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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베레스트 지역 트레킹 12경 (2021. 5. 23)
-학정천리(鶴程千里)-선비의 먼 여행
제1경 루클라의 신목(神木)
제2경 라자 도반의 출렁다리
제3경 조르살레에서 본 탐세루쿠
제4경 남체에서 바라본 꽁데리 여명(黎明)
제5경 칸쥬마의 붉은자작나무숲
제6경 사나사의 길옆 바위
제7경 루자의 야크 방목장
제8경 마첼모 언덕에서 본 초오유
제9경 종글라에서 바라본 로부체 서봉, 동봉
제10경 로부제에서 바라본 신산(神山)
제11경 꼬락셉 호수와 푸모리 조망
제12경 텡보체에서 내려 본 임자 꼴라
개요; 지금 ‘코비드 19’ 창궐로 국외 등산이 매우 힘들다. 다시 갈 수 없어, 회고 삼아, 2021년 5월 옛 자료를 정리하다 발견해, 뒤늦게나마 정격 단시조로 짓는다. 2000. 4. 6(목)~4. 23(일) 17박 18일정의 ‘쿰부 히말 에베레스트’ 지역 트레킹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 21년의 세월이 지난 만큼, 그쪽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당시의 상황으로 소급해 작시(作詩)했으니, 지금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선정(選定)은 진행 방향을 따랐기에, 풍광의 우열순위가 아니다. 날짜는 현지 기준이다. 국외 산에 경관을 몇 경식으로 골라 집약화, 체계화시킨 것은 필자가 세계 최초이다. 대부분의 승경(勝景)은 졸저 세계산악시조 제2집 『山情無限』 네팔 24제로 수록했으나, ‘쿰부’ 쪽 6수(36~43면) 만으로는 어쩐지 빈약한 느낌이 들어 13수를 추가한다.(네팔 총 36제)
* 히말라야에서 미망(迷妄)의 길을 헤메며, ‘파랑새의 꿈’을 쫓는 치열한 구도자의 모습!
서시
쿰부는 히말 보석 주신(主神)의 안동네라
뛰어난 등반가들 동경(憧憬)하는 언덕이니
미망(迷妄) 길 헤메드라도 파랑새 꿈 쫓게나
가) 고쿄 트렉(Kokyo Trek)
제1경 루클라의 신목(神木) (2000. 4. 8)
비행장 위험해도 할배는 모를 거야
등반객 마중하는 두 거수(巨樹) 신바람 나
한바탕 살풀이춤 추며 내 볼에다 입맞춰
*루클라(Lukla);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해발 2,850m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로, 비교적 높은 곳에 속한다. 교통편은 텐징-힐러리 공항이 있으며, 에베레스트(8,848m) 산 트레킹을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활주로 길이가 350m 밖에 안되는 위험한 비행장이다.
*트레킹 개시 후 30분 쯤 지나, 오른쪽에 한국의 신갈나무 비슷한 거대한 나무 2그루가 있다. 제단과 타루초가 있다. 현지인은 신성시해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그냥 ‘파싱’(passing?)이라 하기에 지나쳐 버린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처; 爲我謝申包胥曰(위아사신포서왈), 吾日暮途遠(오일모도원), 吾故倒行而逆施之(오고도행이역시지).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제2경 라자 도반의 출렁다리(2000. 4. 9)
만발한 목련꽃은 바람에 살랑대고
합류 강 격하여라 출렁다리 아찔해도
내 마음 저울과 같아 대인대물(對人對物) 차별 없어
*라자 도반(Larja Doban, 2,830m); ‘인연을 건너다’라는 뜻이다. 제4일차 트레킹이다. 10시경 몬쥬(Monjo)에서 휴식중, 80세 된 일본 오사카 거주 노령의 트레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당시 54살) 과연 그 나이에 히말라야에 갈 수 있을지?” 자문자답해본다. 10:45 체크 포스트에서, ‘사가르 마르타’ 국가공원 입장료 1인당 650 루피 지급하다. 길옆 목련화가 만개했고, 강 합수점 출렁다리가 운치 있다. 로부체에서 흘러 내려온 ‘두드 코시’(दुध कोसी, Dudh Koshi, 우유빛 강) 강과, 추쿵에서 발원한 ‘임자 꼴라’ 강이 합류해 이 다리를 지나면서, 다시 타미(Thami) 쪽에서 흘러나오는 ‘보데 코시’(Bhote Koshi) 강과 만나는 곳이다. 지금은 다리를 그 위쪽으로 옮겼다 한다.(2021. 5. 23 산벗 임형운 구술)
*아심여칭(我心如秤);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 즉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내 마음은 저울과 같아서 사람들에 대하여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도록 처리한다.(我心如秤, 不能爲人作輕重.) 제갈량(諸葛亮)의 《잡언(雜言)》을 인용한 《풍당서초(馮堂書鈔)》)에서.(고사성어대사전)
*대인대물;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제3경 조르살레에서 본 탐세루쿠(2000. 4. 9)
스크린 확대하니 백상어 다가오네
날카론 톱이빨로 고려인 물려 하나
눈앞이 도산지옥(刀山地獄)인데 헛놀음을 왜 하노
*조르살레(Jorsalle, 2,740m); 트레킹 제4일차 점심 먹은 장소이다. 여기서부터 계곡의 경치가 아름답고,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오른쪽(동쪽)으로 상어 이빨처럼 생긴 탐세루쿠(Thamserku 6,608m)가 지옥으로 다가온다.
*도산지옥; 온통 칼로 뒤덮인 산을 의미하는 지옥으로, 진광대왕의 심판에 통과하지 못한 중생들이 떨어지는 지옥이다. 구두쇠가 가는 지옥인데, 이곳에서의 형벌은 끝없는 칼날을 맨발로 걸어가야 한다.(위키백과)
제4경 남체에서 바라본 꽁데리 여명(黎明)(2000. 4. 10)
새하얀 꽁데리는 황금으로 물드는데
퍼지는 붉은 햇살 폐부로 빨려들어
임자체 못 오른 한(恨)을 미련 없이 씻어줘
*2000. 4. 9 15 시경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3,440m)에 도착. 여장을 풀다. 그 이튿날 쾌청. 순백의 설산 꽁데 리(6,186m)의 여명(黎明)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시계(視界)가 뚜렷해 눈부실 지경이다. 당초 계획은 남체를 근거지로 삼아, 추쿵(Chhukung 4,730m)에서, 임자체(Imja Tse 6,189m, 일명 아일랜드 픽)를 오르려 했으나, 준비 부족으로 포기하고, 전(全) 일정을 트레킹으로 대체하기로 변경했다.
제5경 칸쥬마의 붉은자작나무숲(2000. 4. 10)
고소증 덤벼오니 개꿈을 자주 꾸네
조손(祖孫)이 함께 줍는 국화(國花) 길 멀찌감치
쌍연하(雙煙霞) 내려앉았나 자작숲도 붉어라
*12:30경 칸쥬마(Kyangjuma 3,600m) 롯지 도착. 마침 새빨간 네팔의 국화(國花) ‘랄리구라스’가 요염하게 피어있고, 마을은 온통 ‘붉은자작나무숲’으로 덮여있어 마친 빨간 노을이 내려앉은 듯하다. 점심 먹고, 사나사((Sanasa 3,600m)를 거쳐, 몽라(Mong Ra 3,973m) 고개에 이르다.
제6경 사나사의 길옆 바위(2000. 4. 10)
고도는 점점 높아 한눈에 잡힌 절승(絶勝)
등로 옆 얼굴 바위 묵조선(默照禪)을 하는데도
장님은 점자(點字) 더듬다 냅다 고함 내질러
*사나사 롯지에서 밀크티를 한잔 마셨다. 옆 근사한 ‘큰 바위 얼굴’을 마치, 소경(나그네)이 점자를 더듬듯 이리저리 만지고 중얼대며 감상하다, 난데없이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길손이여! 그대는 바위를 풀이하고, 정말로 득도했는가?” 당시 트레킹 기(記)에는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을 빠트렸으나, 최근의 인터넷 지도와 사진을 보고 간신히 기억을 되살렸다. 바위에는 범어(梵語)가 흰 글씨로 쓰여져 있다. 여기서 명봉(名峯) 아마 다블람(Ama Dablam 6,856m)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묵조선(黙照禪); 중국 조동종(曹洞宗)의 굉지(宏智)가 주창한 간화선(看話禪)에 대응되는 선법이다. 묵묵히 말을 잊고, 수행을 이어가면 밝은 본성이 저절로 묘한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동시대에 간화선을 주창했던, 대혜(大慧)는 이를 두고, “검은 산 밑에 있는 귀신의 굴로 빠져들게 하는 선법”이라 혹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묵조선보다 간화선 계통의 수행법을 많이 취한다.(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인용 수정)
*이곳은 코쿄 트렉과 에베레스트 트렉을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므로, 진행 시 주의하여야 한다.
제7경 루자의 야크 방목장(2000. 4. 11)
산비탈 목장이사 갈지자 꼬부랑길
워낭은 딸랑딸랑 나그네 귀 해탈(解脫)하니
목녀(牧女)여 검은 야크에 까타 하나 걸쳐줘
*4.11 15;16경 루자(Ruza 4,360m)에 도착해 약 20분 쉰다. 마첼모(Machhermo 4,440m)에서, 오늘 일정을 마감할 것이다. 루자부터 산록(山麓)에 목장(카르카 Kharka)가 즐비하다. 히말라야에서는 억순이(여자)들이 야크를 많이 몰고 다닌다. 4.10(어제) 몽라 지나, 일행인 조창환 선생이 야크 사진을 찍으려 하자, 여자 몰이꾼이 “My Yak~~“라 강조하면서, 텃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킥킥” 웃고 말았다.
*야크(Yak,학명 Bos Grunniens); 티베트와 히말라야 주변,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몽골에 주로 사육되는 긴 털을 가진 소의 일종이다. ‘야크’(Yak)는 원래 수컷을 의미하며, 암컷은 ‘드리’(Dri) 또는 ‘나크’(Nak)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언어(영어 포함)는 암수 구별 없이 그냥 ‘야크’라 한다. 야생의 경우 몸길이는 수컷이 약 3.25m, 어깨높이 약 2m, 몸무게 500~1,000kg이다. 몸 빛깔은 흑갈색이고, 어깨·옆구리·꼬리의 털은 길고 매끄럽다. 움직임이 재빨라 급하게 흐르는 강도 헤엄쳐 건널 수 있으며, 가파른 바위 경사도 오를 수 있다. 야생종과 가축화된 것이 있다. 소를 닮았으나, 어깨가 융기되고 늑골이 한 쌍 더 많은 14쌍이다. 야생종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검정색이 많아 보통 ‘블랙야크’라 하고, 이를 따와, 제주 출신의 강태선(姜太善) 회장이 운영하는 등산장비 제조업체의 기업명과 등록상표이기도 하다.
*까타(Khata); 네팔이나. 티베트 등에서 방문객이 오면, 목에다 걸어주는 ‘행운을 비는’ 흰 천(때로는 ‘옴마니파드메훔’ 眞言을 쓴 것)을 말한다.
제8경 마첼모 언덕에서 본 초오유(2000. 4. 11)
야크 똥 넣어봤자 난로는 미지근해
함박눈 덮은 천지 여신이 춤 멈추자
봉황은 날개를 펴고 천상으로 오르네
*16;40경 마첼모에서 종일 힘들었던 다리품을 쉬게 한다. 루자(Luza 4,360m)에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1시간 걸렸다. 그네들은 자기들 걸음을 기준하므로 시간 측정 시는 늘 늘려 잡아야 한다. 길옆 눈(누운)향니무 군락이 근사하다. 프라이빗(private, 독방식 침대 2)이 아닌, 도미토리(domitori, 개방식 여럿이 사용)에 입실한다. 야크 똥은 그들에게 아주 귀중한 연료이다. 마침 백설이 내려 주위가 장관이다. 여기서 바라본 초오유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형국이다.
*초오유(8,201m); 영어 Mount Cho Oyu는 네팔과 중국의 국경에 위치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에베레스트산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음역어로는 卓奥友峰(탁오우봉)이라 불린다. 1952년 에릭 십턴이 이끄는 등반대가 최초로 등정을 시도한 이후, 1954년 10월 19일 오스트리아 원정대의 헤르베르트 티키와 세르파 파상 다와 라마가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청록의 여신’이라 부른다.(위키백과 인용 수정)
*4.12; 09;20 팡(4,550m) 지역 통과→10;35 분기점→11:49 퍼스트 레이크(4,650m)→14;39 고쿄 롯지 입실. 타보체 초(고쿄 호수) 감상과 휴식.
4.13; 10;40 고쿄픽(5,357m) 등정하고, 오후는 휴식. 한국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일.
4.14; 동반자인 조창환 선생은 워낙 고령(당시 78세)인데다, 예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마쳤기에, 남체에서 체류하면서, 가까운 곳으로 유산(遊山)키로 하고, 필자는 가이드인 덴징 셀파(당시 22살)만 대동하고, 에베레스트 트렉을 개시하다. 07;45 출발→08:05 레이크→09:52 지긋지긋한 고줌바 빙하(Gyazumba Glacier) 건넘→당락(Tarmak 4,700m) 롯지→15;05경 간신히 초라(Cho La 5,330m) 고개 오름. 덴징 셀파와 하이파이브→15;45 초원지대(4,700m) 진입. 눈 내리기 시작.
나) 3-패스 루트(Pass Route)
제9경 종글라에서 바라본 로부체 서봉, 동봉(2000. 4. 14)
지긋한 빙하(氷河) 돌에 길손은 탈진하고
악마 코 짓밟아도 선심(善心) 쓴 고개인데
야멸친 로부체 두 봉(峰) 쏘아붙인 입매여
*17;00경 종글라(Dzonglha 4,830m) 롯지에 도착. 본격적으로 함박눈이 쏟아져 정취가 일품이다. 북동쪽으로 세모꼴의 날카로운 로부체 서봉(Loveche West 6,145m)과, 로부체 동봉(Loveche East 6,119m)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 에베레스트 트렉
제10경 로부체에서 바라본 신산(神山) (2000. 4. 15)
낯선 새 맑은 울음 적막을 깨트리고
산허리 돌고 나면 별천지 열리나니
신(神)들은 승전무(勝戰舞) 추며 격앙가(激昂歌)를 부르네
*07;45 종글라 출발. 눈길을 따라 운행. ‘콩메’ 라는 새가 아름다룬 소리를 내며, 힘차게 비상한다. 외국인이 번개처럼 지나가는 허리 길을 돌아 11;21 로부체 도착. 북동쪽에 있는 세계최고봉인 ‘사갈마르타’(Sagarmatha 8,848m, 일명 에베레스트Everest)와, 로체(Lhotse 8,516m), 눕체(Nuptse 7,855m) 봉우리들을 연달아 관망한다. 서남쪽으로 촐라체(Cholatse 6,440m)가 아스라이 보인다. 촐라체 북벽에서, 2011.11.11. 16시경 탐험 중이던, 김형일(43) 대장과, 장지명(32) 대원이 목숨을 잃었다.(시신 수습)
*서울산악동우회 N씨는 경기도 포천의 별장 이름을 한자로 바꿔 ‘로부재’(路阜齋)로 운치 있게 지었다.
*격앙가(激昂歌); 4,300년 전 요순시대의 노래. 해 뜨면 일하고/해 지면 쉬고/우물 파 물 마시고/밭 갈아 밥 먹으니/임금의 혜택이 내게 그 무엇이더냐? 백성에게 군주의 존재가 인식되지 않아야 진정한 정치인 것이다.
제11경 꼬락셉 호수와 푸모리 조망(2000. 4. 15)
호수는 말랐는데 비단꿩 괴성 질러
노림수 흑주(黑珠)이나 옹주(翁主)가 날 껴안자
주신(主神)이 껄껄 웃으며 사윗감은 아니군
*15;27 이번 트레킹의 목표지점인 깔라파타르(Kala Pattar 5,550m) 등정을 위해, 최종 기착지 꼬락셉(Gorakshep 5,140m) 도미토리에서 여장을 푼다. 마침 한 쌍의 비단꿩(히말라야무지개꿩)이 낯선 이방인에 놀랐는지, 괴성을 질러댄다. 뒤쪽 호수가 꼬랍셉 초(Tsho)이다. 지금은 바짝 말라 있으나, 우기인 겨울에는 허리까지 물이 차서 꽁꽁 언다고 한다. 그 뒤로 깔라파타르와, 더 멀리 북쪽으로 ‘에베레스트의 딸’인, 미봉 푸모리(Pumo Ri 7,165m)가 버티고 있다. 고소증은 한층 심해, 머리도 식힐 겸, 일본 노등산객이 방의 벽에다 쓴 한시(칠언절구)를 감상한다.
*16(금) 05:37 예정보다 37분 늦게 출발. 고산증으로 인해 얼굴이 퉁퉁 붓고, 두통이 심하다. 어제 밤은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보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제1코스를 택해, 07; 35 드디어 꿈에 그리든 꼭대기를 밟았다. 현지인의 말로 그냥 ‘검은 바위’로 불리는 곳에, 빛바랜 타루초가 펄럭인다. 건너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주봉(8,848m)을 오르려는, 세계 등반가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갑자기 엉뚱한 욕심이 발동한다,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묘하다. “어느 지점을 오르고 나면, 더 높은 곳을 오르려는 욕망”. 나는 에베레스트를 보기 위해, 깔라파타르(흑주)를 오르는 것이지,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여기 온 것이 결코 아니다!
*푸모리; 에베레스트 앞(서북향)에 있는 삼각형의 미봉이다. 한국은 1992. 5. 12 부산 빌라산악회 서성수 등 3인이 서남릉을 따라 초등했다.(1992. 5. 15 연합뉴스)
*일본 노등반가의 한시 소개; 雪山萬里湖珠峰 元朝泳二十星霜 報恩林子穗櫻笑 珠峰歲重七十五 만리 눈 덮힌 산에 구슬 같은 호수의 봉우리인데/ 새해 아침에 헤엄치기 20년이라/ 임자수의 앵두인양 웃음에 보답함이네/ 이 보배 봉우리에서 거듭 해를 맞는 75세여! 1999 元旦 大澤茂男(오자와 시게오) 作. ‘임자수’는 작가 부인의 이름으로 추정한다.(번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거봉산악회장 韓相哲)
*소감; 75세의 나이에 발가벗은 몸으로 네팔 국기를 흔들면서,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서 20년간 수영한 노익장! 정말 대단한 분이라 여긴다. 1977년 1월 1일에도 여기에 온 것을 보면, 2년에 한 번씩 얼음을 깨고 헤엄친 것으로 짐작한다.
제12경 텡보체에서 내려 본 임자 꼴라(2000. 4. 17)
꽃잎을 떨어트린 가멸찬 저 휘파람
공명(功名)은 부질없어 묘연히 흘러가다
개미가 올라탄다면 미련 없이 내주리
*텡보체(Tengboche 3,860m)에서, 북서쪽 아래 굽이치는 짙푸른 ‘임자 꼴라’(추쿵, ChuKhung, 5,845m에서 발원) 강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좋아하는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김용호 작사, 김동진 작곡)이 떠오른다. 잠시 회상에 젖어본다. 어느듯 남체 밑으로는 네팔 국화 랄리구라스가 한창 펴 꽃잎이 날린다. 쿰부 지역과, 안나푸르나 지역은 개화 시기가 다르다. 아! 인생무상! 제행무상이여! 뜬구름 같은 우리네 삶! 나는 꽃잎이 되어 물 흘러가는 데로 따라갈 것이다.
*4.16 09:35 꼬락셉에서 짐 정리 후 하산 개시. 11:30~40 로부체 휴식. 투클라((Tukla 4,593m)에서 점심. 14;25 페리체(Pheriche 4,243m) 도착. 15;35 쇼마레(Shomare 4,010m) 진입. 16:16 팡보체(Pangboche 3,901m) 도착 숙박.
*4.17 05;34 기상하다. 고도가 뚝 떨어지는 바람에 고소증이 완화되어 비교적 편히 잤다. 새벽 꿈자리 이야기다. 새로 지점장 발령을 받은 ‘개꿈’을 꾸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어제 밤에는 미봉 ‘아마 다블람’을 품에 안고 잤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꽁데’(Kongde) 능선의 아름다움은 순결한 처녀의 속살을 대하는 것처럼 황홀하다.
*제12일차 07; 20 출발. 08; 21 데보체(Deboche) 경유, 텡보체 도착. 콤파(티베트 불교 사원)는 문이 닫혀 관람 불가. 아마 다블람 사진 찍다. 09;54 물레방아로 유명한 풍기 텡가(Phunki Tenga 3,250m)에서 블랙티 마심. 또다시 고도 높임, 루시 야사(Lusi Yasa 3,500m)에서 점심. 12;21 사나사 경유. 14;00 남체로 귀환. 환영을 받다. 4일 만에 일행들과 감격의 재회(再會)를 하다.
*순우안분((順遇安分); 나에게 처해진 상황에 순응하고, 주어진 분수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는 뜻으로, 나에게 닥치는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는 말이다. 출전: 조선 중기의 문신 기준(奇遵)의 명(銘) 안분선(安分扇)에서.
*4.18(화) 18;45 트레킹 끝냄. 4.19~4.22 카트만두 관광. 4. 23(금) 귀국. 여정(旅程) 종료. 끝.
*보충 자료; 1921년 6월13일 “예상도 못했던 삼각형 덩어리가 심연으로 솟아올랐다. 가장자리는 기울기 약 70도로 솟구치고 있었으며, 끝은 보이지 않았다. 왼쪽으로 톱니 모양의 검은 산마루가 하늘에 걸려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웅대한 산의 비탈과 빙하와 아레트(Arete, 능선, 리지의 프랑스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공의 갈라진 틈들 사이로 한 조각 나타나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하늘 위로 더 높은 곳에서 에베레스트의 하얀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일련의 조각들을 조금씩 보는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전체를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조각들을 연결시킬 수 있었고,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조지 리 맬러리의 회고-“그래도, 후회는 없다”中에서.(다음카페 바우길에서 인용 수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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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書硏究》 제39호(2021년) 원고 2제.