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두 명의 스웨덴 연구자가 개의 신장에서 추출한 물질을 다른 개에게 주입했더니 혈압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 추출물의 활성 성분은 레닌renin이라는 효소인데, 폐에서 분비되는 또 다른 효소와 함께 작용해 강력한 혈관 수축 물질인 안지오텐신angiotensin II를 생성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폐에서 분비되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Angiotensin-converting enzyme,ACE이며, 혈압 조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효소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물, ACE 억제제는 이후 고혈압뿐 아니라 울혈성 심부전과 심근경색 치료의 표준 치료제가 되었다. 혈압약 캡토프릴 개발로 이어지게 되는 이 핵심 발견은 1965년 영국 약리학자 존 베인과 브라질 출신 박사후 연구원 세르히오 페레이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페레이라는 브라질 독사의 독에 관한 박사 논문을 작성하면서 이 독이 심한 장 수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것이 어떤 효소 억제 물질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 효소 억제 연구를 하고 있던 베인과 함께 연구하게 되었는데, 베인은 장 수축이 아니라 혈압 조절과 관련된 효소를 연구하고 있었다. 장 수축을 일으키는 화학 작용과 혈압 상승 메커니즘 사이의 유사성에 착안해 두 사람은 이 독이 ACE를 억제하여 혈압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험 결과 시험관 실험에서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독을 사람에게 직접 주입할 수는 없기에 베인은 제약회사 스큅Squibb에 독의 화학 구조를 분석해 독성 없이 혈압을 낮출 수 있는 물질을 설계할 것을 제안했고, 스큅의 연구자 데이빗 쿠시맨과 미겔 온데티가 이 제안을 실행에 옮겨 독 분자에서 혈압을 낮추는 부분을 찾아내고, 그 구조를 함유하는 다양한 화합물을 합성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캡토프릴'captopril이며, 1981년 카포텐Capoten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되었다. 이후 머크Merck & Co.의 ACE 억제제 배소텍Vasotec도 출시되어 최초의 ‘10억 달러 약물’이 되었다.
물론 ACE 억제제에도 부작용은 있으며, 가장 흔한 것은 기침이다. ACE 억제제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안지오텐신 II의 생성을 막는 대신, 그 작용 자체를 차단하면 어떨까?” 이 연구는 결국 안지오텐신 II 수용체 차단제Angiotensin II Receptor Blockers,ARB로 이어졌고, 노바티스Novartis의 디오밴Diovan(발사르탄)이 개발되었다. 이 약은 2003년 기준 연간 2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 모든 의학적 발전이 하나의 '뱀 독'에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