런 것에 반대하여 말했다. 할지라도
바울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것에 대해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양심의 문제였을 뿐인데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걸림이 될 때에는 먹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이것들은 이방인 교회들이기 때문에 이 계시는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과 관계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제가 다음의 주님의 말씀을 보는 것과 똑같은 견해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여러분은 먹는 행위가 실제로 영적인 의미에서 “참예함” 임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우상에게 절하고, 촛불을 켜고, 이교도의 명절을 사용하며, 사람에게 자기들의 죄를 고백할
때, (그것들은 다 마귀의 종교에 속합니다.) 그들은 마귀에게 참예한 자이지 주님에게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지 간에,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단과 향은 주님의 기도를
상기시키는 것일 뿐이라든지, 그들이 그것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자기들이 말하고 싶은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상 앞에서 기도할 때, 그것은 오로지 강조를 위한 것일 뿐이고, 그들이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할 때, 그것은 정말로 그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며, 신부님이 그들을 용서해주면.
그것은 다만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잘 알려진 바벨론의, 사탄의 종교에 참예했고, 우상에게 연합하여 죽음을 의미하는 영적인 간음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정부는 결혼했습니다. 교회는 우상과 연합했습니다.
배후에 정부의 권력을 둔 그들은 이제, "주님 나라가 임했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졌다."고
느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천년왕국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천년왕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말에
의하면 하나님이 오시면,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된 때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습니다.
그 교황은 거짓 교회의 우두머리입니다. 천년왕국이 올 것인데,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천년왕국 안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 경 고.
계시록2:16.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가 무슨 다른 말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의 이름을 헛되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이 간과하실
수 있겠습니까? 죄의 시각에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십시오. 죄 사함과 하나님의 영을 받고자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불순종은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내 입의 검으로 너와 싸우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성도들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짐승과 싸우실 것입니다.
말씀에 싸움을 건 사람들은 언젠가는 말씀이 그들에게 싸움을 거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하거나 말씀에 더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그것을 바꾸거나 그것을 자기들에게 맞도록 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말이 죽음과 멸망 말고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아직도,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회개에 대한 생각은 얼마나 달콤한 지. 빈 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저는 제 슬픔을
가지고 옵니다. 현재의 제 모습과 제가 행한 일들에 대해 회개합니다. 이제 그것은 피라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게 뭐가 되겠습니까? 회개냐 아니면 죽음의 검이냐?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 상 급
계시록2:17.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 또 흰 돌을 그에게 주리니 그 돌 에는 새 이름을 기록되어 있어 그 돌을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느니라.
각 시대에 주는 각 메시지는 신자들에게 자극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에게 극복하는 자가
되어서 주님에게 상을 받으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성령은 감춰진 만나와 흰 돌 안에 적혀진 새
이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들은 각각 `천사'(사자인 인간) 에게 지시되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특권뿐 아니라 아주 커다란 책임도 그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열 두 사도에게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약속을 주신 경우처럼, 그들에게 특별한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특별한 약속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시대의 신부 된 사람들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
고린도후서11:2.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그의 시간과 그의 시대의 말씀에 충실한
모든 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에게 주어진 것과 동일한
특별 보상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대부분이 제가 너무나 여러 번 하나님께 실수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저를 기뻐하지 않으실까 봐서 항상 죽기가 겁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어느 날 아침 침대에 누워서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가 아주 독특한 환상 속으로
들어 올려 졌습니다. 그것이 독특했다고 말한 이유는 환상을 수천 번 가졌지만 한 번도 제 몸을 떠난 적은
없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로 들려 올려졌고, 아내를 돌아보았고, 제 몸이 아내 옆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지금껏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낙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해 하는 사람들 무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정말로 젊어 보였습니다. 열여덟에서 스물한 살 가량 되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흰 머리나 주름이나 어떤 기형도 없었습니다. 젊은 여자들은 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젊은 남자들은 너무도 건강하고 튼튼했습니다. 오, 그들은 절 얼마나 환영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절 부둥켜안았고 절 사랑하는 형제라고 불렀고, 계속 그들이 저를 보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궁금해 하고 있었을 때, 제 옆에 있던 분이, "그들은 당신의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도 놀라, "이 사람들이 모두 다 브래넘 집안사람들이라고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 그들은 당신이 개심시킨 자들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한 여자분을
가리키고, "잠시 전 당신이 경탄해 하던 저 젊은 여자를 보십시오. 그녀는 당신이 그녀를 주님께 인도했을 때
구십 세였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 이런, 내가 이것을 두려워했으니.“ 하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는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여기서 쉬고 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직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곧 오실
것입니다. 그가 오시면 먼저 당신에게 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설교한 복음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당신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 사람들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모두 다. 당신은 지도자로 태어났으니까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구요? 바울 성도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게, “그는 그의 시대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럼, 저는 바울이 전한 동일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무리들이, "우리는 그걸 믿고 있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한 그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보상으로 갚아주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 시대를 위한 말씀의
계시를 받았고 충실하게 그들의 시대에 메시지 말씀을 전파했으며. 그 전파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다면,
그들은 커다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 생각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그 절을 다시 봅시다. "내가 그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리라."
우리는 모두 만나는 천사의 양식이라는 걸 압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랑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풀 위에 내려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양식입니다. 어떻게 그 조그마한 동그란
것이 그들의 건강을 완벽하게 유지시켜 주었는지 놀랍습니다. 아무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그들이 필요한 전부였습니다. 언약궤가 만들어지고 그들은 그 안에다 그 만나를 조금 넣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궤는 휘장 안에 놓여졌고 대제사장만이 그것에 감히 접근하는데 희생제물의 피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만나로 상징된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은,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나시면서 그는 우리에게 말씀을 남겨 두고 가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의 말씀은 떡이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만나였고, 그것으로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만나였습니다. 그러나 열조들이 죽은 직후에는,
아무도 정확한 진리를 모르는 것 같더니 잠시 후에 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춰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계시록10장7절에 의하면 이 마지막 때까지 감춰져 있던 것을 계시로 하나님께서 돌려주기 시작하는
그 시대에는, 한 선지자가 와서 모든 비밀들을 나타낼 것이고 그 다음에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각 시대에, 제가 말씀 드리겠는데, 사자들은 감춰져 있던 진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은 자기들
자신만을 위해서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눠주라고 부탁 받았던 때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음식을 떼어 주셨고, 이제 제자들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긴 자에게 그의 감춰져 있던 만나를 주십니다. 달리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시된 것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그의 보물을 열어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순절의 원래 진리의 일부를 받은 각 시대의 사자들에 대해서 말한 것은 구약에서
모세가 만나 한 오멜을 금 항아리에 넣어 지성소 휘장 뒤에 두라는 명을 받았던 것으로 예표되어 있습니다.
거기로 매 세대의 대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들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은 이 만나를 조금(그것은 썩지 않았기 때문에) 즉 원 만나의 일부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 시대마다 주님의 사자는 그 시대에 그 특정한 기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일단 그 사자가 진리의 빛으로 깨이고 나면, 그는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열어주신 귀 있는 자들은 그 진리를 듣고, 그것을 믿고, 그것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춰진 만나를 미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은 다가오는 영원한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영원히 참여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어떻게 우리가 그의 존재의 측량할 수 없는
풍요를 알기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간절히 알기 원하는 모든 것, 우리의 답변을 받지 못한 모든
질문들, 계시될 모든 것을.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는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이 아래 여기서 주님과 그의 말씀을 조금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좋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데, 어느 날 우리 몸이 변하여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때에는, 그 말씀과 주님은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일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긴
자에게 흰 돌을 주실텐데, 그 돌 안에(위에가 아니라) 새 이름이 있는데 받는 자만 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이름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바뀌었고, 사래는 사라로,
야곱은 이스라엘로, 시몬은 베드로로, 그리고 사울은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이 이름들은 변화를 일으켰거나
변화를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주님이 이름을 바꿔주신 후에야 장차 올 약속의 아들을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경우, 그는 이겨야 했고 그리고나서 그는 하나님과 겨룬 자라고 불리웠습니다.
시몬과 사울의 경우, 그들이 주님을 영접했을 때, 그들에게 변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진정한 신자인 우리 각자도 이름의 변화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동 소유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우리는 또 다른 변화를 겪을 것인데,
우리는 분명히 새 이름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이름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진짜 원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아시지만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어느 날 그의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도 역시 알게 될 것입니다.
* 흰 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손에서 지상에서의 시련에 대한 보상을 받는 성도를 묘사하는 다른 장면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콘스탄틴 대제 이후에, 거짓교회는 국고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해 아름다운
신상이 가득한 아름다운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조각상들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실제로는 성도들의 이름을 딴 로마 우상들이었습니다. 교회들과 그들이 꾸며놓은 장식은 오늘날 우리도 보는
것처럼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은 거짓교회로부터 가정이나 지하실이나 거친 동굴 속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그의 성도들과 계셨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건물도 가운을 입은 성가대도, 좋은 옷도, 다른 세상적인 눈길을 끄는 것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시대들의 진실한 신자들에게 하신 이 특별한 약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으로 아름답고
영원히 지속되는 상을 주시겠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도록 그냥 놔두십시오.
그들로 교회에 거금을 주고 교회는 그 보답으로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도록 훤히 잘 보이는 곳에 대리석 상패나
그들을 칭송하는 어떤 조각상을 세움으로써 그 기부자를 존중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어느 날엔가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자기전부를 내놓은, 비록 그게 두 렙돈이라 하더라도, 그 과부를 칭찬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직접 하늘의 보화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춰진 만나와 흰 돌 안에 있는 새
이름으로 우리의 수고에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그렇게 훌륭하게 상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선하시며, 좋으신 분이신지요?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까?
오, 저는 어느 때든지 주님의 뜻을 행하고 하늘에 보화를 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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