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4막26장 (4부)
강화도 연수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시간강사나 교수 또는 저명인사를 초빙하여100분간 수강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스케줄을 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수강생은 기업체의 직원들이나 또는 공무원들이 합숙하며 오리엔테이션처럼 자유스럽게 강의도 받고 토론도 하며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명품의 장소로 초빙된것이다.
연수원은 서해바다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언덕 중간에 있었고 , 짜디짠 바다 바람이 물씬 느껴지는 절대절명의 명소였다.
그곳은 연수원이 아니라 콘도나 리조트 같았다.
조금은 비포장도로를 들어가야 하였고 연수원에 도착하면 시골 학교처럼 자그마한 운동장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모두 즐거운양 걷는 모습도 즐거워 보였다.
88올림픽 개최에 즈음하여 전두환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기업체들의 직원들의 교육을 강화하라는 것에 맞추어 연수원은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강사는 100분 강의에 인지도에 따라 틀리나10~20만원은 받는것 같았다.
친구는 서울에서 초빙하는 강사들을 모시고 와서 다시 서울로 모셔가는 교통편이 필요하였다.
연수원에서 차량을 구입하고 운전수를 두기에는 부담이 가는지 필요할때마다 초빙강사를 모셔오고 다시 서울로 모셔가는 교통편을 찾던중 나에게 부탁한 것이다.
서울에서 강화도 오는데 2시간 ,교육시간2시간, 그리고 서울로 돌아가는데 2시간 넉넉하게 잡아 8시간 잡고 반나절 택시비를 준다는 것이였다.
그당시 택시 입금액이 6만원 이였으니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괜찮았다.
드라이브하며 강화도에 가서 2시간 논다음 다시 모시고 오니 얼마나 좋고 편한일인가.
나는 친분이 있는 택시기사에게 부탁하고 강화도로 택시를 보내곤 하였다.
어떨때는 내가 택시를 몰고 강화도 연수원으로 가기도 하였다.
강사들은 점잖았고 낮잠을 즐기는 분이 다반사였다.
차는 조심스레 운전하여야 하였고 급정차나 급회전 할시는 가차없이 문책이 들어올것이고 이 좋은 거래는 단절될 것이니 자가용 운전수처럼 서행이나 규정속도를 준수하며 운전하여야 하였다.
연수원에 도착하면 친구가 마중나와 바닷가로 가서 허름한 식당에서 새우를 구어먹곤 하였다.
나는 종종 스트레스가 받을때는 택시운전수를 보내지 않고 내가 직접 갔었다.
용돈도 벌고 바람도 실컷 쐬고 오니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지금도 강화도를 갈시면 그때가 생각난다.
초지진 근처의 연수원이였다.
벌써 40여년이 지났으니 연수원이 있을리 만무건만
나는 초지진 주위를 배회하다 오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