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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역사와 성서 조선의 거친 꿈
주: 2021년은 김교신(1901-1945)과 함석헌(1901-1989), 이 두 분이 태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지금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이 엄중히 요구되는 시대이며, 통일도 남북 동시 개혁 통일로서 준비해야 할 중차대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대개혁의 시대에 저는 김교신과 함석헌 두 분을 추모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두 분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었던 지난 2001년에 월간 <복음과 상황>의 서재석 편집장님이 제게 요청하여 <복음과 상황>(2001년 6월호)에 기고했던 글을 조금 수정하고 새로운 내용을 일부 추가한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 두 분의 글은 제 인생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가 함석헌 선생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로서,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1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태복음부터 한 장씩 날마다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비(心碑)에 새기던 때였습니다. 또한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통치가 극에 달하여, 돌멩이와 화염병, 최루탄이 온 광주 시내를 덮던 1987년이었습니다.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직후인 봄날의 어느 주일 오후, 광주 전남 지역의 교회들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전교회 연합 구국 기도회를 광주 금남로 YMCA에서 갖기로 하였고, 제가 다니던 광주 양림교회(당시 예장 개혁, 현재 예장 합동) 성도들은 성가대를 섬기기로 하여 어른부터 고등부까지 모두 성가대복을 입고 갔었습니다. 그러나 전투경찰은 입장을 봉쇄하였고 최루탄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그 앞 최루탄이 가득한 금남로의 도로 위에서, 2만 명의 성도들이 엎드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눈물의 탄원을 드렸습니다. 그 탄원을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이 집회는 광주에서 1980년 5.18 이후 가장 큰 집회였고, 광주에서는 이후 6월 항쟁으로 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불신자인 담임선생님마저 어제 시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집회를 보고 매우 감명 깊었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보수적 신앙을 가진 교회였지만, 어른들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르며 공의를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책 『뜻으로 본 한국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반도의 좁은 가슴을 버리고 대륙의 넓은 가슴을 품자!
이 책에서 제 가슴에 온 것은 함석헌 선생의 탄식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대륙에서 반도에 갇히더니 민족의 기상과 정신마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대아(大我)는 사라지고 소아(小我)만을 위해 서로 시기하고 죽이기에 바빴던 슬픈 역사…….
포로가 되어 청 태종 앞에 끌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게 옆 병사의 칼을 빼어 청 태종을 향해 ‘네 목숨이 내 몇 걸음 안에 있다!’ 호통 쳤던 임경업 장군 같은 이를, 청 태종도 호걸인지라 그 담력과 기상을 아껴, 살려 주어 다시 조선으로 보내 주었건만, 조선의 집권층이 모함하여 고문 끝에 죽여 버린 어처구니없는 역사…….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안팎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 역시, 우리 안에 있는 좁은 마음이었습니다. 대아적인 인물을 만나면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견제하며 시기하는 소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도의 좁은 가슴을 버리고 대륙의 넓은 가슴을 품자는 선생의 절규는 사회 운동의 분열상 앞에서 대연합을 위해 참으로 나누고 싶은 말입니다.
간디와 비폭력
함석헌 선생이 번역한 『간디 자서전』에서, 간디의 ‘사티아그라하’(진리파지, 眞理把知)와 ‘아힘사’(불살생, 不殺生)란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비폭력운동은 진리운동이요 생명운동이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비록 간디가 힌두교를 배경으로 비폭력을 주창했지만, 간디가 남아공에 세운 농장이름이 바로 톨스토이 농장이며, 나중에 톨스토이가 그의 만년에 간디에게 비폭력을 격려하며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간디가 비폭력을 톨스토이에게 배웠고 톨스토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배웠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힌두교도인 간디가 비폭력을 실천했다면, 자기희생과 원수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응당 더욱 비폭력의 삶을 살 수 있고, 비폭력의 운동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의인(義人)아, 두려워 말고 외치라!
함석헌 선생의 『두려워 말고 외치라』는 그리스도인의 선지자적 사명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전철에서 선생의 책을 읽고 있는데, 술 한 잔 드신 어느 아저씨가 함석헌 선생의 책을 읽는 청년이 있다고 반가와 하며 선생이 말한 것 중 의(義)라는 말이 자신에게는 가장 남는데, 지금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의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중요한 것이 바로 자기희생적인 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다수가 사익을 좇아가는 시대요, 의를 위해 일어서는 의인을 보기 힘든 시대입니다. 의인이 그리운 이 시대에,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자기희생적 의로, 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해 일어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민족의 복이 되면 좋겠습니다.
영원의 뱃길과 생각하는 백성
함석헌 선생은 『영원의 뱃길』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로 끌려가는 사도 바울의 뱃길여행을 담은 사도행전을 인용하여, 우리 인생이 바로 영원을 향한 뱃길이며 인간은 종교적 존재임을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영원의 뱃길에서 지나가는 짧은 여정으로 알고, 이 현세의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서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새로운 나라는 오직 생각하는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그 교훈을 미래에 적용할 줄 아는 생각하는 백성만이 산다는 말씀이 오늘날과 같은 총체적 부패의 시대에 더욱 가슴에 저미어 옵니다.
자아 변혁과 사회 변혁을 함께
함석헌 선생은 『인간혁명의 철학』에서 자아 변혁과 사회(제도) 변혁은 모두 중요하며, 이 두 가지는 상호 깊은 영향을 미치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여 자아가 변혁되는 것과, 운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불의한 제도가 의롭게 변혁되는 것은 모두 중요하며 이 두 가지는 상호 영향을 미치는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음을 통찰하고,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미성숙은 이제 버리면 좋겠습니다.
종교다원주의의 독소
그러나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으며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종교다원주의 문제였습니다. 선생의 책을 읽은 교회 후배가 구원관의 혼란으로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독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선생은 1950년 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이라는 제목의 구절이 일반 사람에게는 걸림이 될듯하니 빼면 어떤가 하는 의견이 잠깐 나왔으나 그것은 사슴에게서 뿔을 자르는 것 같아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이 글이 이 글 된 까닭은 성경에 있다. 쓴 사람의 생각으로는 성경적 입장에서도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자리에서만 역사를 쓸 수 있다. 똑바른 말로는 역사철학은 성경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서양에도 없고 동양에도 없다. 역사는 시간을 인격으로 보는 이 성경의 자리에서만 될 수 있다.”
그런데 1965년 판 서문에서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내 역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차차 늘어가서 1961년에 그 셋째 판을 내려 할 때에 나는 크게 수정을 하기로 하였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만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타나는 그 형식은 그 민족을 따라 그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알짬되는 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1960년대 판 서문에서 선생은, 원제인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에서 ‘성서적 입장’이란 말을 버리고 ‘뜻’이라는 말로 바꿔 그리스도교의 제한된 울타리를 떠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저는 선생이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좁은 길 대신 지식인들에게 영합하는 넓은 길로 갔고, 그 후 종교다원주의로 지식인들과 청년들에게 그 해악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성서를 조선에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함석헌 선생을 통해 배운 것 이상으로 김교신 선생에게서 저는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 조선』머리말에서, “사람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조선에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서를 주고자 한다. 성서를 조선에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그러므로 성서 조선!”이라는 요지를 글로 쓰셨는데, 선생이 벅찬 가슴으로 쓰신 그 ‘성서 조선’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제 가슴에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불사이자사(不思而自思)
김교신 선생이 『성서 조선』에 쓴 글 중 잊히지 않는 글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이 글입니다. 선생은 평소에, ‘깨어있을 때는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데, 잠이 들면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이른 새벽 평소처럼 맑은 시냇물가의 바위 위에 기도하러 가기 위해 잠이 깨었을 때, 자신이 잠을 자면서 예수님을 생각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썼습니다.
불사이자사(不思而自思)! (예수님을) 일부러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의 어느 소설에서 당시 유행가의 한 소절로 나온 것을 보았는데, 선생은 이 가사를 이와 같이 심오한 신앙의 자리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깨어 있을 때도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했던 저는 이 글을 부끄러움 가운데 충격으로 읽었습니다. 김교신 선생을 본받아 깨어 있을 때나 잠 들 때나 예수님을 생각할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저는 간절히 원합니다.
심령이 부요한 선비와 진주 찾는 사람들
그리고 김교신 선생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해석하면서, 조선의 선비는 청빈을 덕목으로 삼아 물질적 가난을 추구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 부하고 교만하여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다가 저와 같은 소위 먹물 든 사람들, 또 입신영달을 포기하고 가난을 선택해 운동하는 활동가들조차도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그 마음이 자긍하고 다른 사상들로 너무 부요해서 예수님을 모셔 들일 수 없는 고루한 조선의 선비들과 같지는 않는지 심각하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하여 ‘진주 찾는 사람들’이라는 글에서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하나님의 나라의 보화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바라는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조와(弔蛙)
김교신 선생의 ‘조와’(弔蛙: 개구리를 애도함)라는 글은, 일제에 의해 조선의 독립을 의도했다는 이유로 『성서조선』이 폐간당하고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르게 된 글입니다. 봄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 추위로 죽은 개구리들이 연못에 떠 있어 선생이 연못 바닥을 살펴보니 개구리들이 움직이지 않아 ‘모두 죽었구나!’ 탄식할 때, 저기 한 쪽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고, 자세히 살펴보니 죽지 않은 개구리들이 있어 ‘아, 살아 있구나!’ 감사하였다는 내용입니다. 혹한에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죽지 않은 개구리들이 꿈틀거렸던 것처럼, 죽지 않은 민족정신이 있어 조선의 독립을 나타냈다는 것이 일제의 핍박 이유였습니다.
고난의 역사, 수난의 여왕
김교신 선생이 혹한 중에도 살아 꿈틀거리는 개구리에게서 민족의 희망을 발견하였다면,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우리 겨레의 역사는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이나, 이 고난에 반드시 의미 있다고 갈파하였습니다. 우리 겨레는 주변강대국들에 의해 짓밟혀 마치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한 길가에 내동댕이쳐진 버림받은 늙은 창녀의 신세와 같지만 그 뱃속에 세계 평화를 가져올 왕자를 잉태하고 있다고 하였고, 그래서 우리 겨레를 ‘수난의 여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명은 이 수난의 여왕으로 하여금 왕자를 해산하게 하는 것, 바로 이 고난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서 조선의 거친 꿈과 통일한국의 세계사적 사명
고통당하는 자본주의와 실패한 사회주의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계 인류 앞에 이 양 체제를 극복하며 그 갈 길을 제시할 자격은 아무 민족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요, 바로 이 양 체제의 대립으로 쓰디 쓴 고난의 잔을 마셔야 했던 우리 겨레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고통 속에 통일을 고민하는 우리만큼 양 체제를 극복할 대안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성서 조선의 거친 꿈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원리와 대안을 찾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극복하는 모범 국가로 통일 한국을 이루어 내고 인류의 살 길을 제시한다면 고난의 역사는 비로소 그 의미를 찾게 될 것입니다. 타고르의 시와 같이 동방의 타오르는 횃불 코리아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통일한국을 건설하여 세계 인류의 나아갈 길을 환히 비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
저는 김교신 선생을 존경하지만 선생에 대해 꼭 할 말이 있습니다. 1938년 말에, 조선총독부가 『성서조선』에 일왕(日王) 히로히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의 서사(皇国臣民ノ誓詞)”와 “전승(戰勝)의 신년(新年)을 마지면서”를 수록하지 않는 한 『성서조선』을 폐간하겠다고 통지했을 때, 선생은 차라리 『성서조선』을 폐간할지언정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결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며칠을 기도하고 고민하고 지인들의 조언을 구한 후에, 『성서조선』을 계속 간행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김교신 선생의 고뇌에 연민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생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더구나 『성서조선』이라는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이름들이 적힌 표지의 안쪽 면 첫 페이지에 감히 어떻게 “황국신민의 서사(皇国臣民ノ誓詞)”와 “전승(戰勝)의 신년(新年)을 마지면서”라는 더러운 글들을 수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래에 그 부끄러운 기록을 그대로 기재하오니,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聖書朝鮮』 1939년 1월호의 표지 안쪽
상단: 일왕(日王)의 궁성 사진
하단 우측:
황국신민의 서사(황국 신민의 맹세)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서 군국에 보답하련다.
둘,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셋,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하여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하단 좌측:
전승의 신년을 마지면서
전승의 제삼년의 신년을 마지하며 세계의 평화와 동아의 영원한 안정을 위하야 제일선에서 분전하는 황군의 건투와 만복을 근축하는 동시에 황군의 무운장구와 황위의 선양을 아울너 기원하며 총후의 신민으로서 현하의 시국을 재인식할뿐안이라 전도보국과 문필보국으로써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를 서원하는 바이다.]
김교신 선생은 평생토록 성서를 연구하고 글을 써서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온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신앙 양심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의 그 오점 때문에 순결했던 『성서조선』은 더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 살아있던 정신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조선총독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 대가로 『성서조선』이 폐간을 당했더라면, 『성서조선』은 그 폐간으로 말미암아 더욱 찬연히 빛나게 되었을 것이며, 후세에 그 불굴의 정신을 전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교신 선생의 결정은, 당시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자행한 자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자 허락하신 마지막 시험에서 김교신 선생은 낙제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성서조선』은 그에게 우상이 되고 말았음을 그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생토록 붙들었던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가 만든 『성서조선』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오류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 죽임을 당해야 할 때 수치스럽게도 목숨을 구걸하여 연명함으로써 평생의 지조를 더럽히고 마는 일이 어디 『성서조선』뿐이겠습니까? 김교신 선생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차라리 폐간을 당할지언정, 차라리 폐교를 당할지언정, 차라리 죽임을 당할지언정 그 목숨을 구차하게 부지하고자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에 거리끼는 어리석은 선택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을 바라보고 영원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실존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