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작은 상자들과 큰 상자
a. 위조의 신(2-1)
* 정신주의: 경험론은 참된 지식의 유일한 원천은 감각 인상(sense impressions)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 인상이 참되고 정확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숟가락을 물잔에 넣으면 손잡이가 휘어 보인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모든 감각은 두뇌 안에 있는 색체 조각들과 소리음 색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지하는 물리적 대상은 감각 인식의 다발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슈퍼컴퓨터에 플러그를 꽂으면 떠오르는 물리적 세계의 환영인 매트릭스(가상현실)와도 같다.
인간이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지나가는 필름의 장면과도 같은 연속적인 감각들뿐이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모르페우스(Morpheus)는 실재하는 것은 뇌 안에서 작용하는 전기신호뿐이라고 말한다. 흄은 인간은 상상의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고,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하(Ernst Mach)는 원자나 전자와 같은 기초적인 물리적 실재들은 "유용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정신주의에는 내적인 심상들을 외부 세계에 연결해주는 교량이 없다.
* 합리주의: 베이컨이 경험주의의 창시자라면,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합리주의의 창시자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는 철학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두 사조인데, 만물을 인간의 내면적 기능으로 환원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의심하는 자아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명확하고 특별한 마음의 생각이 지식의 기초였다. 일인칭의 관점이 확실성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데카르트에게는 개인의 의식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했다.
경험론과 합리주의는 모두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자신들의 자리를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신적인 지식, "하나님의 눈으로 본 실재관"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우주에 관한 완전한 이해와 설명에 이르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신적인 지식의 탐구는 자아라는 작은 우주로 제한되고 말았다. 이 두 사상은 피조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초월적인 창조주를 가리키는 이정표(signposts)임을 망각한 것이다.
* 칸트의 관념론: 칸트는 인간의 정신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에 구조와 질서를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실재는 정신의 구조물이다. 지식이라는 원재료는 감각의 인상들인데, 이 인상들은 뒤죽박죽이 된 혼돈의 상태로 눈과 귀를 통해 마음 안에 밀려 들어온다. 이 인식들이 어떻게 하나의 통전적이고 지성적인 전체로 체계화되는가? 인간의 마음의 창조적 작용을 통하여! 인간의 정신은 진흙을 주형 안에 압축해 넣는 것처럼 감각적인 인식을 시간 순서별로 혹은 주제별로, 혹은 공간별로 정리한다.
인간의 마음이 자연에 법을 부여한다. 인간의 마음이 피조물에 법을 부과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떠맡는다. 인간의 마음이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감각의 인식에 부과할 때는 시간 밖에 있어야 한다. 칸트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마음을 초월적 자아라고 불렀다. 이 자아는 평범하고 경험적인 자아가 아니라 고등한 자아, 보편적인 마음이다. 칸트는 이 초월적 자아가 세운 체계가 완전히, 확실한, 영원히 확립된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철학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나 자기 마음의 실존뿐이라고 주장하는 유아론(solipsm)이다. 칸트가 제시한 초월적 자아는 결국 신적 대체물인 우상이다.
~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2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